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5화
2. 미술관(1)
고수열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고훈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만 해도 낯선 환경 탓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는데 조금씩 적응하는 듯해 안심했다.
특히나 새로 사 준 색연필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자니 괜스레 흐뭇했다.
‘저 어린 녀석을 두고…….’
아들 부부가 죽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비록 뜻이 달라 다투고 떨어져 지냈지만 어찌 자식을 향한 마음이 애틋하지 않을까.
사고 연락을 받은 고수열은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손자가 아직 죽지 않았단 이야기를 들었다.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흐르고 뇌 기능이 정지했단 말을 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부와 명예 모두 부질없었다.
손자 하나 살리지 못하는, 아무 의미 없는 허상이었다.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찾아온 기적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고수열이 고훈에게 다가갔다.
그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루에 몇 장이고 그려댔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마치 억눌려 있던 무엇인가를 쏟아내듯 색연필을 움직였다.
“훈이 그림 그려?”
입을 내밀고 집중하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이번엔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 고개를 슬쩍 들이밀었다.
또 피자다.
“피자가 그렇게 좋으냐?”
한국말을 하니 고훈이 고개를 들고 멀뚱멀뚱 올려다보았다.
“피자가 그렇게 좋으냐고.”
프랑스말로 하니 다시 색연필을 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식 피자는 처음 먹었던 듯.
고훈은 프랑스어로 피자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고기가 이렇게 많이 올라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 치즈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서 고소하고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해요? 감자도 부드럽고. 어떻게 재배하는지 아세요?’
고훈이 사용하는 프랑스어는 고풍스러워서 중간중간 이해하기 힘들었다. 두루 쓰는 말보다는 옛스러운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의아했다.
그러나 대화가 아주 안 통하는 것은 아니라, 고수열은 손자가 노인들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여겼다.
그보다 문제는 한국말을 거의 모른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말은 가르쳤어야지.’
말하는 걸 들어보면 가끔 얘가 정말 열 살이 맞나 싶었으나 또 한국말을 할 때는 아이다웠다.
궁금한 게 한창 많을 나이답게 질문도 많아 답변하기 곤란하기도 했다.
아주 갓난아기일 때 보고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다시 만난 손자는 그렇게 특이하면서도 아이다웠다.
그러나 그림만은 달랐다.
‘허.’
고수열이 손자가 그린 그림 한 장을 들었다.
사실적으로 묘사하진 못했으나 색을 활용하는 감각은 탁월했다.
그림을 경계선을 두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색을 달리하며 물체를 구분했고,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
그렇게 완성된 <피자>는 고훈의 놀라움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마치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인상주의를 연상시켰다.
사물을 바라본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느낀 감정을 담아낼 줄 알았다.
그것을 이 어린아이가 의도한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화풍을 따라 하는 거로 생각했다.
다만 이 밀도 높은 그림만은 이 아이의 재능과 교육의 결과이리라.
‘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고수열은 아들 부부가 고훈을 어떻게 교육했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훈아.”
고훈이 고개를 들었다.
“정물화도 그려봤어?”
“정무롸요?”
고수열은 당분간 손자와 한국말로 대화하는 건 포기했다.
“이런 부분은 뭉뚱그렸잖아. 자세히 표현해 보는 건 어때?”
“재미없어요.”
“재미없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가 또박또박 말했다.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허. 고 녀석.’
고수열이 싱긋 미소 지었다.
아직 어린 손자에게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대견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정말 크게 되려면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표현하는 능력 또한 갖춰야 할 소양이었다.
고수열은 고훈이 화풍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되도록 다양한 작업을 경험하길 바랐다.
“똑같이 그리는 것도 얼마나 재밌는데.”
손자는 관심 없다는 듯 다시 그림에 열중했다.
고수열은 어떻게 하면 고훈의 관심을 이끌까 고민하다가 오래전 아들이 어렸을 때의 경험을 상기했다.
* * *
피자 중 으뜸은 포테이토 피자다.
몸이 어려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른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감자부터 내가 알던 단단하고 퍼석한 종이 아니다.
이곳 감자는 입에 무는 순간 바스러지며 촉촉한 속살로 혀를 휘감는다.
그 사이를 누비는 다디단 옥수수 알은 또 얼마나 간사로운가.
혀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요네즈는 더 큰 문제다.
내가 알던 마요네즈 맛도 아니며, 대체 피자 위에 마요네즈를 얹을 생각은 어떻게 했을지 의문이다.
적절히 익은 마요네즈가 치즈와 함께 어울려 미뉴에트를 춘다.
이보다 고상한 맛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종이 위에 어떻게 담을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그리길 반복하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색연필이란 도구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
유화 물감을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도구를 익혀나가는 과정도 즐겁다. 선을 날카롭게 쓸 수 있으니 보다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
이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따로 있을 터.
‘즐겁다.’
머릿속을 울리던 환청 없이.
때때로 근육이 비틀리는 일도 없이 온전히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슬슬 배가 고프다.
때마침 피자가 배달되면 울리던 소리가 났다.
할애비가 나와서 단추처럼 생긴 것을 꾹 눌렀다.
“피자예요?”
“그래. 받아 오마. 손 씻어.”
“네.”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손을 깨끗이 하면 좋긴 하다만, 매번 이 행위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피자 같은 호화 요리를 먹기 전의 의식 같다.
물을 묻히고 나왔다.
피자는 아직인 듯하다.
할애비가 있던 방이 열려 있다. 안에서 무슨 일을 하나 싶어서 슬쩍 얼굴을 들이미니 피자가 있다.
“…….”
순간이나마 피자로 착각한.
그림이다.
일부만 그려진 것이 아니었다면 가까이에서 살피지 않는 한 그림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캔버스의 사물이 마치 튀어나올 듯하다.
경이롭다.
대체 어떤 훈련을 거듭하면 이런 식의 묘사가 가능할까.
이렇듯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몇 알고 있다.
귀스타브 쿠르베라든가 위대한 스승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러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이 미완성의 피자 그림은 사실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그들조차 따라가지 못한다.
아마 완성되었다면 사진이라 해도 믿을 터.
“훈아 밥 먹자.”
넋을 놓고 있자니 할애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테이토 피자 냄새가 풍겼으나 이 그림을 보는 것보다 중요하진 않다.
“얘가 어딨어? 훈아, 훈아!”
작은 점 하나로 반사광을 표현하는 기술도 놀랍지만, 할애비의 색 활용 능력에 말문이 막힌다.
인간의 기술이 아니다.
“이 녀석아, 부르면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고개를 돌렸다.
“이거 할애비 할아버지가 그렸어요?”
“할애비 할아버지?”
이 그림을 직접 그렸냐는 질문에 이상한 걸 되묻는다.
“네. 할애비 할아버지.”
“학하핳하! 이 녀석아, 할애비면 할애비고 할아버지면 할아버지지 할애비 할아버지가 뭔 말이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같은 말이다. 할애비. Grand-père.”
‘할애비’와 ‘할아버지(grand-père)’가 같은 말이라니.
충격이다.
“그럼 뭔 줄 알았어?”
“할아버지 이름이 할애빈 줄 알았어요.”
“핳핳하핳학! 이 녀석 아주 엉뚱한 데가 있어.”
“프랑스어로 말할 때도 할애비라고 하셨잖아요. 헷갈리게.”
민망하다.
할아버지가 음흉하게 웃는다.
“아무튼. 그래. 할아버지가 그렸다. 멋지지?”
“……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소묘는 죽기 직전까지 단련해 왔으나 작품으로 남길 생각은 없었다.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형태를 넘어 본질이고 그것을 담아내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으니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이 신과 같은 기술은 그 자체로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족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이런 집중력을 유지하고, 섬세히 작업할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우리 훈이는 아직 어려서 할아버지처럼은 못 그려요.”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자존심을 긁는 말을 꺼냈다.
“훈이는 색연필로 그림 많이 그려. 할아버지는 이렇게 그릴 테니까.”
화가로 살아온 10년.
이보다 분한 적이 또 있었을까.
“저도 그릴 수 있어요.”
“정말? 아닌 것 같은데에?”
지금 내가 어린 몸에 있긴 하나.
마치 아이를 다루는 듯한 늘어지는 말투가 이런 그림을 그리지 못할 거라는 의도와 함께 몹시 모욕적으로 들린다.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래. 할아버지는 우리 훈이 믿어요. 자, 자, 밥부터 먹자.”
정묘하게 그리려 노력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겠지만.
지금 나는.
분명 이만한 기술이 없다.
* * *
고수열은 독기가 잔뜩 오른 손자를 보며 즐거워했다.
예순넷에 얻은 큰 행복이었다.
고훈이 깨어난 후에 보인 행동들은 안타까울 뿐이었으나 최근 며칠 손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특히나 그림에 관해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그것은 집착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고수열 본인은 물론 아들 고해성과도 똑같이 자존심이 강했다.
특히 그림에 대해서는 고집불통이라 무엇이 부족하다 싶으면 참지 못했다.
만족할 때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고수열은 그런 아들을 키우며 무엇을 하라고 시키는 것보다, 자극하는 편이 효과적이었음을 떠올렸다.
그래서 고훈에게도 마찬가지로 접근했거늘.
과연 고수열의 손자답게, 고해성의 아들답게 약이 잔뜩 올랐다.
그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를 앞에 두고도 먹지 않고 한참이나 그림을 관찰했다.
‘이 아이는 그림을 그리겠어.’
자신도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학장직도 올해로 마지막.
은퇴를 앞둔 고수열은 손자를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시켜주고.
또 이 아이가 자신의 역량을 만개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럴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
고훈에게도 그런 자질이 충분했다.
그림 실력도 대단하지만 그림을 향한 끝없는 저 욕심이 가장 큰 재능이었다.
‘……여기보단 유럽이 나으려나.’
한국말이 서툰 고훈이 학교에 잘 적응할지도 걱정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말도 유창하니 차라리 그곳에서 공부를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우선은 건강해진 뒤에 고민해도 되겠지. 견문도 넓힐 겸 여행 다니며 훈이가 유럽에 잘 적응하는지도 확인하고.’
“훈아.”
무엇에 집중하면 한 번 부르는 것으로 대답하는 적이 없다.
“훈아.”
고훈이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랑 내일 그림 구경하러 갈까?”
“미술관이요?”
“그래.”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받아쓰기 80점 받으면 데려가마.”
조건을 붙이자 고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한국말로요?”
“그래. 공부할 건 주마.”
“……좋아요.”
“할아버지 말 잘 듣고. 밥도 잘 먹어서 건강해지면 유럽도 데려가 줄게.”
고훈의 눈이 커졌다.
“루브르도요?”
“그래. 루브르뿐이더냐. 바티칸, 내셔널 갤러리, 오르세. 다 데려가 주마. 네가 좋아하는 피카소 미술관이나 반 고흐 미술관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를 듣던 손자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반 고흐?”
“그래. 빈센트 반 고흐.”
고훈이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