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컨퍼런스 (1)
태준은 그저 재단 총회라고만 했을 뿐이지만.
태준을 제외한 대부분은 이것을 그저 재단총회로만 보고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정부는 마치 국제 회담적 성격을 띈 무언가로 받아들이고 정식명칭을
'제 1회 더 파운데이션 서울 컨퍼런스'
라고 정하며 김민상 대통령이 대한민국 연기금이 쥐고 있는 의석수를 통해 참가할 것이라 못을 박은 상태였고,
각국 정부 역시 이런 기조에 편승해 각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참가할 것이라고 밝혀옴으로써
태준이 말한 총회는 더 이상 단순한 총회의 역할을 제멋대로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난감해진 것은....
"이거 참...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권에서 작정하고 이번 회담을 이용하는 모양새니까요."
"안 그래도 저희 영국에서는 공화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지라... 물론 여왕께서 잘 버텨주고는 계시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습니다."
태준이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각국의 국왕 대리인이었다.
"저희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저야 얼마전 형님이 왕위를 이으며 크게 문제될 일 없이 개인 사업을 하고 있으니 영국만큼의 반발은 없지만...
각국 정치권에서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지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왕위 계승서열의 뒤편에 있는 왕족들의 그럴듯한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으며, 동시에 왕실 재원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꼬드김에 태준의 재단에 참여한 것이었는데...
태준의 재단에 엮인 권력관계와 이해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각국의 정부에서 이를 일종의 정상회담용으로 활용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국왕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왕실의 참석을 두고 논쟁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 서식스 공작이 정치에 끼어들기 위해 더 파운데이션 이사직을 받은 것 아닌가!
- 해리왕자가 계승서열 6위로 밀려나더니 정치를 꿈꾸고 있다!
- 영국 왕실이 우회적으로 정계진출을 노린다!
- 영국 왕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왕실까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이러다 유럽의 모든 왕실이 정치권에 끼어드는 것 아니냐!
상대가 왕실이었기에 논쟁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비난에 가까운 여론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었으니...
사실상 전제군주정인 브루나이는 아예 반대의 목소리는 커녕 국왕을 칭송하는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고,
태국은 전제군주정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정재계와 왕실이 거대한 하나의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나라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무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정치권에서 작정하고 더 파운데이션의 왕실의 참여를 막아서 애초에 왕실 지분이 없었기에 논란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었고...
(막지 않았어도 어차피 패전 이후 거지가 된 일본 왕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겠지만.)
'무엇보다 일본에는 타케미치가 개인자격으로 참가하면서 소위 '일본의 자랑'이 되어버렸으니 재단 행사 자체를 어떻게든 성공시키기 위해 여론공작을 하고 있지.'
무엇보다 타케미치의 존재가 있어 간만에 한국의 행사에 적극 협조하는 모양새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각국의 상황과 입장을 모두 떠올린 태준은 걱정을 늘어놓는 영국의 해리 왕자와 네덜란드의 콘스탄테인 왕자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총회 본회의에서는 어디까지나 재단에 소속된 각국 기업들의 실적 발표와 배당에 대한 내용, 그리고 CSR관련 발표만 있을 예정인 만큼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 회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이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는 있습니다."
태준의 말에 콘스탄테인 왕자가 긍정하며 추가 요청을 해오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본 회의장에 중계팀을 대기시켜둔 상태입니다. 본회의에 대한 모든 내용은 투명하게 V플래닛을 통해 중계될 것이니 논란은 금방 종식될 겁니다."
"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리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기 위해 두 분께서는 본회의 이후에 저와 함께 유니버스의 반도체 공장을 견학하는 것으로 해서 일정을 잡으시면... 좀 더 편안한 그림이 되겠지요."
태준의 제안에 두 왕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한 듯 웃어보이자 태준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머무는 것에 불편함은 없으신지요."
"예. 전혀 없었습니다. 바닥에서 누워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색다른 도전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깔린 침구가 좋은데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훈훈한 열기에 영국에서보다 훨씬 깊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함께 온 친구도 꽤 좋아라 했고요."
"편하게 지내고 계신다니 다행이군요."
"만약 왕실에서 독립하게 되거든 한국에 정착해볼까도 생각중입니다. 하핫."
그 말에 태준은...
'안 그래도 얼마 전까지 엠마 왓슨을 비롯해서 온갖 연예인들하고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인데다....
결혼 후에도 독립운운하면서 캐나다로 건너가 영국왕실과 척을 지다 못해 영국 왕실 전통의 NCNE(never complain, never explain ; 불평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정책을 깨게 만드는 인물인 만큼...
행사 기간 중에 사건 사고에 휘말리지 않게 보안에 더 신경써야겠어. 이번에 동행한 사람이 매건 마클이던가....?'
웃음 뒤로 걱정을 감춘채 해리에 대한 보안에 더욱 신경써야겟다고 다짐하며 자리를 파했다.
...
..
.
그렇게 시작한 총회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유니버스의 모든 제품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이 재단 이사들을 반겨주었고,
그 거대한 조형물의 인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오면 길게 깔린 레드 카펫과 함께 거대한 사이니지 월이 압도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며 유니버스라는 기업 자체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렇게 레드카펫을 따라 총회가 개최되는 회의실에 들어가면....
"이건... 책상인가...?"
"그냥 책상이 아니군..... 손으로 쓸어내리니까 화면이...."
최첨단 IT기기들로 무장된 역대 최고의 회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태준이 계획하고 유니버스가 준비한 압도적인 회의장의 모습에 한 국가의 수장으로 있던 정치인들은 표정관리조차 못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자리에 착석했다.
그렇게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하자....
100석 규모의 거대한 원형 테이블의 중앙에서....
"안녕하십니까.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태준이 '홀로그램'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억...!"
몇몇 참석자들은 놀란 나머지 감탄사인지 경악성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소음을 내었다.
그런 소음에도 홀로그램 태준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회의 시작을 알리는 모두 발언을 진행해 나아갔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희 더 파운데이션은 유니버스 그룹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의 혜택을 인류에게 돌리기 위해.
그 첫 발을 뗀 지금.
이렇게 홀로그램으로 첫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파운데이션의 의장 김태준입니다."
그렇게 모두발언이 끝이 나고 홀로그램과 교체하듯 태준이 원형 테이블 한쪽에 자리하자 많은 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태준을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그렇게 태준의 발언과 함께 유니버스 소속 기업들의 실적 발표와 신기술 발표를 시작으로 회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
"후."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나온 나는 조비서가 건넨 물을 마시며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치권에선 예상한대로....?"
"예. 바로 우리쪽 실적 발표가 끝난 직후 정관에 있는 개별 회의를 요청하고는 사실상 10자 회담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 쪽은 그게 본 목적일테니까요."
"예. 그리고 그런 정치적 행사를 의식한 듯 해리 왕자와 콘스탄테인 왕자는 곧바로 회의장 밖에 있는 유니버스 전시장을 돌며 의도적으로 기자들에게 모습을 노출하고 있었습니다."
조비서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 참.. 굳이 그렇게까지 안해도 될텐데... 그보다 중계 반응은... 정리 되었습니까?"
그렇게 내가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조비서가 유니버스 원을 꺼내 문서하나를 내게 보내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주요 일간지 반응과 회의 전반에 걸친 댓글반응 정리해왔습니다. 역시 초반에 홀로그램으로 시작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더군요."
"첫 회의이기도 하니 떠들석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의도대로 된 모양이네요."
"예."
"아직 CSR관련 반응은 없지요?"
"그 부분이라면... 문서 3-1을 보시면 됩니다."
조비서의 말에 나는 유니버스 원을 조작해 문서를 열고는 말을 이었다.
"딱 잘라 말을 못하는 것을 보니 갑론을박이 심한 모양이군요. 어디보자..."
그렇게 떠오른 문서에는...
- CSR을 주로 교육, 예술쪽으로 미는 건 사실상 그냥 기존에 하던거 계속 하겠다는 이야기 밖에 안되는거 아닌가?
- 대중 예술 말고도 순수예술쪽으로도 민다잖어.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기다 도서관 설립에... 고서 전자책 전환 사업....? 이게 우리 일상이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 그나마 도서관은 나은거지. 유니버스가 만드는데 그게 어디 그냥 도서관이겠냐. 온갖 최신 테크 기술로 무장해서 만들겠지.
- 이건 이 말이 맞는 듯. 집, 호텔도 전부 스마트 라이프 패키지로 연동시켜놨는데 도서관에도 그런거 하겠지.
- 난 시드볼트 보고 좀 놀랐는데. 더 파운데이션 산하 시드볼트를 10개국에 짓겠다는 발상은 대단하지 않냐.
- 대단은 무슨. 이미 있는걸 중복해서 하는게 뭐가 의미있다고.
- 백업은 많을 수록 좋은건데? 뭔 개소리야. 이게 얼마나 돈이 들어가는지 이해를 못하는건가?
- 놀랍기로만 따지면 스페이스 X 쪽으로 한다는 우주쓰레기 수거 사업이 제일 놀랍지 않냐?
- 그게 되겠냐? 발사 성공도 아직인데.
이름 모를 사람들의 노골적인 갑론을박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이를 차분히 다 읽은 나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주 나쁘진 않네요."
"예. 일단은 반응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기대 이하라는 느낌이지만.. 불필요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사업이긴 하니까요.
다만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다들 실망한 느낌이지요."
"누구나 다 그렇겠죠. 어찌되었든 사람들의 인식에는 유니버스는 배려를 받아 세금도 덜 내고 사업하게 되었는데 왜 돌려주는 건 없냐... 이런 인식일 테니까요."
내 명쾌한 정리에 조비서가 쓰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어쩌겠어요. 우리가 하는 걸 몰라준다면 홍보를 하는 수 밖엔 없지요. 그간 우리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CSR사업 관련 정리해서 전부 뿌리세요.
생색 내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비서가 내 지시를 듣고 사무실 밖을 나서려던 그때.
나는 문서 한 켠에 적힌 스페이스 X쪽에 대한 비관적인 댓글을 보고는 나가는 조비서에게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스페이스 X쪽에 다음 실험 발사에 저도 참여한다고 연락 넣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