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일상 (6)
우주여행으로 성대한 은퇴식을 마치고 돌아온 내 일상은....
놀랍게도 큰 변화가 없었다.
아니, 변화는 있었다.
"남들 은퇴할 나이에 이게 뭐하는 건지..."
나이 60을 넘겼다는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만 해도 나름 핑계는 있었다.
"저 이제 고3이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맞아요! 은퇴했다고 해도 아직 재단 이사장자리는 그대로잖아요! 가서 일해요! 공부하는 애 붙잡고 놀자고 하지말고."
사업으로 연신 바쁘게 돌아다니며 흘러간 시간 속에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원이와,
자연히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가 되어버린 민영(정확히는 나도 학부모였지만)이 덕분에
반 강제로 마음속 은퇴식을 마친지 몇 개월 만에 (사실상) 유니버스 회장자리에 복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그래봐야 고작 1년이니까. 1년 정도는 금방 가지."
라고 생각하며 통상적인 일을 해왔던 나였다.
그렇게 원이가 온전히 성인이 되는, 그리고 내 나이 61이 되는 내 생일 성대한 환갑잔치와 함께 은퇴를 하겠노라 결심하고 일을 해왔는데....
...
..
.
"거 보세요. 결국 이렇게 되지요."
조비서가 내게 커피잔을 내밀며 말을 이었고,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재단의 정관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네요."
"홀로 가지고 계신 의석수가 제일 많을 뿐더러... 만장일치로 회장님을 재선임을 바랐으니까요.
뭐... 물론 회장님께서 반대하셨으니 의석수로만 놓고 보면 팽팽한 대결이었습니다만....
거기다 도련님은.... 하핫...."
그렇게 말을 하다 말고 비웃음인지 진짜 웃겨서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린 조비서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셨죠. 거기다 우주대 의대에도 합격하셨고요. 물론 선택은 우주대 의대를 하셨지만요.
몇 년 전 진한그룹 방계 하나가 헝가리 의대를 돈주고 들어갔다가 개망신 당한 것과는 천양지차지요."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에 서랍에서 과자를 꺼내 접시에 담은 조비서는 내 말을 뚝 끊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 하실지 압니다. 합격증 받아보신 이후 내내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시니까요."
어지간히 질린 표정이었지만, 나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조비서에게 지난 몇 달간 해온 한탄을 다시금 재방송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해야겠습니다. 원이 그놈 분명 저한테 복수하는 겁니다."
"그건 복수가 아니라 효도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놈이 왜 대뜸 의대로 가는 겁니까? 거기다 그놈 중고등학교때도 조비서 동생이 만든 경영동아리인지 뭔지 하지 않았습니까?"
"UBS 말입니까?"
"그래요. 그거. 그걸 하길래 당연히..."
그 말에 조비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학 가서도 하신다고 하던데요."
"그걸 조비서한테 말했습니까?"
"회장님이 그렇게 짜게 식은 표정으로 도련님을 바라보시는데 도련님이 어떻게 회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까.... 그러니 자연히 제게 말씀하셨겠지요."
그 말에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후... 티를 안 낸다고 했는데도 티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뭐... 이해는 갑니다. 계속 은퇴를 꿈꾸시며 노래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실망하셨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요?! 진짜 내가 속이 타 미치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다시금 한탄 섞인 말을 내뱉자, 조비서가 준비된 과자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여하튼 UBS도 계속 하신다고 하고, 종종 제게 유니버스 사업에 관해서도 물어보시니 그리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런 놈이 경영학과 대신 의예과를 갑니까....?"
"의예과 간다고 사업 못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누구더라... 지금은 정치하는 양랩의 양천수 의원도 의사출신인데요."
그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의예과 4년에 본과 2년 하고... 거기다 인턴 1년에 레지던트 4년하면 11년입니다."
"레지던트까지 하실까요? 인턴 정도야 하실 수 있겠지만... 레지던트까지 하실 것 같진 않은데요. 도련님도 본인 입장은 알고 계실테니까요."
"그래도 7년입니다. 7년... 남들은 은퇴하고 노후를 즐길 나이에 이게 무슨.... 그 놈 말만 금방 하고 와서 아버지 뒤를 이을게요라고 하지 본심은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그 말에 조비서는 자신의 커피까지 내려와 선채로 머그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설마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은 안 나오는군요. 도련님은 태어나면서부터 회장님의 그 '일처리 속도'와 '일의 양'을 보고 커오신 분이니...
보통 평범한 사람은 그런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으니 그런 걱정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투자하고 사업하고 다 했는데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냥 학교도 아니고 세계 유수의 명문대에서 석박과정 다 밟는 와중에 사업하는 사람은 회장님 뿐이니까요.
심지어 그 마저도 박사과정은 두 번 밟으셨죠? 미국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아무리 업종과 관계된 것이라고 해도 그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을 두 번 사는게 아닌 이상 그렇게 할 생각도 안 하고요. 요샛말로 인생 2회차라던가요?"
그 말에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내 놀란 표정을 보지 못했는지 조비서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회장님이 막아보려고 생 난리를 쳤어도 기어이 전국 수석이라고 기사까지 나가지 않았습니까?
회장님께서도 못 막은 대단한 업적이란거지요.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난겁니다. 그런 아드님을 두시고 그렇게 툴툴거리시면 남들이 욕합니다."
"... 어휴... 내 사람이라 믿은 조비서마저 내 마음을 이리 몰라주니...."
"회장님의 사람이니까 직언을 드리는 겁니다. 혹여나 남들이 듣고 사정 모르는 이들이 입방아 찧을까 염려되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쉬실만큼 쉬셨으면 이제 결재 좀 해주시죠."
"어후.... 일 하기 싫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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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늘도 일에 시달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여태 해온 일들에 비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하기 싫은일을 하려니 좀이 쑤신 것이었지만)
퇴근하고 돌아오자 원이 고3 핑계대고 제 멋대로 은퇴해버린 민영이 마찬가지로 함께 은퇴해 인생을 즐기고 있는 앤&오오와다 부부와 영화를 보며 놀고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왔어요? 태준?"
"회장님, 대충 옷 갈아입고 와요. UEP 사장이 이번에 나올 신작이라고 보내준거래요. 온김에 와서 같이 봐요."
그 말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겉옷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 팔자 좋네."
"다 회장님 덕이지요."
"그 덕 저도 좀 보고 싶은데요..."
그렇게 내가 대충 소파에 겉옷을 던져놓고 테이블 위 팝콘을 집어먹으며 한탄하자 오오와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쩌겠습니까. 재단 이사들이 회장님을 유임시킨걸."
"그 유임에 일조한게 오브라이언 가문인 걸 잊진 않으셨겠지요? 오오와다 타이조 오브라이언 이사."
"저희만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다 오브라이언 가문에서 전 허수아비라고요?"
그 말에 내가 슬쩍 앤을 보자 앤 역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은퇴해서 허수아비랍니다. 아버지는 아시다시피 요양원에 계시고요."
".... 그럼 대체 오브라이언 가문 실세는 누굽니까?"
내 질문에 앤이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보이며...
"...마코?"
라고 말하고는 깔깔대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됐습니다. 오브라이언 가문만 탓할 건 아니니... 그나저나 마코는 요새 뭐합니까? 어른들 전부 은퇴해버렸는데, 설마 대학다니면서 가문일 보고 있진 않을테고..."
내 질문에 앤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열심히 로맨스 찍는 것 같던데요? 원이하고."
그 말에 내가 침음성을 흘리며...
-씨익.
하고 웃자 그것을 캐치한 민영이 말을 이었다.
"안돼요. 원이 졸업하고 인턴 끝날때까진."
"아이들이 그렇게 좋다는데...."
"애들 결혼 생각한거 아니잖아요!"
"맞는데? 어차피 상대도 오브라이언 가문이고, 본인들도 좋다고 연애중인데 굳이 따지고 할 것 없잖아?"
내 능청스런 말에 민영이 헛웃음을 흘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결혼만 시키고 회장직은...."
"당연히 원이가 결혼하면 일가를 이루게 될테니..."
"거 봐요!"
그렇게 민영이 화를 내며 언성을 살짝 높이자 앤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핫. 태준. 그렇게 열심히 은퇴하려고 수 쓰지 마요. 아직 젊잖아요."
"젊다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내 고향친구들은 벌써 은퇴하고..."
내 반발에 앤이 얼굴을 가리키고는 말을 이었다.
"머리에나 흰머리 조금 난 수준인데요? 태준이 올해..."
"미국 나이로 곧 있으면 60입니다. 다음 내 생일 파티는 한국식 전통 생일 파티로 할거구요."
그 말에 앤이 슬쩍 민영을 보고 물었다.
"아.. 그 환갑인지 하는 그거?"
"예. 환갑잔치하면서 은퇴하겠다고 요즘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까요."
"뭐... 늙기는 많이 늙었네. 태준도. 우리도..... 물론 그 중 제일 늙은건 저 이지만."
앤의 말에 오오와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늙다리인거 모르고 결혼 한 것도 아니면서..."
"결혼 할 때야 몰랐지! 동양인들은 늦게 늙는다는 걸 몰랐으니..."
"앤. 그거 인종 차별이야."
"인종 차별은 무슨! 여기선 내가 소수자거든?! 완전 사기결혼이었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그렇게 어느새 영화는 뒷전이 되어버린채 농담 따먹기의 현장이 되어버린 거실을 보며 나는....
- 와삭...
팝콘을 집어먹으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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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의 은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태준이 태업(이라곤 해도 여전히 일을 많이 하고 있었다)으로 은퇴 시위를 벌이는 와중에도....
- 유니버스 그룹, 세계망 구축 완료 선언.... 통신사들의 통신사로 자리를 굳히다.
- 물 오른 전기차 시장, 유니버스 101은 생산 중단....? 이제는 전기차 플랫폼만 공급하겠다.
- QULAB, 수소전기차 플랫폼 DH101 발표, DH의 뜻은... 대현차 연구진들에게 헌정하는 의미라 밝혀....
- UEP, 마지막 남은 한국 연예기획사 JSM까지 산하 레이블로 인수.... 연예계까지 완전히 손에 넣은 UEP.... 독점 우려에 '정산, 배당, 투자 늘리겠다.'
- 유니버스 원, 세계 점유율 90%에도 또 다시 혁신?! 인터롭에서 발표한 이번 신작은 접힌다!
- 유니버스 친환경 행보 가속화... 폐 플라스틱에서 석유 추출 성공... 부생수소까지 잡았다.
- 중도 유적지에 세워질 레고랜드, 유니버스가 막았다? 레고랜드에 1조 주고 레고랜드 부지 전부 사들여... '세계 최대 규모 선사유적지 잃을 수 없어. 별도 재단 통해 학자들의 연구 지원할 것.'
- 유니버스 다음은 가상현실이다... 유니버스 글라스 디자인 특허 유출.
- 스페이스 X, 우주여행 난이도 낮춘다. 로켓 아닌 항공기로...? 훈련 난이도, 비용 전부 낮아져.... 우주여행 대중화 신호탄 쏘아올리나?
태준의 유니버스는 끝없이 확장하며,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해 질주해갔다.
그리고 자연히....
"결재서류 보냈습니다. 읽어보시고...."
"후우.... 제발..."
"화이팅입니다. 이제 6년 6개월만 더 버티십시오...!"
태준은 쌓여가는 일에 고통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은퇴... 은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