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183화 (183/200)

183. 인공지능 (2)

"이세석 九단. 연이어 고전하고 있군요."

"예. 여기 백이 젖히고 들어간 부분을 붙임으로서 흔들리던 판세를 붙잡은 모양새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해설을 맡은 장유혁 七단이 해설하자, 진행의 조연우 初단이 말을 이었다.

"이번 알파고에 사용된 자원은 알고리즘만이 아니니까요. QULAB 특제의 AI전용 연산모듈 '3O 모듈'을 무려 3만개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세석 九단은 지금 인간보다 빠른 판단을 하는 3만개의 두뇌와 싸우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QULAB측에서 밝힌 3O 모듈의 공식 명칭은 라틴어로 Omnia Omnisciens Omnipotens, 전지전능한 전능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태준이 미리 지시해둔 대로 알파고의 기술적 설명을 곁들인 해설이 더해지자 보는 이들도 이세석 九단이 얼마나 어려운 바둑을 두고 있는지를 시청자들도 쉽게 알 수 있었다.

- 유니버스 제품은 이래서 재미있다니까. 이름 드립이 찰져.

- 서버 이름도 판테온이라며. 3만개의 신이 모여있다고 해서 판테온인건가.

- 로마 교황청이 신성모독이라고 안 한게 신기하네.

- 외려 그런 소리 했다가 교황청이 욕먹었겠지.

조연우 初단의 해설에 댓글 반응 역시 그런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거기다... 이번 대국에 사용된 알파고의 알고리즘은 김태준 회장이 소논문으로 발표한 앱솔루트 제로 딥 러닝 기법으로 100만회에 걸친 학습을 거치고,

이후 KGS 기보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六단부터 九단 기사들의 모든 기보를 학습한 버전입니다.

그 말인 즉, 적어도 16만번 이상의 실제 기보를 이미 머릿속에.

그것도 인간과 달리 절대 잊지 않는 그 머릿 속에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려 100만판의 자체 학습을 거친 이후에 말이죠."

"이세석 九단은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바둑을 둔 자와 싸우고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말씀드린 순간. 이세석 九단. 착수했습니다. 61번째 수. 빗겨가는 군요. 평소 전략적인 스타일의 대국을 즐기는 이세석 九단의 수법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 저런 수는 여류기사들이 많이 두는 수인데요."

"아무래도 지금은 전투를 걸어야 할 때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더구나 이세석 九단의 기보까지도 모두 학습한 알파고인 만큼 기존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줄 필요도 있을테고요.

알파고도 전투에 응했습니다. 다시 이세석 九단의 장고가 이어지는데요..."

"아무래도 기계이다 보니... 이세석 九단에 비해 반응 시간 자체가 빠릅니다."

그렇게 해설과 기술 설명이 반복되는 가운데.

이번 중계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앤은 슬쩍 유니버스 원을 꺼내 반응을 살피더니 막 뒤편 중계 스태프들이 모인곳으로 가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이세석 九단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시간을 쓰고 있죠?"

"초반부를 제외하면... 한 수에 대략 한 10분정도씩 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당히 어려운 대국이니까요."

"그럼 프롬프터에 이 대본 추가해주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앤의 지시에 프롬프터에 새로운 대본이 올라오자 조연우 初단이 자연스럽게 프롬프터에 올라온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거기다 이번 대전을 위해 유니버스 측에서 자체개발했다는 저 바둑판이 그 반응 속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둑판이 조금 독특한데요."

"예. 통상적으로 쓰는 일본식 바둑판이 아닌 우리 전통 바둑판을 현대적 감각과 QULAB의 기술력을 더해 만든 AI바둑판입니다.

이번 대국에 사용된 바둑판의 경우 국가무형문화재이신 유진경 소목장께서 만들어주신 것으로 QULAB 뉴 이어(New EAR) 연구소의 음향 조율까지 마친 최고급 바둑판입니다.

대국 이후 한국기원 1층 바둑역사관에 전시 예정이라고 하니 저 바둑판에 직접 두어보진 못하더라도 구경은 할 수 있겠지요."

"AI바둑판이요? 음향조율은 또 뭔가요?"

"이세석 九단의 다음 수를 기다리시는 사이 간단히 소개해드리자면, 일본의 전통 바둑판의 경우 한국의 전통 바둑판과는 달리 통 목재로 제작됩니다.

목재를 고르고, 목재를 다듬고 말리는 가공과정 외에는 그다지 높은 기술을 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전통 바둑판의 경우 판재를 사용하여 상자형태로 만들고 그 안에 가느다란 철사를 두어 바둑을 둘 때 마다 소리가 나는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두는 지점에 따라 달라지고요. 일종의 악기였던 셈이지요. 그랬기에 QULAB 뉴 이어(New EAR) 연구소의 음향 조율이 필요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우리 선조들은 바둑을 두면서 동시에 악기를 연주했던 셈이군요."

"예. 그리고 훈수꾼의 혀를 잘라 피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는 향혈 역시 사실은 우리 전통 바둑판의 통 울림을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일본으로 전해지며 상자형에서 통판형이 되며 장식으로 남게되었고, 향혈의 원리가 잊혀지며 그런 소름돋는 전설이 생겼다고 하네요."

"그럼 AI라는 건 뭔가요?"

"착수 실수를 막기 위해 바둑 판 좌표계를 표시하는 초박형 LED와 센서를 장착해 알파고의 다음 착수지점을 알려주는 등입니다."

LED의 투과율을 높이면서도 바둑을 두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초박형 LED판 위에는 다시 비자목판재를 0.5mm두깨로 얇게 가공해 붙였다고 합니다."

"카메라에 잡혔던 미세한 백색등이 그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잘못 착수했을 경우 판 테두리가 붉게 빛나게끔 설계했다던데... 아자황 아마 6단이 지난 대국중 착수실수를 하지 않아 볼 기회가 없었네요."

"그냥 보기에는 이벤트를 위해 만들어진 바둑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통 바둑판이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돌 역시도 보통 돌이 아니라 돌 하나하나마다 자석을 삽입하여 자동으로 기보를 기록하게끔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돌은 인조상아로 만들어졌고요."

"역사가 오래된 만큼 바둑판과 바둑돌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네요. 전통을 이어가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유니버스의 도전정신도 뜻 깊고요."

"예. 거기다 디자인은 백제의 목화자단기국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실제로 바둑알이 놓여지는 윗판 외의 남은 부분은 스리랑카산 자단으로 만들었다고...

말씀드린 순간. 이세석 九단. 착수했습니다. 아... 이렇게 되면.... 알파고도 쉽지 않겠는데요."

그렇게 자신의 지시를 만족스럽게 이행해준 조연우 初단의 해설에 앤이 웃고 있을 무렵.....

"결국.... 논란의 신의 한수가 나오는 건가."

태준은 모든 일도 놓은 채 홀로 남은 스위트룸 거실에서 120인치 TV에 비치는 바둑판을 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세석 九단... 쉽지 않은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렇게 태준이 긴장 속에 판세를 읽어나가던 그때.

- 따르르릉.

객실 내 인터폰이 울렸다.

"태준. 지시한 내용 제대로 다 처리했어요. 소개 마치고 한국기원 바둑판도 전량 알파고 바둑판으로 교체했고요."

"수고했습니다. 앤."

"수고는요. 진짜 수고는 김기백 사장님이 하셨죠. 직접 전달하시고 이제 복귀중이시라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태준이 보고만 받고 전화를 끊자.

보고를 마친 앤은 슬쩍 대국 중계를 담는 카메라 모니터 화면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태준도 바둑을 상당히 잘 둔다더니... 이세석 기사를 응원하는 모양이네."

앤의 혼잣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데미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닐겁니다. 앤."

"아니라구요?"

"회장님도 저희와 같은 공학자니까요. 알고리즘 개발에 직접 참여하신 것은 아니지만, 학습 전략을 완전히 새롭게 다듬는데에도 일조하셨고요.

알파고를 응원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앤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잘 하고 있는 알파고를 응원해서 뭐해요?"

"저희는 전승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바둑을 전승으로 이긴다면, 차후 이뤄질 범용 AI개발, 그리고 보급에도 탄력을 받을테니까요."

"아... 그럼 아직 승부처가 두 번이나 남은거네요."

"그런 셈이죠."

그렇게 데미스의 해설에 앤은 다시 반응을 살피기 위해 V플래닛에 들어갔다.

"사람이라면 그렇겠지만... 알파고는 AI니까요. 바로 착수했습니다. 반응속도가 빠르군요."

"아자황 아마 6단이 알파고의 손이 되어 대신 착수해주고 있는데... 그것이 알파고에게는 패널티인 셈이군요. 다시 이세석 九단의 장고가 시작되었습니다."

"한번쯤은 바둑판 몸체가 붉게 빛나는 것을 보고 싶은데... 아자황 아마 6단.

여태 모든 대국에서 화장실도 가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한채 두는 정신력을 보여주고 있어 그 광경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 모습 탓에 별명도 생겼다죠?"

"예. 기계 앞잡이라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별명입니다만... 그만큼 아자황 아마 6단이 보여주는 정신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애정섞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세돌 九단. 한 참의 고민 끝에 착수합니다.... 아!!!! 끼워가네요."

"우리 모두 예상 못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중계진의 놀란 표정과 함께.

다국어 중계를 맡고 있던 채널들 역시 탄성이 흘러나왔다.

"神之一手!"

중국어 중계를 맡고 있던 커제 九단의 입에서 '신의 한수'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너무나 아름다운 수입니다. 공방일체의 묘수...! 마치 검무를 보는 듯 합니다."

딥 마인드가 별도의 회사이던 시절 데미스와의 인연으로 일본어 해설을 맡은 조치훈 九단 역시 특유의 입담과 표현력을 발휘해 이세석 九단의 한 수를 칭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데미스! 승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버그인가?!"

"버그...는 아닌듯 합니다. 판테온 서버 역시 안정적으로 기동되고 있고... 알파고에게도 버그 알림은 없었어요."

"수동 분석은?"

"이미 들어갔습니다. 결과가 나오려면 적어도 이번 대국이 끝나야 할테니..."

그렇게 회장이 소란에 빠져들었을때.

인터넷 세계 역시 이세석의 한 수에 경이롭다는 반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세석 九단의 이 한 수 완벽하네요. 정말... 여러 기사들의 중계와 함께 자체적으로 전달해 드리고 있습니다만...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했던 한 수 입니다."

- 역시 이세석....!

- 오늘이 세번째 판이었으면 리버스 스윕도 가능했을듯....!

- 알파고는 최강이라던 테크충들 입꾹닫ㅋㅋㅋㅋㅋ

자체적으로 중계의 중계를 받아다 개인 방송을 열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물론, 그 방송들을 지켜보던 시청자들 역시 이세석 九단의 수에 놀라며 알파고의 패배를 바랐다.

그리고....

"... 결국 역사대로 흐르는 건가. 바꿀 만큼 바꿨는데."

그런 이세석의 신의 한수가 터져나오며 태준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건...!!!"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태준이 손을 치우고 중계화면을 보더니...

"미친....!"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는 대회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데미스."

그렇게 황급히 대회장에 들어간 태준은 데미스를 불러세웠고, 데미스는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는 태준의 부름에 답했다.

"회장님."

"지금 승률은 어떻게 됩니까?"

태준의 말에 데미스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태준을 내실 안쪽으로 데려가며 모니터를 보여주고는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 50%입니다. 소수점 아홉째 자리까지 전부 0인."

"역시... 장생(長生)이군요."

"장생...?"

"패가 아닌데 계속 동형반복이 일어나는 겁니다. 바둑계의 프랙탈 같은거죠. 현현기경에도 나온 아주 오래된 수입니다."

"이 경우엔 어떻게 합니까? 아니 그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겁니까?"

그 말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통상 중국 바둑에서는 이를 일종의 패로 보고 팻감을 쓰는 것으로 처리하는데...

바둑 현대화 과정에서 일본과 꾸준히 영향을 주고받았던 한국기원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예외적으로 무승부가 됩니다.

현대 바둑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청원 九단이 백만판을 둔다고 해도 나타나기 어려운 형태인 만큼 경사로 보아야 한다고까지 했으니까요.

이 경우에는... 양쪽 대마가 모두 얽힌 형상이 되었으니.... 알파고도, 이세돌 九단도 포기할리 없고, 결국 무승부 처리되겠지요."

태준의 말이 끝나자, 그와 동시에 밖에 있던 엔지니어중 한 사람이 내실로 뛰어들어와 말을 이었다.

"방금전 한국기원측에서 무승부를 권고해왔습니다. 국제기전 관례상 기전주최국의 규칙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는 유니버스 그룹 소속이라 한국기원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맞다면서요."

그 말에 데미스는 슬쩍 태준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애초에 장생이 불로장생을 뜻하는 말에서 온 만큼 길조로 보아도 좋겠지요. 무승부 인정하고 오늘 대국은 마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데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자,

"다만."

태준이 마저 말을 이었다.

"이게 만약 이세석 九단이 노리고 만든 수라면... 알파고에게는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물론 장생을 노리고 바둑을 두어갔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오류인 것은 맞죠. 그러니...."

"예. 철저하게 분석해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장생 뿐만 아니라, 판빅 모든 경우의 수를 피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게 지시를 마치고 내실 한켠 모니터에서 비치는 이세석 九단의 얼굴을 본 태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거 참...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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