다시 태어난 반 고흐 85화
21. 휘트니 비엔날레(9)
“흥미롭네요. 국적도 나이도 성격이나 작품관도 전혀 다른 두 사람에게 닮은 점이 많다고요?”
“그렇습니다.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럿인데 삶을 되짚는 것도 좋은 방식이죠.”
“삶이요.”
캐롤라인 스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경험과 심리 상태는 작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 중에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에드바르 뭉크 모두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죠.”
“좋습니다. 그럼 말씀해 주신 대로 두 화가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죠. 앙리 마르소부터 살펴주실까요.”
진행자 우진의 말과 함께 앙리 마르소의 약력이 화면에 소개되었다.
우진이 대본을 읽어나갔다.
“1995년 출생. 현재 32세죠. 프랑스의 유서 깊은 명문가 마르소 가문의 독자로 태어났습니다만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여의었군요.”
“네. 아주 어렸을 때는 조부가 살아 있어 그를 돌봤지만 10살이 되던 해 조부 기욤 마르소도 타계했습니다.”
캐롤라인 스트릭이 목을 가다듬었다.
“앙리 마르소는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로드 아일랜드 스쿨에 진학할 때는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상태였죠.”
“듣다 보니 확실히 고훈과 닮은 점이 보입니다. 고훈 작가도 작년에 불행한 사고를 겪었고 어린 나이에 큰 명성을 쌓았죠.”
“그렇습니다. 두 사람 모두 부유한 환경이 주어졌지만 어린 나이에 큰 슬픔과 상실감을 느꼈죠. 특히 앙리 마르소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군지 찾아 헤맸습니다.”
화면에 앙리 마르소의 자화상이 소개되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오직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읜 바람에 사랑받을 기회가 없었죠. 또 본인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에 지침이 될 대상이 없었습니다.”
“조부 기욤 마르소가 있지 않았습니까?”
“아들을 잃고 상심에 빠져 사실상 유모의 손에 키워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앙리 마르소의 작품관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자화상을 그리는 과정이 그에게는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었군요.”
“그렇게 봅니다. 정말 여러 시선으로 본인을 관찰하고 또 드러냈으니까요. 앙리 마르소의 자기애적 성향은 순수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갈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네. 그가 자신 아닌 다른 대상을 그렸죠.”
우진이 손짓하자 화면이 전환되어 앙리 마르소의 <그림자>를 비추었다.
“와우.”
우진이 감탄했다.
“정말 엄청난 대작이네요. 저 정도 크기면 어느 정도인가요?”
“150F 캔버스입니다. 긴 면은 2m가 넘죠.”
캐롤라인 스트릭도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큰 캔버스를 오직 눈 주변으로만 채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확대해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결점이 드러나기 쉽죠.”
“완벽주의자인 앙리 마르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죠.”
“그렇습니다. 만약 저 강렬한 시선과 고뇌에 찬 눈썹 주름 그리고 고훈 작가의 작품이 없었다면 사람이 그린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섬세합니다.”
“고훈 작가의 작품 이야기가 나와서 바로 말씀드리지만. 조금 전 이야기 나눴던 게 바로 고훈 작가의 작품 세 점이죠?”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이죠.”
“정말 독특합니다. 심지어 앙리 마르소는 휘트니 미술관에 직접 작품 배치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고훈의 작품을 직접 사들이는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요. 왜 그랬을까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캐롤라인 스트릭 교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앙리 마르소에게는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장미래 작가 외에는 미술적 재능과 집념, 노력은 비슷한 나이에 견줄 사람이 없었죠.”
“그가 고훈을 경쟁자로 여긴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마음이 없진 않을 겁니다.”
“하나 의문이 드는데요. 말씀하셨다시피 장미래 작가는 앙리 마르소만큼이나 사랑받고 있습니다만 앙리 마르소는 그녀에게는 이러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앙리 마르소와 고훈의 관계를 단순한 경쟁자로 보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훈에게 투영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유년 시절과 가정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인가요?”
“네.”
캐롤라인 스트릭이 고훈과 앙리 마르소가 <마르소의 보석>을 두고 싸웠던 당시 기사를 언급했다.
캐롤라인 스트릭이 고훈과 앙리 마르소의 관계를 설명하며 <그림자>에 대입하던 중.
뉴욕 220센트럴파크 사우스의 별장에서 ‘대화를 나눠요’를 시청하던 앙리 마르소가 불쾌한 듯 태블릿을 껐다.
“감히 누가 누굴 판단해.”
앙리 마르소는 고작 성장 배경을 들어 자신을 설명하려는 캐롤라인 스트릭을 같잖게 여겼다.
<그림자>를 완성하기까지 그가 들인 깊은 고뇌와 성찰. 그것을 광활한 캔버스에 옮겨 담는 과정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거만한 화가 앙리 마르소는 전시회 방문객과 자신 사이에 그 어떤 연결고리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전시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자 관람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표현하고 동시에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기에.
평론가, 도슨트, 사학자 등은 자신의 명성과 인기에 빌붙는 존재로밖에 보지 않았다.
앙리 마르소가 으드득 이를 갈며 미셸 플라티니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엄지와 중지, 소지를 유광 그레이 핑크로 무난히 바른 한편.
검지에는 두 가지 색상으로 그라데이션을 주었다.
작게 자른 스폰지에 피부색과 비슷한 색상의 펄 컬러 매니큐어와 그레이 핑크를 살짝 겹쳐 발랐다.
팔레트에 매니큐어를 덜어낸 앙리는 스펀지로 미셸의 검지 손톱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투명 펄을 덧바르며 스펀지 자국을 지워낸 뒤 그 위에 순금 가루를 별처럼 뿌려 마치 낮과 밤의 경계처럼 표현했다.
그런 다음 티슈에 리무버를 묻혀 손톱 옆에 묻은 매니큐어를 지워냈다.
미셸은 자신의 손톱을 캔버스처럼 쓰는 앙리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저분도 말했잖아.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앙리 마르소는 미술 애호가, 팬들을 무한히 신뢰했다.
자신을 솔직하게 내비쳤기에.
그에 환호해 주는 이들과 자신 사이에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자신했다.
“흐응.”
미셸은 채도가 낮은 그레이 핑크로 약지를 바르고 초승달 모양 큐빅을 찾아서 올리는 앙리를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앙리 마르소는 부정했지만 캐롤라인 스트릭의 말대로 고훈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보기에도 질투 날 정돈데.”
미셸은 고훈이 인터뷰에서 가장 기대하는 작가로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를 언급한 뒤로 줄곧 언짢은 기색을 내비친 연인을 떠올렸다.
앙리 마르소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뭔 소리야?”
“훈이 말이야. 솔직해지는 게 어때? 좋아하잖아.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거 뭐 있어?”
“하.”
앙리 마르소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그 빌어먹을 꼬맹이 그림을 좋아한다고?”
“응.”
미셸의 즉답에 앙리가 입술을 씰룩였다.
“인정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별개 일이야. 그 녀석이 재능 있는 미술가라는 건 인정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야. 절대로.”
“흐응.”
미셸은 좋아하지도 않는 그림을 1,400만 달러나 주고 샀냐며 놀려주고 싶었지만.
그가 해준 네일아트가 마음에 들었기에 넘어가 주었다.
‘그나저나 가 봐야 할 텐데.’
대신 고훈이 언제 작품을 거는지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고훈도 바빠 보였고 그녀 역시 따로 일정이 있었기에 제대로 차 한 잔 나누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훈이 발표가 언제더라.”
“내일 2시.”
미셸이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잡으려던 차 앙리 마르소가 입을 열었다.
미셸이 앙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
“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일정은 아주 꿰고 있잖아. 자기 일정은 안 지키면서.”
“시끄러워.”
“사실 기대하고 있지?”
“기대는 무슨. 그 시간에 뭘 할 수 있겠어.”
앙리 마르소가 깍지를 머리 뒤로 하고 침대 위에 누웠다.
“하긴. 시간이 워낙 짧았으니까.”
“……시시한 걸 걸었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앙리 마르소는 고훈에게 시간이 얼마 없었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졸작을 발표하는 것을 용납할 순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를 넘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또 코피 터진다?”
미셸이 싱글싱글 웃으며 놀리자 앙리가 벌떡 일어났다.
* * *
고훈의 세 작품과 앙리 마르소의 <그림자>가 큰 주목을 받으며 휘트니 미술관 일대가 마비되었다.
갠스부트가와 워싱턴가, 제인가는 차량이 이동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미술관 앞은 취재진과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가상 미술관 접속자는 개장 50시간 만에 100만 명을 훌쩍 넘기며, 휘트니 비엔날레는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초반,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작가는 다름 아닌 앙리 마르소.
컴퓨터와 기계를 넘어선 그의 기술과 전시 공간 자체를 활용한 구성력에 평단과 언론, 팬들의 찬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그와 대척점에 놓은 고훈의 신작에 관한 기대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휘트니 미술관의 도움과 선플라워 방태호 대표의 적극적인 요청 그리고 고훈을 향한 기대감에.
뉴욕 타임즈, 포스트, USA 투데이 등 유력 일간지 및 방송사가 고훈의 신작 공개를 취재하러 나섰다.
“엄마야…….”
대한민국의 미술 잡지 예화의 김지우 기자가 주변을 둘러보고 앓는 소리를 냈다.
대학생 시절 2년간 모은 돈으로 찾았던 휘트니 비엔날레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2020년.
친구를 따라 장 미쉘 바스키아 전시회를 접하고 미술을 사랑하게 된 김지우는 2년 후 2022 휘트니 비엔날레를 통해 미술과 관련된 직업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6년이 흘러 지금.
2028 휘트니 비엔날레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찾고 있었다.
‘성장하고 있었어.’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우물 속 개구리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다.
장미래, 앙리 마르소와 같은 새로운 주역이 떠오르면서 조금씩 세계 미술계도 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막상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과 그들 얼굴에 깃든 설렘.
허드슨강에 설치된 거대한 물 커튼에 비치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을 직접 보니 비로소 체감되었다.1)
가슴이 뛰었다.
잊고 있던 감정이 샘솟으면서, 김지우는 한국에도 이런 날이 오리라 다시 한번 희망을 가졌다.
저리도 많은 이들이 전시관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이거 들어갈 수나 있나.”
김지우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뉴욕 한복판에서 한국말을 들을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녀를 알아본 대한일보 이인호 기자가 반색했다.
“예화 김지우 기자시죠?”
“네. 이인호 기자님?”
“하하하! 이거 반갑습니다. 어떻게 오긴 했는데 이거 영 엄두가 안 나네요. 출입증 받으셨어요?”
이인호 기자가 휘트니 비엔날레의 언론인 출입증을 보이며 물었다.
“네. 기자님도 훈이 취재하러 오셨나 봐요.”
“저뿐이겠습니까. NBC고 CBS고 다 왔던데요.”
김지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멀리 지상파 3사의 로고가 붙은 카메라가 몇 보였다.
한국 언론에서 고훈에게 주목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언론사가 찾을 줄은 몰랐다.
김지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인호는 그런 그녀를 신기하게 여겼다.
취재 경쟁 상대가 늘 뿐이고 지금껏 고훈의 인터뷰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김지우에게는 좋은 일일 수 없었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그럼요. 훈이에게 관심이 많다는 뜻이잖아요.”
이인호는 순수하게 기뻐하는 김지우를 보다가 슬쩍 미소 짓고 입을 열었다.
“훈이 걱정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그렇긴 하죠. 그래도 절대 실망하진 않을 거예요. 아.”
김지우가 이번 전시회에서 주목받는 또 한 명의 작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를 발견하곤 곧장 발을 옮겼다.
“다음에 봬요! 수고하세요!”
멀어져가는 김지우를 보던 이인호가 정신을 차리고 발을 뗐다.
* * *
1)가장 미국적인 화가.
도시의 소외감, 고독을 다루며 신고전주의, 사회적 사실주의, 인상주의적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