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2008 금융위기 (2)
자산은 욕망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그릇은 필연적으로 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담을 수 없는 욕망을 끝없이 들이부음으로서.
돈은 더 이상 돈이 아니게 되고,
땅은 더 이상 땅이 아니게 된다.
이를 두고 우리는 '버블'이라고 말한다.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참 절묘한 이름 아닙니까? 버블이라니. 비눗방울보다 나약한 현대 신용 화폐 체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비행기에서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조비서는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의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 그럼 미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국의 버블이 꺼진다면 분명 우리에게도 타격이 올텐데요."
"다행히 욕망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욕망을 통제하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욕망을 통제하는... 이들...?"
"월가. 그리고 미국 정부가 있지요. 물론 이번 건은 자기들끼리도 서로 뜯고 뜯기는 전투를 벌여야 겠지만요."
"그 월가에 우리 KTJC도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뭐... 패밀리 오피스이긴 하지만 일단은 그렇지요. 유니코인 기금을 크게 굴리니까."
"우리는 안전한 겁니까?"
조비서의 우려섞인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아니, 외려 돈을 벌 수도 있을 겁니다."
"어째서..."
다시금 그 이유를 묻는 조비서의 표정을 본 나는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하고는...
"그야... 제가 금을 사기로 결정했으니까요. 전적으로 제가 있기 때문이란 거죠. 후후."
라고 말하고는 그 말에 진짜 이유를 이어붙였다.
"뭐, 이건 농담이고, 진짜 이유를 들자면... 금은 원자재기도 하니까요. 지금 들고 있는 유니버스 원 안에도 금이 들어가죠.
반도체가 들어가는 곳이라면 금이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연히 산업용 금의 수요가 오르겠지요?
거기다 귀금속인 것은 따로 지적할 필요도 없고요."
"아... 그래서 금에..."
"예. 안전자산이면서도 확실하게 수요가 존재하는 것. 위기에는 그런게 제일이죠."
그렇게 조비서가 온전히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강의가 끝나나 싶었던 그 순간.
조비서는 또 다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미국 부동산 대신 한국 부동산은 어떨까요?"
그 표정에서 진심을 느낀 나는 피식 웃으며
'담이 작은건지.. 아니면 물린게 많은건지.'라고 생각하고는 조비서의 질문에 답을 내려주었다.
"서울. 수도권 남부. 이 지역들 빼고는 역시나 불안할겁니다. 미국이 터져버린 금고를 채우기 위해 해외투자를 회수하려 들테니...
수도권도 영향은 받겠지만, 수요 자체가 빠지진 않을테니... 결국 또 오른다고 봐야겠지요."
내 대답에 마치 원하는 답을 들었다는 듯 조비서는 환하게 웃으며..
"그럼. 다행이군요."라고 답했다.
그 묘한 대답과 함께 떠오른 의문에 나는 소소하게 조비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짚어준 곳에 땅 산 것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우주대 부지가 판교 대장동에 있으니까요. 잘 골랐다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어차피 이해득실은 고려 안하고 대학을 짓는다는 목표만 보고 지은 거긴 하지만... 손해보면 쓰린 법이니.
그런면에서 우주대 대장동부지 건은 조비서가 애써 준 덕분에 좋게 해결되겠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그 말에 조비서는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하신 것 있으십니까?"
"밤이라 그런지 공기가 차군요. 위스키 한 잔 부탁합니다."
"예."
그렇게 조비서가 조용히 자리서 일어나 승무원에게 다가가자 태준은 유니버스 원으로 위성 인터넷에 접속해 동향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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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의 명을 받은 오오와다는 간만에 뉴욕 시절 보여준 사자후를 직원들에게 던졌다.
"오늘 안에 최대한 청산합니다! 청산 하는 만큼 보너스가 지급될테니 최대한! 최대한 지수추종 상품을 전부 파세요!"
그리고 그런 오오와다의 사자후에 직원들은 따로 답도 하지 않고 양 손에 수화기를 들고 이곳 저곳 전화하기 시작했다.
"VSPY(S&P500 추종 상장지수 펀드) 오백. 단가 121."
"너무 비싼데...?"
"그럼 여기 리츠까지 얹어서 단가 120. 리츠는 100."
"110에 90해서 둘다 200에 500만큼 가져가지."
"오케이."
이런 류의 전화가 사방에서 수도 없이 터지고...
"금 현물 위에서 싹 긁으랬더니 뭐 하는거야...!
너 전직장에서 LP(유동성 공급자)도 해봤다면서 무슨 손이 이렇게 느려!
ITS(Internet Trading System) 처음 써보냐? 개미들도 너보단 낫겠다."
"죄...죄송."
"시끄럽고, 손을 움직이란 말이야 손을...!"
한켠에선 금을 사기 위해 비명을 질러댔다.
이런 아비규환의 시간은...
- 삐이---!
3시 장 종료를 알림과 동시에 순식간에 침묵의 시간과 그 자리를 교체했다.
그 어색한 침묵 속에서 단상 위의 오오와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기다리는 오오와다의 시선 끝에 매달려 있는 오오와다의 비서를 본 다른 직원들 역시...
오오와다의 비서가 작업 중인 작업실 유리창 너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렇게 십 분 같은 1초. 열 시간 같은 같은 1분이 쌓여...
십분쯤 지났을까.
유리창 너머에서 오오와다의 비서가
두 손을 들어
O자를 크게 그려보이자....
"됐어!!!!!"
"으아아아아!!!"
"성공이다!!!!"
오오와다의 발표가 있기도 전 부터 직원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직원들의 환호를 배경음 삼아.
오오와다의 비서가 서류를 인쇄해오자.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오오와다 마저 털썩 쓰러지며 말을 이었다.
"후.... 완벽하게 성공했군..."
그렇게 오오와다가 성과급 파티로 신이 난 직원들의 환호 속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때 미국 월가의 금융가들은 대형 곰의 등장에...
"뭐야... 무슨 뉴스 났어?! 지수가 왜 다 하향세야."
"뉴스 안났는데?"
"조정 아닌가? 계속 하락 추세기는 해도 횡보하는 모양세인데..."
"유진. 당신 눈은 옹이구멍인가보군. 이걸 횡보라고 하다니.
이건 대놓고 대형 기금에서 지수를 빼는 모양 아니오...!"
"그럴리가... 어느 미친 기금이..."
비관론과 낙관론을 주고 받으며 사태파악에 주력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태파악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유니버스넷에 유니코안에 대한 공시가 나왔다.
그리고 그 공시에서 이번 지수폭락에 원인을 찾은 언론들은 앞다투어 해당 소식을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 유니버스넷, 유니코인 기금 리밸런싱 단행..
- 유니버스넷, 미국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어 있어... 유니코인 안정성 위해 기금 리밸런싱... 금 비중 더 높여.
- 기금 운용의 미학. 유니코인.
그리고 그 소식과 함께...
미국의 주요 기관들은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던 부동산 버블을...
"포지션 갈아타고 난 뒤에 인정한다."
'내부적으로' 인정하고 부동산에 몰린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물 시장.
그 중에 주택부터 거대 기관의 자금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대출이 안된다니요?"
"저희 은행에서는 내부적으로 대출을..."
나아가 은행의 모기지론까지 막힌데 이어,
"뭐하는 짓이야!"
"채무변제 불가능 판정으로, 지금부터 담보로 제공하신 집은 은행 소유입니다. 1시간 이내에 퇴거해주시기 바랍니다.
퇴거 불응시에는 적법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나는 연체한 적도 없다고..!"
"연체는 안하셨지만, 담보가치가 하락해 대출을 유지하실 수 없습니다."
기존의 대출까지 폭압적으로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에 불과했으니....
"CDO가 터졌군 결국."
"하여간 일본에서 봐놓고도 기어이 CDO에 손 댈때 부터 불안하다 했는데..."
"일단 들리는 소문에는 골드만은 가지고 있던 포지션 전부 청산하고 숏으로 돌아서는데 성공했다더군."
"또, 또, 골드만.... 이번 버블 붕괴 이거 골드만이 일으킨거 아냐?"
"그럴리가. 그랬다면 리먼이 망할 이유가 없지. 이번 건은 오롯이 유니버스의 폭로, 그리고 실행 때문이라고 봐야지."
세계 최대 투자 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며 엄청난 규모의 손실이 미국을 강타하자
앞서 나타나기 시작한 '개인들의 비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한동안은 쭉 떨어지겠지?"
"그렇겠지. 집 잃고 나앉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거기다 여긴 미국이야. 세계의 중심. 달러가 무너졌는데 다른 나라는 어떻겠어."
"... 전부 엔으로 몰리겠군."
"MMT이론이네 어쩌네 하면서 양적완화 하던 중이라 들었는데...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겠네 일본은."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KTJC-A의 두 사원은 방금 막 입금된 보너스를 보며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뭐... 우리야 회장님 덕분에 이번에도 보너스를 받았으니. 아무 상관 없지만."
"...나는 이제 본전인데."
"너 집 샀었어?"
"어. 맨하튼에."
"뭐야... 맨하튼이면 괜찮지. 난 또 큰 손해 본줄 알았네."
"미실현손해도 손해지."
"재무적 손해는 치지 말자. 좀스럽게."
그리고 이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국, 태국, 브루나이의 국민들 역시 미국의 추락을 남일 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 ㅋㅋㅋㅋㅋㅋ 유니코인 안하던 놈들 망했죠? 주식 하던 놈들도 쫄닥 망했죠?
- 역시 우리 갓태준 회장님....! 우매한 민중들의 돈까지 지켜주시죠?
- 우주비행사 새끼들 또 나대네. 어쩌다 아다리 잘 맞은 걸로 유세는.
- 미국 주식은 장기적으로 우상향 해왔다.
- 응 수익률 -30%
-... -35%다...
- ...아, 미안.
- 급 숙연해지는 것 보소.
- 근데 윗댓 말도 맞는게, 미국 주식 지금처럼 할인 하는 경우가 잘 없긴 함. 이때 사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 실제로 김태준 회장도 금에 좀 담궜다가 반등기미 보이면 다시 투자 비중 돌릴거임
그렇게 이들이 평화로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한국과 태국, 브루나이는 각자의 이유에 따라 유니코인이 대세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유니버스넷의 종주국으로서 유니버스넷을 중심으로 모든 산업과 행정, 금융이 연결되기 시작했기에 유니코인은 필수가 되어가고 있던 상황이었고,
태국은 불안정한 치안과 기존 포인트 제도의 혜택이 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상당히 컸기에 유니코인이 대세가 되었고,
브루나이의 경우 국왕이 비자금을 묻어둔 곳이었기에 왕실차원에서 유니코인을 대대적으로 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평안함을 본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은....
"유니코인....! 지금이라도 유니코인으로 갈아타야 해...!"
거들떠도 보지 않던 유니코인으로 자신들의 자금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니코인은 서서히 새로운 기축 통화로서의 지위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손해나 안보자고 했던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스노우볼이 크게 굴러버렸네. 거참.
뭐, 잘 되었지. 이제 비트코인이 나오면 그것까지 잡아먹으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