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스마트폰 (3)
"결국 기어이..."
"진짜 미안해. 아니 똘똘이 이놈이 글쎄 예정일보다..."
"똘똘이는 잘 못 없거든요. 앞뒤로 2-3주 내에 태어나는 건 정상이니까. 언제는 애 태어나기 전에 휴가 내고 같이 있어주시겠다더니... 기어이..."
민영이 초췌한 표정으로 한숨 섞인 말을 내뱉자 태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미안해."
"회장님이 뭐가 미안해요. 원래 이런 분인거 알고 결혼한건데. 그래도 똘똘이 탯줄 정도는 끊어주셨으면 했는데... 뭐 어쩌겠어요. 똘똘이가 태명값 못하고 빨리 나와 그런걸."
"내가 잘못했어. 좀 더 신경쓰고 있어야 했는데..."
태준의 말에 민영이 놀란 표정을 짓고는...
'... 미안하다가 아니라, 잘못했어라니... 회장님이 잘못했다 말씀하시는 건 처음인거 같은데....?'
태준에게 받은 사과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고는 말을 이었다.
"신생아실에 가서 똘똘이한테나 사과하세요. 저는 진짜 괜찮으니까."
"... 알겠어. 고생했어."
"아, 그보다 똘똘이 이름은 정했어요? 출생신고하고 하려면 이름은 정해야 하는데... 전부터 계속 말이 없네요?"
"아, 그건 아직 못 정했어."
태준의 말에 민영은 다시 한 번 이마에 핏대가 서는 것을 느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니... 애 아버지가 애 이름도 안정해두고 뭘 그렇게 태연하게 말씀하세요?"
"그야... 똘똘이가 태어난 사주에 맞춰서 이름을 지어야지 그냥 막 예쁜 이름 가져다 붙일 수는 없으니까. 작명으로 유명한 철학원 안 그래도 예약하려고."
그 말에 벙찐 표정으로 빤히 태준을 바라보던 민영은 이내 태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의외의 면이 있으시네요. 회장님. 사주팔자 같은건 미신이라고 생각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 말에 태준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럴리가 있나... 미신으로 치면 내가 회귀한 걸 설명하지 못하는데.'
이제는 거의 잊고 살았던 자신의 두번째 삶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미신이라도 기왕이면 좋다소리 듣는 게 좋으니까 그런거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더구나 똘똘이 일인데."
그 말에 민영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가서 빨리 이름 받아와요. 언제고 똘똘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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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깁니까, 조비서?"
"예. 서울 내 철학관 중 작명은 여기가 제일이랍니다."
".... 그걸 알려준 사람이 누굽니까?"
"저희 어머니입니다."
그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조비서를 바라보자 조비서가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줄 알고 왔는데... 거 참."
"소문이 왜 필요합니까? 저 만큼 운 좋은 놈이 또 어디있다고.
저희 어머니가 여기 철학관에서 제 이름 받았고, 그 이름 덕에 이렇게 회장님 모시는 출세를 했는데요."
아부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조비서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 그렇게 말하면 또 제가 싫다고 말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그럼."
그렇게 조비서의 안내에 따라 낡은 한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 철학관의 주인으로 보이는.....
"... 너무 젊은데요. 조비서."
"... 이럴리가 없는데. 저 혹시 여기 김갑산씨 안계십니까?"
여자를 본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조비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 아버지 되시는 분입니다만..."
"작명을 받으려 왔는데..."
"... 애석하게도 작년에 작고하셨습니다."
그 말에 조비서가 낭패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나는 그 돌아가셨다는 철학관 주인 김갑산의 딸에게 말을 걸엇다.
"철학관은 여전히 운영하는 것을 보면... 부친께 역(易)을 배우신 것 같은데... 혹시 아가씨도 작명 가능합니까?"
".... 가능하지요."
"그럼 부탁 좀 합시다."
내 말에 조비서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만류했지만,
나는 그런 조비서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채로 안내하는 김갑산의 딸을 따라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우선... 본인과 부인 되시는 분의 사주, 그리고 아드님 사주를 주시죠."
그 말에 나는 나와 민영의 사주, 그리고 똘똘이의 사주를 넘기고는 김갑산의 딸이 종이를 넘기며 쓰는 한자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 뭔가를 쓰던 김갑산의 딸이 멈칫 하더니 말을 이었다.
"김태준씨 본인의 사주가 좀....."
"예?"
"사주만 놓고 보면 단명고독한 사주입니다. 자연히 결혼도 늦고, 한다 하더라도 처자식을 금세 잃게 되지요. 헌데...."
"헌데...?"
"관상에서 보이는 낮빛이 전혀 그것과는 거리가 머니.... 거기다. 부인되시는 분의 사주도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예. 사주만 놓고 보면 한참 위.... 그러니까 띠 동갑도 그냥 띠동갑이 아닌 나이차를 가진 남자나 한참 어린 남자...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남자와 이어질 운명인데... 허어...."
그 말에 나는 조비서를 슬쩍 보고는 손으로 나가보라 지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제 사주자리에 1979년 1월 3일을 넣어봐주시겠습니까? 제가 그날 죽다 살아난 날이거든요. 양력으로요."
그 말에 이제야 알겠다는 듯 빙긋 웃어보인 김갑산의 딸이 말을 이었다.
"운명이 두 개 그것도 대흉과 대운으로 이뤄진 날이라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군요. 주신 그 날짜라면 말이 됩니다...."
"그럼..."
"예. 죽다 살아나시면서 액땜하신 겁니다. 그 날짜를 기준으로 가족들의 사주를 짜보면 아주 이상적인 조합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타고난 운명을 모두 치울 수는 없으니.... 직계 존속과 형제로부터 고달픈 것은 있는데... 그것도 다 한때로 지나갈 운명이군요."
"...하하... 하하하하..."
...
..
.
그렇게 내가 종이에 사주명식과 그 풀이, 그리고 이름이 쓰여진 한지를 받아들고 나오자 조비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한 껏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연신 미안하다, 죄송하다라는 말을 반복하던 조비서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조비서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말을 이었다.
"아뇨. 정말 완벽한 곳을 찾아주셨습니다. 아주 용한 곳이군요."
"만족하셨다면 다행입니다만... 아, 이름은 받아오셨습니까?"
"예. 간김에 스마트폰 OS명과 펫네임도 받아왔습니다. 출시일에 맞춰서."
"그런 것도 해줍니까?"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해주더군요. 뭐라더라... 뭐라고 설명은 해주었는데, 역이나 육임은 잘 모르니 잘 설명은 못하겠군요."
그렇게 내가 받아 온 종이들을 품에 넣자 조비서가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내게 이름을 물어왔다.
"그래서 받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제 아들 말입니까?"
"도련님 성함도 그렇고... 그 OS명이나 펫네임도 그렇고요."
"그건... 지금 밝히긴 그렇네요."
"예?"
"이따가 민영이 만나서 먼저 보여주고. 그때 알려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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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녀의 출산과 작명까지 전부 마친 태준은 며칠 동안 민영의 옆에서 일을 처리하며 지내다 다시 QULAB으로 내려왔다.
"... OS명과 펫네임 모두 정했습니다. 다른 안을 올리라고 했는데... 다들... 장난스런 단어들 말고는 말들이 없으시니 제가 정해왔습니다.
OS명은 One OS, 새로운 스마트폰의 펫네임은 One입니다."
"원... 말씀이십니까?"
"예. 유니버스의 새로운 시작점으로서 숫자 1을. 세계 제일이 될 것이라는 포부로 으뜸 원(元)을. 마지막으로 세계 유일의 스마트폰으로서 유일함을 뜻하는 1을 상징하는 네이밍으로 이렇게 정했습니다."
그리고 연구원들의 앞에서 연설을 하는 태준을 보던 조비서는 비식비식 피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기 도련님 성함도 원이지. 김원. 거참... 철학관에서 나올 때 스마트폰 펫네임이니, OS명이니 하시면서 변명하실 때 부터 눈치 챘어야 하는건데.
아드님 이름 넣고싶어서 그렇게 밑장까시는 걸 눈치없이 내가 계속 물어봤으니 원...'
그리고 그런 조비서의 웃음을 본 태준은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빠르게 숨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OS의 각 버전 하위 명칭으로 지금까지 올라온 명칭 후보를 알파벳 순으로 정렬하여 사용하겠습니다."
"그럼..."
"예. 안드로이드는 One OS의 빌드네임으로서 ver 0.1부터 ver 1.9까지 사용될겁니다."
태준의 발표가 끝나자, 연구원들은 저마다 작게작게 모여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A는 안드로이드고, B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C는.. 없었고 나중에 H가면... 그 꼴통 김문규가 제안한 HAL9000이 빌드네임이 되는거야?"
"설마 그때쯤 되면.... 다른 식으로 쓰시겠지. HAL9000은 너무 꺼림직하잖아."
"회장님이 빈 말 하시는 것 본 적 있어? 당연히 쓰시겠지. 그리고 혹시 또 알아? 진짜 영화에 나온 HAL9000처럼 인공지능 OS로 발전해 있을지.
15년전엔 카폰, 10년전부턴 휴대폰... 그리고 지금은 말 그대로 들고다니는 컴퓨터가 나오는 세상인데..."
그런 연구원들의 말에 태준은 순간 놓칠 수 없는 이름을 듣고는 가던 길을 뚝하고 멈추고는 HAL9000에 대한 이야기를 한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방금... 김문규라고 했습니까?"
그런 태준의 질문에 한 연구원이 대답을 하려다
"예? 아... 예. 그 꼴.... 윽. 왜?"
옆의 연구원이 제지와 함께 태준을 향해 공손히 말을 이었다.
"김문규 연구원이라고 OS팀에 있는 머리가 특출난 친구가 있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전생에 대단한 프로그래머의 이름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연구원의 대답과 이어진 질문에 태준은 속내를 감추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들어본 이름이라 물어본 것 뿐입니다."
"아... 김문규 연구원이라면 그럴만 하지요. 실력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특히 UI방면으로는 알아줍니다. 타고난 미적 감각도 좋구요. 다만... 약간 매니악한 성격이라..."
"그래 보이는 군요. HAL9000이라는 작명만 놓고 보면."
"하하.. 그렇지요."
그렇게 연구원들과 어색한 대화를 마친 태준은 다시 갈 길을 가다 말고,
우뚝.
하고 멈춰서고는 뭔가 재미난 것을 생각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 김문규라는 사람. 따로 면담을 잡으세요. 그리고 김성주와 손재겸도 함께 불러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일정 맞춰서 본사로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조비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태준은 차에 타서도 계속해서 김성주와 김문규, 손재겸을 어떻게 써먹을지 상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생에는 뉴턴사를 설립하고 그래픽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게임... 타이탄워의 제작자 김문규, 거기에 한국 최고의 게임사 넥손을 만든 김성주와 손재겸까지....
이 세 사람을 주축으로 스튜디오를 내준다면....?
게임성도 BM도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의 스튜디오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어.
거기다.... 기본 베이스를 초장부터 아예 스마트폰 베이스로 만들게 하면... 스마트폰 보급에도 큰 힘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