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9화
6. 태양의 화가(1)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 따르면 세계를 한 바퀴 도는 데 80일로 충분하다고 한다.
태블릿이나 TV처럼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인류니 아주 빠른 배도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유럽까지 가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을 거라는 아주 희망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할아버지가 여행 기간을 두 달 정도 말씀하셨으니 아마 유럽에서 머무는 시간은 많지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반 고흐 미술관’이란 곳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짐 싸야지.’
두 달간 입을 속옷과 양말, 옷가지를 챙기다 보니 내 키만 한 가방이 가득 찼다.
아직 그림 도구는 조금도 못 넣었는데 고민이다.
이번 기회에 태블릿과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붓과 물감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옷은 빨아서 입으면 되지.’
가방에 넣었던 옷을 전부 빼고.
사흘에 한 번씩 빨 생각으로 양말 세 켤레, 속옷 세 장, 잠옷 두 벌, 외출복도 두 벌만 챙겼다.
붓통과 물감 세트를 넣고 보니 캔버스는 아무래도 가지고 갈 수 없을 것 같다.
가방 안에 넣었다간 다 구겨질 것이다.
판넬을 챙겨갈 수도 없고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스케치북을 세 권 넣고 <100색 색연필>도 함께 챙겼다.
‘오베르에 갈 수 있을까.’
마지막에 그리려고 했던 밀밭을 완성하고 싶은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젤도 어떻게 자리를 만들어 넣고 태블릿도 망가지지 않게 옷으로 잘 감싸 넣었다.
빈틈없이 채운 가방이 만족스럽다.
이사가 잦았던 만큼 이렇게나 짐을 싸는 데 능숙하다.
“훈아, 짐 다 쌌어?”
“네.”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어디 보자.”
이 합리적인 짐 꾸리기에 할아버지도 감탄하시리라.
“어이구야. 많이도 챙겼다. 뭘 이렇게 넣었어?”
“꼭 필요한 것만 넣었어요.”
할아버지가 가방을 여시더니 당황한 듯 속을 뒤적였다. 뭔가 빼먹은 거라도 있는 모양이다.
“뭐 빠졌어요?”
“이 녀석아, 옷은 어디 가고 붓이랑 물감만 넣어놨어? 이사 가?”
“제일 아래 있어요.”
할아버지가 가방 안쪽을 확인하시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두 달은 지낼 건데 아주 부지런해야겠구나. 응?”
“그림 못 그리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으이구. 누가 여행을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가? 이거 멜 수나 있겠어?”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일어나려는데 그럴 수 없다.
“흐흐흐흫. 그것 봐라. 그림 도구는 두고 정 아쉬우면 스케치북이랑 색연필만 가져가.”
어쩔 수 없이 도구를 뺐다.
* * *
고훈이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앙리 마르소가 <해바라기>를 구입한 뒤로 서울 미술관 제3전시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례적인 판매가 덕분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노출된 <해바라기>를 향한 관심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평소 하루 20~30명 정도의 방문객을 유지하던 제3전시실은 연일 500명 이상 찾으며 이준호 관장을 행복하게 했다.
그림이 훼손, 도난당하지 않도록 보안요원이 항상 자리를 지켰으며 신인 작가 전시회에서는 이례적으로 도슨트까지 붙여 관리하고 있었다.1)
그러나 <해바라기>를 구경하기 위해 찾은 사람들의 귀에 도슨트의 해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진과는 전혀 달랐다.
마주한 순간 그 찬란한 색상에 압도되고 말았다.
<해바라기>가 어떤 방식으로 그려졌는지, 어떤 물감이 사용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놓게 되었다.
지금껏 그들이 느껴본 경험이 아니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선 한국대학교 미술대학생들은 근처 카페에 둘러앉아 <해바라기>가 남긴 여운에 취해 있었다.
진동벨이 울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미쳤나 봐. 진짜.”
“그러니까. 나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냥 봤어.”
“어떻게 그런 색을 쓸 수 있지? 엄청 순수해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슬프고. 안타깝고 막. 아아악. 뭐라고 해야 하지?”
“딱 한 송이 그려서 더 안타까워 보이지 않아?”
“난 처연해 보이는 해바라기랑 너무 밝은 노란색 때문에 더 대조되는 것 같던데.”
“구도가 꼭 한국화 같더라. 수묵화 느낌도 나고.”
“맞아. 배경도 없고 선은 되게 거친데 이상하게 디테일하지?”
친구들의 말을 듣고 있던 한 학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반 고흐 느낌 나지 않았어?”
일행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금.”
“반 고흐가 수묵화 봤으면 저렇게 그렸을 수도 있겠네.”
한 학생이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하아. 나도 그런 그림 그려보고 싶다. 아니, 이제 10살이라고 하지 않았나?”
“응. 고수열 교수님 손자.”
“10살?”
자신을 압도한 그림을 고작 열 살 아이가 그렸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학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럽다. 얼마나 잘 그렸길래 20억씩이나 받았나 싶었는데 진짜 너무 좋잖아.”
“28억.”
“그거나 그거나. 어차피 난 평생 구경도 못 할 돈인데. 뭐.”
“그거뿐이냐. 앞으로 고훈이 그리는 그림은 기본으로 거기서 시작할 텐데. 앙리 마르소가 산 거잖아. 가격이 떨어져도 크게 차이 나진 않을걸?”
유명인이 작품을 사 주는 것은 미술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 자체로 큰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 그냥 포기할까.”
“뭘?”
“그림. 솔직히 저렇게 그릴 자신도 없고 뭘 그려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힘들어서 그리는 게 예전처럼 좋지도 않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한 친구의 발언에 다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대한민국 최고의 미술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하루에 14시간씩 몇 년을 꼬박 캔버스 앞에 있었다.
오죽했으면 석고상을 그대로 외워서 그릴 정도로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정답을 강요하던 입시 미술에 개성을 죽이고 적응했더니.
다시 개성을 찾으라고 말하는 대학 수업에 따라가기 너무나 힘들었다.
모든 미대생이 겪는 대학 입시와 미술대학의 부조리함이었다.
친구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그저 서로를 보듬을 뿐이었다.
그때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난…… 오늘 좀 힘 나던데.”
친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좀 오바하는 것 같기도 한데.”
학생은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그 해바라기 되게 외로워 보였거든. 줄기나 잎에 상처도 있었고. 그렇게 밝게 필 수 있는 것 같진 않았어. 그런데도 그렇게 밝게 칠한 건 그……. 아, 뭐라 해야 하지?”
“뭔데.”
“해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서. 난 되게 응원받은 기분이었어.”
친구들이 아무 말도 없자 학생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너무 내 멋대로 생각했나.”
“아니. 생각하는 데 무슨 멋대로가 있어. 네 생각인데.”
친구의 말에 학생이 안도했다.
“그러게.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아. 꽃잎이 빛나는 것처럼 과장되긴 했잖아. 어쩌면 진짜 그런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10살짜리 애가 그런 걸 생각했다고?”
“……어쩌면 고해성 선배님이랑 이수진 선배님 생각하며 그렸을지도 모르지.”
“아.”
고작 열 살 소년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어쩌면 <해바라기>의 그 눈부신 노란색은 상처 난 줄기와 잎이 상징하는 아픔에도 굴하지 않겠단 의지일지도 몰랐다.
“그 애가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그리진 않았겠지만, 뭐랄까. 내면에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응.”
학생들은 커피를 마시며 한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의 기억 속의 <해바라기>를 떠올리니 지친 가슴에 다시금 의욕이 차올랐다.
“……그림 그리러 갈래.”
“나도.”
“가, 같이 가.”
* * *
장미래가 설치해 준 인피니티 드로잉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은 참으로 경이로운 도구다.
원하는 색상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고, 화면에 펜을 대는 것만으로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이 나왔다.
선의 굵기, 모양, 질감까지 다르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익히는 것만으로도 며칠이 훌쩍 지나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오늘은 이걸로 그림을 그려볼까 싶어 엎드렸는데 현관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윽. 으.”
포장된 캔버스가 신음한다.
족히 100호(162㎝×130㎝)는 될 듯한데, 몸이 작아진 탓에 주변과 사물이 더 크게 느껴지니 어쩌면 조금 더 작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싶어 다가가 보니 장미래와 못 보던 남자가 있다.
“안녕?”
“안녕하세요.”
장미래도 남자도 힘들어 보인다.
“뭐예요?”
“선생님 선물. 오늘 생신이니까.”
종일 택배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수십 명이 다녀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인 줄은 몰랐다.
“그림 선물이에요?”
“응. 예전에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끙. 이번에 드리려고.”
“저도 구경해도 돼요?”
“이따 선생님 오시면 같이 보자. 훈아, 잠깐. 거기 비켜 봐.”
“도와드릴게요.”
“안 돼. 무거워. 진우야, 여기 앞에 두자.”
“네, 교수님.”
두 사람이 힘겹게 캔버스를 내려놓았다.
“히유. 고생했다. 고마워.”
“별일 아니에요. 소고기 생각이 나는 정도?”
“으이구. 알았어. 군대 가기 전에 한 번 먹자.”
젊은 남자가 어깨를 들썩였다.
소고기로도 저렇게 기뻐하는데 쟁반짜장을 먹자고 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장미래에게 건의해 볼 만하다.
“그럼 저 가볼게요. 잘 있어. 훈아.”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서자 장미래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아.”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앓는 소리를 한다.
“나갔다 올게요.”
“어? 이 시간에?”
“할아버지 생신이라면서요.”
“선물 사러 가게?”
“네.”
“선생님 곧 오실 텐데?”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에 장미래가 다독이듯 말했다.
“할아버지에겐 훈이가 건강하게 크는 게 제일 큰 선물일걸?”
“그건 그거고 축하는 축하죠.”
“그럼 그림 그려드려. 해바라기 엄청 가지고 싶어하셨잖아.”
초상화라.
인물 연습하기에도 좋고 할아버지에게도 의미가 있을 테니 좋은 생각이다.
거실에 의자와 이젤을 가져다 두려고 작업실로 향하니 할아버지 목소리가 났다.
“훈아, 할아버지 왔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오구오구. 내 새끼. 그런데 이게 뭐냐.”
현관 주변에 가득 쌓인 종이 상자와 캔버스를 살피며 놀라신다.
“생신 축하 선물이죠.”
장미래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생신은 무슨. 이건 뭐예요?”
“저번에 선생님이 좋다고 하셨잖아요. 선물로 드리려고요.”
장미래가 캔버스를 포장한 종이를 찢었다.
그림이 드러날 때마다 피오니(작약)의 청초한 자태가 피어오르는 듯하다.
할아버지의 <포테이토 피자>만큼이나 사실적이다.
싱그러운 꽃잎이 마치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
그러나 사물을 단순히 정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만을 화폭에 담았다.
실제로는 저렇게 타오를 것처럼 붉은 작약꽃은 없겠지만 마치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누군지는 몰라도 캔버스 안에 자신만의 이데아를 구축해 놓은 거장의 작품일 것이다.
할아버지의 그림도 그렇고 이 사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화풍에 깨달은 바가 많다.
‘닮았어.’
장 프랑수아 밀레.
위대한 스승 밀레가 세련되어진다면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적어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화폭에 담는 모습은 분명 숭고한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흔적이다.
“오오.”
할아버지도 드물게 기뻐하셨다.
“장 교수 그림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가르침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마음에 드세요?”
“아무렴. 훈아, 어떠냐. 미래 이모 그림이.”
잠시 혼란스럽다.
“이걸 이모가 그렸다고요?”
“어때?”
장미래가 쪼그려 앉아서 물었다.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사람이 이런 걸작을 만들었다니.
믿을 수 없다.
단언하건대 이 그림은 여러 걸작과 함께 앞으로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될 것이다.
“……멋져요.”
“정말?”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1)도슨트(Docent):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 출처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