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5화 (24/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5화

7. 불쌍한 사람(2)

케빈 씨의 허락을 구하고 반 고흐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에게 도슨트 역할을 자처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이 찾아오던지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첫날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을 상대로 네 시간 정도 설명했고, 오늘은 열 명이 넘는 동호회를 상대하게 되었다.

인원이 많으니 어제 하지 못했던 말을 천천히 풀어낼 생각이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 그림을 직접 설명할 수 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은 있을 수 없다.

“아까부터 더 나은 그림만 빈센트 반 고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게. 이게 더 잘생겼는데?”

“사실이에요. 인물은 빈센트가 더 나았어요.”

“그래? 오베르에 있던 동상은 흉측하던데.”

“오베르에 빈센트 반 고흐 동상이 있어요?”

관람객들에게 테오 초상화와 나의 자화상을 구분해 주던 중 한 남자가 다가왔다.

“네가 훈이지?”

누군가 싶어 멀뚱멀뚱 올려다보니 그가 명함을 한 장 주었다.

대한일보라는 곳의 기자인 듯하다.

이인호라는 발음은 조금 어려운데, 무슨 일인지 한국 사람이면서 영어를 쓴다.

나야 대화하기 한결 수월하지만 독특한 사람이다.

“인터뷰하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시간 좀 내줄래? 할아버지하곤 이야기했거든.”

어느 정도 의도한 일이긴 하지만 앙리 마르소가 <해바라기>를 샀던 일이 화제가 되긴 한 모양.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암스테르담까지 찾아왔단 말에 놀랐다.

“이분들 안내해 드린 뒤에 해도 괜찮아요?”

“얼마나 걸려?”

“세 시간 정도로 끊어볼게요.”

“그렇게나?”

나름대로 먼 길 찾아온 것을 배려해서 짧게 잡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왜 그래?”

관람객 중에 한 사람이 물었다.

“인터뷰하자고 하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요.”

“인터뷰? 너 정말 유명했구나. 하지 그래?”

“안 돼요. 설명할 게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요. 2층까지라도 안내할게요. 세 시간이면 충분할 거예요.”

“세 시간?”

“네.”

“……그거 알아? 난 혼자 보는 스타일인 거 같아. 고독하게 음미하면서 말이야.”

내 설교를 듣고 지친 얼굴로 돌아가던 광부와 비슷한 말을 한다.

성경을 직접 읽어 보고 싶다며 다시는 설교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저 사람도 그럴 것 같다.

“재밌었어. 시간이 없어서 더 못 듣는 게 아쉽다. 내일도 있니?”

“네.”

“그럼 내일 또 보자.”

그러는 한편 다시 찾아온다는 사람도 있어서 다행이다.

관람객들이 각자 구경하기 위해 흩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이인호 기자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마침 케빈 씨와 할 말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던 할아버지도 돌아왔다.

“아! 학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인호 기자가 할아버지를 보자 허리를 깍듯이 숙였다. 노인을 공경하는 훌륭한 사람이다.

“아, 대한일보 기자님?”

“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한일보 이인호라고 합니다. 훈이랑 막 인사 나누던 차였습니다.”

“그러셨군요. 반갑습니다. 훈아, 이분이 네 기사 써 주신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잠깐 괜찮지?”

“네.”

“어디 보자. 요 앞 카페라도 가야 하나.”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사진도 찍어야 하니까요.”

“그럼 그럽시다. 끝나고 식사나 같이하고.”

이인호 기자와 함께 전시관 밖 벤치에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았다.

“어…… 몇 가지 확인부터 할게. 열 살이고, 해외에서 오래 살았다며?”

“네.”

“어디, 어디에서 지냈어?”

“영국이랑 프랑스에 있었어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간 할아버지와 한 대화로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혹시나 ‘고훈’의 실제 행적과 다를 수도 있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좋아. 그럼 천천히 시작할게.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어?”

“잘 기억 안 나요.”

“응? 예화에서 올라온 기사 보면 10년 정도 그렸다고 하던데.”

“그냥 철이 들었을 때도 그리고 있어서 대답한 거예요. 정확히 언제부터 그렸는지는 몰라요.”

“아하.”

저번에 김지우 기자와 인터뷰한 이후로 혹시나 비슷한 질문을 받을 경우를 대비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유용하게 써먹는다.

“해바라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앙리 마르소와는 원래 알던 사이야?”

“아뇨. 그때 처음 봤어요.”

“그 후로는?”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사람이던데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나 보다. 그 자리에서 바로 산 거지?”

“네.”

“해바라기는 어떤 그림이야? 의미라든가.”

이인호 기자가 식상한 질문을 던졌다.

“그림의 의미는 작품으로 충분히 이야기했어요. 보는 사람이 거기서 무엇을 얻든 혹은 그러지 못하든 그림 안에서 끝내고 싶어요.”

그림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그것으로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말과 문자로 의미를 더한다면 그건 실패한 그림이다.

“제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든 해바라기의 의미는 그것을 산 앙리 마르소나 그것을 본 분들이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

이인호 기자가 당황하기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님도 해바라기 보셨어요?”

“어. 어. 마지막 날에.”

“그때 느낀 점을 그대로 써 주시면 돼요.”

“음. 사실 난 그림을 잘 몰라서. 그냥 와 잘 그렸다 정도밖에.”

“그걸로 된 거예요. 처음 만난 사인데 어떻게 다 알겠어요.”

“어?”

“그렇잖아요. 제가 기자님 모르듯, 기자님도 저나 해바라기는 처음 보는 거니까.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렇게 되나?”

“네. 다음 그림을 보일 땐 좀 더 친근해질 수 있을 거예요. 첫 만남에 그 사람의 모든 걸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처럼요.”

이인호 기자가 눈을 깜빡였다.

“왜요?”

“너 정말 열 살 맞아?”

사실은 서른여섯 살이라고 말할 리 없다.

어깨를 으쓱이자 이인호가 생각을 정리하더니 뭐라고 메모했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앙리 마르소는 네 그림을 처음 봤는데도 200만 유로나 주고 샀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해?”

이 질문은 조금 고민된다.

적당한 표현을 찾다가 기왕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으로 비유했으니 첫인상에 빗대어 말하는 게 좋을 듯싶다.

“첫눈에 반한 거죠.”

“음?”

“완전히 빠졌거든요.”

“하핳핳하.”

할아버지가 곁에서 웃었다.

고개를 돌리니 맞장구를 쳐주신다.

“암. 그렇지. 예술 작품을 작가와의 만남으로 생각한다면 여러 첫인상이 있을 수 있고. 그중엔 첫눈에 반하는 경우도 있을 거다. 아주 좋은 표현이구나.”

역시 할아버지는 내 말을 이해해 주신다.

이인호 기자가 또 수첩에 무엇을 적었다.

“아까 무슨 일 하고 있었던 거야?”

“놀고 있었어요.”

“놀아? 해설 같은 거 해주던 것 같은데.”

이인호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의아해했다.

“방향을 제시해 주는 거죠. 기자님처럼 처음 보는 그림을 마주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하. 어떤 식으로?”

“그림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조금 전 사람들에겐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알려진 그림 중에 사실 그가 아닌 그림을 설명하고 있었어요.”

“가짜란 뜻이야?”

“아뇨. 둘이 닮아서 구분하기 힘들대요. 그래서 누가 빈센트고 누가 테오인지 문제를 내서 생각해 보게 했죠.”

결국 정답을 맞힌 사람은 없었지만 누가 나고 테오인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방식이었다.

“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는 게 그림 보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구나.”

“네. 왕립 미술원 같은 곳에선 그런 상징을 가르치고 외우게 하는데, 그런 그림 재미없잖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었다.

“예술에서 답을 찾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지요. 보는 사람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할아버지 말씀이 옳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저도 보자마자 이건 무슨 뜻이지? 하는 생각부터 했는데. 답이 있을 리 없네요.”

“네.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좋아. ……하나 더. 서울 미술관 신인 작가 전시회가 해바라기 덕분에 크게 성공했는데, 자평하자면?”

“정말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러 찾아와 주고, 이야기도 나눴으니까요. 또 팔기도 했고요.”

“같이 전시한 다른 작가들은 그림을 못 팔았다고 하던데. 그림을 파는 게 많이 어렵나?”

“그건 잘 모르겠어요.”

지금 미술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할아버지가 대신 입을 열었다.

“신인들에겐 가혹한 환경이죠.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흠. 어려운 문제라 조심스럽지만.”

할아버지가 간격을 두고 생각을 정리했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져 있는 상황입니다. 한쪽은 이해와 소통에 무관심하고 다른 한쪽은 말하고자 하는 바 없이 특별한 형태만 추구하고 있죠.”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습니다. 당장 기자님만 하셔도 그림에는 그리 관심이 없으신 것 같은데.”

“하하…….”

“정리하자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단 말이죠. 반면 아름다워 보여도 그 안이 텅 비어 있으면 매력적일 수 없습니다.”

아름답기만 하고 비어 있으면 향기 없는 꽃과 같다.

“확실히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술과 대중의 거리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바라기가 더 화제가 되는 것 같고요. 미술하는 사람은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인식을 깼으니까요.”

이인호 기자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내가 살던 때만 해도 화가로 생계를 끌어나가는 경우는 왕립 미술원에 취직하는 방법뿐이었다.

지금은 그런 곳도 없으니 오로지 대중을 상대로 그림을 팔아야 하는데, 그런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일부 수집가를 상대하고 있으니.

화가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리 없다.

“정말 어려운 길인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림을 그릴 건가요?”

이인호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다.

“네.”

비록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죽었던 애물단지 빈센트 반 고흐도 지금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

나는 틀렸던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과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렸을 뿐이다.

한 번 경험했던 만큼.

다시는 그 괴로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다시 살아갈 뿐이다.

그 과정에 그림이 빠질 순 없다.

“그림 좋아하니까요.”

* * *

[앙리 마르소, 첫눈에 반하다]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유명한 천재 소년과의 만남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지난 목요일.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한 필자는 방문객을 상대하는 작은 해설가를 발견했다.

만 9세의 어린 천재 소년은 관람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빈센트 반 고흐를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반 고흐 미술관 관리처장 케빈 맥컬리 씨는 고훈이 도슨트로 나섰단 소문이 퍼져 평소보다 방문객 수가 늘었다고 말하며, “그는 아홉 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계적 화가 앙리 마르소가 200만 유로의 거금을 들였던 화가.

반 고흐 미술관 관람객에게 사랑받는 도슨트 고훈에 대해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A. 여행 중에 반 고흐 미술관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관람객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나흘이나 지났네요.

Q. 한국과 유럽에서 벌써 유명인이 되었다.

A. 이름이 알려진 건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더 멋진 그림을 그릴 거예요.

Q. 유명해진 계기는 역시 <해바라기>다. 앙리 마르소와는 어떤 관계인가.

A. 모르는 사이에요. 그림을 팔 때 처음 보고 따로 연락한 적 없어요.

Q. 그가 왜 <해바라기>를 샀다고 생각하나.

A. 첫눈에 반했더라고요. 푹 빠졌거든요.

고훈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앙리 마르소가 <해바라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주었다고 전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걸까.

앞으로 고훈을 향한 앙리 마르소의 짝사랑이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고훈은 두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인호(대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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