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6화
2. 미술관(2)
“빈센트 반 고흐라고요?”
“그래.”
“네덜란드?”
“잘 아는구나.”
아무래도 우리 반 고흐 집안에 크게 성공한 화가가 태어났던 모양이다.
혹시 테오의 아들일까.
빈센트란 이름이 워낙 흔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조카 빈센트라면 얼마나 좋을까.1)
미술관이 세워질 정도로 유명해졌으니 나와 테오의 못다 한 꿈을 대신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어떤 그림 그렸어요?”
“흠. 해바라기라든가 밀밭. 초상화도 많이 그렸고. 참. 그래. 자화상 하면 반 고흐지.”
테오의 아들이 확실하다.
해바라기와 밀밭, 자화상이라면 내가 주로 다룬 소재다.
모르긴 해도 테오가 내 이야기를 많이 했을 테니, 나를 추모하기 위해 여러 작품을 그린 듯하다.
고맙기도 하지.
못난 삼촌을 위해 어떤 그림을 그렸을지 궁금하다.
“한번 볼 테냐?”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손부터 씻으라는 말에 냉큼 따랐다.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던 2층으로 올라갔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그림이 벽마다 장식되어 있다.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건가 싶은 작품도 있고 존경해 마지않은 위대한 스승의 그림도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다.
“…….”
이상하다.
“왜 그러느냐?”
“이거 모조품인데요?”
언뜻 봐선 티가 안 나지만 밀레의 섬세한 터치가 아니다.
“하하하. 눈도 좋구나. 맞다. 여기 있는 그림 대부분이 모조품이야. 인쇄해서 덧칠한 거지. 진품은 너무 비싸거든.”
확실히 파블로 피카소나 장 프랑수아 밀레 정도 되는 화가의 그림이라면 고가에 거래될 만하다.
생전 굴욕적인 평가를 받았던 밀레 선생의 그림이 지금은 고가에 거래되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다행인가.
“자, 여기 있다.”
할아버지가 가리킨 곳에 <아를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가 근사한 액자에 넣어져 있다.2)
“…….”
내 그림과 구도와 채색이 같다. 붓 터치와 색이 조금 다른 걸 보니 이것도 누군가가 따라 그린 듯하다.
할아버지가 이 그림이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라고 보여주었으니 내 조카가 그렸단 뜻인데.
설마하니 내 그림을 그대로 따라 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봤던 그림이야? 반응이 시원치 않구나.”
“네.”
“음. 아름답지 않으냐? 저 눈부신 노란색과 푸른 밤, 그 사이의 녹색이. 반 고흐는 이런 식의 색 배치를 곧잘 했단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를 추모하고 기리는 것은 기쁜 일이나, 한 사람의 온전한 화가가 다른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 하여 성공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삶은 투쟁이었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았지만 끝내 병을 얻었지. 그래도 이렇게 멋진 그림을 남겼으니 대단하지?”
조카 빈센트도 힘겹게 살았나?
“그가 귀를 자른 것 가지고 미친놈이니 광인이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도 그의 그림만은 욕하지 못한단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귀를 잘랐다고요?”
“그런 일이 있었지.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하지만 그게 무에 중요하겠느냐.”
폴 고갱과의 일이다.
설마하니 조카 빈센트도 나와 같은 일을 겪었을까 싶다.
“이 그림 그린 사람, 1853년에 태어났어요?”
“글쎄다. 아마 그즈음이었을 거야.”
“1890년에 죽었고요?”
“가만 보자.”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꺼내서 뭔가를 찾았다.
“오, 그래. 1853년 3월 30일에 태어나서 1890년 7월 29일에 죽었구나. 어떻게 이런 걸 다 기억하고 있어?”
내 일이니 아는 게 당연하다.
“반 고흐 미술관이 있다고요?”
“왜. 가보고 싶어?”
“1890년에 죽은 빈센트 반 고흐를 기념하는 미술관이 있다고요?”
“그렇다니까.”
“왜요?”
이해할 수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내 미술관이 세워졌는지 알 수 없다.
<붉은 포도밭>과 소품 몇 점 판 것이 전부인 나를 기념하는 미술관이 있을 리가 없다.
혹시 내가 죽은 뒤 테오가 돈을 많이 벌어 세워주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왜긴 이 녀석아. 반 고흐만 한 화가가 미술관 하나 없어서야 되겠어?”
“반 고흐만 한?”
“그래.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아니냐.”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저승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다시금 떠오른다.
천국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완벽한 세상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호화로운 음식과 새로운 미술 도구, 따뜻한 가정에 건강한 몸으로도 모자라 내가, 나 빈센트 반 고흐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라니.
도가 지나치다.
“믿지 못하겠단 표정이구나.”
“네. 빈센트는 그림도 제대로 못 팔았어요.”
“하하핳하! 그래. 그건 맞지. 그가 살아 있을 땐 인정받지 못했어.”
가슴이 쓰리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흠.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래. 가셰 박사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있단다.”
주치의였던 가셰 박사에게 그림을 그려 준 적 있다.
감사함을 담아 그의 지적인 면모를 슬픈 표정과 함께 그려 선물했다.
“그 그림이 1999년에 4,400만 달러에 팔렸지. 이제 감이 좀 오니?”
“달러가 뭐예요?”
“유로로 말해줘야 하나?”
그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화폐단위를 말씀하시는 듯한데 달러고 유로고 다 처음 듣는 단위다.
“프랑으로는 얼마나 해요?”
“프랑? 프랑은 왜.”
대답하기 난감하여 입을 닫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허허 웃는다.
“할아버지 난감하게 어려운 질문만 하는구나. 끄음. 이런 걸 계산해 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디 찾아보자.”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찾았다.
뭐든 나오는 이 조그만 기계는 세상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모양이다.
“오, 그래. 여기 나와 있구나. 지금 환율로 4,400만 달러가 3,731만 유로. 프랑스말이 오랜만이라 숫자 말하는 게 어렵구나. 숫자는 한국말도 알아듣지?”
“네. 프랑으로는요?”
“자, 봐라. 프랑스가 법정통화를 바꿀 때 6.5프랑이 1유로로 환전되었대. 그러니 프랑으로는 2억 4,241만 프랑쯤 되겠지.”
“…….”
“이 녀석아, 턱 빠져.”
말이 안 되는 금액이다.
“아. 아니구나.”
그럼 그렇지.
할아버지가 금방 말을 바꾸었다.
“프랑화도 개편되었다고 하네. 예전 100프랑을 새로운 화폐 1프랑으로 바꿨대. 이게 1960년 일이니 1960년 기준으로 대충 242억 4,100만 프랑이겠지.”
언젠가는 테오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고 받은 돈은 전부 기록해 두었다.
테오가 내게 10년간 보내준 돈은 모두 1만 7,000프랑.
비록 좁은 방에서 아껴가며 살았지만 적어도 캔버스와 물감을 사는 데 부족하진 않았다.
모델도 가끔 구할 수 있었고.
그런데 <가셰 박사의 초상>이 242억 4,100만 프랑에 팔렸다니.
1871년에 프랑스가 비스마르크에게 패전하고 지불한 전쟁 배상금이 50억 프랑이거늘.3)
믿을 수 없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보기에 이 계산은 허점이 많구나.”
“그렇죠?”
“음. 화폐 가치 변동은 상정하지 않았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물가가 상승하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거든.”
더욱 이해할 수 없어 눈썹을 좁히자 할아버지가 크게 웃었다.
“그래. 지금 네겐 너무 어려운 이야기지. 아무튼 훈아. 이 엉터리 계산처럼 인터넷에 있는 정보가 전부 사실은 아니야. 그러니 공부할 땐 여러 자료를 함께 봐야 한단다. 지금은 그것만 알아도 돼.”
얼떨떨하다.
“왜.”
“얼마나 큰 돈인지 모르겠어요.”
“하하. 그래. 감이 안 오겠지. 그러니 왜 프랑으로 알려달라 해서 그래.”
그나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화폐단위인데 액수가 문제다.
“쉽게 말해서 네가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가 28,000원이니까 가셰 박사의 초상으로 186만 9,200개 정도 먹을 수 있단다. 이것도 사실 정확히 계산하려면 그림이 거래되었던 99년도 피자값으로 계산해야 해.”
교수라서 그런지 자잘한 이야기에 신경 쓰신다.
그보다 내 그림이.
그 호화롭고 풍요로움의 상징 포테이토 피자를 186만 개나 사 먹을 수 있다니.
믿기 힘들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 같진 않다.
“……대체 왜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하. 이 녀석이. 그래. 이 나이 땐 궁금한 게 많은 게 정상이지. 천천히 공부하자꾸나. 일단 내려가서 밥부터 마저 먹고.”
기껏 욕심을 냈다.
죽은 아이에게 미안하고 할아버지께 죄스럽긴 하나.
어차피 죽은 아이라면.
그 아이에게 돌려줄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신 잡을 수 없는 이 기회를 살려서 다시 한번 그려보자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거늘.
이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 * *
모국어를 제외하고도.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영어까지 자유롭게 익혔건만 도무지 한국어만은 내 마음 같지 않다.
아마 라틴어를 제외하고 세상에서 가장 익히기 어려운 언어일 것이다.
자음과 모음을 외우기 쉽고 글자 모양이 앙증맞은 것에 크게 속았다.
하지만 받아쓰기를 80점 이상 받아야 미술관에 데려가겠다는 조건 때문에라도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
“우리 훈이 공부 잘하고 있나?”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벌써 약속한 시각이다.
“자, 열 문제 낼 테니 잘 받아 써 봐라.”
“잠깐만요. 조금만 더.”
“안 돼.”
대학교수라더니 뭔가를 가르칠 때는 엄격하다.
약속한 일이기도 하여 어쩔 수 없이 자세를 잡았다.
“첫 번째 문제. 고훈.”
이 아이의 이름이자 지금은 내 이름이기도 하다.
“두 번째 문제. 고수열.”
할아버지 이름이다.
“세 번째 문제. 고해성, 이수진.”
“왜 두 개예요?”
“떼끼. 어머니, 아버지를 어떻게 따로 여겨.”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지만 억울하다.
그나저나 이 아이의 부모는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피하는 듯해 굳이 캐묻진 않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아이에겐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네 번째 문제. 집 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45길입니다.”
너무 길다.
“다섯 번째 문제. 저는 열 살입니다.”
좀 더 어린 줄 알았는데 열 살인지 처음 알았다.
“여섯 번째 문제. 저는 세상에서 할아버지가 제일 좋습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자 괜히 헛기침하고 시선을 피한다.
“뭐 해? 안 쓰고.”
“…….”
모두 미술관을 가기 위한 일이다.
“일곱 번째. 사랑해요, 할아버지.”
“뭐 하시는 거예요!”
“뭐긴! 받아쓰기 문제 내고 있잖느냐! 빨리 받아 써!”
손자 사랑이 너무나 지극한 할아버지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지금 시대의 화가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한 내 탓이다.
그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난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헣헣헣허. 참 잘했다.”
할아버지가 도장을 찍어주었다.
굴욕이다.
“자, 나갈 준비 하자.”
답안지를 보고 만족스럽게 웃는 할아버지를 보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 * *
1)화가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이름 빈센트는 당시 흔히 붙이는 이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의 이름도 빈센트 빌럼 반 고흐였으며 조부 역시 빈센트(Vincent Ferdinand Jacob van Gogh)였고, 백부 역시 빈센트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도르 반 고흐는 아들에게 형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흔히 붙던 이름 빈센트(Vincent)는 승리한 자, 정복한 자라는 뜻의 라틴어 Vincentius에서 유래되었다.
2)아를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빈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화 물감, 1888
3)1871년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던 프랑스는 당시 국민 총생산(GNP)의 1/4에 달하는 50억 프랑을 독일에 지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