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82화
21. 휘트니 비엔날레(6)
[천재 화가 고훈, 뉴욕 입성]
휘트니 미술관 관장 에릭 다우어로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은 화가 고훈이 일정을 앞당겼다.
5월 1일 뒤늦은 참가를 알린 고훈은 4월 21일 뉴욕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고훈은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기대해 달라”며 첫 개인전 이후 작품 준비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냐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번 고훈이 참가하는 휘트니 비엔날레는 뉴욕 휘트니 미술관이 여는 미술품 전시회로 세계 3대 비엔날레로 알려져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불명예 속에 다소 주춤한 현재 명실상부 세계 최고 최대의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故김현기 화백, 故천경화 화백, 故백동준 화백, 해송 고수열 화백, 묵림 서상욱 화백, 장미래 화백 등이 참가하여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올해 역시 굵직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개념미술과 대중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쿠바계 미국인 페르디난도 곤잘레스(39).
사실주의와 개성적 미학을 접목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인 앙리 마르소(32)가 바로 그들이다.
휘트니 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 올리비아 그레이는 기성과 신인을 가리지 않고 인상적인 작품을 만든 300명의 미술가를 초청했고 254명의 작가가 이에 응했음을 밝혔다.
[참가자 명단 리스트]
이와 같이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유력 작가들 사이에 대한민국의 어린 작가가 함께하게 된다.
작년 혜성처럼 등장하여 동양적 구도와 탈인상주의적 표현 기법을 활용하는 고훈이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를 어떻게 준비하였는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어떻게 지내고 있나.
A. 학교 다니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요. 학교 공부가 어려운데 즐겁게 배우고 있어요.
Q. 일정이 촉박하다. 작품은 완성되었나.
A. 만족스러워요. 분명 즐거울 거예요. 기대해 주세요.
Q. 어려움은 없었는지.
A. 어려웠어요. 구상은 예전에 끝났는데 표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3주 정도 걸렸는데 2주는 거의 못 잤어요.
Q. 천재 화가 고훈에게도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A.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그랬다면 단숨에 완성했겠죠.
Q. 달콤한 행복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나?
A. 네. 대충 60점 정도 그렸어요. 하루에 두 점을 그릴 때도 있었고. 그중에 19점만 전시할 수 있었어요.
Q. 마음에 들지 않았나?
A. 항상 좋은 그림만 그릴 순 없으니까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캔버스가 무서워져요.
Q. 캔버스가 무섭다?
A. 항상 무섭죠. 그렇다고 망설이면 안 돼요. 두려워도 맞서 싸워야만 해요. 그리고 또 그리는 것 이외엔 답이 없어요.
Q. 그림 그리는 걸 즐기는 줄 알았다.
A. 힘들어요. 괴롭고. 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싶은 게 있으니까. 좋아하지 않으면 그럴 수 없겠죠.
Q.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가장 기대하는 작가가 있다면?
A.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요. 개념미술이라는 걸 잘 모르는데 어떤 작품을 전시할지 기대돼요.
그림 그리는 일이 힘들고 괴롭다고 말하는 소년은 웃고 있었다.
며칠 밤을 못 이루어 눈 주변이 초췌해 보임에도 소년은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색칠놀이를 하고 있었다.
[첨부 사진]
고훈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무엇을 좋아하는 일이 항상 기쁘고 즐겁기만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힘들고 아프더라도 함께하고 싶은 것이 진정 좋아하는 게 아닐까.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세계 무대로 나서는 그에게 건투를 빈다.
-김지우(예화)
김현기 화백을 시작으로 한국 미술 시장에도 관심을 가진 휘트니 미술관은 천경화, 고수열, 서상욱, 장미래 등 유력 작가를 초청하곤 했다.
장미래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차.
휘트니 미술관이 고훈을 초청하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으니 한국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닠ㅋㅋㅋ 스펀지빵 색칠공부 뭔뎈ㅋㅋㅋㅋㅋ
└이게 재능 낭빈가? 저거 할 시간에 그림 그렸으면 그게 얼마야.
└쟤는 저걸로 힐링한다고 하잖아.
└ㅋㅋㅋㅋ귀엽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색칠도 잘하네. 애기들 하는 게 작품처럼 보임.
└요즘 뉴튜브만 들어가도 저것보다 훨 잘하는 사람 넘침.
└색감을 봐야지. 다 세 가지 색만 쓰면서 저렇게 명확하고 조화롭게 칠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
└독특하네.
└성인용도 많은데 저런 걸 사 줬네.
└성인용이요……? 신고합니다.
└11살한테 성인용 사 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님 일상생활 가능?
└아닠ㅋㅋㅋ 뭔 생각하는 거얔ㅋ 그런 거 아니야ㅋㅋㅋ
└왜 가장 기대하는 작가가 앙리 마르소가 아니죠?
└앙리 마르소 또 빡침각ㅋㅋㅋㅋ
└진짜 미쳤나 봨ㅋㅋㅋ 정원에 앙리 마르소 아직도 우비랑 우산 쓰고 있엌ㅋㅋㅋ
└왜 하필 스펀지빵이얔ㅋㅋㅋㅋㅋ
└가장 기대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언급도 안 하고. 선물로 준 마르소의 보석도 우비 입혀놨으니 만나면 또 한바탕하겠네.
└아 근데 사진 보니까 진짜 피곤하긴 한가 보다. 똘망똘망하던 훈이 어디 갔니 ㅠ
└어린애가 2주나 잠도 못 자고 작업했나 보네. 일정이 너무 빡빡했음. 몸 상하는 건 아닌지 몰라. 성장기라 잘 먹고 잘 자야 하는데.
└근데 얘 말 많지 않음? 실력에 비해서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글쎄. 휘트니 미술관이 직접 초청할 정도면 그건 아닐걸?
└앙리 마르소가 수집가로도 유명한데, 똥된장 구분 못 하겠냐?
└근데 진짜 아쉽다. 서리 밀밭은 진짜 이젠 다시 볼 수 없나?
└앙리가 언젠가는 수집품 전시회 하지 않을까? 몇 년 전에도 했었음.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함?
└어쩔 수 없지.
미술 애호가들은 고훈의 <서리 밀밭>을 앞으로 직접 보기 힘들 수도 있음을 아쉬워했다.
한국 팬들만의 문제는 아니라 유럽과 북미에서도 아쉬운 대로 고훈의 그림을 보고자 휘트니 비엔날레를 찾았다.
더욱이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와 앙리 마르소를 포함해 전시회 역사상 가장 많은 작가가 참여하니.
2028 휘트니 비엔날레는 개막일 이례적인 방문객을 기록하며 일찍이 세계 최대 미술품 전시회란 명성을 이어나갔다.
* * *
할아버지는 보통 비행기 안에서 주무시기만 하니, 인천에서 뉴욕까지의 긴 여정이 지루할 것 같다.
방태호도 할 일이 많은지 무엇인가를 살피고 있다.
그나마 차시현이 함께해서 심심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야. 분수로 적을 수 없는 건 무리수라고 했잖아.”
내 생각에는 고작 10살, 11살 먹은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치는 한국 초등학교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
분명 PDF 파일에는 중3 수학이라고 적혀 있다.
중학교 3학년이라고 해도 고작 한국 나이로 16살인데, 그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걸 가르치다니.
세상이 참 각박하고 살기 힘들어졌다. 또 얘는 16살이 배울 내용을 대체 어떻게 아는지 모를 일이다.
“나중에 하자.”
“안 돼. 학교 안 나왔으니까 이번에 다 배워야 해. 미국에서도 2주나 더 있는다며. 시험 어떻게 보게?”
“…….”
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시간 중 절반은 차시현의 수학 강의를 들으며 보내야 했다.
차라리 지루한 게 낫다는 생각을 10번쯤 반복할 즈음 뉴어크 리버티 국제 공항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무슨 일로 왔니?”
입국심사관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하려고 왔어요.”
“휘트니 비엔날레? 흠. 미술가로 보이는 나이는 아니구나.”
한국에서는 가는 곳마다 알아봐서 당황스러운데 미국에는 내 얼굴이 덜 알려진 모양이다.
캐롤라인 스트릭이란 사람 덕분에 유명해졌다고 들었거늘 그도 아닌 듯하다.
스펀지빵 가방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보내온 초청장이 있지만 화물칸에 실어서 보여줄 방법이 없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공책과 펜이 눈에 들어왔다.
“공책이랑 펜 빌려줄래요?”
“뭐 하려고?”
“화가인 걸 증명하려고요.”
“재밌구나. 오래 기다려 줄 순 없어.”
공책과 펜을 받아서 그의 얼굴을 스케치했다.
대상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자 1분 크로키, 3분 크로키 같은 훈련을 반복했으니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평소보다 좀 더 신경을 써서 사실적으로 그려주면 아마 ‘잘 그렸다’고 생각할 터.
예상대로다.
“오우. 정말 프린터 같은 손이구나.”
자기 얼굴을 확인한 입국심사관이 감탄하며 물었다.
“얼마나 있다가 가려고?”
“2주 정도요.”
“멋진 여행이 되길 바랄게.”
입국심사관이 공책을 찢어 내가 그린 그림을 돌려주었다.
“선물이에요. 가져요.”
“난 그림에는 관심이 없어. 가지고 있어봤자 잊고 말걸?”
어깨를 으쓱이고 통과하니 뒤따라 나온 방태호가 웃었다.
“뭐가 웃겨요?”
“네가 그걸 저 사람에게 주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되돌려 받아야 하나 하고.”
“스케치인데요. 뭘.”
“네가 그렸으니 문제지. 저 사람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좀 더 기다리자 할아버지와 차시현 그리고 차시현의 보호자로 따라온 비서도 모였다.
짐을 챙기고 나섰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나온 직원이 우리를 반겼다. 눈매가 선명하고 얼굴톤이 밝은 남자다.
“환영합니다, 미스터 고. 휘트니 미술관 대외홍보팀의 존 카터입니다.”
“반가워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존 카터와 악수했다.
“고수열 경, 처음 인사드립니다.”
“반가워요.”
존 카터가 할아버지께 고개를 숙였다. 미국에서도 존경받는 듯하다.
방태호와는 이메일과 전화로 대화를 나눴는지 반갑게 악수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가니 비정상적으로 긴 자동차가 서 있었다.
내부가 마치 작은 방을 옮겨놓은 듯 넓어서 깜짝 놀랐다.
“그럼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바로 들르고 싶어요. 그림도 넘겨 드려야 하고요.”
서울에서 인천국제공항, 다시 여기까지 오느라 족히 하루를 다 쓰고 말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면>을 걸고 싶다.
존 카터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방태호와 할아버지에게 동의를 구했다.
“시현이는 괜찮아?”
“네.”
시현이가 피곤하진 않은지 걱정한 할아버지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 주세요.”
방태호가 존 카터에게 우리 일행의 뜻을 전했다.
“30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운전하시는 분이 차를 움직였다. 할아버지의 차만큼 고요하다.
존 카터가 권해 준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었다.
“첫날부터 사람이 모이고 있습니다. 훌륭한 작품을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가면>은 아직 걸지도 않았는데 칭찬이 과하다.
화제를 바꾸었다.
“원래는 미국 동시대 미술만 다룬다고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창립자의 뜻을 존중하며 지켜왔습니다만, 미국 내 미술가들만 다루는 것에 의문이 붙었죠.”
존 카터는 휘트니 미술관이 개관할 때만 해도 미국 고유의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고.
창립자 밴 휘트니의 연설은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럴 필요가 없어졌죠. 나라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고요. 1993년 백동준 작가와의 협업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현재 휘트니 미술관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작가를 존중합니다.”
창립자의 지시가 있다곤 해도.
시대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양한 미술품을 다루는 휘트니 비엔날레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우와.”
차시현이 창밖을 보고 감탄했다.
고개를 돌리니 나로서는 상상해 보지 못한 형태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벽면이 여러 각도로 향해 있어 빛이 달리 비치고 그에 따라 각 벽면이 다른 색으로 보인다.
사다리꼴 창문이 줄지어 있는 덕에 실물을 보고 있음에도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휘트니 미술관입니다.”
차에서 내린 뒤에도 차시현과 함께 넋을 놓고 건물을 바라보았다.
“엄청나다.”
“응. 너무 멋져.”
WH배움 미술관도 멋지지만 휘트니 미술관은 정말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곳에 내 작품이 걸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고수열? 고수열이다.”
“고훈이야.”
휘트니 미술관 앞에서 잠시 감상에 젖어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할아버지와 나를 알아본 것 같은데 갑자기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고 질문을 쏟아냈다.
“이번 작품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앙리 마르소와는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전시회 일정은 없으십니까? 고수열 경!”
입국심사관 덕에 방심했거늘.
여기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