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화 (4/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4화

1. 그리는 아이(3)

아주 좋은 선물을 받았다.

어제 만난 친절한 의사가 10P 캔버스(55㎝×38㎝)보다 좀 더 큰 스케치북을 주었다.

종이 질감도 나쁘지 않다.

프랑스에서 규격화한 캔버스는 아니나 그런대로 쓸만하다.

유화 물감과 붓을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열두 가지 색상의 굵은 연필 세트도 아주 흥미롭다.

착색은 아쉽지만 발색이 개성적이고, 칼로 깎지 않아도 연필 끝을 돌리면 심이 올라오니 참으로 편리한 도구다.

“…….”

기술의 발전이란 이다지도 경이롭다.

고작 흑연이 전보다 단단해지고 쓰기 편리해졌을 뿐이고 그것에 여러 색을 입혔을 뿐인데, 그릴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해진다.

물감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어떤 색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이.

이 경이로운 세상을 화폭 위에 담고 싶은 마음이 이 아이의 몸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으로 번진다.

고작해야 일고여덟 살.

이 아이에겐 이 아이만의 삶이 있었을 텐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차지해 버렸으니 이것은 신이 바라는 일이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더 즐기고 싶은 나의 욕심이 투영된 착각이리라.

“…….”

더할 나위 없이 호화로운 식사와 청결하고 넓은 방.

멋진 스케치북과 연필.

건강한 몸이 주는 행복.

비록 오해 덕분에 받은 사랑이라고는 하나, 이 아이의 조부가 보여주는 상냥함까지.

요 며칠간의 꿈 같은 시간은 아마 신이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리라.

더는 탐해서 아니 될 순간의 기적.

“훈아, 약 먹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작은 알 몇 개가 든 봉투를 주었다. 물과 함께 꿀꺽 넘기니 웃는다.

“씩씩하게 잘 먹네?”

이 아이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응당 그렇게 하는 게 도리다.

몸을 돌려주었을 때 아이가 아프면 안 되니까.

간호사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밥도 약도 잘 먹으니까 금방 나을 거야. 좋아하는 그림도 더 많이 그릴 수 있고.”

그림을 더 많이 그릴 수 있을 거란 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 나으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니 간호사가 손등을 감싸며 응원했다.

“너 정말 너무너무 아팠거든. 다들 다신 못 일어나는 줄 알았어. 할아버지가 매일 오셔서 기도했어. 훈이 살려달라고.”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이 아이의 조부가 지극했다는 말 같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러하다.

그러니.

더더욱 몸을 돌려줘야 한다.

* * *

“답답했지? 할애비 집으로 가자.”

정신을 차리고 한 달 정도 흐르자 퇴원할 수 있었다.

아직 대화는 힘들지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늘었고, 아이에게 몸을 돌려줄 방법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우선은 ‘할애비’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이 아이에게도 좋다고 여겨 순순히 따랐다.

언젠가는 몸을 돌려줄 테고.

그때 생길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심정이다.

“자, 할애비 차다.”

TV라는 것을 통해 몇 번 봤지만 ‘할애비’의 자동차는 내가 알던 자동차와는 전혀 달랐다.

외관은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색으로 광택이 났다.

타려고 하니 막상 껄끄러워 머뭇거리자 ‘할애비’가 달랬다.

“괜찮아. 할애비랑 같이 타잖니.”

아이를 달래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애처로워 어쩔 수 없이 올라탔다.

동생 테오가 자동차라는 게 만들어졌다고 언젠가 꼭 성공해서 사자고 했는데 이렇게 타볼 줄이야.

“읍.”

너무 빠르다.

천천히 움직이던 자동차에 신기해하던 차에 순식간에 속도가 빨라졌다.

놀라서 옆을 보니 사람과 나무 건물들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친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하, 할애비!”

다급히 ‘할애비’를 외치자 다행히 속력이 줄었다.

차가 길옆에 섰다.

가슴이 쿵쾅거려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훈아, 방금 뭐랬어?”

겨우 진정하려는데 ‘할애비’가 말을 물었다. 이 급박한 상황에 대체 뭘 바라는지 몰라 쳐다보니 재차 묻는다.

“방금 뭐라고 했냐니까?”

“……할애비.”

“…….”

너무 놀라기도 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어 고민하는데 ‘할애비’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하핳핳하하! 그래! 그래! 할애비지! 암! 훈아, 내가 누구라고?”

“할애비…….”

“핳. 하하하하핳! 그래. 내 새끼, 내 새끼. 내가 네 할애비다.”

할애비가 갑자기 손을 뻗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힘이 너무 억세 정신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애정이 느껴졌다.

이름을 불리는 것만으로 이렇게 기뻐하다니.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다시 자동차가 움직이고 얼마 후.

할애비가 자동차를 멈췄다.

“자, 내리자.”

할애비의 집은 상당히 컸다.

돌담이 높다.

철로 된 문을 통과해 들어서자 아담한 정원을 낀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귀족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눈에 봐도 부유한 집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에 그대로 따라 했다.

“훈이 뭐 먹고 싶어. 할애비가 다 해주마. 아니면 뭐 시켜주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제 병원 밥 안 먹어도 돼. 그래. 피자 좋아하니? 피자 먹을까?”

발음이 유사하긴 한데, 할애비가 말하는 피자가 이탈리아의 그 피자와 같은 건지 모르겠다.

듣는 건 대충 추측해서 알아들으나 아직 문장으로 말하는 건 무리다.

두 손으로 원을 그리며 물었다.

“피자?”

“그래. 피자. 먹을 테냐?”

“네.”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몇 번은 먹어본 음식이니 괜찮을 듯싶다.

“어디 보자. 전화번호가……. 훈아, 저기 앉아서 쉬고 있어. TV 보고 싶으면 보고.”

시간을 보내기에 TV만 한 것도 없다.

달리 할 일도 없어 할애비가 가리킨 곳으로 향하니 아주 멋스러운 소파와 병실에 있던 것보다 훨씬 큰 TV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 그림이 걸려 있다.

‘아.’

소파에 앉은 여성을 그린 유화.

경이롭다.

형태는 최대한 단순하게 잡았다.

색을 활용하기는커녕 원색을 그대로 사용한 과감함.

파격적이다.

과장된 풍만함과 짙고 굵은 경계선, 입체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도드라지는 구성 모두 지금까지의 그림을 부정한다.

그러나.

아름답다.

TV, 자동차, 색연필, 호화로운 식사 모두 이 그림보다 경이롭진 않았다.

넋을 놓았던 듯, 할애비가 곁에 와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꿈이라는 그림이란다.”

“꿈?”

“그래.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누가 이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아직 네가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울 거다. 나중에 할애비랑 천천히 공부하자꾸나.”

할애비의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온다.

이 그림은 그야말로 혁신.

언제 그려졌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미술의 역사를 단번에 도약해 버린 작품이라고 감히 추측한다.

“누구?”

“이거? 이거 그린 사람?”

고개를 끄덕였다.

“피카소.”

“피카소?”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래. 파블로 피카소. 천재 중의 천재지.”

파블로 피카소.

그 이름은 분명히 기억해 둬야겠다.

그렇게 피카소란 사람의 <꿈>을 보고 있으니 노인이 생전 처음 보는 피자를 받아 왔다.

토마토 소스와 치즈 그리고 바질이 올라간 마르게리타를 예상했거늘.

드문드문 갈색을 띠며 익은 치즈가 과할 정도로 풍성하고 소고기 스테이크가 한입 크기로 잘려 피자를 거의 덮고 있다.

거기에 버섯과 피망, 양파 같은 채소가 분명 익었는데도 잡티 하나 없이 신선해 보인다.

이 호화로운 요리가 진정 내가 알고 있던 피자란 말인가.

“자, 먹자.”

할애비가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부담스러운 두께와 거대한 크기 탓에 어떻게 먹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으니 할애비가 웃었다.

“하하하. 할애비 먼저 먹으라고? 그래. 음. 먹었다. 어서 먹어.”

뭐가 즐거운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은 건 다행이지.

한 입 베어 물자.

풍요로운 냄새가 입안에 퍼져 비강마저 가득 채우고, 혀에 닿은 감칠맛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이 치즈는 대체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렇게 쫀득하면서 고소한 향미를 풍긴단 말인가.

부드러운 육질을 뽐내는 소고기는 무엇을 먹고 자랐기에 이다지도 육즙을 뿜으며.

이토록 잘 구워졌음에도 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는 채소는 대체 어떻게 재배했단 말인가.

단언컨대 인류는.

137년이란 세월을 거쳐 피자를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

“Mi, Miracle.”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욕망에 빠져 정신없이 입에 넣는데 할애비의 표정이 이상하다.

“훈아 너.”

피자를 먹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프랑스말은 어디서 배웠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할애비가 눈썹을 잔뜩 모은다. 이 기적의 피자를 두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Que tu parles français?”

프랑스 말이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니.

너무나 반가워 프랑스어를 할 줄 아냐는 질문에 답했다.

“네. 할 줄 알아요.”

할애비의 얼굴이 경악으로 차올랐다.

“말을 이렇게 잘하면서 왜 그동안 입 다물고 있었어!”

깜짝 놀라 피자를 떨어뜨렸다.

“어?”

한 번 더 다그쳐 묻는다.

“다들 못 알아들어서요.”

“못 알아들어? 누가?”

“간호사요. 무슨 말을 해도 안타깝게 보더라고요.”

말이 통해서 다행이긴 한데, 할애비의 프랑스어는 조금씩 이해 못 할 단어가 섞여 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형되거나 새로 만들어진 단어 같다.

지금의 프랑스어에 능숙한 할애비와는 어찌저찌 대화가 되어도, 137년이란 시간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소통이 안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허.”

할애비가 기가 막힌 듯 헛바람을 쉬었다.

“한국말은?”

“몰라요.”

입을 벌린 채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옆을 보기도 하면서 황당해했다.

“이 녀석들이 애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갑자기 한국말로 호통을 치던 할애비가 멈칫했다.

“……그래. 프랑스에서 한 3년 살았으니 프랑스 말은 한다 치고. 아니, 집에서는 한국말을 가르쳤어야 할 것 아니야!”

또 갑자기 호통을 친다.

주웠던 피자를 다시 내려놓았다.

말이 통하는 걸 알았으니 이제 그에게 진실을 말할 때가 되었다.

그에게는 가혹한 일이지만 이대로 이 아이의 몸을 차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막 입을 열려던 차.

할애비가 눈물을 흘렸다.

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굵은 눈물을 뚝뚝 너무도 서럽게 떨어뜨렸다.

“할애비는 네가, 네가 정말 충격으로 말도 잊은 줄 알았어. 이놈아.”

“…….”

“그래도 괜찮았어. 살아 있기만 하면 되었다. 다들 죽었다고 했으니까. 혼자 숨도 못 쉬었으니까.”

이 아이가. 죽었다고?

“그런데 봐라!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지 않으냐. 말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그림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히게 그려?”

오열하던 할애비가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희망을 찾은 그에게 사실은 내가 당신 손자가 아니라고.

당신 손자는 아마 죽었다고 말할 수 없다.

말해야 하는데 손은 이미 그의 등을 쓸고 있다.

“할애비…….”

“하하하하! 그래! 말이야 배우면 되는 거지!”

할애비가 양팔을 붙잡고 내 얼굴을 살폈다. 그러다가 다시 껴안길 반복한다.

얼마나 기쁘면 이럴까 싶다.

하지만 속이고 살 순 없다.

“그래. 이러면 되었어. 할애비하고 살자.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하게 해주마.”

나도 모르게 먹고 있던 피자에 눈이 갔다.

“피자가 좋아? 매일 사 주마.”

아니. 안 된다.

“그림 좋아하지? 저건 모조품이지만 진품을 보고 싶다면 오르세 미술관이든 루브르 박물관이든 어디든 데려가마!”

“루브르? 루브르 성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마다! 모나리자 보고 싶지?”

모나리자라니.

설마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말씀하시는 건가?

“라 조콘다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왜 아니야? 그래. 그 라 조콘다.”

보고 싶다.

“…….”

아니, 아니 될 일.

나 빈센트 반 고흐.

비록 가난하게 살고 평생 동생에게 빌붙었으나 적어도 거짓을 입에 담고 살진 않았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 선량한 노인을 속이고 죽은 아이의 몸을 차지할 순 없는 법이다.

그리고.

죽은 이를 대신해 살아가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1)

“자, 자. 일단 밥부터 먹자.”

“…….”

“아, 어서.”

할애비가 준 피자를 쥐고 귀신에 홀린 듯 그것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아니. 이 피자는 맛있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풍요의 상징.

이 노르스름하게 익은 빵은 어떻게 이다지도 부드럽고 쫄깃하단 말인가.

“맛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호화로운 음식을 먹는 건 처음이다.

굶지는 않았지만 캔버스와 물감, 모델료 때문에 잇몸이 아플 정도로 딱딱한 빵을 먹어왔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본래 이 아이가 가졌어야 할 행복.

이분은 나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손자를 대하고 계신 것이다.

이 어긋난 관계를 지속해 봤자 마음만 불편해질 뿐이다.

막 사실을 고하려던 차.

할애비가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리고 색연필 좋아하지? 할애비가 너 주려고 색연필도 사 놨다.”

할애비가 종이봉투에서 <100 Colored pencils>라고 적힌 철제 통을 꺼냈다.

덮개를 열자 말 그대로 백 가지 색의 색연필이 가지런히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로 줄지어 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린다.

대체.

대체 이 색연필로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나 다양한 색상을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무엇이라도 그릴 수 있을 터.

“예쁘지?”

고개를 끄덕였다.

“갖고 싶지?”

갖고 싶다.

“훈아, 내가 누구라고?”

“…….”

“왜 대답을 안 해?”

할애비가 눈앞에 색연필을 흔든다.

“……할애비.”

“하하핳핳하하! 그래! 내가 네 할애비다!”

항상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할애비가 너무나 호탕하게 웃었다.

* * *

1)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 ‘빈센트 반 고흐’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형의 무덤을 보며 성장하였고, 유년 시절의 그는 죽은 형을 대신 살아간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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