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영향력 (2)
"뭐. 일 마치면 알아서 연락 오겠지."
그렇게 완전히 신경을 꺼버린 나는 다시 간만의 일상 속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단 스마트폰은 준비중이고.... 게임 쪽은 실리콘 앤 시냅스랑 게임프리크에서 수익을 내주고는 있는데... 흠.....
현재 게임프리크는 어쩔 수 없이 닌텐도에 종속되어 있단 말이지. 콘솔 기반이라... 우리나라에서만이라도 컴퓨터로 돌릴 수 있게 하면 참 좋을텐데... 문제는 저작권이지.
사실 지금도 불법복제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도 하고... 흠..."
완전히 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몸은 그 어느때 보다 편했지만, 머리는 끊임없이 벌려놓은 사업들을 정리하느라 미친듯이 칼로리를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디어 쪽 처럼 완전계열화를 이루려면.... 결국 또 다시 스마트폰인가... 우리나라 불법 복제 시장이 끝나려면 일단은 스마트폰이 나와줘야 하기도 하고..."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아니지. 지금 현재 불법복제 시장을 제대로 공격할 수 있는 시장이 한 군데가 더 남아있긴 하잖아."
음악...
그리고....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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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도서시장에 진출을 결정하며 또 다시 유니버스 생태계를 강화할 준비를 하던 그 무렵.
일본 자민당 내에서는 내홍이 잇다르고 있었다.
"반기를 들고 나온 자를 다시 재입당 시키겠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맞습니다. 이번 일을 용인한다면 결국 자민당 내부에서 자기가 모시던 주군을 칼로 찌르는 자가 계속 나올 것 아닙니까?"
"거기다... 칼을 찌른자가 다름아닌 다케시타 가문의 비서였습니다. 사실상 현대판 혼노지의 변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내홍의 원인은 다름아닌 타케미치의 당선이었다.
다케시타 노보루를 모셔온 타케미치가 일본 정치권의 암묵적인 룰을 어기고 기어이 무소속 출마해 당선되어 다시 자민당에 재입당 원서를 제출한 것은
'비서따위는 쓰고 버리는 존재인데... 이렇게 되면 비서가 언제고 칼을 찌를 수 있다는 선례가 된다...!'
일본의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크나큰 위협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기성 정치인들의 겁에 질린 비명에 가까운 반발을 들은 오부치는 혀를 차며 그에 반박했다.
"혼노지의 변이라니... 아직도 일본이 센고쿠 시대인가? 인터넷에 떠도는 중세 잽랜드라는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니었군."
아니, 유행어까지 섞어가며 힐난했다.
"총리.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총리야 말로 반기를 들고 나서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
총리가 지금껏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하셔야죠!"
오부치의 힐난에 의원들이 반발하자 오부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한발 물러났으나...
"작고하신 다케시타 선생께는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품고있네."
"... 그렇다면."
이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에 지나지 않았다.
"허나. 나는 다케시타 선생의 학교 후배임과 동시에 정치적 후배로서 다케시타 선생의 정치 역정을 함께해 온 동지야.
그런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이유야 뻔하지 않습니까? 따님되시는 분께서 타카하시와 좋은 인연을 맺게 되어..."
선을 넘나드는.
아니 확실히 선을 넘어버린 의원의 말에 '인품의 오부치'라 불릴 정도로 온화한 성격의 오부치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해당 의원의 말을 끊어내고는...
"그런 사사로운 이유로 내가 지금껏 정치를 해왔다면 이 자리에도 있지 못했겠지."
최대한 인내하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해당 말을 꺼낸 의원은 구석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의원들의 공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럼 대체 뭐가 아쉬워 다케시타 선생의 아우되시는 다케시타 와타루를 버리시는 겁니까? 다케시타 와타루야 말로 다케시타 선생의 유훈을..."
물러난 의원 대신 또 다른 의원이 꺼낸 말에 오부치는 이제는 한심하다는 듯이 좌중을 둘러보며 다시금 질문을 가장한 공격을 던진 의원에게,
아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의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정으로 그리 생각하나?"
"예?"
"진정으로 그래 생각하냐고 물었네."
"진정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그리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케시타 와타루 본인이 타 파벌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입지가 걸린 와중에 개인적인 인연으로 파벌을 옮길 만큼, 그것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다케시타 선생이 만든 파벌을 옮길만큼 바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 문제지. 지금이야 내가 버티고 있지만. 내가 뒷방으로 물러난 뒤에는 그 자가 파벌째 세이와로 건너가게 될지 알게 뭔가."
그렇게 정치공학적인 논거를 들이밀며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은 오부치는 이내 조용해진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오자와(입헌민주당 당수)가 연정탈퇴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건네왔을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네.
타케미치라는 대안이 없었다면, 어쩌면 진짜로 충격을 받아 죽었을지도 모르지.
한국에선 홧병이라고 한다지? 분노와 실망에 분사하는 것을. 내가 딱 그랬네."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그것도 가장 최근에 겪은 일을 꺼내든 오부치의 말에 모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오부치의 말에 집중했다.
"대안이 없었다면. 진짜로 죽었을지도 모르지.
어디 피곤한 일이 좀 많았나.
경제는 가면 갈수록 불황의 늪에 빠져 들고 있고,
외교는 점점 약해져만 가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벅차지고.
과로 때문에 쓰러져 남 몰래 병원 신세를 진 일도 꽤 있었지.
그렇게 힘든 시절에 동앗줄이 내려온 거야."
"타케미치 군이.. 그 동앗줄이라는 겁니까?"
"그래. 정확히는 타케미치가 진정으로 모시는 주군이 우리 '파벌'의 동앗줄이 되어줄 사람이지."
그 말에 의원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오부치가 말을 이었다.
"자네들도 김태준 회장을 알겠지."
"... 알다 마다요. 자민당과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지요."
"타케미치는 김태준 회장의 사람일세. 김태준 회장이 출세를 위해 일본에서 뛰어다닐 때 부터 비서직을 수행하던 유니버스 창립의 최초 멤버.
그게 타케미치야. 유니버스와는 인연이 끝났음에도 타케미치는 여전히 김태준 회장을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있고,
김태준 회장 역시 그런 타케미치에게 그 어떤 의무도 없음에도 자신의 주식을 3%나 증여할 정도로 개인적인 친분이 깊지.
그런 세계적인 기업인... 아니 지 파쿠토(de facto; 사실상의) 기업국가의 주인과 인연을 맺는다면,
우리 파벌이.
나아가 일본이 살아나는 일은 꿈이 아닐 걸세."
오부치의 연설이 끝이 나자 의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타케미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타케미치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자.
의원들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선택하신 게 타케미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그리고 우리가 타케미치군을 어떻게든 보호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 그럼 우리.. 정확히는 우리 파벌이 얻게 될 이득은 무엇입니까?"
"우선... 가장 최근에 받게 될 것은 정치적 입지겠지."
오부치의 뜬 구름 잡는 말에 의원들 전부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자 오부치가 말을 이었다.
"곧. 북한과 정상회담이 있을 걸세. 일본 단독으로. 그걸 주선한게 바로 여기 있는 타케미치군과 김태준 회장일세."
"그 말은...."
그 말에 놀라는 의원들을 본 오부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그래. 납북자 문제. 그걸 해결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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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서 시장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나는 곧바로 조비서를 통해 출판법인을 세우라고 지시하고 유니버스 네트웍스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유니버스넷 쇼핑 카테고리에 도서 판매 항목이 있습니까?"
"아뇨. 책은 없습니다."
"그럼 일단 업데이트는 하지 말고 우리 테스트 서버에 해당 기능 업데이트 가능합니까?"
"언제까지 만들면 될까요?"
"빠르면 빠를 수록 좋습니다. 일단 책의 정보를 보여주는 북 플래닛을 신설하고, 그 항목에서 책을 검색하면 바로 간단한 책 정보와 그 아래 판매처를 전부 띄워 보여주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책 시장 진출을 준비한 나는 조비서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 도서시장이 어떻게 되어있죠?"
"교심그룹에서 사회사업조로 운영하는 교심문고가 1위고, 풍영문고가 2위입니다."
"전부 오프라인 매장만 운영하고 있죠?"
"네. 교심그룹의 경우 최근에 온라인 매장도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긴 했는데 아직 오픈까지는 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 우리가 바로 선점하죠. '유니버스 북 플래닛'이라는 이름으로 법인 추가로 세우시고, 3위 기업... 아니 비상장으로 운영되는 전국 유통체인중 가장 큰 곳을 인수해 합병하세요."
"그러면... 경기문고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출판과 도서 유통업으로 저변을 넓히는데 힘을 쏟던 그 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님, 접니다. 타케미치."
일본에서 걸려온 전화에 나는 너스레를 떨며 타케미치의 담담한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타케미치 중의원 아니십니까?"
"하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내 소란이 좀 있어 당선인사가 늦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그 소란이 무엇이었는지, 또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지 않고
(정확히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은 것이었지만)
"소란은 잘 해결 된 겁니까?"
그저 잘 해결되었는지만 물었다.
"예. 정상적으로 입당도 완료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선 손의정 사장과 말 맞춰서 공장 유치 쇼를 좀 하시죠. 유권자들 뇌리에 타케미치 의원님의 영향력을 새겨넣을 겸."
"하하.. 배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렇게 잘 해결되었다는 인사와 함께 이어진 타케미치의 말에 나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주선해보죠'라는 말을 건네고는 약간의 잡담 이후에 전화를 끊었다.
"후... 어째 좀 한가하다 했다."
"무슨 일이 생긴겁니까?"
그렇게 내가 전화를 끊으며 한숨을 내쉬자 옆에서 내 지시를 정리하고 있던 조비서가 나를보며 물어왔다.
"일단 지금 지시한 건... 대학 관련 건까지 포함해서 전부 바로 아래로 넘기고, 조비서는 지금 바로 북한 관련 사업 진척상태부터 좀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비서가 나가자 나는 빤히 전화를 보다가 실없이 웃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민영이가 봤으면 또 전화 받고 바빠졌다고 놀렸겠네. 거 참. 전화기에 마가 낀건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한 번 울리는 전화에 나는 괜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날세. 무전기로 연락하려고 해도 하도 받질 않아서 내 김태충 대통령에게 은밀히 요청해 이렇게 전화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