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스마트폰 (1)
그렇게 이리저리 물건을 옮기던 와중 안쪽에서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나는 바로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열어보았다.
- 앤드루 루빈, 안드로이드 사(社) 사장 면담 요청
"앤드루... 루빈? 안드로이드!?"
내가 문자를 읽고 놀라 소리치자 조비서는 물론이고, 짐을 나르던 호텔 직원들까지 전부 멈칫하더니 이내 나를 빤히 보기 시작했다.
"아... 계속하세요. 조비서, 조비서는 여기서 배치 잘 해주시고요."
"예?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비서에게 물건 배치를 맡긴 나는 곧장 서재로 사용하는 별실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고 상세한 보고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고를 다 읽은 나는 QULAB에서 보낸 추천서를 인쇄하며 푹신한 중역의자에 몸을 기대 생각에 잠겼다.
'이 시점에 안드로이드가 이미 있었다? 내 기억에는... 적어도 10년은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하기사. 발표가 10년쯤 남았다고 해서 개발이 그 시점부터 된 건 아니니까.
거기다 인터넷 시장을 발빠르게 열고 관련 서비스들도 최대한 빠르게 오픈했으니 어쩌면... 역사를 뒤집어 놓은 나비효과일 수도 있겠네.
나비 효과 치고 이 정도라면 소소한 편이지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내 귓가에 프린터의 시끄러운 출력 완료음이 울리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쇄된 QULAB의 추천서를 읽어보았다.
"흠... 자체 SDK(Software Development Kit;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에서만 돌아가는 OS지만... 발전가능성이 높다....라.
이래서 전생에 사성이 인수하지 않았던 거구만. 네이티브 구동이 가능한 기기 없이 컴퓨터, 그것도 자체 SDK 상에서 에뮬레이팅만 가능한 OS라 인수를 안 했던 거야.
당장 써먹을 데가 없으니까.
정확히는... 써먹을 수 있는 개발력 부재가 원인이라고 봐야겠지만. 전생에 구글이 인수해서 벌인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추천서에 적힌 추천 이유를 너머 건의까지 읽은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OS팀도 인수를 건의한다고 하니 일단은 만나 봐야겠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곧장 보고서를 올린 안비서에게 전화해...
"안비서. 보고서 잘 받아봤습니다. 제 일정 보고 적당한 시점에 앤드루 루빈 이 사람 면담 잡으세요.
아, 면담 일정 전에 여기. 안드로이드 사에 대한 기본적인 기업 정보 분석해서 보고 올리시고요.
수고했습니다."
-----
태준의 전화를 받고 고통의 나날을 보낸 안비서는 간신히....
"처음이라 고생했을텐데... 이 정도면 괜찮네요. 고생했습니다. 루빈씨 면담 일정은 언제로 잡았습니까?"
태준의 합격점을 받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태준의 물음에 답했다.
"내일입니다."
"일정도 적당하게 잘 잡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태준에게 보고를 마치고 칭찬과 격려를 선물로 들고 나온 안비서는 문 앞에 서있던 조비서를 보고는 꾸벅 인사했다.
그러자 조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고생했어. 안비서."
"별말씀을요."
"이제 안비서도 고생길 열렸네."
그 말에 안비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조비서를 바라보자 조비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최이사님... 아니 사모님. 곧 출산하시고 법무이사로 복귀하실 거잖아. 그럼 자연히 우리 비서실도 둘로 쪼개져야 하고. 추가로 인력도 뽑아야 하는데...
지금도 회장님 일 보좌하는데도 벅찬데 거기서 또 인력을 쪼개야 하니... 상당히 문제였단 말이지.
그런 와중에 어쨌든간 안비서가 일 처리를 잘 해줬잖아?
기업분석... 그거 회장님한테 합격점 받는게 쉬운게 아니거든. 일단 그렇게 실적을 쌓았으니까 안비서도 그에 합당한 자리로 옮겨가게 되지 않겠어?"
"그 말씀은...."
"확답은 어렵지만 새롭게 생길 법무이사 비서실 실장으로 옮겨가게 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신생 비서실이 자리 잡을때 까진... 갈려나가는거고."
그 말에 안비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털쩍 주저앉았다.
그렇게 안비서가 주저앉는 것을 본 조비서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최단기간 승진 내정이니까. 좀 더 기뻐하라고. 고생하는 만큼 대가도 엄청날테니까.
그리고 걱정하지마. 법무이사로 복귀하실 최민영 이사님은 비서업무의 프로거든.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금방 안비서도 프로가 될 수 있을거야."
그렇게 격려인지 놀림인지 알 수 없는 던지고 사라진 조비서의 말을 곱씹던 안비서는...
"퇴사할까... 아... 자동차 할부금만 아니었어도.. 아아..."
그렇게 절망 속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애마를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
"앤드루 루빈입니다. 편하게 앤디라고 불러주시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태준입니다."
앤드루와의 일정은 빠르게 잡혔다.
애초에 앤드루의 면담요청이 먼저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 면담 요청에 내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답을 해준 것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자신을 앤디라고 부르라 했던 앤드루는....
"이렇게 회장님을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회장님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이실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생각보다 일정이 빨리잡혔다는 점에서 회장님의 결단력을 칭찬해드리고 싶군요."
공손함을 가장한채.
내 앞에서 건방을 떨고 있었다.
그런 앤드루의 건방에 나는 피식 웃음지으며 말을 이었다.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죠.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예상하시다시피 저는 안드로이드를 팔기 위해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가볍게 제 요구조건을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건방을 떠는 앤드루의 모습에서 나는 소형견이 짖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이어지는 앤드루의 말을 들었다.
"...이 모든 조건에 더해 2000만 달러. 그리고 KTJC에 대한 스톡 옵션을 원합니다."
그렇게 앤드루가 장황하게 건넨 말을 다 들은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안드로이드사의 직원 8명에 대한 QULAB입사는 어렵지 않습니다. QULAB에서 이미 추천서를 발급해주기도 했으니.. 조건은 충족한 셈이기도 하고.
그리고 2천만 달러. 그것도 딱히 어렵진 않네요. 가치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우리는 기술자에 대한 대우는 확실하게 해주는 편이니까요.
그러나... 스톡옵션은 너무 과합니다. QULAB에서도 보셨겠지만, 우리 역시 이미 안드로이드의 상위호환격 OS를 이미 개발하고 있기도 하고요.
모회사의 주식을 줄 만큼 당신들이 아쉽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적당한 수준으로 다시 제안해보세요. 10분 줄테니까."
내 조용한 훈계에 앤드루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대로 사성에 가도 괜찮겠습니까?"
그 어줍잖은 협박에 나는 앤드루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위험하게 느껴야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어차피 사성도 인수하지 않을텐데. 내가 그걸 걱정할 이유가 있나.'
내 태연한 대답에 앤드루는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내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는 말을 이었다.
"저를 보자고 하신 것은 저희 OS에서 혁신을 보아서 그런것이라 생각했는데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이미 안드로이드의 상위호환 OS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혁신은 QULAB에서는 일상이죠."
"그럼 대체 저를 왜 보자고 하신겁니까?"
"보자고 한 것은 제가 아니라 당신일텐데요. 저는 마침 시간이 있어 거기에 응했을 뿐이고요.
역으로 묻죠. 당신은 왜 절 보자고 한 겁니까?"
내 질문에 앤드루는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그야... 회사를 팔기 위해."
"그렇죠. 그리고 그 이유는?"
"혁신적인...."
억지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자신을 꾸미려는 앤드루의 대답에 나는 혀를 차며 그의 말을 끊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죠. 채무변제 때문이지 않습니까."
"... 조사를 하신겁니까?"
"조사를 하지 않아도 뻔합니다. 컴퓨터에도, 다른 기타 장치들에도 팔 수 없는 OS. 심지어 리눅스 기반 OS죠.
그런 OS를 개발한 회사가, 그것도 아무런 돈 벌이 없이 버틸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나마 IT버블에 취해 들어온 투자들이 아니었다면 더 빨리 망했겠지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 말에 앤드루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 그래서. KTJC 주식은 못 주신다는 겁니까?"
"예."
"그럼 사성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러시죠. 아, 가기전에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사성에 가서도 지금처럼 이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무시만 당할 공산이 큽니다.
당신네 기술이, 당신들이 일군 회사가 얼마나 혁신적인지
또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당신들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와 투자자가 판단하는 거니까요.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편애하지 마시고 냉정히 판단해보세요."
앤드루가 자리에서 일어나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사기를 쳐먹으려고... 저 태도를 못고치면 어딜가도 팔아먹진 못하겠지. 지금 이 세상에 구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리 저리 치이고 오면. 그 때 선심 베풀면서 받아주면 되겠어."
그렇게 앤드루와의 면담을 마치고 여유롭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지 딱 2주가 지난 어느날.
".... 안드로이드사 전원이 왔다고요?"
"네. 8명 전부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일정이 끝날때 까지 기다리겠다고 해서 일단은 로비에서 대기를 시키고 있습니다만...."
앤드루를 비롯한 안드로이드사의 직원 전원이 왔다는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미리 준비해둔 계약서를 조비서에게 건네고는 말을 이었다.
-----
"후.... 긴장되는군."
로비에서 기다리는 앤드루의 혼잣말에 안드로이드 핵심 개발진중 한명인 토니 파머가 혀를 차며 앤드루에게 말을 이었다.
"괜히 허세를 부려서 일을 더 꼬아놓으니 그렇지. 앤디."
"헐값으로 우리 기술을 넘길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우리 회사 상황을 숨기고 팔려고 하면 그건 사기지."
"사기가 아니라 수완이라고 해줄래?"
"그게 성공해야 수완이지. 실패해놓고 무슨.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유명한 김회장에게 그게 먹힐거라고 생각했어?
그 사람이 쓴 논문만 보고 갔어도 그런 바보짓은 안 했겠다."
토니의 핀잔에 앤드루는 앞에 놓인 커피로 입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 난들 알았겠냐. 본인 스스로가 컴퓨터 전문가일 줄은. 세간에도 기술자로 알려져있기보다는 잘생긴 모델 출신 사업가로 알려져 있었는데."
"뭐. 기왕 이렇게 된거 어쩌겠어. 앤디 네가 면담 당시에 들었다는 조건의 반이라도 들어주면 받아들여야지.
애플은 물론이고, 사성에서도, 수성에서도, 전부 거절당했잖아? 곧 채무 변제일이 다가오는데 여기서 마저 거절당하면 우린 이대로 엿되는거야."
그렇게 현실을 깨달은 안드로이드사 전원이 무거운 얼굴로 침묵한 그 순간.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로비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조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장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아무래도 일정때문에 만나뵙기 어렵겠다고 하시더군요."
"... 그.. 그렇습니까?"
"예. 해서 회장님께서 미리 준비해두신 서류와 함께 회장님의 전언을 들고 왔습니다."
그 말에 안드로이드사의 직원 전원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조비서는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서류를 내밀고는 핸드폰을 꺼내 음성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회사의 가치를 기초로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의 열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8명이서 그 정도 완성도 있는 OS를 만들었다는 그 실적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이 계약서는 당신들의 그 실적과 열정을 포함해 가치를 매긴 것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태준의 목소리가 끝이 나자 조비서는 핸드폰을 회수하고는...
"살펴보시고 결정하시죠."
라는 말과 함께 안드로이드사 멤버들에게서 슬쩍 떨어졌다.
그렇게 안드로이드사 멤버들이 뭐에 홀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 앤디. 봤어? 아니 보여?"
"3500만.... 3500만 달러야. 우리 열정을 김회장이 인정했다고!"
"어딜가나 무시만 했는데 김회장만은 우리를 똑바로 봐주고 있었단 말이야! 이건 당장 사인해야 해! 협상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잖아!"
그리고 이런 모습을 조비서의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지켜본 태준은...
"OS개발이 좀 더 빨라지겠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곧 올라올 계약서를 받아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