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재단 설립 (2)
얼마 뒤.
"브루나이를 시작으로 네덜란드까지 협정 인용에 대한 성명을 내고 협상에 들어갔다고 알려왔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조비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드디어 시작하겠군요."
"예. 정부에서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좀 빠릿하게 움직여줬으면 하는데 말이죠."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 그래도 우리나라 정부는 다른 나라 정부에 비하면 빠른 편입니다."
"그럼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부터 해보죠."
내 말에 조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니버스 원을 꺼내들어 뭔가를 확인하더니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KTJC의 지분을 그대로 옮겨가는 것인 만큼 그럴 바엔 아예 재단으로의 전환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정부측의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그래서는 우선주가 문제가 되겠지요. KTJC가 재단으로 전환되면 우선주로 적용할 수도 없거니와 지금의 배당 시스템이 무너질 테니까요."
"예. 해서 새롭게 재단을 설립해 일반주 주주들의 동의를 얻고 있습니다."
"뭐 동의를 안할 주주들은 없겠지요. 애초에 대현과는 교감이 끝나 있는 상황이고 각국 정부는 자국에 적용할 생각에 신이 나서 동의서를 작성해주겠지요."
"예. 그렇게만 해도 과반이 넘어가는 상황이다보니 재단에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행사하기 위해서 JMG도 이를 받아들일테지요."
그렇게 앞으로의 미래를 그린 조비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결국 각지에 나가있는 KTJC 위에 각국의 재단 법인이 설립되는 형국이라 지배구조는 더욱 복잡해지겠네요."
"위에 한 층이 더 생기는 거니까요. 안 그래도 정부에서도 이런 복잡한 지배구조가 행정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우리나라에 재단을 설립하고 각국 KTJC의 지분을 전부 재단에 증여하는 방안을 제안했었습니다."
"... 안 될 거 알면서도 찔러본거네요."
"예. 회장님 지분이 절대적인 만큼 회장님의 결단이면 전 세계의 유니버스를 지배하게 될 재단본부를 한국에 둘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일테지요.
애국심에 호소하며 그런 제안을 해오긴 했는데...."
"당연히 안 될 말입니다."
조비서를 통해 들어온 정부측의 제안을 내가 단칼에 쳐내자 조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유니버스가 대단한 것이지 한국이 대단한 것은 아니니까요. 일단 눈치 봐야할 국가도 여럿 있고요.
거기다.. 우리 그룹과의 유착정도를 생각하면 외려 브루나이의 유착정도가 제일 높지 않습니까?
브루나이의 국영 사업과 왕실 사업을 전부 유니버스 소속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이번에 아예 홍콩식 다중화폐체제를 도입하면서 브루나이 달러와 함께 제 2화폐로 유니코인을 지정하기까지 했으니....
그런 점을 들어 정부에 이미 거절을 해둔 상태입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렇게 조비서에게 보고를 전부 들은 나는 슬쩍 달력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스페이스 X는 요즘 어떻습니까?"
"비밀리에 진행된 발사 실험이 최근에 있었는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발사까지는 성공했는데, 1단 발사체 회수에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최대 3단 발사모듈까지 전부 회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죠?"
"그렇습니다."
"뭐.... 그 쪽이야. 시간이 걸릴 문제니 어쩔 수 없고. 튜브트레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텍사스에 위치한 스페이스 X 발사장 옆에 4km 실험트랙을 만들고 실험에 들어갔는데... 아직 목표한 표정 속도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들었습니다."
"그 쪽도 한 세월이군요."
"아무래도 사람이 탑승하는 물체다 보니... 실험 자체도 보수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지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은 QULAB의 AI 적용에 대한 건에 집중하는 것으로 하죠. 신규 판매되는 제품들에는 3O모듈 탑재 가능합니까?"
"예. 알파고 개발 당시 3만개짜리 시범 생산라인을 범용 라인으로 확대개편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묻는 모든 질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답변이 자연스럽게 나오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된 느낌이군요."
"시스템은 진즉에 구축이 되었었죠. 다만 회장님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뿐."
"그 말이 그 말이죠. 그래서 그런가? 요즘 조비서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비서실 일도 한결 가벼워진 모양입니다?"
내 장난기 어린 질문에 조비서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법무이사님 소개로 만나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서실 업무는 가벼워졌다기 보다는...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죠.
제가 총무이사로 발령받은 이후에 총무실과 비서실이 합쳐지면서 인원도 더 늘기도 했고요. 물론 저는 여전히 그 두 업무를 전부 다 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비서들은 좀 편해졌죠."
"그렇다면 그건 제 의도대로 된게 맞네요. 비서실과 총무실 업무가 겹친다고 생각이 들어서 합쳤던 것도 있으니까요. 물론 조비서가 승진해 올라와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민영이가 누굴 소개해줬다니... 만날 사람이 딱히... 아. 안민주 비서 말하는 겁니까?"
"예. 법무이사님 직속 비서."
"허... 거 참. 두 사람 나이 차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저도 그렇고 안민주 비서도 그렇고 따로 시간을 내기 뭐한 입장들이라...."
그 말에 나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크흠... 기왕 이렇게 된 것. 잘 해봐요. 사내연애는 자유라 금지네 어쩌네 할 마음은 없지만.... 비서실 만큼은 적극 응원하니까요."
".... 회장님께서도 엄밀히 따지면 사내 연애로 가정을 꾸리셨으니 금지하시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될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말을 이었다.
"애초에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다만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말씀하시죠."
"언제 또 바빠질지 모르니까. 두 사람만 좋다면 결혼은 하루라도 빨리 하세요."
".... 안 바빠졌으면 합니다만... 또 그렇게 말씀하시니... 불안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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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조비서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안정된 시스템과 예정대로 굴러가는 계획을 보며 즐기고 있던 그 무렵.
"그게 무슨 말이야.....!? 탈퇴라니..."
"그게 수성을 시작으로 우대, 광성, 태방, 세아까지 전경련 소속 빅 5그룹이 경단련 탈퇴를 선언하고 김태준 회장이 만들 재단에 들어가겠다고 발표를 했답니다..."
이진휘 사성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보고를 듣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개같은....! 이미 그 판은 닫힌 판인데 거길 기어들어가겠다니... 제 정신들이야!?
어제까지만 해도 우대랑 태방에선 전경련을 유니버스 재단 형태로 바꾸고 안정적인 세습체제로 가기로...."
"그게.. 아무래도 이 발표를 미리 입수한 듯 합니다."
그렇게 이진휘의 비서가 내민 신문에는....
- 유니버스, 재단 설립 완료. KTJC 관련 지분은 K지분만... 재단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각국에 설립 예정.
- 브루나이와 네덜란드, 인용발표 직후 곧바로 유니버스 측에 재단 설립 허가 내줘... 각국도 차례로 재단 설립 될 가능성 커.
- 유니버스, 재단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 재단에 지분을 증여하는 대가로 재단 지분 획득 가능... 각국 기업인들의 선택은?
- 정부-기업-시민 연합체의 등장.... 이익을 포기하고 세상을 얻다. 전경련의 선택은?
유니버스 재단의 상세 정보가 들어있는 기사들이 1면 헤드라인은 물론, 2면, 3면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것을 본 이진휘는...
- 꾸깃....
신문을 구기며 인상을 쓴채 말을 이었다.
"대놓고 항복하고 들어오라고 종용하는군.... 이미 10개국의 정부와 주요 왕실을 전부 포섭했다 이거겠지.... 그리고 여태 김태준이 일반주 증자로 장난질 친 패턴을 보면.... "
"예. 늦게 들어가면 늦게 들어갈 수록 발언권에 손해가 날테지요. 이미 분위기상 올라타지 않으면 기업 자체의 존속이 위태로운 판국이니까요.
우리 사성이야 그런대로 잘 버텨주고 있으니 좀 낫지만.. 다른 기업들은 아닐겁니다."
"수성도 우리와 상황은 비슷할텐데."
"수성이야... 유니버스와 그래도 일정정도 인연이 있으니까요. 서로 특허권을 공유하는 계약을 맺은 적도 있으니.. 이번 결정이 그리 이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수성도... 자녀가 많아 후계구도가 복잡한 만큼 이 참에 아예 복잡하게 생각 할 것 없이 대세에 탑승하기로 마음 먹은 것일지도 모르구요.
무엇보다.. 재단 소속이 되면 세계급의 로열 네트워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겁니다.
김태준 회장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명예 시민권까지 쥐어주고 가터 기사단 명예단원으로 서임되었고,
오늘에서야 공개된 사실이지만, KTJC 주식을 취득한 왕실끼리 앤서블 미팅도 가졌다고 하니... 그 이너서클이 얼마나 먹음직스럽겠습니까."
비서의 말에 이진휘는 분을 삭이며 말을 이었다.
"이런 움직임이 전경련에서만 있는 것은 아닐텐데...?"
"예. 일본의 케이단렌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일전 유니버스의 일본 기업 매수 건에서 결성된 일본소부장 기업들의 연합체인 JMG가 잘 나가는 것을 본 일부 대기업들 역시...."
"다른 나라는 볼 것도 없겠지. 미국정도나 버티고 있으려나."
이진휘의 말에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번 재단관련 건으로 정치권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정부 역시 재단에 한 발 걸치고 있긴 하지만, 이를 용인하는 순간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절세를 목적으로 죄다 재단을 만들겠다고 할까봐 우려하는 모양새였습니다."
그 말에 이진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역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이진휘의 말에 비서가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왔고, 이진휘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하지."
"하지만... 빅 5가 통째로 빠져버린 이상 탄력을 받기 힘들텐데요."
"필요하다면 사기라도 쳐야지."
"사기라고 하시면...."
그 말에 이진휘는 어딘가 아픈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쓰고는 말을 이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우리도 그 재단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사기를 치는 수 밖에."
"예?"
"재단에 들어가기 위해. 그리고 더 큰 발언권을 얻기 위해 덩치를 키우는 것이라고 하면 의외로 순순히 넘어올 멤버들도 많을 테니까. 우대나 태방은 어쩌면 도로 발표를 철회할지도 모르고."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미국을 제외한 주요 KTJC 진출 9개국에 모두 재단이 설립되고, 미국에서의 결과만 남겨둔 그 무렵.
사성을 중심으로 전경련이 태준이 만든 '유니버스 재단'과 같은 형식의 재단 설립을 하겠다며 나서자 태준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사성은 대단하다니까... 기어이 우리와 각을 세워보겠다고 난리구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덩치를 키워 유니버스 재단에 진입해 발언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그게 안될 거라는 건 저도, 이진휘 회장도... 그리고 조 비서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전경련 소속 재벌들은 순환출자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니... 우리 재단에 들어오는 즉시 발언력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룹째로 갈려나가 재단 이사회에 관객으로 참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될텐데요."
"그나마 수성이 이번에 들어오며 간신히 1%를 확보해 정식 이사자리를 얻어냈지요. 그것도 전부터 지주회사 전환에 힘쓴 결과입니다.
그걸 두 눈 뜨고 다 봤으니.. 순환출자로 몸뚱이에 살만 찌운 대부분의 재벌들은 들어올 엄두도 못낼 겁니다.
결국 남은 건.... 저들끼리 자체적으로 우리 재단과 경쟁을 하는 것 뿐이겠지요."
태준의 말에 조비서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게 될리가 있습니까...?"
"될 리가 없지요. 이미 판세는 기울고 있으니까. 이제 미국에서 협정을 준용하고 재단 설립 인가만 내주면.... 곧바로 우리 재단을 중심으로 국제 회담이 개최될 겁니다.
그 이후에는... 결판이 나겠죠."
조비서의 질문에 답을 하던 태준 역시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말을 이었다.
"우리의 승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