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142화 (142/200)

142. 일상 (2)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일천의 환한 목소리에 나는 속으로 진짜 전화기를 바꿔야 하나 생각하며 영업용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일은 잘 처리 되셨습니까?"

"잘 되다 마다. 헛바람 들어서 상황파악을 못하는 애미나이들 잡아 뒀고, 또 자네가 중국에서 일도 잘 해줬고."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만족 하고 말고. 자네가 중국에서 보여준 걸 보면 자네가 말한 말이 전부 다 이뤄질 것만 같단 말이지."

"그렇게 되실겁니다. 한북미러 이 4개국의 이득이 하나로 귀결되었으니까요."

"자네 덕분이지."

연신 (희대의 독재자이자 민족의 역적에게) 칭찬과 덕담을 들은 나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아직 사업이 본격화 되려거든 시간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내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말이야."

"부탁... 말씀이십니까?"

"그래. 다른 것은 아니고...."

그렇게 김일천이 꺼낸 말은 내게 꽤 좋은 기회가 되어주었다.

"그러니까... 벌어들일 자금 외.... 추가자금.. 그러니까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렇지. 왜 백희정 그 인간이 했던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도 보면 합자기업의 설립으로 기초기술을 야금야금 끌어오고 있지 않나.

우리도 그렇게 해보려는 것이지. 일단 돈을 끌어모으면, 그 이후에는..."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향적으로 나오는 것은 좋은데... 진짜로 하고 싶어서 저러는건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폐쇄국가를 지향하던 북한에서 아무리 개방을 하기로 했다고 해도 이렇게 나올리가 없는데... 흠...

단순히 폭주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글세. 김일천이 그럴리는 없고...'

그렇게 김일천의 너스레 섞인 온화한 목소리의 설명을 들으며 계산을 마친 나는 말을 이었다.

"무작정 해외자본을 들여온다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정 그러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원하신다면 알아는 보겠습니다.

하지만, 해외 투자는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엮이는 사람과 이해관계가 많아지는 만큼 걸리는 것도 많아지니까요. 무엇보다... 위원장님의 영향력이 깎여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서,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수혈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예의를 차리느라 길고 장황하게 말했지만

요약하면 '해외투자는 아직 시기 상조니까 일단 네 돈으로 해. 정 원하면 따로 돈 나올 구멍하나 파줄게'라는 말.

그런 내 속내를 모를리 없음에도 김일천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한걸음 더 치고 나왔다.

"다른 방법...?"

그런 김일천의 태도에 나는...

'음... 돈 맛을 본 폭주인가....? 러시아에서 토지 임대료가 입금이 되어서 이렇게 막나가는 건가?'

나름대로의 김일천의 행동 원인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해 김일천의 흥미를 이끌만한

그리고....

"예. 일본에 배상 청구를 하는 겁니다. 단 그 경우엔 납북일본인... 아니 재조일본인의 귀국을 보장해야겠지요."

오부치에게 넘겨줄 대가까지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는 떡밥을 던졌다.

"...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말이군."

"예. 대신 협상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꽤 큰 돈을 바로 받아 쓰실 수 있을겁니다."

"얼마나 받아낼 수 있겠나?"

'물었어!'

그렇게 김일천이 내 떡밥을 덥석 물자 수화기 끝을 타고 흘러오는 손맛에 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을 이었다.

"협상하기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일단 65년 기준 3억 달러를 받은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인플레이션등을 고려하면... 현재 기준으로는 100억 달러는 받을 수 있지요."

"배..백억 달러?"

"단순 계산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그 돈을 안정적으로 받는 조건으로 일본의 정치적 요구들을 들어줘야 할 테지만...

그 역시 다른 방식으로 써먹을 수도 있어서 북한... 아니 조선에 손해가 아닐겁니다."

"그 써먹는다는 다른 방식이 뭔가?"

"일본과의 수교지요. 유엔에는 가입해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국가인 일본은 조선을 미승인으로 두고 있지 않습니까?

납북일본인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고, 덤으로 일본과 수교를 함으로서 일본이 북한을 인정한다는 느낌으로 협상이 끝난다면....

위원장님께서 지금 하고 계시는 개혁 개방 노선이 더욱 확실하게 굳혀질 것이고... 덤으로 위원장님의 자산과 권력도 안정적으로 늘어나겠지요."

내 말에 김일천이 고민하는 목소리를 보이다 이내 말을 이었다.

"그렇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네만..."

"통일 문제 말씀이시죠."

"... 그렇네. 생각해 보니 그건 문제가 안되겠군."

"예. 어디까지나 평화적 통일 노력을 하기로 이미 선언을 한 마당이니 통일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난들 안이든 밖이든 그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명심보감에도 일을 맡겼으면 끝까지 믿고, 믿을 수 없는 자라면 일을 시키지 말라했지. 이미 내친 걸음이니 자네 말대로 해보지."

김일천으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얻은 나는 씩 웃으며 말하고는,

"그럼 제가 일본과의 회담을 주선해보지요. 아, 그리고 슬슬 핵 포기 선언 해주시면 딱 타이밍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 민주당에 빚을 지우기엔."

"알겠네."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전화가 다시 울리는 일은 없었다.

-----

북한과 일본,

일본과 북한,

양측의 실무자들이 회담을 준비하게 된 것은 태준이 김일천의 전화를 받은지 딱 한 달만에 일이었다.

"비밀 유지를 위해 특별히 별도의 서버를 만들어뒀습니다. 해당 서버채널은 미 국방부 권장규격으로 암호화 되어있으니 마음껏 쓰셔도 됩니다."

"김회장님도..."

"예. 초기 비밀번호 1111에서 바꾸시면 저도 안의 내용물은 못 봅니다."

태준이 북한과 일본 이 둘 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앤서블의 서버를 통해 이뤄진 실무 협의는 빠르게 양측의 논의사항과 조율점을 찾아냈고, 완전히 서로간의 합의점을 찾는데까지 2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렇게 총 3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늦은 9월.

양 측은 해방이후 최초로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고, 그 합의에 따라 12월 30일.

원 역사였다면 이미 죽었어야 할,

하지만 태준이 개입함에 따라 아직도 살아서

이제는 최장수 총리를 노리게 된

오부치 총리가 일본 총리 최초로 북한에 건너가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인 순간...태준은 이제 막 연수원을 떠날 준비를 하는 민영과 똘똘이(태준 자녀의 태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 거기. 거기다 두세요. 북한 일본 문제는 이제 가만 둬도 알아서 굴러갈 테니 통상보고만 하시면 됩니다 조비서님."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공기청정기가 4대라니.... 굳이 이러시지 않아도 건물 전체에 달린 공조기가 있는데요."

조비서의 말에 태준은 뭘 모른다는 듯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건 외부의 공기를 깨끗하게 걸러 공급할 뿐 내부의 공기를 걸러주진 않죠.

안그래도 연수원에서 살면서 영 엉망인 공기를 마셨을텐데... 지금이라도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둬야 합니다."

태준의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총각으로 사는 조비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최적의 환경을 만드시는 것은 좋지만 이건 너무 과한 느낌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얼마전 안비서를 통해 육아용품도 사셨다면서요?"

"네. 그랬죠."

"회장님 답지 않은 이중지출이라 걱정스러워 미리 말씀드리지만... 회장님 얼마 전에 산후조리원도 인수하셨지요. 그것도 무려 6개나. 그중 하나는 서울권에 있는 유명한 체인이기도 하고요."

"그건 사내 복지용으로...."

"물론 그렇겠습니다만, 사모님의 출산에 대비한다는 목적이 주이지 않습니까.

인수한 산후조리원을 최근 개편한 각 지역 우주의료원에 배치하신 것도 모자라 여기 호텔에도 배치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추가로 육아용품을...."

조비서의 잔소리에 태준은 문득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빤히 조비서를 보고는 슬쩍 가는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조비서 답지 않군요."

"네?"

전에 없던 태준의 날카로운 태도에 조비서가 당황하여 되묻자 태준이 혼잣말과 대화의 경계에 놓인 말을 내뱉었다.

"전에는 다른 군말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따라 군말이 많은 것을 보니..."

"그야... 지금처럼 회장님께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지출하시질 않았으니.... 그리고 비서의 업무에 '입 바르고 거슬리는 말을 솔직하게 던지는 것'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회장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조비서의 변명을 들은 태준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흠.... 그 말을 듣고 나니 누가 사주했는지 알겠군요. 애초에 그 말을 아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뿐이니까요. 민영이 연락이 왔었나요?"

태준의 말에 조비서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예. 안그래도 사모님께서 회장님이 많이 들뜨셨을 수 있으니 옆에서 잘 말려달라고 하셨습니다."

"거 참. 들뜨기는 누가 들떴다고... 아, 거기. 이거 QULAB에서 온 2중 살균정수기죠? 그건 여기. 여기다 두세요."

그렇게 태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며 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듯 이리저리 짐을 놓는 것을 본 조비서는 슬쩍 한숨을 내쉬고는 슬쩍 핸드폰을 꺼내 비서실 전체 문자를 날렸다.

- 최대한 빠르게 사모님 출산 준비를 모두 마칠 것.

"차라리 아예 빈틈이 안보이게 모든 것을 빠르게 준비해드리는 편이 낫겠어. 최이사님... 아니, 사모님께는 혼나겠지만... 그렇게만 하면 일단 회장님의 시간을 지켰다는 변명도 가능하고 말이지."

그렇게 조비서가 생존을 위한 결단을 내린 무렵, 비서실에서는 다른 의미로 생존의 갈림길에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

"QULAB에서? 추천서를 별 일이네. 어지간한 학계 인사들도 추천서 안내주잖아. 거기다... 발급 목적이 회장님과 개인면담이라니..."

"예. 해서 일단 조비서님께 상신했는데..."

"아직 안보셨나보지. 며칠 전부터 최이사님... 아니 사모님 나오신다고 바쁘잖아. 그러지 말고 직접 보고하지?"

"제가요?"

"응. 안비서도 들어온지 이제 한 달이긴 해도 어쨌든 회장 직속 비서인데... 당연히 회장님께 직보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할텐데 뭐.

조비서님도 뭐라 하시는 분 아니고. 애초에 유니버스 그룹 초창기 멤버인 이사님들은 대개 효율 중시파라서... 조비서님도 마찬가지고.

뭣하면 내가 대신 해줄까?"

"앗...아아.. 아뇨. 제가 직접 할께요."

그렇게 입사한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직접 보고를 하게 된 안비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회장 직보용 메일과 번호로 동시에 같은 내용의 보고문을 작성했다.

- 앤드루 루빈, 안드로이드 사(社) 사장 면담 요청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