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2화
6. 태양의 화가(4)
할아버지 말씀대로 정말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사람이 하늘을 날아서 어디론가 이동하다니, 죽지 않은 게 용하다.
나는 비록 창공에서 바라본 풍경에 넋을 놓았으나, 테오나 로트렉처럼 19세기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했다면 죽는다고 바들바들 떨거나 애초에 비행기에 타는 걸 거부했을 것이다.
짐을 챙겨 걸어가다가 할아버지가 한 남자 앞에 멈췄다.
“안녕하세요. 꼬마도 안녕.”
“가만있자……. 네덜란드어로 안녕하세요가 뭐였더라.”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인사말을 찾는 도중 남자는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Hallo. Hallo.”
할아버지가 어색한 네덜란드 말로 인사를 건넸다.
“네덜란드엔 무슨 일 때문에 방문하셨습니까?”
남자는 영어로 대답했는데, 할아버지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섰다.
네덜란드 사람과는 오랜만에 만나는지라 너무나 반가웠다.
“반 고흐 미술관 구경하러 왔어요.”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반겼다.
“오오. 아주 멋진 경험이 될 거다. 반 고흐 미술관에 가면 꼭 해바라기를 봐. 아저씨는 머리가 복잡해지면 거기서 위안을 얻는단다.”
“정말요?”
“그럼. 나를 위로해 주는 그림은 반 고흐뿐이었어. 19유로에 마음의 평화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 아, 너는 어리니까 10유로면 되겠구나.”
적응할 수 없다.
내 그림을 이렇게나 좋아해 주는 게 기쁘고 고마우면서도 어색하기도 하다.
“손자인가 봐요. 네덜란드어에 아주 익숙한데요? 꼭 죽은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느낌이에요. 하하하!”
“훈아, 이분이 뭐라고 하니?”
“손자냐고 했어요.”
“하하하! 그래요. 내 손자입니다.”
“하하핳!”
뭐가 좋은지 서로 말도 안 통하면서 웃는다.
수다스러운 남자가 작은 노트에 도장 같은 걸 찍어주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말도 배웠구나. 심사관이 아주 좋아하던데?”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이 목걸이 안 해도 되겠죠?”
창피한 목걸이를 보이자 할아버지가 웃음으로 넘어갔다. 말이 통하더라도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바로 왔다.
“Dank u.”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택시에서 내리자 금빛으로 빛나는 건물이 높이 솟아 있다. 고개를 들어도 눈에 다 담을 수 없다.
어지간한 귀족도 머물기 힘들 것처럼 몹시 호화롭다.
‘그런데 대체 왜 낮이지.’
오면서 바깥 구경을 하느라 잠을 못 잔 탓에 졸음이 쏟아지는데 대낮이다.
아침에 출발해서 11시간이 걸려 왔으니 저녁이어야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다.
“좀 이상해요.”
“뭐가?”
“왜 아직 점심이에요?”
“흐흐. 시차 때문이지. 서울이랑 암스테르담이 아마 7시간쯤 시차가 있을 거다.”
“……어떻게요?”
시간은 불변한 것이 아니었나?
“낮이랑 밤은 해가 있고 없는 걸로 정해지잖으냐. 지구가 둥글고 도니까 해를 보고 있는 곳이 아침이면 지구 반대편은 밤인 거지.”
“…….”
그래. 사람이 하늘을 나는데 뭐가 불가능하겠나 싶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기엔 놀라운 것이 너무나 많은 시대다.
자려고 침대 위에 누우니 할아버지가 허허하고 웃으며 물었다.
“지금 자면 밤에 어쩌려고.”
그것도 그렇다.
정신을 차리고자 찬물로 세수하니 조금 낫다.
“오늘은 푹 쉬고 반 고흐 미술관은 내일 가도록 하자.”
“지금 가면 안 돼요?”
“지금?”
졸리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확인해 보고 싶다.
부족한 내가.
정말 할아버지와 장미래 그리고 공항의 수다스러운 남자가 말한 것처럼 정말 사랑받고 있는지 알고 싶다.
지금은 어떻게 평가받는지.
내 발버둥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내일 조용히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니 조금만 참자.”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순간 졸고 말았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이보다 무거울 수 없다.
“조금만 자. 할아버지가 깨워줄 테니.”
* * *
다음 날.
아침 일찍 트램이란 대중교통으로 반 고흐 미술관으로 향했다.
기차 같은 건데 증기도 뿜지 않고 조용히 달리는 신기한 이동 수단이다.
“저기다.”
할아버지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니 세 채의 건물이 있다.
크다.
‘정말 있었어.’
한쪽 건물에 반 고흐 미술관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다.
할아버지를 따라 외벽이 유리로 된 구 형태의 건물로 향하는데, 모니터가 달린 울타리가 있다.
“이건 뭐예요?”
“줄 서는 곳.”
줄을 서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곳인 것치곤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안쪽으로 향했다.
하얀 피부와 금발 등 익숙한 생김새의 남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수열 경. 반 고흐 미술관 관리처의 케빈이라고 합니다.”
영어가 유창하고 예의도 갖추었다.
‘경’이라니.
그러고 보니 앙리 마르소란 사람도 할아버지께 경을 붙여 존대했다. 기사 작위를 받으셨을 줄이야.
“반갑습니다.”
할아버지도 웃으며 그와 악수했다.
“이쪽이…….”
케빈이란 남자가 나를 보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훈이에요.”
나도 인사하자 그가 뜻하지 않은 말을 꺼냈다.
“해바라기 잘 봤습니다. 반 고흐를 연상케 하는 색 활용에 놀랐죠.”
“해바라기를 보셨어요?”
“앙리 마르소 선생이 사면서 유럽에서도 화제가 되었죠.”
큰돈을 받고 팔긴 했지만 유럽에서도 화제가 되었단 말은 아마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일 것이다.
“그럼 감상하러 가실까요?”
그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상점으로 보이는 곳이 여럿 있다.
내 그림을 엽서에 붙여 걸어두기도, 옷에 그려두기도 했지만 정작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연 이 넓은 건물이 필요한 걸까 싶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지켜보니 케빈 씨가 입을 열었다.
“기념품 상점은 관람 후에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개장 시간이 되면 안쪽도 둘러보시죠.”
다시 에스컬레이터라는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 모퉁이를 돌자.
내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1)
벽 한쪽 면을 가득 채운 내 얼굴에 조금 당황스럽다. 프린터라는 걸로 내 그림을 뽑아서 벽지로 붙인 모양이다.
케빈 씨가 입을 열었다.
“강렬한 색, 거칠면서도 섬세한 붓 터치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뚜렷한 개성이죠.”
천천히 전시관으로 향하며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미치광이에 난폭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죠?”
난 지금도 미친놈으로 알려진 모양이다.
“하지만 저 앙다문 입과 강렬한 눈은 슬퍼 보이기도 합니다. 위태롭게 무엇인가를 이겨내는, 혹은 버티는 자신을 표현했을지도 모르죠.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화가였습니다.”
케빈 씨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 내가 그렸던 그림이 13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벽에 걸린 그림은 전부 모조품이지만 유리관 안에 있는 자화상과 초상화는 내가 그렸던 것이 맞다.
“벽에 걸린 건 왜 모조품이에요?”
케빈에게 물으니 빙그레 웃었다.
“알아보시겠어요?”
내 그림이니 당연하다.
“보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미술관으로서는 참 난감합니다. 대단한 그림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 놓고 전시할 수 없으니까요.”
“왜요?”
“그만한 그림을 걸어놓았다가 훼손되거나 도난당하면 미술관으로서도 인류 전체에게도 타격이 크죠.”
“그렇게나 중요해요?”
내 그림을 높이 평가해 주는 건 고맙지만 표현이 과하다.
“반 고흐의 그림은 수천만 유로는 가볍게 나가죠. 그중에선 1억 유로가 넘는 것도 있고요.”
앙리 마르소에게 팔았던 <해바라기>가 200만 유로였다.
장미래는 그것만으로도 평생 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는데, 수천만 유로라니.
할아버지도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돈으로 그림의 가치를 말하는 게 적절한지는 몰라도, 그가 얼마나 사랑받는 화가인지 알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수치 아닐까 싶습니다.”
“…….”
“아무튼 그러다 보니 이렇게 정교하게 만든 모작으로 전시하고, 진품은 일부를 돌아가며 선보이고 있습니다. 관리 차원이죠.”
고개를 끄덕이며 작품을 보고 있으니 케빈이 또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아십니까? 반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알려진 그림 중에는 반 고흐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돌아봤다.
“본인을 그린 것인지, 동생 테오도르를 그렸는지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탓입니다. 형제라고는 해도 두 사람은 특히나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테오는 나보다 똑똑하고 선량하며 돈도 더 잘 벌었다.
안 좋은 이야기가 잠시 돌긴 했으나 주변의 신뢰를 받아 화상으로 성공할 정도로 언변이 뛰어나고 신뢰도 받았다.
그렇게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났지만.
인물은 내가 더 낫다.
“이건 테오고. 저것도 테오예요.”
“하하핳. 아주 확신하는구나.”
할아버지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안 믿는 것 같다.
“그렇게 동생인지 본인인지 모르는 데에는 반 고흐가 자신을 항상 다르게 그린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모친에게 보낸 자화상은 수염도 정리하고 눈빛도 강렬하게 그려서 보냈지요.”
“초라하게 그리면 걱정하니까요.”
“그렇죠.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
정중한 케빈 씨가 설명을 다시 이어나갔다.
“그러나 반 고흐가 자신을 미화해서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여기 이 그림을 보면 번뇌하는 기색이 역력하죠. 그의 자화상이 모두 다른 인상을 보이는 건 자기 자신의 외면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면을 투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빈센트 반 고흐만의 탁월한 점이죠.”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사물을 정확히 그리는 데 힘썼다.
그것이 프랑스 루이 14세에 와서는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정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케빈 씨는 그것을 지적하며 나를 추켜세우나, 실은 당시 많은 화가가 나와 같이 전통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각자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반 고흐만의 일은 아니었어요.”
케빈 씨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로트렉 그 외에도 당시 그림을 그렸던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 쳤어요.”
말 그대로 발버둥.
당시는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 기존 질서로부터 탄압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발버둥 치던 시대였다.
나도 그 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일 뿐이다.
살기 위해.
나를 화폭에 담기 위해 발버둥 치다 실패한 패배자다.
케빈 씨가 싱긋 웃었다.
“그렇죠.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로트렉 당시엔 정말 뛰어난 화가가 많았습니다. 그들 모두 미술사에 기록될 크나큰 업적을 쌓았죠.”
평단으로부터 수없이 조롱당했던 화가들의 이름이 케빈 씨의 입에 언급된 순간 알 수 없는 희열이 올라왔다.
그래.
그들도 지금에 와서는 미술사에 기록될 만큼 인정받고 있었구나.
참으로 다행이다.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제게 반 고흐는 좀 더 특별합니다.”
고개를 돌리자 케빈 씨가 내 자화상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반 고흐가 죽고 137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수많은 화가가 현실과 싸워나가고 있죠. 때로 좌절하기도 포기하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 가슴 한쪽에 반 고흐를 담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가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당하고 가족에게 버려져도.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병들어도 끝까지 싸웠던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 거죠.”
케빈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를 보는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아침이 찾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견딜 용기를 준 빈센트 반 고흐는 지난 137년간 모든 화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 * *
1)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채 물감, 1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