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일상 (4)
태준의 구축한 시스템은 그 형태와 적용면에서 달랐지만 핵심은 동일했다.
- 플랫폼
모든 것의 기초.
그것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태준은 이 기본적인 규칙을 결코 잊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에 사람들의 공간을 먼저 장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플랫폼을 열었고,
그 플랫폼에 가는 길목을 확보하기 위해 통신망 사업을,
그 통신망 사업의 입구를 확보하기 위해 통신기기 사업을,
....
...
..
.
그렇게 끝 없이 무언가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달린 태준은 비로소.
그 현실적인 끝이라 할 수 있는....
'각 국의 유력 이해 당사자들이 없어선 안될 기업'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진행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
"알겠습니다. 날을 한 번 잡아보죠. 연초부터 또 한 번 시끄러워지겠군요."
"새해를 맞이해 국민들께 적당한 선물이 될 겁니다. 정부로서도. 유니버스로서도. 진행해주시면 바로 자연스럽게 저희 쪽에서 호응하고 나서죠.
각 국 정부에서도 이 안에 찬동하고 인용하겠다 나설겁니다. 그럼..."
"예. 그럼 바로 다자회담을 개최하고, 가칭 KTJC 협약을 맺고, 창립단체 중 하나로 KTJC를 부르는 것으로."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지요."
태준은 '각국의 일반 소비자와 국민들이 없어선 안될 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풋. 허튼 생각이지. 우주로 나가 완전히 국가에 자유로운 기업을 만들겠다니. 망상이 너무 지나쳤어.
이런 망상... 일론은 좋아하겠지만. 하핫.'
그렇게 태준은 습관처럼 완료를 목전에 둔 계획들을 뒤로 넘기고 다음 계획을 생각하다 속으로 피식 웃어보였다.
"하다하다 이젠..."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망상이 지나쳤다 싶어서."
"망상...? 회장님도 망상같은걸 해요?"
민영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하자 태준은 그저 웃음지으며 민영에게 말했다.
"원이는?"
"학교에요."
"휴일.. 아니, 방학 아닌가?"
"오늘 유니버스 캠퍼스 연합동아리에 창단식이 있나봐요."
"으음... 어떤 동아리래?"
"글세요. 중학교 들어간 이후에는 사춘기인지 말을 영..."
"오랜만에 나들이 겸... 몰래 한 번 구경이나 가볼까?"
그 말에 민영은 슬쩍 눈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준비하고 나올께요."
그렇게 태준과 민영은 분당에 있는 우주대 캠퍼스였다.
유치원부터 초, 중, 고, 대학교, 대학원은 물론
이제는 각종 연구실들까지 꽉꽉 들어차 하나의 도시처럼 변해버린 그 모습.
그 모습을 구경하던 태준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높은 분이 들이닥치면 난리가 나는게 생리인데... 그것만큼은 피하자고 생각했던 원칙도 자식 앞에서는 속절없이 깨지는구만."
"뭐 어때요. 몰래 들어갔다 나오면 되죠. 구경만 하는건데요. 남대문까지 가서 옷까지 사입고 최대한 평범하게 왔는데요."
"그렇겠지? 조비서. 행사장은 어딘지 알아봤습니까?"
"예. 김태준 경영관 B101 대강의실이랍니다."
그 말에 태준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그냥 A관 B관을 쓰자니까...."
"보통은 학교에 기여한 이름을 쓰는게 학교의 '생리'니까요. 더구나 경영인들 중 회장님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몇이나 있다구요.
당연히 경영관에 그런 이름이 붙을 법도 하죠. 뭘."
그렇게 태준이 어색함과 낮간지러움을 뒤로하고 김태준 경영관에 민영과 함께 몰래 잠입해 들어가(잠입이라고 해도 그저 평범한 사람인 척 들어갔을 뿐이었다.)
지하 1층 대강의실로 들어가자 연합동아리 창단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 우주학원(중-고-대) 연합 경영 동아리 'UBS' 창단식
중학교 대표 : 김원 (우주중 3)
고등학교 대표 : 박설아 (우주고 2)
대학교 대표 : 조석민 (우주대 4)
그렇게 한켠에 적힌 대표들 명단과 사진을 본 태준은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경영 동아리....라. 거 참. 저 하고 싶은거 해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눈치는 많이 보였나보네."
"당연하죠. 언제까지고 애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하기 싫진 않을 거예요.
누구 닮았는지 고집은 엄청 세거든요. 원이.
흠...그나저나 조석민이라는 친구... 어째.... 조비서 닮았네요?"
그 말에 조비서는 뒷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예. 제 막냇동생입니다."
"막냇동생...? 대학교 4학년이면... 띠동갑이네요?"
"예. 거의 띠동갑입니다. 열 세살 차이죠. 기어이 학비 부담 안 주겠다고 서울대 대신 우주대로 온 착한 놈이죠.
아, 그렇다고 우주대가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압니다.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착한 동생을 뒀군요. 이렇게도 인연이 이어지는 군요."
그렇게 슬쩍 구경하며 돌아보고 있던 차에 조비서의 동생인 조석민이 화장실에 다녀온 것인지 문 앞에 서있는 태준 일행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형!!!"
그 외침에 조비서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태준을 바라보았고, 태준은 그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뭐하나 감시하러 왔더니만...."
"내가 애도 아니고."
"아직 대학도 졸업 못했으면, 애지 이 놈아."
그렇게 아버지처럼 막냇동생에게 웃으며 인사한 조비서는 다시 한 번 슬쩍 태준과 민영을 쳐다보았고,
그런 태준은 슬쩍 고개를 끄덕여주며 말을 이었다.
"총무이사가 그렇게 자랑하던 동생이군요. 반갑습니다. 유니버스 회장 김태준입니다. 같은 회장이니 편하게 말씀하시죠. UBS 회장님."
"저는 유니버스 그룹 법무이사 최민영이예요."
그렇게 태준이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하자 조석민은 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제 형을 바라보았고,
조비서는 그런 동생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살짝 쥐어박으며 말을 이었다.
"이놈이...! 경영동아리도 만들었으면서 비즈니스 매너는 완전 개 똥이구만. 어서 인사 못드려?!"
"어... 형.. 진짜?!"
"그래!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놈이 아직..."
"괜찮습니다. 같은 회장인데요."
태준의 놀리는 말에 조비서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동생을 다시 툭 쳤고, 조석민은 그런 형의 눈치에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아...안녕하십니까! 회장님! UBS 대학생 대표 조석민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총무이사가 동생이 대학교에서 경영동아리를 만들었다기에 오랜만에 나들이겸 이사장으로서 구경이나 할까하고 왔는데...."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제가 더 영광이죠. 미래를 이끌어갈 UBS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제 나이쯤 되면 만나는 사람들이 순 나이먹은 사람들 뿐이라서요."
"하하...."
그렇게 태준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조석민이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 오신 김에.. 좋은 말씀 한 말씀이라도 해주시면...."
"그럼요. 여기 총무이사, 법무이사도 그러려고 온 건데요. 같이 사진도 찍고요."
"진짜요?!"
"예. 진짭니다. 대학생 대표께서 안에 들어가 소개를 좀 해 주시죠.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태준의 말에 조석민은 신이 나서 회장 안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다시 복도에 우리만이 남자 조비서가 허허거리며 말을 이었다.
"오늘 나들이 나오신 것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걸렸으니 할 수 없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말 생각해 두세요. 조비서."
태준의 말에 조비서가 슬쩍 민영을 보더니 뒤통수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사모님... 아니, 법무이사께서 매번 하시던 말씀이 뭔지 이제야 좀 알겠네요.
전화기가 울리면 일이 생긴다.
어딜 가면 일이 생긴다...
저는 그저 법무이사님의 한탄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제가 당하게 될 줄이야."
"그걸 총무이사로 올라올 때까지 공감하지 못했다는게 더 대단한데요...?"
두 사람의 말에 태준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다 법무이사께서 조비서를 잘 훈련시켜준 덕 아니겠습니까? 일이 많은걸 당연하게 느낄 만큼 굴려댔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회장님!? 악역을 지금 저한테 떠미시는 건가요?"
"저는 그저 사실만 말했을 뿐입니다. 최민영 법무이사."
".... 이따 집에서 뵈요.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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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공적으로 동아리 창단식에서 연설을 마치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준 뒤 함께 식사까지 결제해주고 나온 나는 돌아오는 길에 민영과 조비서의 연설 녹화를 각각 보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회장님...."
"이건 보면 볼 수록 재미있네요... 조비서 쇼맨십이 상당하네요."
"제가 연단... 그것도 대학교 연단에 설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졸이라.... 뭔갈 잘 못 말했을지도..."
그 말에 민영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거 하나도 없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 반응도 상당히 좋았잖아요? 회장님도 재미있다고 몇 번이고 돌려보시고..."
"상사도 고객이다. 직장생활도 개인사업이다... 명언이네요. 이건."
"회장님."
그렇게 조비서 놀리기와 칭찬을 반복하던 나는 슬쩍 갤러리 앱을 넘겨 동영상을 끄고 원이와 나 그리고 민영이 찍힌 사진을 보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드디어 자연스러운 가족사진 하나 건졌네...."
그 말을 들은 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뭐... 워낙 바쁘시잖아요. 원이 태어날 때도 연구실에 계셨고... 초등학교 입학식이며 졸업식 전부 원이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가지도 않으셨으니까요."
"내 직업 탓에 원이의 일상을 빼앗을 순 없으니까.... 물론. 대신 그 대가로 가족간의 추억을 희생했지만."
"모두가 같은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니까요. 나름대로 또 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겠죠. 지난번 1달짜리 가족여행이라던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넘기고는 말을 이었다.
"조비서 동생 덕분입니다."
"별 말씀을요. 앞으로도 종종 찾아와 강연도 하고 초청도 하겠다 약속하셨으니 이럴 기회는 많을 겁니다."
"조석민군이 졸업하면 또 그럴 기회가 줄겠지만... 그래도 1년은 행복하겠군요."
그 말에 조비서가 슬쩍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동생보고 대학원에 가라고 해두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솔깃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이것도 망상이지... 오늘따라 너무 들떴네.'
그 망상을 치워내며 말을 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요. 저 좋자고 그 친구 인생을 휘두르면 쓰나요. 그저 예기치 않은 행운을 얻은 것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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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렇게 오랜만의 일상에서 얻은 보물인 사진을 인쇄해 사무실 책상 한켠에 둔 나는 슬쩍 달력을 보았다.
2015년 2월 13일.
"시간 참... 빨리가네."
그렇게 달력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낀 나는 이내 올라온 보고서를 유니버스 원으로 훑어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으음..."
그렇게 보고서 대부분의 내용을 확인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순간.
-부우우...
손에 들린 유니버스 원에 진동이 울렸다.
그 진동에 유니버스 원을 다시 본 나는 새롭게 올라온 보고서를 보고는...
"업무 복귀할 시간이네."
씨익 웃으며 곧장 조비서를 불러 말을 이었다.
"조비서. 출장 준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