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81화
21. 휘트니 비엔날레(5)
‘그래.’
애초에 새 작품의 목적은 빈센트 반 고흐란 이름과 앙리 마르소, 언론에 의해 정착된 이미지를 벗겨내는 것이었다.
마침 최근 오일 파스텔을 접했고, 긁어내기 쉬운 성질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아쉽긴 하지만.’
그러나 오일 파스텔을 활용하는 방법을 당장 강구할 순 없었다. 혹시 찾아내어도 짧은 시간 내에 숙달될 리 없었다.
세계 최대 미술 전시회에 미숙한 작품을 걸 순 없는 법.
지난 10일 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했던 모든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깝지 않을 리 없다.
그 발상이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둬야 했다.
어느 하나에 매몰되면 더 좋은 선택지가 있는데도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훈은 어린 반 고흐란 이미지를 벗어낸다는 본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본인을 내려놓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고훈은 자신이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다.
과거 이름이 역사에 남아 길이 회자되고 있음에도.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이 경악스러운 가격에 팔려나가도 항상 목말라 했다.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 미술의 다양한 표현 기법과 번뜩이는 발상은 그를 설레게 했고.
소년은 그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부족하다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수열과 장미래, 앙리 마르소의 작품은 지식욕에 목마른 그에게 매실처럼 달고 새콤한 경험을 선사했다.
부족함을 알기에.
더 나아갈 수 있다고 굳게 믿기에 소년은 지난 자신을 버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제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고훈은 칼로 캔버스에 흠집을 냈다. 손으로 잡아 뜯었다.
소년이 바라던 형태였다.
다만 아직은 부족했다.
이번 작품은 번데기를 찢고 나온 나비처럼 온전한 자신이 드러내주길 바랐다.
* * *
뉴욕 기준 4월 20일 오후 9시.
서울 기준 4월 21일 오전 10시.
휘트니 비엔날레 개막이 코앞에 이르렀다.
고훈이 연락해 주길 애타게 기다리던 김지우 기자의 전화가 요란히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가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훈아!”
-안녕하세요.
“작업은 어때? 기한은 맞출 수 있어? 유화야? 제대로 마르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일정이 촉박하기에 그간 고훈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다렸던 김지우는 그간 묻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네. 오늘 끝냈어요. 준비할 게 많아서 따로 시간 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점심때 괜찮아요?
“그럼. 그럼. 고생했어. 집 근처로 갈게. 아니면 학교로 갈까?”
-집으로 와 주세요.
“응. 12시까지 갈게.”
-네.
통화를 마친 김지우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오늘 작업을 끝냈다고 하니, 밤을 새웠거나 이른 새벽부터 작업했을 터였다.
‘아직 어린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김지우는 고훈의 건강이 우려되었다.
휘트니 비엔날레가 큰 행사라고는 하지만 2년에 한 번씩 열리고, 무엇보다 고훈은 아직 어렸다.
앞으로 미술을 계속한다면 참가할 기회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음악가가 사고 후유증과 과로가 겹쳐 건강을 잃었던 일을 떠올리며 입술을 매만졌다.
어려서부터 천재, 영재 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주변의 기대 속에서 얼마나 큰 부담을 받는지 알기에 걱정되었다.
김지우는 고훈이 오랫동안 건강히 활동해 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편집장님, 저 고훈 인터뷰 다녀올게요.”
“그래. 갈 때 뭐라도 사 가지고 가. 법카 쓰고.”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계속 잠 줄여가며 작업한 거 같던데.”
“그렇겠지. 개인전 끝내자마자 출품하는 거니까.”
월간지 예화의 편집장 이상철은 고훈이 과연 그 짧은 시간 내에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과 같은 작품을 또 그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좋은 작품이 나오기에 어린 고훈이 국가적인 기대와 주변의 바람에 부응하고자 무리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보통 그런 일의 끝은 좋지 않아서 더욱 걱정이었다.
김지우와 이상철처럼 고훈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영양제 좋겠다. 애들 먹는 거 있잖아.”
“네. 다녀오겠습니다.”
“응. 수고.”
* * *
기운이 하나도 없어 팔과 다리를 쭉 펴고 엎드려 있으니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쯧쯧. 이 녀석아, 할아버지가 너 때문에 애가 타요.”
“으트즈 므르요.”
일어날 힘도 없어 소파에 얼굴을 묻은 채 답했다.
“그러게 생겼어? 몸이 건강해야 그림도 그리는 거야. 반 고흐가 어떻게 죽었는지 몰라?”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그래도 잘 되어서 다행이에요.”
오일 파스텔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었던 구성은 여러 시도 끝에 무리라고 판단했다.
왁스 비율을 높여 새롭게 배합하지 않는 이상, 긁어낸 물감이 형태를 유지하는 건 힘들지 싶다.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와 벗기고 찢는 것에 초점을 맞췄더니 의외로 쉬운 방법이 떠올랐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도 애초에 같은 생각이셨다고 하니.
경험과 지식은 역시 중요하다.
“오늘부터는 좀 쉴게요.”
“그래. 앞으로는 일정 이렇게 무리하게 잡지 말라고 해야겠어.”
“네.”
할아버지가 작업량 조절이 힘들다는 사실을 모르실 리 없다.
진도가 잘 나갈 때 멈출 생각이 안 드는 것도 그렇고 좋은 생각이 안 나면 더뎌지는 것도 그렇고 작품은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몸이 상하니.
할 수 있는 한 어떻게든 규칙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굳이 할아버지가 말씀하지 않으셔도 프랑스에서 살 적에는 되도록 정해둔 시간과 일정에 따르려고 했다.
이대로 있으면 잠들 것 같아서 문구점에 산 색칠공부 공책을 꺼냈다.
스펀지빵이나 안경펭귄, 또또봇 같은 캐릭터가 선화로 그려져 있는 공책인데.
생각 없이 칠하다 보면 마음도 안정이 되고 평소에는 해보지 않은 색 배합도 해볼 수 있는 좋은 놀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김지우입니다!
할아버지가 인터폰을 받자 김지우의 활기찬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에서도 우렁차게 울렸다.
문을 열어주신 할아버지가 미소 지었다.
“항상 기운차구나.”
30대 정도로 알고 있는데 저 나이에 저러기도 쉽지 않다.
마음이 건강하단 뜻이다.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어머나 세상에. 얼굴이 반쪽이 됐잖아. 밥은 먹었어? 잠도 못 잤지? 그러다 너 쓰러진다? 너 아프면 난리 나. 할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시겠어. 아, 학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셔츠 너무 잘 어울리신다. 댁에서도 멋지게 하고 지내시나 봐요. 혹시 저 때문에?”
다소 시끄러운 게 문제지만 김지우와 함께 있으면 귀가 심심할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이면 한 마디로 할 이야기도 두세 마디로 한다.
“흫흐흐. 들어와요.”
“감사합니다. 아, 혹시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작품은 안 찍을게요.”
“그렇게 해요.”
“앉으세요.”
소파에 앉길 권하자 고맙다고 말하며 앉았다.
“집 진짜 좋다.”
“맞아요.”
“소파도 푹신푹신하고. 촉감도 좋아. 이런 걸 뭐라고 해? 그냥 패브릭은 아닌 것 같은데.”
“몰라요.”
“난 학장님은 뭐라고 해야지? 전통 한옥처럼 꾸미셨을 것 같았거든? 엄청 세련됐다. 역시 미적 감각이. 아, 맞다.”
김지우가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비타민이야. 잘 먹고 푹 자는 게 제일이긴 한데, 그러지 못하는 거 같아서.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 돼.”
비타민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몸에 좋은 건가 보다.
“감사합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아 기쁘다.
“그건 뭐야?”
김지우가 색칠공부 스케치북에 관심을 보였다.
“힐링이요.”
“좀 봐도 돼?”
고개를 끄덕이자 김지우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눈이 붕어처럼 동그랗게 됐다.
“습작용 스케치북 아니었어?”
“심심할 때 하면 재밌어요.”
마음이 차분해진다.
“……놀 때도 이렇게 노는구나. 이거 사진 찍어도 돼? 기사에 첨부하게.”
“그러세요.”
할아버지가 주스와 커피를 가지고 오셨다.
“일 도와주시는 분 안 계신가 봐요. 집안일 혼자 하시기 힘드실 것 같아요. 정원도 넓고.”
“집안일이야 뭐. 소일거리 삼아 하고 있어요. 혼자 살면 적적하니까.”
이 큰 집에 왜 일하는 사람 한 명 안 두실까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 줄은 몰랐다.
집에 ‘할머니’의 흔적이 없는 걸 봐서는 사별하신 지 꽤 오래된 듯한데 ‘아버지’와 싸운 뒤로 줄곧 혼자 사셨던 것 같다.
장미래나 제자들이 찾아오는 일도 잦진 않았을 테니 적적함을 집안일로 달래셨던 듯하다.
“자, 그럼.”
김지우가 녹음기와 수첩을 꺼냈다.
“역시 경매 이후 일이 가장 궁금한데. 어떻게 지냈어?”
“학교 다녔어요. 작업하느라 일주일 정도 못 나갔지만.”
“학교생활은 어때? 친구도 사귀었어?”
“네. 차시현이라고 좀 특이한 애 있어요. 집에서 같이 그림 그리고 놀아요.”
“차시현? 걔도 잘 그려?”
“감이 좋더라고요. 그림도 좋아하고.”
“흐응. 학교 다니면서 좋은 건?”
“급식이 잘 나오는 거랑 미술 수업이요.”
“미술 수업? 배울 게 있어?”
“그럼요. 오일 파스텔 쓰는 법도 배웠고 종이접기도 배웠어요. 배 접는 법은 알고 있었는데 새도 만들고 장미도 접을 수 있어요.”
김지우가 눈을 깜빡인다.
“왜요?”
“아니. 좀 의외라서. 그림 말고는 의외로 평범하구나? 그런 느낌. 크레파스도 쓰기 전에 유화부터 다뤘던 건가 싶기도 하고.”
김지우가 뭐라고 메모했다.
“휘트니 비엔날레 출품작이 너무 기대되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좋은 그림이 나올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
할아버지와 장미래, 방태호도 같은 말을 했다.
전시회를 자주 가지는 것보다 한 번, 한 번의 무게감이 더 중요하다며 말이다.
“많이 느껴요. 그러지 않아도 태호 아저씨랑 일정 조절 하기로 했어요.”
“다행이다.”
“네. 그림이 잘 나와서 다행이죠.”
“오. 자신감 좋은데? 이번에도 유화야?”
“네. 그런데 지금까지랑은 좀 다를 거예요.”
“어떤 점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했거든요. 실패도 많이 했는데 좋은 방법을 찾았어요.”
“실패라. 너한테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힘들었어?”
“마지막 2주 정도는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도중에 구상을 뒤엎기도 했고요.”
“히. 아깝다.”
“아깝죠.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었으면 못 해냈을 거예요.”
김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놀렸다.
“멋진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이런 뜻이지?”
“네.”
“직접 참가는 5월 1일이라고 발표했는데.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어. 일정은 어떻게 돼?”
“생각보다 작업이 빨리 마무리되어서 내일 곧장 가려고요.”
“어? 그럼 개막식에 얼추 맞출 수 있겠네? 하루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김지우가 시계를 확인하며 물었다.
“네. 빨리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그림도 되도록 일찍 전시하면 좋으니까요.”
“좋아. 좋아. 아, 앙리 마르소도 참가하기로 했어. 은근히 선의의 경쟁자? 라이벌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좋아요. 성격은 망나니 같지만 가끔은 옳은 말도 하고. 작품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정말 멋지거든요.”
“음음. 망나니 같아도란 말은 기사에서 뺄게.”
김지우의 말에 할아버지가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
“그럼 역시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가장 기대하는 작가는 앙리 마르소?”
“아뇨.”
“아니야?”
“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라는 사람이 어떤 작품을 낼지 궁금해요.”
“아, 좋지. 맞아. 개념미술에도 관심 있었구나.”
“잘은 모르는데 모르니까 관심이 가요. 앙리 마르소 작품은 몇 봤으니까.”
“오케이. 그럼 쉬민케 홍보 모델 일 말인데. 무슨 일을 해주기로 한 거야?”
“거기서 만든 물감으로 작품활동을 하기로 했어요. 부드러워서 원래 자주 썼거든요.”
“그럼 이번 출품작도 쉬민케 물감으로 그렸겠네?”
“그건 비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