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혁신의 시대 (7)
총리와의 거래를 마치고 나오는 길.
타케미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너무 관대한 결정이 아니신지요."
"관대하다?"
"예. 여태까지 그 어느 국가도 KTJC의 지분을 획득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타케미치 의원께도 그리 보였다면 제 전략은 대성공이군요."
"예?"
나는 타케미치의 되물음에 따로 설명하지 않은채 모리 총리에게 던진 제안을 다시금 떠올렸다.
"재무성 승인을 해주시면 저희가 확보한 JMG지분 전부를 넘기지요. 물론 승인 이후에 일본 연기금에서 사가는 형태를 취해서 넘겨드릴 겁니다.
물론 매입가 그대로 그 어떤 이윤 없이 블록딜로 넘겨드리겠습니다. 매입가는... 계약 체결 당시 주가 기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정부는 세계 시총 1위 기업의 일반주 1%와 우선주 A 4%, 우선주 B 5%에 50%의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 있게 되겠지요.
덤으로 JMG에 소속된 일본 소재부품기업들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게 되고요."
확실히 내가 모리 총리에게 건넨 제안은 타케미치가 말한 대로 꽤 관대해 보이는 결정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어차피 일본 소재부품 기업들의 핵심 기술 소유권은 전부 우리 QULAB이 먹어치웠지. JMG는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고.'
JMG 산하 기업들이 가진 모든 특허를 전부 사온 뒤에 그저 껍데기만 남은 기업을 일본 정부에 팔아치우는 셈이 되는 것이었기에,
나로서는 손해보는 장사가 절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번 투자의 80%에 해당하는 원금을 회수했다는 것도 크고.'
특히나 별도로 JMG의 특허권을 사오는데 쓴 비용을 제외한 사실상의 원금을 모조리 회수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손해는 커녕 이득도 이런 이득이 없지.'
엄청난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물론, 일본 정부 역시 손해를 보는 것만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번 딜로 일본 연기금이 각국 KTJC에 1%의 주식을 보유하게 됨과 동시에 우선주 역시 상당부분 보유하게 되는데...
향후 성장성이나 배당을 통한 캐시 플로우를 고려하면... 일본측의 이득이 상당해보이는데요."
일본 정부 역시 어찌되었든 투자한 것 이상의 이득을 챙긴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기에 타케미치의 말처럼 '관대한 결정'인 것도 사실이었다.
"자국의 이득인데도 불만인 것입니까?"
나는 뭔가 아쉽다는 듯이 말하는 타케미치에게 놀리듯 물어보자 타케미치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저로서도 감사한 일이지요. 다만..."
"다만?"
"너무 과하게 엮이지 않는 편이 회장님께도, 그리고 일본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
타케미치의 말에 내가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빤히 타케미치를 바라보자, 타케미치가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일본은 무늬만 민주국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걸 이용하고 있는 것이고요."
"예. 실질적으로는 귀족정 국가라 할 수 있지요.
구 화족들은 정치인이라는 현대화 된 이름을 얻어 세급해서 그 세를 이어나가고 있고, 구 화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새로 편입되어 등장한 정치 신예들 역시 그런 귀족적 마인드에 젖어버린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리고 그런 귀족적 문화의 특징중 하나는 바로.... 명분을 통한 약탈입니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채, 그저 명분과 선동으로 약탈을 하는 국가에 시달리다 보면... 회장님께서도 일본을 버리는 선택을 하실지도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타케미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타케미치 의원. 제가 그런 얕은 수작에 당할리가 없지 않습니까."
"예. 그렇지요. 하지만... 저 역시 일본의 정치인이자 회장님의 가신인지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걱정?"
"예. 회장님께서 일본을 버리실까. 그것이 걱정되었을 뿐입니다. 어찌되었든 현재는 일본의 의원이니까요."
"제가 당할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당하실 리가 없고, 회장님께서 당하게 두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나는 타케미치의 양복에 달려있는 중의원 뱃지를 슬쩍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운이 좋은 모양입니다."
"예?"
"타케미치 의원같은 사람과 인연이 되어 여태 서로 인연을 맺고 있으니 말입니다."
"새삼스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모국인 일본도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겁니다."
"... 하하.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뿌리를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한 법입니다. 특히. 정계에 나온 자라면 더더욱. 그리고 그런 사람일 수록 믿을 수 있지요."
그렇게 타케미치와 이야기를 나눈 나는 타케미치의 배웅을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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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매각이 사실입니까?"
"거의 결정 됬다고 봐야지요. 후요도 내부적으로 팔아넘긴다고 결정했고... 내각에서도 서류만 넘어오면 승인해준다고 다 약속된 상태라더군요.
니콘도 듣기로 미쓰비시 금요회에서 결정이 되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캐논과 비슷하게 아예 니콘 그룹째 넘긴다고 하더군요."
"과연.... 결국 결단도, 제안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지는군요."
"라이벌이니 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김회장 그 자가.... 우시다 사장... 당신네 니콘과 우리쪽 캐논 중 둘 중 하나만 인수하겠다고 했다는 점이오."
캐논의 이사회 의장인 미타라이 후지오는 니콘의 이사회 의장 우시다 가즈오의 질문에 답하고는 잠시 침묵하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상 우리끼리 경쟁하게 만들겠다는 수작이지요. 그래서 우리 후요 쪽에서도 그렇고, 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우시다 의장, 당신하고 담합을 할 필요가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시다 의장도 그럴 생각이 있을 듯 싶기도 했고요."
"담합? 가격을 맞추자는 것입니까?"
"가격을 맞추는 것은 어렵겠지요. 우리들 뒤에 선 사주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 그 분들 입장에선...."
그렇게 미타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뒤 빤히 보자, 우시다 사장이 말을 이었다.
"이미 팔기로 한 이상 어떻게든 비싼 값에."
그리고 그런 우시다 의장의 말에... 미타라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경쟁상대보다 빠르게... 팔기를 원할테니. 그리고 우리 둘 중 하나는 무능을 이유로 목을 내놓아야 하겠지요. 그 불운은 서로 피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피차 해온 일이 광학업계의 일 뿐이니까요. 비책이 있으십니까?"
"비책... 이라기에는 짧은 시간 머리나 좀 굴려본 것이라 꺼내놓기 부끄럽지만 내 생각이 있소."
그렇게 이어진 미타라이의 말에 우시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제안서를 쓰는 것은 우리 일이니 그런식으로 가도 좋겠군요."
"예. 기왕지사 팔려가는 신세. 어떻게든 우리 목숨은 보전하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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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국에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니콘과 캐논 양측으로부터 제안서가 도착했다.
"니콘이 캐논을 인수 합병하고, 그 인수합병 된 신생 기업을 우리가 인수하라....?"
정확히는 양 사의 대표의 사인이 들어간 하나의 제안서.
그 제안서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자들... 내가 둘 중 하나만 산다고 하니 이렇게 나오는 군요."
"거절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럴리가요. 애초에 둘 중 하나만 사겠다고 한 것은 빠른 결단과 서로 간의 경쟁을 시키기 위해서였는데요.
두 번째 의도는 맞아 떨어지지 않았지만, 첫번째 의도가 맞아 떨어진 것 만으로도 우리로서는 이득입니다. 특히니 니콘이 캐논을 인수한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 군요."
"그럼 이대로 제안서를 받아들인다고 전달하겠습니다."
"아뇨. 그래도 바로 받아줘서는 안되죠. 기왕에 하는 일 처리 한 번에 끝내야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조비서를 옆에 세워둔 채 펜을 들어 제안서에 내용을 수정한 뒤 조비서에게 전달하며 말을 이었다.
"여기 이걸 팩스로 보내세요."
"예."
그렇게 조비서가 내가 수정한 제안서를 들고 사라지자 나는 조비서의 뒷모습... 정확히는 조비서의 손에 들린 제안서를 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잘 알아들을지 모르겠네.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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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의 의도에 따라 수정된 제안서를 받아든 니콘과 캐논의 의장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받아들일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받아 들일 줄은 또 몰랐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예 게이레츠 분리를 해 JMG 산하로 들어오라니..."
"다만 걸리는 게 있습니다."
"걸리는 것?"
캐논의 의장 미타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리킨 곳에는....
- JMG로 넘어오기 전 각 사는 특허와 R&D 부문을 QULAB-J에 매각하고 나머지 부문을 JMG 산하에 편입한다.
- 특허 사용권 계약은 JMG 소속 회사들의 그것과 같은 요율을 적용한다.
- 합병시 각 회사의 지분은 JMG 10: 니콘 6: 캐논 4으로 계산한다.
태준이 특약으로 적은 조건들이 들어가 있었다.
이 조건을 본 미타라이는 가만히 들여다보다 말을 이었다.
"JMG의 날아오르는 주가를 생각하면... 당연히 이 편이 이득인데... 왠지 꺼림직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기술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유니버스와는 분리하는 느낌이 드는 군요."
"KTJC가 JMG 지분을 50%나 들고 있으니 JMG를 팔아 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무슨 의도인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 군요."
"김회장이 미국에서 벌인 전적이 화려하니 말이죠."
그렇게 두 사람이 자료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그 때, 우시다 의장이 합병 이후 가 계산된 지분을 살펴보고는 놀란 눈으로 미타라이를 보았다.
그 표정에 미타라이가 우시다가 보던 자료를 빼앗다시피 가져가서 보자...
KTJC-J의 합병 후 JMG주식 보유율 : 25%
JMG 일반 주주의 합병 후 JMG주식 보유율 : 25%
전 니콘 주주의 합병 후 JMG주식 보유율 : 25%
전 캐논 주주의 합병 후 JMG주식 보유율 : 25%
절묘한 비율로 비중이 조정되어 있는 것과 함께...
- 니콘과 캐논의 주주에게는 합병이후 배분될 주식에 대한 지분인수요구권을 부여한다.
- JMG는 인수한 지분을 소각한다.
추가로 걸려있는 옵션이 미타라이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를 본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건..."
"예. 김회장이 우리에게 보낸 신호입니다."
"말을 갈아탈 것이라면 확실히 하라는 신호군요."
미타라이의 말에 우시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걸 그 쪽... 그러니까 후요의 사주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우리 미쓰비시야... 엄밀히 말하면 돈이 급한 것은 아닌지라 이 제안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만, 후요는 지금 돈이 급하지 않습니까?"
"받아들이게 설득하는게 제 일이지요. 다행히... 김회장이 설득할 재료를 주지 않았습니까."
"지분인수요구권 말입니까."
"예. 이 권리와 함께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을 받는 안을 후요측에 제시하면, 아마 받아 들일 겁니다."
"하긴.. 후요의 입장에선 외려 선택지가 늘어난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대출로 막고 JMG의 주가 인상을 노릴 것인지. 아니면 당장 JMG의 주식을 팔고 급전을 최대로 당길 것인지."
"거기다 일단 R&D 부분을 매각하며 들어올 돈도 있으니... 받아 들일 겁니다. 아니... 받아들여야겠지요... 우리가 살려면."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쓰게 웃어보였다.
"살아서 봅시다."
"그럼 무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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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번의 제안서가 오가고, 완벽하게 정리된 계약서를 토대로 계약이 이뤄지자....
- JMG, 니콘과 캐논을 품다. 연구부서는 QULAB으로....
- 니콘, "JMG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더 큰 시장을 노린다."
- 캐논, "니콘과 한 식구가 되어 기뻐."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JMG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JMG의 주가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요."
"예. 한국, 일본 양국에 조성 예정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일할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우리 유니버스쪽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JMG 니콘, JMG 캐논의 노광 사업은 별도로 빼서 우리 쪽으로 넣는 것도 진행중입니다.
JMG에 내줄 대금까지 확보되면 바로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부분에서 대금이 부족하다 싶으면... 우리 KTJC 일반주 좀 더 끼워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전처럼 또 사재를 터시려는 겁니까?"
"예. 어차피 따로 돈 쓰는 곳도 없는데 쌓아만 둬서 뭐합니까. 돈을 지분으로 바꿔서 눈속임 하는데 쓸 수 있으면 그렇게라도 써야지.
그렇게 정리 다 되는대로, 우리가 보유한 JMG지분은 전부 일본연기금에 넘기세요. 거래 마친 뒤에 최종적으로 우리 KTJC 지분 구조 어떻게 되는지 보고서 올리시고요."
"알겠습니다."
나는 그 JMG 주가 상승을 신호로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세 달 뒤.
"정리 완료했습니다. 여기 일전에 말씀하신 지분관련 정보입니다.
이번엔, 말씀하신 대로 모든 작업 완료 후, 기존 주주들에게 추가 매입의사를 물어본 뒤, 남은 부분을 다시 순환출자 지분으로 넘겼습니다.
오브라언 재단과, 정민현 사장이 추가 매입의사를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습니다."
김태준 - 50%
각국 KTJC간 순환출자 지분율 - 20.57% (각 국 KTJC끼리 5%씩 보유)
정영주 - 12.33%
오브라이언 재단 - 7.5%
정민현 - 3%
타케미치 노시히코 - 1.34%
최민영 - 1.34%
김기백 - 1.34%
손의정 - 1.34%
JMG - 1.24%
그렇게 보고서를 본 나는 오오와다의 이름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조비서에게 물었다.
"오오와다 재무이사는 아예 오브라이언 재단에 들어간 모양이죠?"
"예. 재단과의 블록딜로 재단 지분의 1/3을 받고 KTJC 주식을 넘겼다고 합니다."
"흠. 그러고보니 마코가 이번에 오브라이언가 후계자로 정식 지정되어 후계자 수업에 들어갔다더니.... 그게 영향이 있었나 보군요."
"예. 그리고... JMG 주식 블록딜에 대한 매각대금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하실겁니까?"
조비서의 물음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탄도, 포도 전부 준비되었으니 이제 진짜 사냥을 해야지요."
"진짜... 사냥이요?"
조비서의 질문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ASML을 노릴겁니다. 거기가 진짜거든요. 니콘과 하고 있던 특허전쟁을 우리가 이어 받았으니... 그걸 마무리하는 것을 미끼로 ASML의 주식을 챙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