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밀월 (5)
태자당의 득세.
그것은 내 입장에서도, 그리고 내 조국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도
나아가 내가 진출한 모든 국가들의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 없는 일이었다.
덩샤오핑이 도광양회를 주창하며 만들어낸 데탕트의 분위기를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엔 태자당의 실세인 시진핑이었고,
서방은 물론이고 주변국 전부에 시비를 걸고 다니며 말 그대로 폭거를 저지르는 것도 결국 시진핑이었기에
당연히 머리가 있다면 어떻게든 시진핑의 집권을 막아야 했다.
문제는....
"문제는 역시 샹하이방이오. 현 주석인 장쩌민의 개인사단이라 할 수 있는 샹하이방의 입장에선 우리 공청단 파벌을 견제하고 싶을테니..."
"당연히 태자당을 이용하려 들겠지요."
"덩샤오핑과의 약속이야... 사실 핵심 약속인 나만 주석자리에 올리면 되는 것이니.... 그렇게 나를 허수아비로 만든 뒤에 어떻게든 자기들이 이용하기 쉬운 태자당의 인사를 차기 주석으로 삼을게 뻔하니 말이오.
그리고 여기서 김회장이 요구한 북부전구 문제가 걸리게 되오. 북부전구의 핵심인사들 역시 결국 상하이방이 장악하고 있는 판국이라...
만약에라도 이를 내 힘으로 빼게 된다면 그 이후는...."
문제는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하이방이었다.
후진타오가 말한대로, 상하이방이 소위 '천자'로서 군림하며 중국 전역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와 달콤한 거래를 제시한다고 해도 물러날 리가 없는 것이 현실인데.
현실에서 그런 힘을 가진 상하이방이
본인의 미래도,
앞으로의 정세도
자신들의 힘에 취해 보고있질 않은채 그저 지금의 힘만을,
그것도 대외적인 과시가 아닌 대내 권력투쟁을 위해 사용하고 과시하는 상황이었으니,
자기 대권을 노리는 후진타오의 입장에서도,
중국과 협상을 해야하는 내 입장에서도,
그리고 중국과 긴밀하게 엮여있는 주변국들 입장에서도 민폐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 대놓고 막 나가는 것도 아니고, 누가 능구렁이 아니랄까봐 선은 또 기가막히게 타서 대놓고 다른 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더 짜증이 나지.'
그런 상황을 설명한 후진타오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샹하이방쪽 꽌시는 없으십니까?"
"없을리가 있겠소? 다만, 어찌 되었든 나는 공청단의 핵심 간부이다 보니 공청단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이라 그게 무용한 것이 문제일 뿐이오."
"상하이방은 노장들로만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문혁이후 소위 지식분자로 처벌받았던 이들이 핵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노장들의 집단에 미래가 있기는 합니까?
새 피가 수혈이 안된채 저들끼리 뭉쳐서 죽어갈 뿐인 집단인데..."
"... 노골적이지만... 맞는 말이오. 하지만 어느 사회나 그렇듯 늙은 피는 더 끈적거리는 법이지. 젊고 싱싱한 피보다 더 독한 만큼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요.
더구나 여기는 중국이지. 문혁의 기억을 억지로 묻어두고 사는 이들이 많은 판국에 젊은 이들이 많다 한들 무슨 힘을 쓸 수 있겠소.
힘썼다 괜히 때 늦은 홍위병 몰이에 하방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렇게 이도 안된다 저도 안된다하며 아쉬운 말만 하는 후진타오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럼 북부전구 문제는 해결해주실 수 없겠군요."
"현재로서는 그렇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오."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김회장이 들여온 그 항모를 폐기하는 것이오. 그걸 대가로는 분명 물러줄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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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과 후진타오가 항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때.
항모의 두 척의 주인이자 당사자인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항모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었다.
"바랴그 함은 아직도 통과가 안되고 있나?"
"예. 터키, 이집트 전부 통과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 독도함을 들여온 것 까지는 참 좋았는데... 바랴그는 참...."
"일단 터키에서는 자력운항을 못하게 엔진을 탈거하라는 요구를 해왔고, 이집트에서는 역으로 자력운항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면 통과를 시켜줄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어서 여러모로 곤란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실무자들 간의 골치아픈 논의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조금씩 윗선을 타고 올라가....
"바랴그에 대한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네."
김태충의 책상에 까지 올라왔고, 한참의 논의 끝에....
"결국 답이 없는 것인가..."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채 그날 국무회의를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끝나버린 국무회의의 결과에 답답해 하던 김태충은 이내 비서실장을 불러 말을 이었다.
"바랴그 건은 태준이한테 맡겨봐. 결국 태준이 그 놈이 친 사고니까. 해결도 그놈이 해야지."
"하지만... 외교라인으로도 해결이 안 난 것을 일개 사업가가 할 수 있겠습니까?"
"일개 사업가? 태준이가 일개 사업가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어지간한 외교관 보내는 것 보다 태준이가 나아.
그 실력을 우리만 너무 과소평가 하는거지. 푸틴이고 클린턴이고 태준이 결혼한다니까 튀어오는 것 못봤나?
태준이는... 그래 그 자체로 조커패나 다름 없는 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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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가 담담히 내민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제 권한 밖의 일이군요."
"권한 밖이라... 진정 권한 밖의 일인 것이오?"
"예. 전 기업인이니까요."
그 말에 후진타오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서로 권한 내의 일부터 논의합시다. 김회장께서는 어떤 일을 내게 해주실 수 있소?"
"글세요. 부주석께서 해주실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저도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군요."
"...음."
"더구나 저는 싸움을 각오하지 않은자의 편에는 서고 싶지 않아서요."
내 말에 후진타오가 눈빛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싸움을 각오하지 않은자....라. 나 말이오?"
"안정적인 권력 이양을 위해 상하이방의 눈치를 보고, 이제는 밑바닥부터 기어올라오는 태자당 눈치까지보고 계시니까요."
"우리 중국이 유일당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눈치싸움이있기 때문이오. 누군가에게 힘을 몰아주면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아왔으니까. 더더욱 그렇지.
외국인은 이해 못할 정치제도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좋은 말로 나를 타이르듯 변명하는 후진타오의 말을...
- 스윽
한 손을 들어 잘라먹은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후진타오에게 되물었다.
"과연 상하이방도, 그리고 최근 올라오는 태자당도 그럴까요?"
"그게 무슨 말이오?"
영문을 모르겠다는 후진타오의 말에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살짝 식은 차를 한 입에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상하이방이 권력을 장악한 이유를 생각해보시지요.
분명 상하이방도, 그리고 부주석께서 몸담고 계시는 공청단도, 다시 올라온 태자당도 문혁시절에는 지식분자로 모진 고초를 당했던 이들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공청단은 복권 이후 공산당 내부조직으로서 신예를 발굴해내고 공산당이라는 틀 안에서 발전을 해온 것이었다면,
상하이방은 천안문의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합의에 의해 선택되진 덕분에 커올 수 있었지요. 물론 외연확장에는 실패했지만.
그리고 태자당의 경우는... 부주석님도, 외부인인 저도 알 만큼 공공연히 지난날 있었던 홍위병들의 폭거에 대한 복수를 명분으로 세력확장을 꾀하고 있지요.
여기까지만 생각해보아도 공청단이 얼마나 순진하게 정치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내가 중국의 세개 파벌에 대한 평을 하자 후진타오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공청단이 유약한 것이 문제다 라고 말하고 싶은게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빈 깡통같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주어지면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상황을 이용해 싸워 나가는 자들만이 권력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공청단... 정확히는 부주석께서는 덩샤오핑 전 주석과 샹하이방의 거래로 차기 대권을 약속받으신 것이지 않습니까?
그럼 그 이후에는 싸움을 해야지요. 샹하이방이 그랬듯이. 내부 조직을 형성하고, 외부로 확장하고, 적은 쳐내고.
그런 각오 없이 중원을 평화롭게 먹겠다 말씀하시니... 제 입장에서도 해드릴 수 있는게 없군요."
내 말에 후진타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그 상황이라는 것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겠소."
"제가 지낭을 풀면 그대로 따르실겁니까?"
"우리쪽 머리에도 가져가 분석부터 해보고 따를지 말지를 결정하겠지."
그 말에 나는...
'일단 떡밥은 효과가 있었나보네.'
라고 생각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은 상대의 선택지를 없애는 것이 첫번째겠지요."
"선택지를 없앤다?"
"태자당을 쳐내십시오. 정확히는 태자당에서 차기 대권의 선택지만 없애십시오."
그 말에 후진타오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태자당을 쳐낸다니... 그게 쉬운 줄 아는가? 공산당 창립 멤버들의 후손인 만큼 그들이 가지는 상징성이 어마어마한데... 이를 쳐낸다니."
"지금부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후에는 더더욱 힘들어질겁니다. 중국이 데탕트로 국력이 커지는 지금. 공산당에 대한 신격화는 필연적인 수순인데, 그들의 힘은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 그래. 그런 다음."
후진타오의 반박에 나는 가볍게 반박하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그런 다음에는 덩샤오핑 주석이 한 것 처럼 다시 한 번 상하이방과 타협을 하는 겁니다."
"타협이라니... 차기 대권을 쩡칭훙에게 넘기겠다고 약속이라도 하라는 것인가?"
"예. 물론 약속일 뿐. 그것이 실제 이뤄질 가능성은 낮습니다.
일단 상하이방은 소위 후기지수가 없는 노괴들만 모인 세력이고, 성장 동력 역시 차기 20년을 담보하기 힘드니까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다고 해도, 쩡칭훙까지가 한계일 겁니다. 그리고 그 한계에 닿았을때.
상하이방에 손을 내밀며 공청단과 한 몸으로 만들어버린다면. 이후의 대권은 상하이방의 탈을 쓴 공청단원들이 영속적으로 해먹을 수 있겠지요.
어쩌면 상하이방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 자체가 훗날에는 공청단 간부들의 협의회 쯤 되는 이름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나 다음 쩡칭훙, 그 다음 후춘화 이렇게 넘겨 받기만 해도 후춘화 대 부터는 공청단의 힘이 막강해진다.... 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타협의 대가로 북부전구의 요직 몇 개를 넘겨 받고 제 요구조건을 채워주신다면... 저도 부주석께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생기겠지요."
그 말에 후진타오는 모두에 밝힌 '우리쪽 머리에도 가져가 분석부터 해보고'라는 말도 잊었는지.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 그 지낭에 대한 값은 대업을 이룬뒤 치르도록 하지."
"지낭을 쓰시려거든. 저도 한 손 거들까요?"
"한 손 거든다면..."
나는 후진타오의 기대감 섞인 표정에 씩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장쩌민 주석을 만나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