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재단 설립 (3)
태준의 예상대로.
태준이 만들고 운영하는 '더 파운데이션'의 전경련 버전 '상생재단'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어찌나 삐걱대는 소리가 컸던지.
주요 언론의 경제 뉴스에서는 연일 태준의 '더 파운데이션'과 '상생재단'을 두고 비교하는 기사를 내기 바빴다.
"오너 일가 지분들을 모아 거대한 협의체를 만든것 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로 인해서 각 회사의 일반 주주들까지 힘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교가 쏟아지며 재단의 구조가 어떤지, 어떤 이점과 혜택이 있는지 등등을 학습한 개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관련 협약을 체결한 각국에서는 이들의 미시적 움직임이 모여 만든 거시적 흐름을 쫒느라 기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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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 회장의 더 파운데이션 출범 이후 주식 신탁을 통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그리고 노동과 자본의 결합이 최근 경제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나보니 일반 주주들 사이에서도 신탁을 통한 한 목소리 내기에 나선 탓으로 분석됩니다."
"구조적 상황은 유사한데 왜 이런 차이가 난 것일까요?"
"독일 출신의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언으로도 잘 알려진 말이죠. 신은 디테일에 있다. 더 파운데이션은 바로 이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상생재단은 그 반대의 경우인 '악마가 디테일에 숨어있는' 형국이고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앵커가 정해진 순서대로 설명을 요청하자 경제전문기자인 김대기 기자는 뒤에 펼쳐진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예. 지금 보시는 자료화면은 김태준 회장이 설립하고 운영중인, 그리고 미국의 승인만을 남겨둔 더 파운데이션의 이사회 현재 의석 수 자료입니다.
여기 가장 큰 부분이 김태준 회장의 개인이 가진 의석수 46석입니다.
다음으로 비교적 초기에 진입한 대현의 정영주 회장 일가의 의석수는 전부 8석.
그리고 사업 초기부터 동업관계를 구축한 미국의 오브라이언 가문이 4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국 정부와 왕실이 26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밑으로 KTJC 산하 모든 기업에 소속된 유니버스 국제 노동자 조합이 우리사주의 형식으로 한 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김태준 회장이 각국 노동조합에 약속한 5석과, KTJC의 우선주 주주 대표의 5석,
그리고 매 회기 돌아가며 개최하는 개최국 재단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담당자를 위한 특별 의석 총 5석으로 정규 의석수는 99석입니다.
여기에 소수점 단위로 재단지분을 보유중인 주주의 경우 안건 회부는 불가능하지만 찬반 투표는 할 수 있는 제한이사로 참여합니다."
더 파운데이션의 의석 구조 설명을 마친 김대기 기자는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며 이런 구조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런 구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김태준 회장의 경영전략으로 알려진 '비상장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본만으로 사업을 돌리고, 일반주는 절대 시장에 내놓지 않는 상태에서 추가 자본이 필요할 경우 높은 배당을 주는 우선주로 자본을 모집하여 경영권을 조각내지 않는 덕분이죠.
일반주를 일종의 황금주처럼 쓰면서 일반주 자체 가치를 끊임없이 높인 뒤 필요한 사업을 그 일반주를 대가로 적시에 사모으고 사업의 원 소유주들과 동업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서
적이 아닌 아군으로 끌어들인 셈입니다."
그 설명을 들은 앵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생재단은 어떠한지 물어왔다.
"그렇군요. 그럼 상생재단의 경우는 어떤가요?"
"상생재단의 경우는 이런 점에서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각 그룹을 지배하는 오너일가가 모여 그룹의 핵심 지배권을 가지는 주식을 재단에 증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구성이 되어 겉 보기에는 더 파운데이션과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룹 전체의 순환출자구조입니다. 순환출자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적은 자본으로 거대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를 낸다는 측면에서 경영전략의 하나로 해석이 되지만...
문제는 상장된 개인 주주들이 지금처럼 특정 재단을 설립하고 신탁하여 한 목소리를 낼 경우 문제가 생깁니다.
지배적인 한 개 세력이 생김으로서 이들이 순환 연결고리를 끊고 경영에 간섭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상생재단의 설립 이후 주식신탁업을 하던 많은 신탁사들이 자회사로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재단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상생재단의 힘 역시 많이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게 상생재단에 대한 설명까지 끝이 나고 빅 5의 자체 재단과 그들의 결단을 소개하라는 문구가 프롬프터에 뜨자 앵커는 자연스럽게 그 프롬프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점에서 상생재단이 아닌 더 파운데이션에 소속되기로 한 빅 5의 결단이 주목을 받는 것이었군요."
"예. 수성, 우대, 광성, 태방, 세아는 더 파운데이션에 참여하기 위한 자체 재단을 추가로 만들고, 개인 주주들의 주식들을 증여받기 시작했습니다.
재단 대 재단으로서 양자간 합병 재단에 들어갈 경우 평가 총액 기준으로 김태준 회장의 뒤를 잇는 약 10석정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에 대해 일반 주주들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반응은 긍정적입니다. 재단 설립 직전까지만 해도 유니버스를 일종의 기업 플랫폼 삼아 유니버스에 인수되는 것이 좋다고 보는 이들도 많았고,
이런 기조는 현재 진행형이니까요. 실제로 앞서 설명드린 개인 주주들의 재단 중 하나인 동학개미운동본부 산하 재단들의 경우 상생재단에 속한 기업들의 주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빅 5의 재단인 '원 스텝'과 마찬가지로 각 회사의 1대 주주로 올라설 때 마다 더 파운데이션으로 들고간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증권거래 감소 역시 이 영향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개인간 거래가 감소하고 재단에 신탁 혹은 증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기업 거래 역시 투자자들이 속한 재단 내에서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몇몇 자체 재단에서는 재단의 지분을 따로 주고 거래를 하게끔 하거나 아예 재단 정관에 재단의 목적 달성 이전까지 신탁주 회수 불가 조항을 걸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태준이 일으킨 '재단' 열풍이 증권시장에 까지 미친 영향까지 소개한 것을 본 조비서는 TV를 끄고는 말을 이었다.
"아직 본격 시동 전인데도 벌써부터 다들 난리네요. 물론 이미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우리 입장에선 좋은 일이지만...."
그 말에 태준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 아닙니까. 다만, 사성이 만든 상생재단이 저런 상황이란건 조금 아쉽네요."
"예?"
"우리가 이기는 건 기정 사실이지만, 그래도 상생재단이 최대한 버텨주는게 우리에게는 베스트 시나리오니까요."
"독점 우려라면 이미 해소된 것이 아니었습니까?"
"해소되었죠. 독점이라고 철퇴를 칠 주요세력들까지 전부 우리 쪽으로 포섭했으니까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경쟁이 없어지는게 바람직 한 건 아니니까요.
다른 선택지가 항상 있어야 우리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태준의 말에 조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그 동학개미운동본부라는 곳에서 주도하는 사업은..."
"예. 당연히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받는다고 해도 빅 5의 '원 스텝' 정도나 받겠지요."
"알아본 바에 따르면 동학개미운동본부의 뒷 배가 미국 유대자본이라는 설이 있던데... 안받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일종의 신호같은 것일텐데요."
조비서의 그 말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어디까지나 소문만으로 움직일 수도 없거니와... 미국 유대자본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 장단에 놀아줄 수 없지요.
미국 자국내에서 기업들을 모아 우리에게 붙이려는 것이라면 모를까. 한국의 기업들을 모아 우리에게 붙이겠다는건... 작정하고 한국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 그 점에 대해서라면 이미... 회장님께서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로남불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르지요. 돈에는 국적도 선악도 없다지만, 말이 그렇지, 진짜로 국적이 없겠습니까?
더구나 유대자본을 우리 재단에 들이는 순간. 무슨 일을 벌일지 감도 안 잡히고 말이죠."
그 말에 조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든 한동안 각국 정부도 골머리를 썩겠습니다. 우리 유니버스만이라면 확보 세수보다 훨씬 더 큰 복지비용 절감을 노릴 수 있으니 승인해줘도 이득이었지만....
다른 기업들까지 이렇게 나와버리면... 세수가 부족해질테니까요."
"그것도 아닐겁니다."
"어째서..."
"협약에 가입하는 순간 정부가 원하는 가장 큰 걸 얻게 되니까요."
"가장 큰 것?"
조비서의 의문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AI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럼 일반 기업이라면 뭐부터 하겠습니까?
노동력 부터 절감하려 들겠지요? 그런데 이번 재단 설립으로 엄청난 규모의 노동시장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에 더해 그 노동자들이 내는 근로소득세는 그대로지요. 그렇게 되면 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그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겠지요?
최악의 미래를 피한 셈이 되었으니 이대로 이득인겁니다."
태준의 말을 듣고 온전히 이해한 조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잠깐..... 그렇게 되면.... 인터넷에 떠돌던 그 음모론도 마냥 농담으로 들을 수는 없게 되는 것 아닌가?
고용부터 복지까지 전부 유니버스에서 제공하게 된다면... 이건... 진짜 기업 국가나 다름 없지 않나?
거기다.. 회장님은 경호 보안 업무를 주로 하는 곳이긴 해도 PMC도 가지고 있으시고... 방산업체도 가지고 있으신데...?'
인터넷에 떠돌던 음모론을 떠올리고는 평온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는 태준을 보았다.
'하하... 너무 과민한 생각일지도....'
그렇게 태준이 찻잔을 내려놓자. 조비서는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치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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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 시작해서
전경련을 거쳐
일반 투자자들에 이르렀던
거대한 재단 열풍도 슬쩍 사그라들 무렵.
미국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 유니버스 그룹, '더 파운데이션' 미국 정부 승인 완료.
그리고 그 소식과 함께....
"미국에서도 승인이 났는데... 이제 슬슬 더 파운데이션의 총회를 시작했으면 하는데...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김민상 대통령이 비밀리에 내 사무실에 찾아와 '더 파운데이션'의 역사적인 첫 총회를 열것을 제안했다.
그 제안에 나는 슬쩍 웃음지으며....
"오래 기다리시긴 하셨죠."
뼈가 섞인 말을 던졌고, 김민상 대통령은 그 말에도 웃음지으며 말을 이었다.
"목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임기도 반 이상 지나갔고...
거기다 더 파운데이션 설립하고 각국의 인용결정을 신호로 국제 회담을 개최하려는 것도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 되서...
이 날만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역시 처음은... 회장님께서 계신 서울...이겠지요?"
너스레가 섞인 말 끝에 삐죽 삐져나온 그의 본심에 나는
'한 번 장난이나 쳐볼까?'
생각하고는 웃음지으며 말을 이었다.
"총회는 제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하진 않습니다."
"그럼 어디로 생각하고 계신지..."
그 말에 눈에 띄게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인 김민상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총회는 각 재단의 설립 순서대로 할 생각입니다."
"어휴...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하핫. 그럼요. 국제적인 재단인 만큼 그런 기준도 필요하지요. 그럼 그렇게 알고..."
"예. 총회에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통령과의 짧은 대화를 마친 나는 돌아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씩 웃고는 혼잣말을 던졌다.
"후. 이제 다 끝났네. 남은건... 우주 산업.. 정도인가? 더 늙기 전에 완성이 되어야 우주여행도 해보고 그러는데... 늙는게 아쉽다. 늙는게 아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