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비트코인 (3)
"플랫폼은 선도 악도 아니야. 그저 주어진 환경일 뿐이지."
플랫폼의 무서운 점은
플랫폼이 아무리 싫어도,
플랫폼의 약탈에 아무리 당해도,
플랫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플랫폼에서 벗어나는 순간,
개인은 일순간에
물 밖에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문명에서 벗어난 바바라리안이 되어
생존 그 자체를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태준이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을 다시 읽어보며 내뱉은 "선도 악도 아닌 환경"이라는 혼잣말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국가가 싫다고 무국적자로 살 수 있나? 무국적자가 되는 순간 완전히 보호대상 외의 존재가 되는데...."
가장 고전적인 플랫폼.
국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국가가 싫다, 혹은 국가가 무섭다라는 이유로
국가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개인의 선택지는 단 둘 뿐이다.
'이민을 가거나' 혹은 '죽거나'
이를 다시 플랫폼으로 생각해본다면,
대체 플랫폼을 찾거나
혹은 인터넷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자진해서 인터넷 세계에서 물러날 게 아니라면, 결국 사토시 나카모토. 당신도 우리 유니버스 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어.
인터넷 세상에서 유니버스 외의 설 땅은 남아있지 않을테니까."
문제는 현생의 플랫폼 시장에서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대체 플랫폼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태준이 만든 유니버스는 선점효과와 더불어 다소 무리해 보이는 서비스들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사용자들을 잡아가두었고,
이러한 서비스들을 후발 주자들이 따라한다고 해도, 기존의 유니버스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옮겨갈 유인이 없게 되어 유니버스의 장악력이 날로 커져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방금 전 태준이 내뱉은 혼잣말 처럼....
"우리가 투자했던 야후 측에서 사주의 잔여 주식을 매입해 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IT붐 시절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상장해온 수많은 대채 플랫폼들이 '유니버스넷'과의 직접적인 경쟁에서 패배하며,
"또한 러시아의 얀덱스 역시 최근 저희 유니코인 거래가 늘어남에 따라 자체적인 결제시스템을 포기하고 유니버스 금융에 페이먼트 시스템 도입에 대한 논의를 타진해왔다고 합니다."
과거 태준이 뿌린 투자금을 인연 삼아 생존을 위해 하나 둘 흡수되어 사실상 유니버스 2호점, 3호점으로 전락해 유니버스의 세상이 되었으니
사토시 나카모토의 계획은 그 자체로 무너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되겠지. 전생에서 돌풍을 일으킨 기술인데..."
그러나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비트코인의 정해진 몰락을 태준은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플랫폼 시장에서 완벽에 가까운 독점체제를 만들어낸 것처럼,
비트코인을 대상으로도 다른 플랫폼들에게 했던 투자-종속 전략을 그대로 구사하며,
비트코인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 유니버스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플랫폼을 내놓았다는데?
- 거래소는 뭐임?
- 그 사토시 나카모토가 새 논문에서 밝힌 비트코인이라는 미래 화폐 모델인데. 그 논문이랑 같이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는 기본 프로그램도 오픈소스로 내놨거든.
- 음? 그럼 그걸 누가 보장하는데?
- 개인이?
- 그게 무슨 돈이야.
- 어차피 달러도 심심하면 양적완화하고, 엔화도 양적완화로 돈을 뿌려대는데 우리가 직접 돈 찍어서 쓴 들 무슨 차이가 있겠어.
- 그래서 그걸로 뭐 사먹을 수 있음?
- 아직 결제 해주는곳은 없는데... 유니버스에서 나섰으니 이제 생기지 않을까?
비트코인.
전생에는 부패한 중앙권력의 가짜 돈을 저격하기 위해.
현생에는 전생의 저격대상과 함께 태준의 유니버스까지 노리고 나온 이 자칭 미래의 돈,
인터넷 시대의 황금에
태준은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플랫폼의 힘을 일부 나눠주며 가치를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태준의 경쟁자들이 그러했듯 그 자체로 독이 되어 비트코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 [Tech] 유니버스가 주목한 비트코인, 진짜로 가치가 있는 걸까?
- 사토시 나카모토의 공개저격에도 비트코인 끌어안는 유니버스
- 유니버스 암호화폐 전용 거래소, '코인플래닛' 오픈, 초기 거래 데이터 확보 위해 원화 결제만 지원.... 내달, 유니코인 환전도 허용할 방침
- 유니버스 금융, 자사 페이먼트 서비스 옵션에 비트코인 추가 예정. 수수료는 유니코인보다 높은 0.05%
- 유니버스 리테일, 쇼핑플래닛 입점 점주들에게 비트코인 결제 가능 옵션 및 유니코인 자동 환전 기능, 내달 중 지원...
그렇게 스며든 태준의 독은.
사람들을 플랫폼의 독재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그 거창한 의도와는 달리,
점차 태준의 영향력 아래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히... 태준의 이런 전략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최초 논문,
'추악한 플랫폼 경제'에 공감했던 많은 이들을
- 결국 사토시마저도 김태준 회장을 넘어서지 못하는구나...
- 넘어서기는 커녕 그대로 하이재킹 당함ㅋㅋㅋㅋㅋ
좌절시키도 하고,
- 어쩌면 김태준 회장도 사토시의 비전에 공감해서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것 아닐까?
- 그럴지도 모르지. 애초에 좀... 유별나달까? 독특한 사람이잖아. 다른 대기업 총수 같았으면 혁신 운운하기 전에 실적과 돈을 말했을텐데.
- 하긴... 그러고 보면 최종 모회사 KTJC 시리즈에서 김회장이 배당받는 비중이 0.5%밖에 안되잖어? 나머지는 전부 재투자고.
감화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적대하는 대신 포용함으로써 유니버스넷의 영향력을 확장시킨 태준의 전략은 빠르게 시장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 심지어 기술도 그냥 통으로 넘겨줘버린 수준임. 애초에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 누구나 그 기술을 갖게 되는 거니까...
결국 사토시가 바라는 대로 암호화폐가 퍼져나가면 승자는 현 시점, 지구상 IT디벨롭 파워가 가장 강력한 김태준 회장의 유니버스가 우위를 차지하게 될 거임.
- 니 말 듣고 KTJC-K우 풀매수 했다.
- KTJC-K우는 우선주 치고 지금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사야하나?
- 살거면 A를 사야지.
- 뭘 사도 똑같아. 어차피 결국 지배구조 보면 유니버스 그룹 전체에서 나온 이익이 KTJC 시리즈에 돌고 돌게 되어있으니까.
외려 환차손 입기 싫으면 자국 KTJC에 넣는게 좋을 수도 있음.
- 역발상으로 환차익 노리면 KTJC-A에 넣는 것도 전략일 수 있겠네.
...
..
.
"유니버스 그룹의 모회사인 KTJC-K의 시가 총액이 한국 경제 사상 최초로 100조를 달성하였습니다.
우선주로만으로 한국 최대 기업의 자리를 상장 최단 기간인 3개월 만에 달성한 것입니다.
자세한 소식은 백현섭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 KTJC-K의 시총 100조 돌파에 한국 금융가는 물론 세계 금융가 역시 들썩였습니다.
특히 한국을 제외한 미국, 러시아, 일본, 태국, 베트남, 브루나이에도 네트워크 출자를 통해 회사를 갖고 있는 터라 한국장이 마감되고 열린 미국 나스닥에서도 연신 최고가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나갔습니다.
각국에 설립된 KTJC의 모든 우선주 시가총액을 다 더할 경우 700조에 달하는 금액으로 우선주로만 놓고 보았을때에는 전 세계 1위 시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KTJC의 약진에 금융권에서는 김태준 회장과 그 측근들이 들고 있는 보통주의 가치 총액을 대략 700조의 1.2배 정도로 보고, KTJC 전체 시총을 1500조에서 1600조로 보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산된 시총은 달러로 1조 4000억달러로 현 시점 가장 거대한 시총을 가진 중국 공상은행보다 무려 네 배나 큰 수치이며, 미국으로 한정지었을 경우 미국 시총 1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여섯 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이에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이번 표지 카피를 조선의 별명이기도 했던 '은자의 기업, KTJC'로 정하고 한복을 입은 김태준 회장의 사진을 표지로 게제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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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기업의 오너가 된 기분은 어때요?"
침대위에서 TV를 보던 민영이 내게 뉴스 보도를 가리키며 묻자, 나는 피식 웃어보이며 그 질문에 답해주었다.
"음? 뭐가 어때. 달라진 게 어디있다고. 아직 갈 길도 멀고."
"네? 1위를 했는데 어딜 어떻게 더 간다는거예요?"
그렇게 내가 내민 사과를 받아들며 말을 잇는 민영에게 나는 때 아닌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KTJC가 1위를 한거잖아? 그 말인 즉, 우리 그룹 전체의 힘을 다 모아서 1위가 되었다는 거지.
주가는 가치를 선반영하는 속성이 있으니까... 실제로는 미래까지 전부 당겨와서 1위를 한 셈이야."
내 말을 듣고는 뭔가 '자기 비하적 발언'으로 오해를 한 것인지 민영은 안타까워하는 표정 반,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 반을 섞은 묘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건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민영의 그런 질문에 나는 설명이 부족했음을 느끼고 마저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지. 마찬가지지만. 조금 달라. IT가 메인이긴 하지만, IT 중에서도 인터넷 사업이 메인이잖아?"
"그야.. 그렇죠?"
"그런데 우리는 반도체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가전도 있고, 통신도 있고, 금융도 있고, 미디어도 있고, 리테일도 있잖아?
이 모든 것을 다 합치고 나서야 간신히 1위를 차지한 셈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겠어.
진짜 대단한건 밀려나는 와중에도 미국 시총 1위를 지키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대단하지.
거긴 윈도우랑 오피스 말곤 없는데도 아직도 1위잖아?"
"콘솔 게임도 있긴 해요. MP3 플레이어도 있었고요. 최근에는 윈도우 모바일 폰 새로 내놓기도 했잖아요?"
"그래도 전 방위로 사업체를 펼치고 있는 우리보다는 그 크기가 작아야 하는데... 여전히 미국 최대 기업인걸 보면 대단한거지."
그렇게 내 설명이 끝이 나자 민영은 그제야 내 말의 취지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네요."
"이제는 각 분야에서 1등을 노리면서 사업도 다각화 해야지."
"각 분야 1등이요?"
"응. 우선은 반도체, 가전에서 확고한 1위자리를 차치하고, 금융쪽도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서 전 세계 모든 시장에 전부 접근이 가능하게 만들어야겠지.
미디어쪽은... 내가 손 댄다고 되는게 아니니 판만 계속 깔아주면 되고.
리테일 부문은 더 강화해야겠지. 최근에 코인플래닛에 몰린 비트코인으로 거래 수수료도 몰리고 있고, 돈도 꽤 벌렸으니 이젠 투자를 해야지.
QULAB에 투자하는게 수성을 위한 거라면, 리테일에 투자하는건 공격을 위한 거랄까?
겸사겸사 인프라 쪽도 내부 거래긴 하지만 실적 좀 쌓고."
"그럼 어디에 투자하게요?"
내 포부에 민영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말며 웃음짓고는 묻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각 지역에 대규모로 땅을 사들여서 물류창고를 지을거야. 그리고 거기서 물류 보관부터 배송까지 전부 우리가 대행할 생각이야."
"배송까지라면...."
"응. 택배사랑 항공사 해운사를 차례로 사들여야겠지. 거기다 물류창고는... 사실상 쇼핑몰처럼 운영할 생각이야. 그럼 오프라인도 바로 잡을 수 있으니까."
상상 이상의 거대한 투자규모였을까?
민영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돈이 되겠어요? 아무리 회사에 돈이 많이 쌓였다고 해도..."
"돈이 쌓였으니 투자를 해야지. 유보금으로 남겨둬봐야 주주들한테 배당만 잔뜩 해주게 될텐데.
쓸거 다 쓰고 남은 돈으로 배당해도, 미래 성장 가능성 때문에 외려 주주들은 좋아할거야."
"한국이야 그걸로 설득이 되겠지만... 미국은 배당에 꽤 민감할텐데."
그 말에 나는 그저 씩 웃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마존 알아? 요즘 뜨고 있는 기업인데."
"아... 그 책 파는데요?"
"요샌 이것 저것 다 팔거든. 이베이와 우리 쇼핑플래닛의 대항마라고 불리더라고."
"거긴 왜요?"
"거기 CEO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배당을 한 적이 없어."
"... 그게 돼요? 거기 미국 기업 아닌가요?"
"맞아. 그러니까 우리도 되는거지. 우리는 아마존보다 더 큰 기업이잖아?
그러니 더 큰 성장성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보여주기만 하면, 유보금 다 쓰고 남은 걸로 배당금 줘도 별 말이 나오진 않을거야."
내 거대한 계획을 들은 민영이 입을 떡 벌리고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자 나는 씩 웃으며 민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존이 대세를 차지했을때 미국에서 'to be amazoned'라는 말이 유행했었다지...? 그 말이 유행되기도 전에 내가 먼저 'to be universed'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