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83화
21. 휘트니 비엔날레(7)
“인터뷰는 모레 기자회견을 통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방태호가 나서서 기자들을 막았다.
그나저나 앙리 마르소와 무슨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은 무슨 의도로 했는지 모르겠다.
어딜 가나 그와 엮이는 상황이 신기할 따름이다.
“들어가시죠.”
존 카터가 손짓으로 사람들을 불렀다.
휘트니 미술관 보안원들이 밀려드는 기자들을 막아준 덕분에 로비로 들어설 수 있었다.
차시현이 비서에게 찰싹 붙어 오돌오돌 떨고 있다.
“괜찮아?”
“다들 왜 저래? 무서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녀석이라 다짜고짜 달려드는 미국인들에게 크게 놀란 모양이다.
“로비 갤러리입니다.”
휘트니 미술관은 로비부터 전시를 하는 모양이다.
건물 면적도 넓고 높이도 상당한데, 로비까지 활용해야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지 감도 안 잡힌다.
“표 안 사도 돼?”
차시현이 물었다.
“비엔날레 기간은 무료입장입니다.”
존 카터의 설명에 차시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는 원래 무료래.”
오기 전에 입장료도 알아보았다.
성인이 30달러. 학생 20달러. 18세 이하는 무료고.1)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Pay-What-you-wish tickets’라는 제도를 운영한다고 한다.
원하는 액수 만큼만 지불하고 표를 살 수 있으니 금요일 저녁만큼은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이곳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평소에도 로비 갤러리는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많은 혜택을 주고도 어떻게 이 큰 미술관이 유지되는 걸까.
“기업 후원과 홍보 덕분에 유지되고 있죠. 특히나 비엔날레 기간에는 다양한 곳에서 문의가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저곳에 기업 로고가 눈에 띈다.
WH배움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었던 WH 로고도 볼 수 있고, 차시현의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다는 EI 로고도 볼 수 있다.
내가 쓰는 태블릿을 만든 파인애플 로고도 보인다.
존 카터는 4년 전부터 비엔날레 기간에 한해 최상층을 제외한 다른 전시관에서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술의 대중화가 휘트니 미술관의 모토입니다.”
그런 철학으로 전시회를 운영하니 사람이 많이 모일 수밖에.
대단한 곳이다.
“훈아.”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네가 보고 싶어 하던 작품이구나.”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니 시계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다.
그 아래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란 이름이 눈에 띈다.2)
전시 장소는 공평하게 이루어진다고는 들었지만, 개념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의 작품이 로비 갤러리에 전시될 줄은 몰랐다.
‘아니. 그것도 아닌가.’
어쩌면 들어오자마자 볼 수 있는 자리가 가장 좋은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야? 알렉스 팩토리에서 1등이라고 했던.”
“응.”
작품에 다가갔다.
입구에서 가까운 곳이라 관람객들이 많이 보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자세히 살피니 같은 시계일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분침과 초침 모두 함께 움직인다.
차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계를 만든 거야?”
“모르겠어.”
담백하긴 하지만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디자인이다.
제목도 없다.
“직접 만든 건 아닐 거야.”
할아버지가 나와 차시현의 궁금증을 풀어주었지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직접 만들지 않은 공산품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똑같이 움직이는 시계를 바라보았지만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두 개의 시계. 두 개의 시간.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시대성을 말하고 싶은 건가 하고 추측할 뿐이다.
할아버지와 방태호를 보니 두 사람도 뭔가를 발견하진 못한 눈치다.
“이상해.”
미술을 이제 막 접한 차시현의 말이 어쩌면 지금 내 기분을 대변하는 가장 솔직한 감상이리라.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 제목 없는 두 개의 벽시계를 이해할 수 있을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와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사람 정말 많다.”
차시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시계에 시선을 빼앗겨 전시실을 살피지 못했는데 확실히 이 거대한 방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채워지고 있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작품 앞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아서 여유롭지만 다른 작품들은 키가 작은 탓에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중 의아한 것을 발견했다.
“기둥이 없네요?”
“잘 보셨습니다.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휘트니 미술관에는 기둥이 없습니다.”
건축술이 얼마나 발전했기에 기둥 하나 없이 이 넓고 높은 건물을 가운데 기둥 하나 없이 지을 수 있을까.
외관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으로도 이 미술관은 놀랍기 그지없다.
“멋지다. 이런 곳에 전시하는 거야?”
차시현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나 또한 두근거린다.
오늘 당장은 무리겠지만 <가면>을 조금이라도 빨리 걸고 싶다.
“응.”
“다른 그림도 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차시현의 말대로 아쉽긴 하다.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은 이미 내 손을 떠나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새 그림이 있으니 낙담할 필요는 없다.
“빨리 걸고 싶어요.”
방태호가 들고 있는 <가면>에 시선을 주며 존 카터를 재촉했다.
“네. 그러지 않아도 연락해 두었습니다. 이쪽으로.”
존 카터를 따라 이동하며 전시물을 보려 했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탓에 자세히 살필 수 없었다.
‘많아도 너무 많은데.’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정말로 많아서 도저히 구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심지어 움직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가면>을 발표한 뒤에 천천히 둘러봐야겠다.
“나는 구경하고 있을게.”
“그래. 전화할게.”
“응.”
차시현이 비서와 함께 자리를 피해주었다.
안내받은 사무실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반갑게 인사했다.
마이클 핑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큐레이터인데 휘트니 미술관 소속은 아니라고 한다.
관습화된 전시 스타일을 지양하고자 2000년부터 외부 큐레이터를 초빙해 비엔날레를 운영한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알면 알수록 감탄이 나오는 미술관이다.
“정말 기대가 큽니다. 그럼,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네.”
방태호가 단단히 포장한 <가면>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전문 배송 업체에 의뢰했으면 편했겠지만 그제 완성한 거라 직접 가지고 오는 편이 빨랐다.
겹겹이 두른 포장을 뜯어냈다.
“흠.”
<가면>을 본 존 카터와 마이클 핑이 작게 신음했다.
“자화상이군요. 오일 파스텔인가요?”
“맞아요.”
오일 파스텔을 녹여서 그린 것을 금방 알아챘다. 그림을 오래 다룬 사람이라 그런지 확실히 눈썰미가 좋다.
존 카터가 미소 지었다.
“어린 반 고흐란 표현이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확실히 부정적인 견해다.
내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최대한 돌려 말한다.
반면 <가면>을 지그시 바라보던 마이클 핑은 솔직하게 나왔다.
“무난하군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표현적 기법은 반 고흐와 다르지 않습니다. 색감도요. 좀 더 자세한 편이지만 이건.”
마이클 핑이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였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고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제안했다.
“시간을 좀 더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다음 비엔날레를 노려보시는 것도 좋죠. 저는 이 그림을 전시하는 게 고훈 작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마이클.”
존 카터가 마이클 핑을 만류하고자 나섰다.
“존, 이건 그를 위한 일이에요. 난 알아요. 고훈은 정말 재능 있어요. 다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거예요.”
마이클 핑의 이야기를 듣던 중 할아버지가 웃고 말았다.
나와 방태호도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이클 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테이블을 짚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상체를 내밀고 곧은 눈으로 방태호를 보았다.
“큐레이터 일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미스터 방. 당신이라면 이 그림을 걸겠습니까? 반 고흐를 따라 했다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을 거예요. 그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건 아니에요.”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모든 그림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 순 없는 법.
적어도 마이클 핑은 전시회를 할 때 작가의 이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판단한다.
저 흔들림 없는 단호한 목소리에 안심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입을 여니 마이클 핑과 존 카터가 눈을 깜빡였다.
“그럼.”
“발표식 부탁드렸잖아요? 그때 완성할 거예요. 전시 여부는 발표 이후에 정해주세요.”
마이클 핑 큐레이터가 나와 휘트니 비엔날레를 걱정하여 말린다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겠지만.
이미 선플라워와 휘트니 미술관은 서면 계약을 맺었다.
애초에 다양한 작품을 자유롭게 전시하는 행사이기도 한 만큼 천재지변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전시 자체는 가능하리라.
“…….”
마이클 핑이 나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스터 고, 내 판단이 틀리길 바랄게요.”
“고마워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발표식은.”
방태호가 나섰다.
“언제든 가능합니다. 자리도 이미 정해져 있으니 원하신다면 언론에도 연락해 두겠습니다. 보셨다시피 기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존 카터의 말대로 미술관 안과 밖에 기자들이 득실득실하니 큰 문제는 아닐 거다.
“내일이라도 가능한가요?”
이젠 정말 참을 수 없다.
단호히 말하니 마이클 핑이 그림을 천으로 감쌌다. 다른 직원이 한 명 더 들어와 <가면>을 챙겼다.
“물론이죠.”
마이클 핑이 손을 내밀었다.
“미스터 고. 조급해하지 말아요.”
“네.”
손을 맞잡는 것으로 그의 따뜻한 조언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마이클 핑과 직원이 <가면>을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림도 넘겼고 돌아가 한숨 자려고 했는데 뭔가 준비해 둔 것이 있는 모양.
존 카터가 안내를 자처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밖으로 나서니 할아버지가 만족스럽게 웃으셨다.
“어떠냐.”
“어떤 곳인지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멋진 곳이네요. 사람들도요.”
존 카터와 마이클 핑처럼 진지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꾸려나가니까 휘트니 비엔날레가 세계에서 가장 큰 전시회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되도록 자주 참가하고 싶어요.”
“하하.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이렇게 좋은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면 미리 준비했을 텐데. 단 한 점만 걸 수 있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차시현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음?”
작품 발표를 하러 가던 중 할아버지와 방태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 모두 당황한 눈치다.
“왜 그래요?”
“아니.”
방태호가 뭔가를 설명하려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를 들어서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사람들이 잔뜩 운집해 있는 벽 한쪽에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이 나란히 걸려 있다.
“……어?”
* * *
1)실제로는 2020년 기준 성인 25달러, 학생과 노인 18달러, 18세 미만은 무료.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Pay-What-you-wish tickets 제도 운영.
위와 같이 소설 속 내용과 사실이 다름을 밝힙니다.
2)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1987-1990, 두 개의 원형 벽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