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179화 (179/200)

179. 위대한 도약 (5)

김민상 대통령을 앞에둔 태준은 느긋하게 인사하면서도 연신 김민상 대통령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역사가 완전히 뒤집히다 못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완전히 바뀌어버린 기술사 (Technology history).

군사정권의 붕괴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성공적인 실적.

그에 더해 부침없이 계속해 상승중이기만 한 경제환경까지.

태준이 개입한 이래 한국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안정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대한민국의 정치판 역시 사상적 논쟁보다는 계파간 정통성과 안정성을 추구하게 된 덕분이었다.

그리고 전대 노(盧) 대통령이 김응삼계 출신으로 김태충계의 서자로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현임 김민상 대통령은 순수한 김태충계의 직계로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다.

'전생에는 존재조차 몰랐을 만큼 희미했던 사람이지만... 말이지.'

그렇게 태준이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김민상 대통령을 보았듯.

김민상 대통령 역시 태준을 실물로 본 것에 신기함과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1위 부자를 내 눈 앞에 두다니... 게다가 한국의 에디슨, 한국의 록펠러라며 위인전까지 나온 인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것도 잠시.

각자의 분야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두 사람은 빠르게 서로에게 느낀 놀라움을 감추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따로 불러주셨으면 제가 알아서 찾아뵈었을텐데요."

"정치권과는 따로 엮이고 싶지 않아하시는 것 같아... 부득불 거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권에 계신 분들은 예전부터 참 거친 수단을 좋아하십니다.

권력에 길들여져서 그런 분도 계시고,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면을 잃지 않으려고 그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인데 참 마음이 아프군요."

그렇게 태준이 말도 안되는 것으로 시비를 붙어 여기까지 오게 한 김민상을 꼬집자 김민상은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저 뭉개는 말에 태준은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낯빛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청와대에서 공론화는 하지 않았다고 하나... 독과점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셨다기에 한 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통했다니 다행입니다. 유니버스가 한국을 대표해 당당히 세계 무대에서 여러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나....

시장 전체를 잡아먹고 시장에 경색을 불러오는 것도 사실인 만큼 저희로서도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태준의 말을 저 편한대로 해석하는 김민상의 말에 태준은 씁쓸하게 웃음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통령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정보화 사회 이후 적어도 IT분야는 지속적인 경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금이야 유니버스넷이 득세를 하고 있지만, 이후의 미래까지는 장담을 할 수 없지요.

그런 면에서 대통령님의 걱정은 기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말을 길게 끈 태준은 이윽고 김민상의 귀에 듣기 좋은 달달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책임있는 기업인으로서 그러한 '정치권 일각'의 걱정을 어느정도는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 공감을 해주신다니 그럼 제 쪽에서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그렇게 태준의 허락아닌 허락이 떨어지자 김민상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룹해체."

김민상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태준이 그토록 우려하던 정부의 공격이었다.

그나마 태준이 다행이라 느낀 지점은....

"혹은 증자후 일반 주 상장. 어떠십니까? 물론 상장시 리더쉽 약화가 있어선 안되니 상장된 주식의 지분은 저희 연기금에서 최대한 사들여 우호지분으로 남겠습니다."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웃는 얼굴로 칼을 목에 겨눈채 제안을 하는 김민상의 태도에 어지간한 기업인들은 불편한 감정과 함께 무섭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 뭐 어느정도 예상한 대로군.'

태준은 전혀 무서워하지도.

불편해 하지도 않았다.

태준의 이런 평온한 감정에는....

'어차피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자신들도 무엇을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걸 못하는 것에는....

이후의 파장이 어떨지, 내놓은 대안이 가능은 할지, 국민들의 지지는 얻을 수 있을지.

전혀 계산이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김민상, 본인도.

김민상을 둘러싼 여당도.

이미 물밑에서 협상해 어느정도 정치적 교감을 이룬 야당도.

느끼지 못한 실낱같은 번민을 태준이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자연히.

평온한 태도로 자신의 말을 듣는 태준을 본 김민상 대통령은 역으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심기가 불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평온한 것을 보면... 역시 우리쪽의 수를 간파당한 건가....

아니... 어쩌면 간파고 뭣도 할 필요 없이 그저 한국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태준의 침묵이 길어질 수록.

김민상 대통령의 흔들림은 커져만 갔고.

자연히 태준의 입 밖으로 나올 말의 무게 역시 늘어만 갔다.

그렇게 침묵이 무게를 갖고 점차 김민상 대통령을 짓누르던 그 때.

"두 쪽 다 생각해보니....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태준의 입에서 묵직한 말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 말을 들은 김민상 대통령은 놀라움과 안도감에 속으로 환호성을 치기 시작했다.

'됐어...! 어느 쪽이든 우리의 승리다...!'

그러나 이어진 태준의 말에 한 껏 부푼 김민상 대통령의 감정은 다시 저 밑바닥으로 쳐박혔다.

"그러나 흥미로울 뿐.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하겠군요."

"예?"

"그룹을 해체한다 한들... 제가 특정 한 품목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닌 이상 그저 지배구조의 변화만 있을 뿐이고....

일반주를 상장해 일반에 판다 한들... 여전히 제 재산은 그대로... 아니 역으로 더 올라가겠지요. 시장가가 완벽하게 정해져 버리니.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제가 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그랬다가는 '정치권 일각'이 주장하는 유니버스 독점체제는 더욱 공고해지겠지요. 더 넓은 사업 영역에서 유니버스의 이름을 보게 될테니까요.

어느 쪽도 해결책이라 볼 수 없겠군요."

그렇게 태준이 완곡한, 그러나 신랄한 정책 평가가 덧붙여진, 거절의사를 밝히자 김민상 대통령은 마치 망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얼굴이 시뻘개져 반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의 경우에는 독점이지 않습니까? 하다 못해 포털이라도 해체한다면..."

"어떻게 무슨 수로 해체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한국에서는 저희 유니버스 뿐이지만, 미국의 구글도 점유율은 낮지만 사업을 하고 있고, 러시아엔 얀덱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엔 국경이 없지요. 방통위를 통해 인터넷 차단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국경이 있는 것 처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만....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고 왕좌를 내줘야 할 수도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포털을 해체한다?

해체를 원하신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해체를 원하십니까? 연동된 서비스 별로 하나하나 그룹을 물적 분할해 일반에 내다 팔까요?

아니면, 그 연계마저 끊어내고 각 서비스를 포털이 아닌 개별 회사에서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독점 체제는 해소가 될까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유니코인때문에라도 안될겁니다.

되려 제 몸집만 커지겠지요. 결국 도돌이표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태준이 김민상의 어줍잖은 반박을 팩트로 후려갈기며 가루로 만들어버리자 김민상은 더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김민상의 침묵에 태준은 낯빛을 다시 웃는 낯으로 돌리고는 찻잔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한 방안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그렇게 태준이 운을 떼자 김민상 대통령은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맥빠진 소리로 답했고.

그 답에 호응한 태준은 조심스럽게 'KTJC 협약'의 초안을 내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제가 생각한 KTJC 협약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기업측의 입장에서 쓴 것이기에 정부나 노동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으니... 협의가 필요합니다만.

이걸 한 번 봐주시죠."

그렇게 태준이 내놓은 KTJC 협약을 힘없이 받아든 김민상 대통령은 표지를 넘기며 태준이 건넨 협약의 초안을 읽기 시작했다.

'이건....'

그리고 그 초안의 완성도와 함께...

'사실상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다... 김회장 본인이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은 물론... 정부도, 노동운동권 진영도.... 심지어 일반 국민까지 전부 지지할 법한 협약이야.

정당 내에서 전략가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나... 전문가들... 심지어 행시 붙고 올라왔다는 실무자들이 내놓은 안보다 훨씬 더 대단해.....

거기다 참고했다는 살트셰바덴 협약보다도 더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하고는 마치 재미있는 소설책을 보듯 백여페이지에 달하는 협약문을 읽고 또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모든 협약문을 읽은 김민상 대통령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부 다 읽고는 협약문을 마치 대단히 귀한 고서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덮고는 말을 이었다.

"진짜로 이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완전히 태준의 팬보이의 얼굴을 한 김민상 대통령이 한층 공손한 태도로 묻자,

태준은 희미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예. 그게 제가 생각한 답이자...."

- 달칵.

"유니버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찻잔의 마지막 모금까지 삼킨 태준이 말하자 김민상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문서 마지막에... 이 기획안을 저희 여당측의 것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하셨는데... 진짜로..."

"예. 쓰세요. 그러라고 가져다 드린겁니다. 김민상 정부도 전대 정부들 처럼 어느정도 업적은 챙겨가셔야 하니."

"그럼... 감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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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온 나는 별일이 없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출장 준비를 했다.

모든 재료도 모았으니 가장 손쉬운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요?"

"브루나이. 이번엔 가족 여행 겸해서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진짜요?"

"진짜지. 민영이 네가 바쁘지만 않으면."

그 말에 민영이 가는 눈을 뜨고는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거기서 또 일 시킬 건 아니죠?"

"어... 일단은?"

"... 그렇게 불안하게 말하지 말고 확답을 하세요. 회장님 매번...."

"이번에 가면 브루나이 왕실에서 운영하는 호텔에서 묵을 예정인데..."

그렇게 내가 묵을 장소를 알려주자 민영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갈께요. 지금 준비하면 돼요?"

"그래."

민영의 태세전환에 나는 피식 웃음짓고는 출장준비를 마친 나는 그대로 민영과 원이를 데리고 브루나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나저나... 이런 말 물어봐도 되는지 몰라서 여태 가만히 있기는 했는데...."

"그렇게 눈치 볼 필요 없잖아. 말해봐. 둘 째라도 만들까?"

"이 사람이... 진짜... 우리 나이가 몇인데요. 완전 아줌마 아저씨인데 둘 째는 무슨."

"그럼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그렇게 우리 가족 밖에 없는 비행기 객실 안.

고요히 울려퍼지는 비행기 소리를 배경으로 민영이 말문을 연 주제는....

"태균 말이예요. 왜 갑자기 인수를...."

그 조심스러운 태도에 나는 피식 웃음지으며 농담을 던졌다.

"왜. 갑자기 시가쪽 가족이 늘어나서 불편해?"

"시가쪽 가족이 늘어나 불편한게 문제가 아니고... 그 태균이라 불편한거죠. 어쨌든간...

우리 회장님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사람들이었는데... KTJC 주식까지 내어주고 품에 안는다는게...."

그 말에 나는 슬쩍 창 밖을 흘러가는 구름떼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뭐... 지금 가는 브루나이 쪽 문제에서 석화쪽이 필요하긴 했거든."

"그런 이유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지. 어찌 되었든 가족은 가족이니까. 원이가 뿌리 없다고 괄시 받을리는 없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였거든."

"그럼... 진짜로."

"응. 이제는 용서하려고. 충분히 짓밟아줬고. 또... 그 이후에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까."

"반성은 모르는 일이잖아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적도 없는데."

"태균이 아무리 망했어도 태균인데... 인맥으로 김석훈 안 빼내고 조용히 복역시키고 있으니까.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거지.

추가로 김민식까지 완전히 정리하라고 요구했는데. 제대로 해줬고... 노영숙하고는 아예 뭐 연락 끊은지 오래니.

게다가... 태균의 다른 일가는 나한테 해코지 한게 없잖아?"

'현생은 물론... 전생에도 말이지. 뭐.. 괄시는 했지만. 그건 태생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고.'

그렇게 내가 답을 마치자 민영이 슬쩍 내 쪽으로 몸을 기대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회장님. 힘든 결정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힘든 결정은 무슨... 외려 난 기분 좋아."

그렇게 내 결정을 칭한하는 민영의 말에 나는 민영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어찌되었든 태균을 지워버렸잖아. 영원히. 법인도 완전히 지워버리면서 우리쪽 법인 설립일로 만들어버렸고.

복수와 용서를 동시에 했는데 기분이 나쁠리가 없잖아?"

그 말에 민영은 이내 내 말을 이해하고는 함께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요. 참 멋있는 복수네요."

"그렇지?"

그렇게 만족감을 품은채 나는 긴 비행을 마치고 첫번째 가족여행지이자 출장지인 브루나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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