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위대한 도약 (4)
태준의 제안은 상당히 관대한 것이었다.
현재 태준이 가지고 있는 일반주 0.5%, 거기에 발행된 우선주의 1%는 태균물산을 통으로 사고도 남을 수준.
당연히 이는 태준이 손해를 감수하고 내미는 용서의 손길이었으며,
그 와 동시에...
'일단 석화에 발을 걸쳐 두고 브루나이에 딜을 걸어야 걸릴테니....'
태준의 사업상 전략의 한 측면이기도 했다.
'비싸게 사온다 말들이 많겠지만... 어차피 석화는 새로 진입할 수도 없는 사업. 이렇게 주고라도 들여올 수 있으면 들여오는게 이득이지.'
그렇게 제안을 들은 김두혁 회장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태균의 이름은..."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물산도 전부 갈려나가 유니버스에 편입될 겁니다. 요새 사람들이 그러죠. 대한민국에 양반은 사성 이씨, 대현 정씨, 그리고 우주 김씨가 있다고.
그 말대로 철저히 태균 김씨를 버리고 우주 김씨가 되어야 합니다."
"서자로 살더니 본가를 서자... 아니 얼자 취급 하겠다는 게냐."
김두혁 회장의 담담한 말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라도 살아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물산 실적... 좋지 않던데요. 이대로 태균이라는 썩은 이름을 끌어안고 저 아래 깊은 바다로 수장될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태준의 말에 김두혁 회장은 날카롭게 눈빛을 벼렸다.
'이것이 내 최후의 거래인가. 거래 상대가 태준이가 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군.'
일생의 마지막 거래.
자신이 일군 모든 것을 역사의 저편으로 던지고 가족들을 살릴 수 있는 거래.
그 거래에 임하는 김두혁 회장은 병상에 누워 있는 노인이 아닌, 하나의 왕국을 세운 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네 품에 안길 수 있는 자들은 어디까지냐."
그렇게 망국이 된 태균의 왕.
김두혁 회장이 침묵을 깨고 묻자.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제국의 지배자 태준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 생물학적 아비의 직계를 뺀 전부입니다."
그 단순하고 명쾌한 말에 놀라서였을까.
아니면, 태준의 지정한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서였을까.
김두혁 회장은 혼신의 힘을 다해 벼린 칼날과도 같은 눈빛을 풀며
"꽤나 너그럽구나."
꽤 허탈하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태준은 김두혁 회장의 반응을 보고도 그저 제 할 일을 다 할 뿐이었다.
"듣기로 마지막 발악으로 민식이에게 김석훈과 노영숙의 지분이 한데 상속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부분을 잘 처리해주신다면. 나머지 가족들에 대해서는 제 약속대로 하기로 하지요."
"상장 폐지 절차에 들어가면 되겠느냐."
"그 부분은 재량에 맡기죠. 어차피 오너일가 지분 전체가 50%가 넘지 않습니까.
만약 KTJC 일반주 0.5%, 우선주 1%를 나누셔도 좋다면이야 일반 주주들을 쳐내지 않으셔도 좋겠습니다만...
그나마 남은 자손들 지켜주고 싶으시다면... 온 힘을 다해 주식을 처분하셔야 할 겁니다."
"알았다."
그렇게 태준이 김두혁 회장과의 마지막 거래를 마치고 고택 밖을 빠져나오자, 차 앞에서 대기중이던 조비서가 차문을 열어주며 태준에게 말을 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그 말에 조비서는 뭐라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그대로 태준과 함께 고택에서 멀어져 갔다.
...
..
.
그렇게 태준이 평창동 고택을 비밀리에 방문한지 며칠이 지나고.
- 태균물산, 자진 상폐 선언... 공개매수 진행.
- 태균물산의 갑작스런 상폐 선언의 배경은? 금융계, 이번 상장폐지는 적절한 손익절 타이밍 될 것.
- 태균물산, 여유자금은 어디서....? 공개매수 정상적으로 진행 가능한가?
태균물산의 상장폐지 선언과 함께 공개매수 절차에 들어갔고.
6월이 되어서는....
- 태균물산, 상장폐지 확정. 모든 지분 소각 완료. 우려와 달리 상장폐지 성공.
- 상장폐지에 들어간 비용 대부분 김두혁 회장 일가의 개인 자산에서 나와...
- [포토] 상장폐지에 들어간 태균물산... 저무는 해.
- 상장폐지에도 끝까지 버틴 3%의 사람들... 재상장 한다해도 최소 5년은 바라봐야...
전체 주식의 97%를 공개매수 하여 상장폐지에 성공하였다는 뉴스가 유니버스넷 경제면에 작게 등장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태균'이 잊혀져 가던 그 무렵.
"제안서는?"
"다 되었습니다."
김두혁 회장은 현재 회사의 전권을 맡고 있는 큰 아들 김석현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결국 장외시장에서도 3%의 행방은 찾지 못한게야?"
"예. 주주 명부에 기록된 연락처도 예전 연락처고, 별도의 광고까지 진행했음에도...."
김석현의 말에 김두혁 회장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건 그 사람의 복이니. 석민이네는? 오늘 들어오는 게야?"
"예. 오늘 본가로 들어온답니다."
"집까지 전부 팔아 치울 필요는 없었는데..."
"평창동 고택도 저당잡혀 진행한 일 아닙니까. 그런 상황인데 셋째네가 뺄리는 없지요."
그 말에 김두혁 회장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민식이 지분은?"
"전부 매입했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둘째 쪽은 전혀 모르니... 선선히 받아들였습니다.
애초에 공개 매입선언으로 매입하는 것이라 가격이 후하기도 했고요."
"뒤탈은 안나게 잘 했겠지?"
"예. 미국에서 사업하나 할 수 있도록 뒤도 봐줬으니 별 일 없을 겁니다."
그 말에 김두혁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보내. 보도자료 뿌리고."
...
..
.
그렇게 태균물산의 제안서가 태준에게 보내짐과 동시에 이 사실이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지자....
- 태균물산, 자신 상장 폐지 하더니 뒤통수!? 유니버스에 인수 제안서 보내....
- 유니버스 과연 태균 물산을 인수할 것인가? 전문가들... NO.
- 태균물산의 충격적 제안.... 물산이 가진 모든 사업부 잘게 쪼개 유니버스 품으로...
- 팔지 않은 3%의 주주들... 로또 맞나?
- 장외시장에 태균물산 매수 주문 쌓여... 매도는 0
언론을 시작으로 온 세상의 시선이 태균 물산과 태준의 입에 모여들었다.
- 태균... 아무리 그래도 왕년엔 잘나갔는데...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무는 구나.
- 저물기야 진즉에 저물었지. 지금은 역전 기회 노리는 느낌이고.
- 그 둘째 아들 잡혀간 이후에 완전히 뭐 폭망 아니었음?
- ㅇㅇ. 망하다 못해 갈기갈기 찢겨 나감. 그 때 떠오르는 태양 유니버스가 죄다 집어 삼켜서 지금 이만치 큰 거잖어.
- 진짜.... 사업가들 마인드는 일반인인 나는 이해가 안간다. 나 같으면 배알 꼴려서라도 밑으로는 안 들어갈텐데.
- 대현도 완전히 유니버스에 들어가는 판국이야. 대현간판 단 다른 세 그룹도 전부 유니버스에 들어갈 준비 하고 있는데....
거기다 범 사성계인 한빛그룹도 이번에 제안서 넣는다고 언플 오지게 쳤는데...
살아 남기 위한 시대의 흐름으로 봐야하지 않겠어?
- 이번 딜은 사실상 석화 사업부 팔테니 나머지는 덤으로 사주세요 하는 꼴임. 유니버스가 친환경 운운한게 있어서 절대 인수 안할 듯.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태균이랑 한빛을 둘 다 인수해서 화학 쪽까지 완전히 자리 잡으면, 유니버스 입장에선 모든 생산 공정을 내재화 할 수 있는데? 그 시너지 생각 안함?
- 그런 시너지 생각하기 전에 KTJC우나 더 사 모아라. 사실상 지수 추종 ETF나 다름 없으니까.
- 지수추종ㅋㅋㅋㅋㅋ 생각해보니 ㄹㅇ이네... 코스피 전부 유니버스가 끌어 올리는 거고... 대현에 한빛, 쭉정이긴 하지만 태균까지 전부 먹는다고 하면...
- ㅋㅋㅋㅋ 김회장 투자로 돈 벌었다더니 사업이 아니라 펀드개발하는 거였네.
그렇게 태준의 결정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하는 사이.
태준은....
"인수 합병에 난색을 표했다고요?"
조비서를 통해 이번 인수 합병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미리 보고받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예.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제동을 건 모양입니다."
"청와대.... 거 참... 명목은 역시..."
"예. 독과점 우려입니다."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낀 태준은 잠시 생각하다 슬쩍 달력을 보고는 이내 달력의 날짜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감시즌이니 얼굴 한 번 비추라는 말이군요."
그 말에 조비서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말을 이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죄송합니다. 미리 파악했어야 하는데."
"그 쪽에서 대놓고 우리한테 국감에 나오라 하진 않았을테니... 조비서가 알 수 없었겠지요.
하물며.... 우리가 정치권과 거리를 둔지 꽤 되기도 했고..."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그럼 그걸 대가로 인수합병 허가를 받아와야겠군요. 겸사겸사 출장 전에...."
그렇게 태준이 말꼬리를 늘리며...
-툭툭.
책상 위에 있는 'KTJC 협약' 초안을 치고는 말을 이었다.
"이 초안도 전달하는 것으로 하고요. 아무래도 모양새로나 여러가지 상황적으로나 기업측에서 이 안을 꺼내드는 것 보다는 정치권에서 꺼내주는 편이 나을테니.
그리 업적을 원한다니. 재료를 던져 줘야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이 넘게 걸린 유니버스의 상장은 '태준의 국감 출석'을 대가로 일사 천리로 이뤄져....
- 태균/한빛, 유니버스 품으로... 각 그룹 오너들 KTJC 일반주 0.5%, 1.2%에 보유 지분 전량 매도.... '증자분이라도 좋아.'
- 태균/한빛의 일반 주주들.... 존버의 승리... 최종 주가 대비 13배 정도의 차익 얻어.....
- KTJC우 주주들, 일반주 증자를 통한 김태준 회장 체제에 압도적인 찬성... '김태준 회장 없는 KTJC는 상상도 할 수 없어.'
태준의 바람대로 유니버스 인프라 산하에 유니버스 석화라는 자회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렇게... 석화를 얻은 태준은 정부에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국감장에 불려가 있었다.
"김태준 증인. 이번에 우수 납세자 표창도 받으셨는데... 그렇게 납세를 할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준 국민을 위해 따로 준비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나름대로 준비중인 것이 있습니다."
"유니버스 그룹도 꽤 많이 성장했는데... 아직 사회공헌 사업 재단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 역시 준비중에 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그리고 우주대 출신자들이 신규 채용에서 유니버스 그룹에 많이 들어간다는 통계가 있던데... 학벌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 유니버스 그룹은 통합 공채 시험으로 시험 초기부터 사진은 물론, 학력, 학벌, 성별란을 없애 채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우주대 출신자들이 많이 합격하는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별도의 자격증 역시 요구하지 않고 있으며, 시험 역시 업무에 필요한 자질만을 평가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국감장 스타가 되고 싶은 국회의원들의 파상공세에도 태준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럼 이것으로..."
그렇게 국감이 끝난 이후....
- 역시 김태준 회장... 완벽 그 자체네.
- 답변 함과 동시에 옆에 동석한 비서가 유니버스 내부 망에서 내부자료까지 까면서 말하니 의원들 말을 못하더라.
- 그 와중에 모범납세 칭찬하는 거 봤냐? ㅋㅋㅋㅋ 사성 회장 똥 씹은 표정되던데.
- 샤를롯테 회장도 표정 장난 아니었음. 거의 뭐 원수보듯이 하더만. 그럴 시간에 한국말이나 더 배우고 오지... 일본식 발음 그거 진짜 좀...
태준은 다시 한 번 전 국민적 영웅이 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감까지 성황리에 마친 태준은 국감을 마치자마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민상입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태준입니다."
김응삼의 정치적 직계 후계자인 김민상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비밀리에 청와대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