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스마트폰 (2)
잘난 사람 곁은 언제나 피곤하다.
원래 사람 곁이란 피곤한 법이지만, 잘난 사람은 더더욱 피곤하고.
그 피곤한 만큼 외롭다.
"아버지는 언제 오실까요....? 응? 궁금하지?"
그리고 그 잘난 사람과 결혼한.
민영은.
태준의 곁에 있으며 몰려오는 피곤함과
태준이 곁에 없어 느껴지는 외로움 속에서도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삐.
"네. 사모님."
"조비서님. 사모님이 아니라 법무이사님이라고 부르셔야죠? 회장님 내선으로 연락드린게 아니라 제 개인 회선으로 연락드린건데."
"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기 안비서라는 사람. 들어온지 한 달...? 아니 이제 두 달 된 사람인데. 진짜로 법무팀 비서로 보내시려는 것 아니죠?"
그리고 그 충실한 인생의 비결 중 하나로
태준에 대한 사랑에 더해,
태준의 옆에서 보고 배운,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일단 인사팀에서도 그리고 저희 비서실에서도 내정자로 안비서를 뽑아서요.
얼마전 회장님 긴급 지시에도 잘 처리를 해서 저희쪽에서도 사모.. 아니 법무이사님의 특수한 지위를 고려해 보내기로 결정한 겁니다.
아직 회장님 승인은 안 났지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입사 한달차 만에...! 우리 이제 그룹 통합연수원도 있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훈련이야... 솔직히 법무이사님 만한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저도 법무이사님 비서실장 시절에 사사받은 덕분에 이렇게 한 사람 몫을 하고 있으니까요."
"... 확실히. 그 편이 회장님께는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요?"
"네, 그리고 안비서가 입사하자마자 비서실에 오게 된 건.... 회장 직속 비서 지원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서실.... 월급은 그룹 내에서 제일 좋지만... 아시잖아요. 힘든 거.
해서 저희가 급한대로 법무팀 1등을 비서실로 빼온 겁니다. 그룹 통합연수야 사실... 비서실에 적합한 연수도 없고요.
워낙에 다종다양하게 일을 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뭐... 이렇게 법무팀에 빨리 돌려주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 안비서도 알아요?"
"안비서는 모릅니다."
"후... 그럼 회장님도... 모르시겠네요?"
"그렇...죠?"
"일단 회장님께는 이 사안은 제가 보고드리겠습니다. 안비서에게는... 후. 안비서에게도 제가 설명하죠. 저도 비서실 상황 어떤지 알아서 뭐라고는 못하겠는데...
이건 우리 그룹 전체 인사정책에 위배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자발적 지원을 기본으로 경쟁을 통한 인사정책을 펴고 있는데... 거기에 예외를 둘 수는 없잖아요?
'자원한 일이 아니면 최대 능률이 나지 않는다.' 이게 회장님 생각이시기도 하니까요.
이 부분은 제가 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다시 배를 쓰다듬으며 서류를 보는 민영의 등 뒤로 태준이 나타나 쓱 안아주고는 말을 이었다.
"곧 출산 앞두고 무슨 일을 그렇게 해?"
"오셨어요?"
"왔지 그럼. 요즘 한가하니까."
태준의 말에 민영은 슬쩍 웃으며 속으로...
'맞기야 맞는 말이지. 전에 비하면 회장님 한가하시니까. 그래도 하루 4시간 주무실까 말까지만... 이러다 나 과부되는거 아냐?'
태준의 말에 반박하며 태준에게 농담을 던졌다.
"회장님이 한가하시니까 제가 바쁘죠?"
"흐음.... 그런가... 그래도 똘똘이 나올때는 휴가 내고 같이 있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안 될 모양이네."
".... 농담도 참."
"농담 아닌데? 당신 애 낳기 직전까지 일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그게 더 낫지 않아?"
".... 그렇게 해 봐요. 어디. 어떻게 되나. 나 회장님 경호도 겸했던 거 잊었어요?"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서로 농담을 주고받은 태준과 민영은 잠시 키스를 나눈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까 그 안비서 이야기는 뭐야?"
"아..."
그렇게 안비서에 대한 보고를 들은 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흐음... 확실히 우리 회사가 아직 자리를 못잡아서 이것 저것 하던 때도 지나갔는데 그렇게 굴리면 문제가 있지... 원칙이 흐트러지는 건 결코 용납해서도 안 되고."
"... 일단 안비서에게는..."
"사과해야지. 당연히. 본인 성적도 모르고 비서실에 끌려와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건 내가 처리할테니까 민영이 넌 당분간 똘똘이 태어날때까진 일 압수야."
그렇게 자연스럽게 민영이 보고 있던 서류들을 빼앗은 태준은 곧바로 민영에게 다가가 가볍게 안아들고는 민영과 함께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민영의 말을 들은 태준은 곧장 비서실에서 안비서를 불러 상황을 전달하고 사과와 함께...
"이건 그 동안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준 보너스입니다."
"...예?"
현금 100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유니버스 그룹 사이트 보셨죠?"
"예."
"거기 써있는 인재상 이런 것도 보셨을거고요."
"그야... 그렇죠?"
"거기 뭐라고 써있는지 기억납니까?"
"... 끊임없이 혁신하는..."
"아뇨. 그 부분 말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사람..."
"예."
"그게 왜..."
"자율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 통제라면... 금욕적인..."
"아뇨. 운명을 통제하라는 겁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게 뭔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고민하고 궁구해서 실천하는 것. 그게 자율적인 사람인겁니다."
태준의 말에 안비서가 침묵한채 돈 봉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태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안비서를 향해 말을 이었다.
"회사원들은 그런 면에서 애석하죠. 사주의 꿈과 사업을 위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사주로서, 제 꿈을 도와주는 여러분이 잘 할 수 있는 것.
여러분이 그 날개를 힘껏 펼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창업 초기부터 함께해온 안비서의 선배들과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된 모양입니다. 다시 한 번 미안합니다. 원한다면 원래대로 법무팀에서 비서가 아니라 팀원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게 조치해드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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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크플래닛 잡리뷰에 올라온 거 사실임?
- 김태준 회장이 공채에서 합격하고 잘못 배치된 직원에게 사과하고 보상금 준 썰?
- 잘 못 배치된건 아니지. 직장 들어갔으면 업장에서 시키는거 하는게 정상이니까.
- 미담 만들기 아님? 워크플래닛도 김태준 회장꺼니까. 언플 돌리는거 같은디.
- 윗 댓 아무것도 모르네. 워크플래닛은 미국기업임. 애초에 유니버스랑 관계 없이 따로 운영되는 별개의 회사.
플래닛 달고 있다고 다 유니버스거냐? 애초에 워크플래닛 측이 유니버스넷에 편승하려고 작정하고 플래닛이라 이름 지은거 빤히 보이는구만.
- 그럼 뭐임? 진짜 리뷰란거임?
- ㅇㅇ. 그게 유일한 유니버스 비서실 ALL 5star 리뷰임. 그 리뷰 빼고 나머지는 연봉 때문에 avg.3.5star 평가항목 중에 업무 난이도, 업무 강도에서는 별점 최하점.
- 전부터 유니버스 비서실 지옥으로 유명했잖어. 진짜 죽기 직전까지 갈려나간다고.
- ㅋㅋㅋ 대가리에 먹물찬 새끼들이 가는 원양어선 같은거네
- 윗 댓 미친놈인가... 너 때문에 목에 사레들렸다. 이 새끼야. ㅋㅋㅋㅋ
- 그만큼 연봉도 개쩐다고 들었는데? 다른 데보다 세 배 이상은 주지 않냐?
- 다른 데 어디? 유니버스 다른 부서랑 비교해서 세 배고, 다른 비서실에 비하면 세배가 아니라 열배쯤 될 껄? 부려먹는 만큼 대우 하나는 확실한거지.
- 계약 관계인 연예인들도 그렇게 대우해주는데 자기 직계 식구들은 얼마나 대우해주겠어.... 이젠 놀랍지도 않다.
- 그래서 그 직원은 어떻게 됬는데? 누구 아는 사람 후기나 좀 달아봐.
...
..
.
"해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최민영 법무이사님. 안민주 비서입니다."
"진짜 비서로 괜찮겠어요? 입사시험 점수도 그렇고... 전공도 그렇고. 사법시험 통과는 못했어도 법에 대해서는 빠삭하던데.
입사시험때 풀었던 답안지도 보니까 분석력도 상당한 것 같고...."
"그러니까. 제대로 이사님을 도울 수 있겠죠. 법에 대해 잘 알면서도. 비서일도 잘 하는... 비서일은 아직 좀 더 배워야겠지만요."
안비서의 말과 눈빛에서 민영은 과거의 자신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 보상 받은 것도 돌려주고... 거기다 자진해서 고생을 하겠다니... 이유가 뭐예요?
심지어 워크플래닛에 그런 글도 쓰고."
"존경하는 어른을 만나서 꿈이 바뀐겁니다. 워크플래닛 글은... 이제 저도 소속 부서는 다르지만 비서실 사람이니까요.
제 후배겸 직장동료를 모집하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지어내서 쓴 글은 아닙니다.
실제로 감동해서 쓴 글 맞아요. 하하..."
민영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살짝 동 떨어진 안비서의 대답에 민영은 피식 웃어보이고는
'회장님 섭섭하시겠네. 아저씨도 아니고 어른이라니...
하기사 이제 막 20대 중반 여자애가 회장님 좋다고 했으면 그게 더 문제였겠지.
거참... 내가 안비서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너무 잘난 남편이라 힘들다니까. 후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치우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안비서에게 처음으로 업무지시를 하죠. 사내정기감사 시즌이 하필이면 제 출산일과 겹칠것 같아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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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비서 건도 마무리를 짓고 안드로이드사의 인수절차도 완전히 끝내고 두 달쯤 지난 3월의 어느날.
"음... 확실히 최적화가 전보다 나아졌네요."
"OS팀에 새롭게 수혈된 앤드루 팀의 공이 컸습니다. 특히 파일 구조가..."
나는 QULAB에서 올라온 OS관련 소식에 QULAB을 방문하여 2차 시제품을 보고 있었다.
"일단 그럼 필드테스트용으로 사내 비서실에 공급할 물량... 서른 개만 시범 생산해보세요. 2002년 되기 전에 공장 짓고 생산 들어가서 월드컵 때 빵 하고 터뜨려보죠."
"알겠습니다."
"아. OS명은 정했습니까?"
"네. 안드로이드입니다."
그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겠다는 겁니까? 앤드루 어디있습니까?"
"아니. 그게 회장님. 그런게 아니고."
"그럼 뭡니까?"
그 말에 QULAB의 OS개발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 안드로이드라는 이름이 유서깊은 이름 아닙니까. 그래서... 기왕에 인수도 하셨고 하니 기왕이면 그 유서깊은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서...
앤서블이랑 같은 맥락으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내가 반쯤 성질을 내며 화를 내려던 그때.
"회장님. 지금 사모님께서....!"
조비서가 황급히 개발팀 사무실로 들어와 소리치듯 내게 말했다.
"민영이한테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막 진통이 시작되어 안비서가 병원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당장 가죠."
조비서의 보고에 나는 황급히 OS 개발팀 사무실을 떠나... 려다 말고 홱하고 돌아서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 급하니까 나중에 이야기 하죠. 절대 안드로이드는 안 됩니다. 우리 QULAB의 성과를 묻어버릴 수 있는 네이밍 아닙니까.
다른 네이밍 생각해서 보고 올리세요. 필드테스트기는 만들자마자 바로 본사로 보내주시고요. 조비서, 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