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차세대 (1)
"책을 써야겠습니다."
"책이요?"
뜬금 없는 태준의 말에 조비서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자서전 겸 해서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렇다면 대필작가를 쓰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대필작가 중에 정치권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애초에 시간이 안 가서 책을 쓰겠다는 건데 대필작가를 쓰면 본말이 전도되는 것 아닙니까."
"....한가하시다고요?"
"한가하다고는 안 했습니다. 그저 시간이 안 간다고 했지. 일은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태준의 말에 조비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회장님. 회장님께선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은데... 보통 사람은 이 정도 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만으로도 지칩니다.
시간이 안 간다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죠."
"은퇴하고 놀면 시간이 잘 갈 것 같은데요."
"주주들이 회장님의 은퇴를 바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 잘 아시는 분이 또 그러십니다.
다른 그룹의 회장님들은 재단에 들어오고 나서도 자기는 물론 자기 자손들 경영권을 지키려고 안달복달인데 정작 회장님께선 어떻게든 내려놓으려고 하시니..."
"그야 그 분들은 회사 키우려고 약점을 너무 만들었으니 그런 것이고... 제 경우는 조금 다르지요."
"그럼 다름을 인정하시고 원이 도련님께서 본격적으로 그룹에 들어오기 전까지 일을 하시죠.
안 그래도 머스크 사장에게서 새로운 사업 기획안이 왔는데... 이번엔 한 번 보시죠."
그 말에 태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 BCI(Brain-Computer Interface;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프로젝트 말입니까?"
"예. 이번에 새로 나올 유니버스 글라스와도 궁합이 좋을 것이라는 연구진들의 평가가 있었던 사업입니다. 물론 보고서에 나온 바와 같이 여러 문제점도 나오고는 있지만요."
"연구자체는 허가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업화까지 진행하고자 한답니까?"
"예. 일론은 게임 조작, 나아가 기기조작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모양인데... UMG에서는 그 기획서를 보고 의수와 의족을 컨트롤하는 방향으로 사업화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태준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던 종국에는.... 테세우스의 배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겠군요."
"테세우스의 배...요?"
"테세우스가 탄 배가 있다. 배가 오래되어 부품을 새 것으로 바꿔 수선했다.
그렇게 수선을 통해 계속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되어 원래 테세우스가 탔던 배의 부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인가 테세우스의 배를 닮은 새로운 배인가.
뭐 이런 논의입니다. 일론이 말한 기술이 무르 익으면 팔다리도 교체할 테고.. 그렇게 장기를 교체하다보면 죄다 교체해서 사이보그가 될테니까요."
"....비유가 배라서 다행이군요."
태준의 설명에 조비서가 듣기만 해도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고, 태준 역시 그런 조비서의 말에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배라서 다행이지요. 물론 인간도 체세포가 꾸준히 죽어 새 세포로 교체되니 해당 논의에 들어옵니다만...
그건 그나마 자연체에 해당하고, 또 인위적 교체가 아니니 본질적으론 같더라도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논의로 다가옵니다만...
인위적 개조가 가해지면 그 순간 논란은 가속화될겁니다. 특히나 일론이 제시한 개념도를 보면 뇌에다 직접 전극을 꽂는다는 식으로 표현했는데....
먼 미래의 테세우스의 배 논의보다도 당장의 윤리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윤리 문제 이전에 뇌파 신호해석의 문제나, 내지는 해킹의 문제 등등오로 기술 그 자체에 대한 공격도 있을 것이고요."
마저 이어진 태준의 보충설명.
그리고 그 보충설명 안에 담긴 비판점들을 들은 조비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이번 건은 말리는 편이 좋을까요?"
"말린다고 말려 지겠습니까? 일론의 입에서 구체적인 안까지 나왔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를 생각한다면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해서 연구는 승인을 했던 겁니다. 문제는... 터져나올 문제들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그리고 문제가 터지기 전에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겠지요."
태준의 말에 조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지금으로서는 연구만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일단은요. 누군가 상품으로 내놓는다면. 그 때 우리는 초격차전략으로 상대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퀄리티를 가진 제품을 내놓는 것으로 해결을 보는 전략입니다."
"... 첫 타자에게 도덕적 부담을 지우고 따돌리겠다는 의미군요."
"그런 셈이지요. 그러니 사업화 관련해서는 당분간 보류하라고 전하세요. 뇌파 해석 알고리즘 개발 방향을 정하려고 사업화 논의까지 함께 진행하는 것 같은데...
어차피 장기적으로는 결국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 나갈테니 전부 연구하라고 전하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일론의 기획서를 두고 조비서와 이야기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은 이후에도 올라오는 갖가지 보고서들을 보며 일을 처리해 나갔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고,
"퇴근 안하십니까?"
"책을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퇴근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러 온 조비서를 본 태준은 웃으며 깜박이는 커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 진짜 쓰시게요?"
"뭐...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 자리에 와 앉을 원이를 위한 지침이라고 해두죠."
태준의 그럴 듯한 명분에 조비서는 쓰게 웃으며
"알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퇴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태준에게 퇴근 허락을 받고는 태준의 사무실을 문을 닫고...
"... 회장님 당신께선 그 책 쓰는 것도 일이라는 걸 알고는 계시는 건가....? 거 참... 일 중독도 저 정도면...."
혼잣말을 내뱉고는 퇴근길에 올랐다.
...
..
.
그렇게....
- 유니버스 글라스, 출시 임박... 인터롭 공개! VR, AR 모두 잡겠다.
- 안경+선글라스+스마트폰+게임기+ 뇌파감지센서 = 유니버스 글라스... 다시 한번 판을 뒤집는 유니버스 그룹.
"국방부 납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투기 조종사에게 시범적으로 HMD(Helmet Mounted Display) 형태의 군용 버전을납품하기로 했습니다.
글라스 처럼 헤드 마운티드형이 아니라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형이라 뇌파감지센서의 수를 더 늘려 획기적으로 사용자의 집중도나 각성정도를 체크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물론 일론은 여전히 정밀도에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지만요."
"비 삽입형 BCI기기이니 정밀도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삽입형으로 가면 의료기기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도 그 방향으로 일을 전개해 나가고 있고요."
1년.
- 유니버스, 키보드 발매 루머.... 반 만 정답, 실상은... 유니버스 글라스와 연동되는 신형 유니버스 원 엘리트! 역대 초경량, 최고성능의 포터블PC될 것.
"이제 모두가 눈 앞에 개인 디스플레이를 갖고 다니는 시대입니다. 시대 변화에 발 맞춰 노트북 역시 진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화의 시작이 바로... 유니버스 원 엘리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직종에 있던, 여러분에게 최고의 생산성과 최고의 편리성을 선물해줄 차세대 포터블PC이자. 진정한 의미의 퍼스널 컴퓨터가 될 것입니다."
2년.
- 중도유적관리재단, 복원 및 학술 연구 마치고 유니버스 품 떠나 정부의 품에 안겨... 유니버스가 보여주는 선한 영향력.
3년.
- 톈궁 2호-스페이스 X-ISS, 우주 쓰레기 대책 및 지구궤도 공공 사용을 위한 협약 체결.
- 중국, 우주분야에서 '죽의 장막' 거둔다. ISS와 톈궁 2호 결합 예정... 스페이스 X가 가교가 되었나.
4년.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ISS에 자체 제작 모듈 도킹 앞둬... 발사는 스페이스 X의 팔콘으로.... ISS에 태극기 걸린다!
5년.
- 유니버스넷, 미러 서버 확충 대신 우주로 서버 올린다. 플랫폼 기업 최초로 '우주 서버 시대 열어', 우주에 쏘아올릴 서버위성의 이름은 'Akashic Records'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카식 레코드 가동 이후 유니버스넷 접속 속도가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해서 이 참에 아예 스타링크 위성에 서버를 담아 쏘는 방식으로 노후위성교체작업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잘 되었네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태준에게 바뀐 것이라고는 유니버스 원 대신 유니버스 글라스를 쓰고 눈 앞에 뜬 화면을 보며 일을 하는 것 정도였지만...
'내일 부터는 아니지... 후후.'
내일 부터는 아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태준이 무의식중에 내일 있을 일을 기대하며 미소짓자, 조비서가 눈치껏 보고 순서를 바꿔 원이에 대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련님께서는 내일부터 비서실로 마코 양과 함께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인턴 마치자마자 바로 회사로 들어오는 것이 되겠네요."
"아직 원이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의아해 하겠군요."
"예. 안 그래도 주변 의사 동료들은 물론이고, 도련님을 가르쳤던 교수들까지도 갑자기 왜 그러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말에 태준은 슬쩍 조비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억지로 끌고 온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겠습니까. 그렇게 은퇴 노래를 부르시던 회장님도 못하신 일인데요.
도련님께서 자청하신 일입니다. 의료기기 분야쪽에서 우리 제품이 없다고 아쉬워 하시면서 들어오신 것이니... 지금 소극적으로 진행중인 헬스케어 분야를 강화하면서
서서히 의료기기쪽으로 사업방향을 이끌어가실 생각이신가봅니다."
조비서의 말에 태준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비서로 입사하는 놈이 포부가 대단하군요."
"도련님도 보통 분은 아니시니까요. 인턴 생활 와중에도 사업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시고 계셨던 것이겠지요."
"뭐... 실무를 모르는 놈이 세운 계획치고는 그런대로 잘 잡았네요."
"예. 확실히 회장님의 업적을 능가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도련님만의 업적을 세울 수 있는 분야를 잘 고르신듯 합니다."
그 말에 태준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동안 두 사람 굴리면서 전반적인 회사 일 가르치면서 일 맡길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태준의 말에 조비서가 답하자, 태준은 긴 시간동안 참으며 (실상은 떼쓰는 아이마냥 진상을 부렸지만) 꾹꾹 눌러왔던 말을 내뱉었다.
"아, 그리고 조비서는 회장자리 받을 준비 하시고요. 다음 달에 브루나이에서 있을 TFC에서 안건 올릴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준의 충격 발언에 조비서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자 태준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말을 이었다.
"조비서가 날 보며 배웠듯, 원이도 조비서를 보고 배워야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원래 자기 스승의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한국 전통에도 맞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TFC의장직은 그대로 내가 계속 수행할테니 큰 차이도 없잖습니까.
뭣하면 가끔씩 내게 직접 물어봐도 되는 것이고."
그 말에 조비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가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멀뚱히 서있는 조비서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을 이었다.
"잘 못 할 것 같으면 내 회사도, 내 자식도 안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