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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84화 (39/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84화

21. 휘트니 비엔날레(8)

앙리 마르소가 샀던 <해바라기>와 <서리 밀밭>이 왜 저기에 걸려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더욱이 마르소 경매장에서 가면 쓴 남자가 낙찰받아 간 <손님>도 있다.

그것도 제법 좋은 자리에 말이다.

방태호가 나를 내려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래.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나와 할아버지가 존 카터에게 물었다.

“모르셨습니까?”

존 카터가 방태호에게 물었다.

방태호도 몰랐던 눈치다.

알았다면 내게 알려줬을 테고, 휘트니 비엔날레에 작품을 걸기 위해 굳이 2주나 잠까지 줄여가며 무리하진 않았을 거다.

존 카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 달 전에 마르소 갤러리에서 문의해 왔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에 마르소 씨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싶다고요.”

나도 방태호도 할아버지도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입을 살짝 벌린 채 존 카터의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고훈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기에 큐레이터와 상의 끝에 수락했죠. 미국에도 고훈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고 북미에서는 처음이니까요. 특히나 서리 밀밭은요.”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

“한 달 전이라고요?”

“네.”

<해바라기>는 그렇다 쳐도 경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서리 밀밭>을 전시하고 싶다고 문의했다니.

앙리 마르소가 아무리 천방지축이라도 휘트니 미술관과의 약속을 생각 없이 번복하진 않을 테니 처음부터 살 생각이었던 거다.

반드시 말이다.

그가 왜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르면서까지 <서리 밀밭>을 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내 그림을 휘트니 비엔날레에 걸어준 이유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다.

‘작품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서리 밀밭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야.’

앙리 마르소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호의?

단순히 그 때문에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는 건가.

“손님은요? 손님도 마르소가 넘겼어요?”

“그렇습니다.”

존 카터의 말에 나도 할아버지도 방태호도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마르소 씨는.”

존 카터가 시선을 옮겼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사람들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방태호를 올려다보자 다시 들어주었다.

내 그림과 반대편 벽에는 두 개의 에메랄드가 빛나고 있었다.

가로로 놓인 캔버스는 150F(227.3㎝×181.8㎝)는 되어 보일 정도로 컸다.

저 넓은 영역을 오직 이마 일부와 눈 그리고 코끝을 표현하는 데 할애한 것이다.

“맙소사.”

방태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했다.

앙리 마르소라면 진저리 치는 할아버지마저도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그림을 살폈다.

두 에메랄드빛 눈은 마치 반대편에 걸려 있는 내 그림을 보는 것처럼.

<해바라기>와 <손님> 그리고 <서리 밀밭>을 담고 있었다.

“당신에게 큰 영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존 카터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부터 이런 구성을 생각해 두고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셸 플라티니 대표가 마주 보게 걸어달라고 얘기했으니까요.”

이미 한 달 전, 아니, 저 작품을 구상했을 때부터 생각해 왔단 뜻이다.

“저 그림을 받고 나서야 왜 당신의 작품을 마주 보고 걸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죠.”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요.”

방태호에게서 내려 앞으로 향했다.

고맙게도 사람들이 날 알아보며 길을 터주었다.

그와 나 사이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마주한 순간.

그가 왜 사랑받는지 알 수 있었다.

이토록 가까이에서 보고 있음에도 빈틈을 찾아볼 수 없다.

눈을 속이는 기술이라곤 조금도 없이, 철저하게 피부결, 눈썹 한 올, 주름 하나까지 표현해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눈이다.

동공의 지름이 적어도 30㎝는 되어 보일 정도로 크게 그린 눈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래라는 생물체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압도적인 크기의 눈을 마주한 기이한 경험과 동시에 그 눈에 비친 내 그림 때문에 오싹하다.

‘대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할 순 없지만.

내 그림을 담고 있는 그의 두 눈에서 강인한 의지가 느껴진다.

호의도 적의도 아니다.

‘언제 이런 걸.’

내 그림이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정확히 묘사되었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완전히 축소해 두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시간과 공을 오래 들인다면 <해바라기>와 <손님>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리 밀밭>은 공개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다.

설마 ‘달콤한 행복’의 첫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던 게 이것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나 싶다.

“융 심리학에서 따왔구나.”

할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고개를 들자 코로 숨을 길게 내쉬곤 설명해 주신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페르소나라고 이름 붙였단다.”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사용하는 가면을 뜻한다.

“본래 자아와는 달리 사회가 부여한 인격은 다를 수밖에 없어. 착한 학생, 성실한 직원처럼 말이다.”

학교는 개인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라지만, 모든 학생이 그럴 수는 없다.

그림을 좋아할 수도 있고 음악을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학교와 선생, 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여 성실한 학생으로 살겠지만, 반드시 지칠 때가 온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하기 싫은 일도 도와주고 웃고 싶지 않은데 웃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혼자 있을 때 그런 자신이 미워지게 된다.

“카를 융은 그런 페르소나와 자아의 간극에서 나오는 것을 그림자라고 했단다.”

이 작품의 제목이다.

“가면이 두꺼워질수록 억눌러진 자아의 뒷모습이 흘러나오는 거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미치는 경우를 간혹 본 적 있다.

진정한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스스로 속여 오며 쌓인 한이 터진 것이다.

“콤플렉스 같은 거군요.”

“그렇지.”

방태호의 질문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순종적인 아들이길 기대받고.

큰아버지에게 그림을 비싸게 파는 화상이길 요구받는 것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그러한 바람에서 벗어나 화가로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나이기에 그 간절함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앙리 마르소의 그림자를 일깨운 걸까.

아니면 그가 나를 자신의 콤플렉스로 여기는 걸까.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다.

명확한 것은 앙리 마르소가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리어 이렇게나 큰 캔버스에 표현해냄으로써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보석처럼 빛나는 에메랄드빛 눈이 반드시 극복하겠단 의지를 담고 있다.

눈만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의 기술에 다시금 감탄한다.

그때.

자신의 눈을 조각해내지 못해 망설이던 앙리 마르소가 아니다.

<마르소의 보석>을 만들 때의 그가 아니다.

“융은 가면이든 그림자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감쌌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격과 자기 자신을 모두 인정했을 때야 진정한 개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

개성.

“그 과정을 자기실현이라고 한단다. 마르소가 많이 변한 것 같구나.”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앙리 마르소에 대해 긍정적인 말씀을 하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 * *

개막일에만 4만 명이 다녀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가는 앙리 마르소와 고훈이었다.

작년과 올해 기록적인 경매가에 낙찰된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을 직접 본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고.

그와 마주 보고 전시된 <그림자> 앞에서는 발을 뗄 수 없었다.

직접 다녀간 사람도.

가상 전시실에 접속한 사람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 모두 두 미술가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다.

└ㅁㅊ <서리 밀밭> 걸렸엌ㅋㅋㅋ

└와 진짜 대박이다. 해바라기는 진짜 작은 규모라서 실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는데. 휘트니 비엔날레에 걸리네.

└어떻게?

└진짜 안 간 사람 꼭 가 봐. 고훈이랑 앙리 그림만 봐도 이득임.

└그러게. 고훈 그림이 어떻게 걸렸지? 다 팔렸잖아.

└앙리 마르소가 제공해 줬다고 휘트니 미술관이 답변했음.

└아닠ㅋㅋㅋㅋ 저기 걸어주려고 샀던 거야? 이 정도면 진짜 찐사랑 아니냨ㅋㅋㅋ

└심지어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아예 고훈 그림도 따라 그려 넣음ㅋㅋㅋㅋ

└미쳤다. 진짜. 달콤한 행복 전시회 때 한 소리 했다더니 직접 걸어주넼ㅋㅋㅋㅋ

└아무리 친해도 그게 가능한가? 서리 밀밭만 1,400만 달러에 샀는데?

└그게 좀 의미심장한 게 고훈 그림 맞은편에 앙리 그림 전시되어 있는데 진짜 소름 돋았음.

└헐. 보고 있는 거야?

└ㅇㅇ 그렇게 의도한 것 같아.

└그림자도 대박이야. 그렇게 큰데 그림이란 생각이 안 들어. 성격 거지 같다고 해도 진짜 실력은 원탑임.

└그 자기애 강한 인간이 자기 얼굴 그리는 데 허투루 그릴 리 없지.

└저 정도 대작이면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단 말 아님?

└제목은 왜 그림자야?

└융의 원형이란 말이 있던데.

└그게 모임?

└윷임.

└심리학 용어임. 그림자는 일종의 반사 심리고. 사회적 인격과 자아가 부딪칠 때 나타나는 거부 반응 같은? 사실 나도 잘 몰라.

└너무 복잡하다. 난 그냥 그림만 볼래.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게 좋아.

└어떻게 이해하든 그건 본인 선택임. 나쁜 감상은 없음.

└나쁜 드립은 있는 것 같다. 윷 저거 누가 빨리 신고 좀.

└앙리 그림은 이해하기 쉬운 편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누가 저런 걸 생각하겠어.

└ㄹㅇㅋㅋ 전시 구도까지 생각해서 그린 거 미쳤다 진짜.

└고훈 그림도 이해하기 쉬움. 딱히 이해라고 할 것까지 없고 그냥 느껴지는 게 있으니까.

└ㅇㅇ 난 그런 그림이 좋더라.

└다들 앙리랑 고훈 이야기만 하고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이야기는 없네?

└좀 난해해서 그런 듯. 얘기 들어 보니까 시계 두 개 나란히 걸어둔 듯. 제목도 없고.

└?

└진짜 요즘 미술 너무 어려워. 도슨트 설명 안 들으면 이해 못 하는 게 너무 많아.

└미술가들이 착각하는 게, 일반인들은 뭔가를 깊이 보고 공부하고 관찰할 만한 여유가 없는데 어려운 이야기만 함. 그러니 분리되지.

└그래서 최근엔 앙리랑 장미래 작품이 인기잖아. 고훈도 그렇고.

미술 애호가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한편.

휘트니 미술관이 대중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기획‧제작한 교양 프로그램, ‘대화를 나눠요’도 첫 주제로 고훈과 앙리 마르소를 다뤘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대화를 나눠요의 진행을 맡은 우진입니다.”

여러 TV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던 우진이 인사했다.

“현대 미술.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죠. 하지만 혹시 우리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미술가가 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우진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 지었다.

“오늘부터 우리는 휘트니 비엔날레를 함께 둘러보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도움 말씀 주실 캐롤라인 스트릭 박사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제 휘트니 비엔날레가 개막했죠. 이번에는 역대 최다. 254명이나 참가했습니다.”

“네. 휘트니 미술관이 가능한 많은 작가를 소개하려고 노력했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이룬 두 사람이죠. 앙리 마르소와 고훈입니다.”

화면에 두 사람의 사진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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