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78화
20. 휘트니 비엔날레(2)
[고훈, 선플라워와 매니지먼트 계약 체결!]
[큐레이터 방태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설립하다]
[국내 경매 시장 판도를 뒤집은 고훈의 다음 행보는?]
지난 3월.
<서리 밀밭>을 1,400만 달러에 낙찰시키며 큰 파장을 일으킨 화가 고훈이 신생 매니지먼트사 선플라워와 매니저 계약을 체결했다.
선플라워는 국내 최고 큐레이터로 손꼽히는 방태호(만 39세)가 설립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고훈이 선플라워에 직접 투자하였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고훈이 레종 아카데미아 같은 검증된 국내 매니지먼트나 해외 유명 매니지먼트와 계약하지 않은 이유를 수익 배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함으로 보고 있다.
고훈은 앞으로 선플라워를 통해 전시 일정 관리 및 홍보, 세금 문제, 저작권 보호, 국내외 활동 지원을 받게 된다.
물론 방태호 전 WH배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의 매니지먼트 사업 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술계와 고훈의 팬 일부는 방태호가 매니지먼트 경험이 없는 점을 지적하며 해외에서도 그의 기획력이 통할지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어제 4월 5일.
선플라워는 독일 물감 제조업체 쉬민케와 60만 유로(한화 약 8억 원) 상당의 홍보 모델 계약을 체결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또한 다가오는 21일부터 열리는 국제 미술제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대받았음을 알리며 순항을 예고했다.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는 고훈이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어떻게 활동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인호(대한일보)
지난달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훈이 내실이 튼튼한 물감 회사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단 사실과 세계인의 미술제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고훈을 유심히 지켜보던 미술인들과 미술품 애호가, 네티즌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화가도 매니저가 있음?
└보통은 혼자서 다 하는데 고훈쯤 되면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긴 할 듯.
└고훈한테는 꼭 필요하지. 갤러리 소속이 될 수 있지만 수십, 수백 명씩 같이 있으면 전시회 일정도 마음대로 잡기 힘들어짐. 그럴 바에야 매니지먼트 끼고 돌아다니는 게 나아.
└레종 아카데미아에 안 간 게 신기하네. 굳이 직접 투자까지 하면서 방태호한테 맡겨야 했나?
└이인호 기자가 쓴 기사 보면 수익 배분 비율 때문인 듯.
└외부 활동도 잘하고 있네. 고훈이 워낙 잘 나가니까 광고나 초대는 많이 들어오겠지만 조건도 잘 잡은 듯.
└ㅇㅇ 1년 계약에 60만 유로면 조건 조율 엄청 잘한 거지.
└올해 휘트니 비엔날레 날려 먹을 뻔한 것도 잡았고.
└고훈 인스타 계정도 생김.
└오 작업 공간 같은 거 올리네.
└친구도 귀엽다.
└아니 그림 사진 있으면 좀 보러 들어갔는데 뭔 다 음식 사진밖에 없엌ㅋㅋㅋㅋㅋㅋ
└빵빵한 볼로 행복해하는 거 진짜 졸귀다ㅠㅠ
└난 얘는 진짜 만들어진 화가 같음. 애초에 고작 10살, 11살 애 그림이 163억이라는 게 말이 되냐고.
└모든 화가는 만들어짐. 좋아해 주는 사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됨.
└예술이 원래 그런 거긴 한데 너무 심하잖아. 솔직히 난 고훈 그림 좋은지도 모르겠음.
└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렇다고 고훈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도 부정하는 건 아님.
└난 생각도 못 함? 니가 방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ㅇㅇ. 나도 네가 고훈 그림 안 좋다고 해서 말하는 거. 내가 서리 밀밭 보고 느꼈던 감정은 뭐가 됨? 생각의 자유랑 남의 생각 부정하는 건 달라.
└아니. 난 쟤 그림이 별로라니까? 난 뭐 말도 못 하냐? 저런 일 하면 비판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님?
└네가 내 감정을 건드니까 하는 말이야. 그렇게 따지면 넌 네가 한 말에 남이 반응하는 거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함? 네 생각 부정당해서 그런 거 아냐?
* * *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 내 이미지가 어느 정도 굳어진 모양이다.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 때문인지 현대의 어린 반 고흐란 표현이 참 많다.
그 때문에 반 고흐 흉내를 내는 아이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으며 ‘인생작’이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내 안의 ‘빈센트’를 느끼는 듯해 기쁘면서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현대 문물과 한국화,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여러 지식과 감정 덕에 많이 달라지고 발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이다.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에서는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다.
오일 파스텔을 사용하는 건 그러한 의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오일 파스텔은 역시 물건이었다.
유화를 그리는 것처럼 색을 깔고 쓱쓱 문질러주었다.
손가락으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도 있고 붓을 사용하니 유화 물감과는 또 다른 질감이 나온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마르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
적당히 배경색을 칠한 뒤에 색연필을 대자 물감이 벗겨지면서 색이 잘 입혀진다.
색을 섞는 일은 아무래도 물감에 비할 수 없지만 녹은 오일 파스텔을 물감처럼 쓰면 이것이 또 독특하다.
유화 물감보다는 점성이 덜해서 세밀한 표현이 원활하다.
드라이기로 녹여보기도 했지만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는 게 가장 편했다.
그렇게 오일 파스텔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한편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할 작품을 구상했다.
유화 물감보다 쉽게 긁어지는 특징을 활용하고 싶어 고민하던 주말.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뉴튜브를 보았다.
내일 간식으로는 무엇을 먹을지 검색하다 보니 팬케이크 굽는 영상이 눈에 띄었다.
조회 수가 100만 건이 넘는 영상이라 뭔가 싶어 들어가니, 팬케이크 반죽으로 그림을 그리는 영상이었다.
‘이게 뭐야.’
처음에는 팬에다가 여러 색을 조금씩 바르기에 뭘 하나 싶었는데, 팬케이크를 뒤집으니 고양이가 나왔다.
형태는 매우 생략되고 단조로워 만화영화 같은 화풍이지만 음식으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으니 차시현이 놀러 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훈이 작업실에 있다.”
“네!”
거실에서 할아버지와 차시현의 목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밝은 목소리만큼 명랑한 얼굴로 들어왔다.
“안녕!”
아버지와의 오해를 풀기도 했고.
박현우에게 사과를 받으니 첫인상과 다르게 활기가 넘친다.
“안녕.”
“이것 봐!”
차시현이 가방에서 상자 두 개를 꺼냈다.
뭔가 싶어 다가가니 크레파스란 이름의 오일 파스텔이다.
“색이 육십 개나 있어!”
“오.”
쪼그려 앉자 플라스틱 상자를 열어 자랑하는데, 과연. 이건 자랑하고 싶을 만하다.
무지개처럼 가지런히 누워 있는 오일 파스텔에는 금색이나 은색이란 이름의 독특한 색도 있었다.
금이든 은이든 저런 색은 아니지만 이름을 붙이다 보니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
차시현이 똑같은 상자를 내밀었다.
“뭐야?”
“선물! 나랑 똑같은 거야.”
뜬금없이 귀한 선물을 받았다. 돌려줄 것이 없어서 오늘 아침에 산 초콜릿 파이를 꺼냈다.
아직 하나도 먹지 않은 새것이지만 받기만 하고 가만있을 순 없다.
“……먹을래?”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초콜릿 파이를 권했다.
“그거 많이 먹었으니까 딴 거 먹자.”
“딴 거?”
“응. 아버지한테 과자도 먹고 싶다고, 너도 하루에 하나는 먹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럼 하나씩만 먹으라고 허락해 주셨어.”
“이 썩는다고?”
“응. 대신 양치질 잘해야 해.”
할아버지도 차시현네 아버지도 똑같은 마음이다.
차시현이 가방을 뒤적이다가 잘 못 찾겠는지 뒤집어버렸다.
과자가 한 무더기 쏟아졌다.
“하루에 하나만 먹어야 한다며.”
“히.”
녀석이 장난스럽게 웃고는 입에다 검지를 댔다. 비밀이란 뜻이다.
“아버지 회사 과자 만들거든. 아저씨들께 부탁드리면 엄청 많이 얻을 수 있어. 비밀로.”
“…….”
“이거! 이거 맛있을 것 같지!”
차시현이 작은 종이 상자를 보였다.
고래칩이라는 상표명이 적혀 있다.
“고래?”
“응. 먹어보고 싶었어.”
상자를 뜯어 과자를 쏟았다. 상어, 게, 고래, 불가사리 모양의 과자다.
“이거 상어 맛 나?”
“어……. 불고기 맛이라고 적혀 있어.”
하긴 상어나 고래는 어찌 먹는다고 해도 불가사리 맛 과자를 사 먹는 사람은 없을 거다.
오전 내내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하루 허용치를 넘는 과자를 먹고 싶기도 하여 손을 씻고 주저앉았다.
불고기 맛이라더니 실제 불고기 맛보다는 훨씬 진한 향을 풍긴다.
“뭐 하고 있었어?”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할 거 준비하고 있었어.”
“휘트니 비엔날레가 뭐야?”
“뉴욕에서 2년마다 여는 미술제. 4월 21일부터 시작한대.”
“전시회야?”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
바삭한 식감도 좋지만 이 퇴폐적인 맛은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모양도 다양하고 인기가 많겠다.
차시현은 휘트니 비엔날레가 무엇인지 검색해 보고 있다.
“5월 1일에 가기로 했어.”
“어?”
차시현이 깜짝 놀랐다.
“얼마나 가 있는데?”
“2주 정도? 간 김에 크리스틴 노먼 감독도 만나고 오기로 했어.”
미국은 멀리 있으니 되도록 한 번 갔을 때 일을 다 처리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2주나 못 봐?”
“아니.”
시무룩해졌던 차시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노는 건 오늘까지. 출품할 그림 그려야 해. 내일부턴 바빠.”
차시현이 있다고 딱히 방해가 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뜻이 맞는 화가들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 함께 작업하는 게 덜 외롭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미술제에 출품하는 것이니만큼 최대한 집중하고 싶다.
얼굴에 그늘이 진 차시현이 중얼거렸다.
“응……. 힘들겠다. 힘내.”
놀고 싶은 걸 참는 거다.
손가락을 접으며 날짜를 세더니 4주나 못 본다는 것에 충격받은 듯 고래칩도 안 먹는다.
“학교에선 보잖아.”
“응…….”
차시현이 휘트니 비엔날레에 관련한 영문 기사를 찾아보다가 눈을 빛냈다.
“300만 명이나 가?”
“그렇대.”
넉 달 동안이라고는 하지만 확실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 축제.”
관련 사진을 보던 차시현이 바닥을 내려치며 고개를 들었다.
“나도 갈래. 주말에 다녀오는 건 허락해 주실 거야.”
“하루만 보고 오기엔 아깝잖아?”
“그래도 궁금한걸.”
문득 할아버지가 교장에게 물어봤던 것이 떠올랐다.
“가정학습 제도라는 게 있다고 하던데. 한번 여쭤 봐. 출석으로 인정될걸?”
“정말?”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작품을 접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로라하는 명장이 모두 모이는 자리니 분명 차시현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다.
이 아이가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게 될지는 모르나 적어도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하나라도 만나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삶이 달라질 테니 말이다.
“여기 참가자들도 소개되고 있어.”
차시현이 한 뉴튜브 채널에 들어가더니 영상을 보여줬다.
알렉스 팩토리란 이름이다.
이 사람이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 참가자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순위별로 정리한 영상이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심사가 없어. 평가를 지양하는 행사야.”
“왜?”
“미술에 높고 낮음은 없으니까.”
“내 그림은 못 그렸다고 했잖아.”
“못 그렸지.”
농담을 하자 차시현이 성이 난 듯 주먹으로 툭툭 때렸다.
한 번 웃고 나서 정리했다.
“이런 영상은 그냥 누가 나오는지 알아보는 정도로 이해해야 해.”
“응.”
나도 차시현도 누가 참가하는지 궁금해서 영상을 재생했다.
-다음 주. 어마어마한 행사가 시작되죠? 휘트니 비엔날레입니다.
경쾌한 목소리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현재 가장 많은 미술가가 참여하는 국제 미술 전시회입니다.
영상은 휘트니 비엔날레가 처음에는 미국 내 신인 작가를 발굴, 소개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가 점차 세계적인 미술 전시회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신인뿐만 아니라 대가들도 참여하게 되었죠. 신인들이 소외당하는 건 아니냐고요? 전혀요. 이들은 모두 동등한 기회를 제공 받습니다. 신인 작가들은 거장들과 작품을 나란히 전시할 수 있는 기회죠.
“유명한 사람이라고 더 넓은 자리를 주는 건 아닌가 봐.”
“그러게.”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가 확정된 작가 254명 중 현재 가장 주목받는 사람 열 명을 뽑아 봤습니다.
내 사진과 이름이 떴다.
TOP 10
Hoon Go
(Republic of Korea, Age 9)
-처음 소개해 드릴 작가는 한국의 작은 반 고흐. 고입니다. 고수열이냐고요? 아닙니다. 바로 지난달 한국 경매장에서 앙리 마르소가 1,400만 달러. 무려 1,400만 달러를 주고 산 작품의 주인공이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 고수열의 손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