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밀월 (4)
한편, 태준이 중국으로 간 사이 각 국 정상들은 대한민국 외교부와 유니버스 그룹에서 급조한 한국 투어를 하며 시선을 끌고 있었다.
"이것이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유니버스의 셀룰러폰입니까?"
"예. 아직 느리지만 인터넷 직결 연결, 자체 코덱 내장으로 핸드폰으로도 영상과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무엇보다 비상시에는.... 여기 긴급버튼을 세 번 빠르게 누르면..."
-삐용삐용
"이렇게 경고음과 함께 자동으로 112와 119에 문자신고가 들어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문자 신고에는 신고자의 GPS위치정보와 기지국 수신정보가 포함되어 신고를 받은 센터측에서 더욱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아주 훌륭하군요."
"무엇보다 이 긴급버튼은 공기계, 즉 개통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작동하게 설계가 되어 있어 그 누구라도 위험한 상황에는 이 버튼을 사용하여 신고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점진적으로 유니버스의 모든 휴대전화 제품군에 탑재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유니버스가 진출한 모든 국가에 호환이 되도록 설계가 되는 것입니까?"
"예. 저희 회장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것이 '위치에 구애받지 않는 연결성'이니까요.
사실 현재도 유니버스 전 제품은 공식 진출국 외에도 이미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모든 상용 통신 규격에 호환이 되도록 생산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제품 출시 이후에는 모든 국가에서 이 시스템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니버스 측이 마련한 전자 박람회(라곤 해도 사실상 유니버스와 유니버스의 하청 기업, 그리고 유니버스의 두뇌라 할 수 있는 QULAB만의 잔치였지만)를 시작으로,
"아이고...! 청아! 어딜 간게냐!"
"이보시오 심봉사. 눈을 떴으면 새 살림을 살 것이지 이미 죽은 딸을 찾아 뭐하자는게요?"
"귀덕어멈! 뭐 아는 것이라도 있소?"
"아이고, 심청이 고것이...."
UEP소속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심청전 관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통령들의 모든 '휴가'일정에 유니버스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자연히 이러한 일들은...
- 제 1회 K-컴덱스에 참석한 클린턴과 푸틴
- 클린턴, 유니버스의 새 폰에 관심, '노키아에서 갈아탈까?'
- 심청전을 보고 눈물 짓는 힐러리 여사,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었다.'
- 한국 가수들을 보고 박수치는 푸틴.
그들의 의도한대로 하나하나 모든 것이 기사화 되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의 눈을 가려주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행보가 어쨌든 작위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또, 유니버스 외의 다른 기업들이 끼어들 수 없었기에....
- 처음부터 끝까지 유니버스 밀어주기구만... 김태준 회장 결혼식에 각국 지도자들이 온 것도 그렇고. 현 정부가 받아먹은게 많기는 많나보네.
- K-컴덱스라면서 왜 유니버스만? 사성도, 수성도, 대현도 전부 전자 하는데? 이거 짜고치는 느낌 너무 나는데?
악플러들(어쩌면 이 판에 끼어 들지 못한 경쟁 기업들의 여론 몰이)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지만,
- 유니버스 밀어주기가 아니라, 당연히 유니버스가 전부 다 해야지. 김태준 회장 결혼식이라고 휴가까지 내고 와준 하객들인데.
- 컴덱스니까 당연히 유니버스가 메인이지. 아무리 경제를 몰라도 그렇지...
컴덱스를 가진 소프트방코가 유니버스 그룹하고 같은 모회사라는 걸 모르나? 그 말인 즉, 저 컴덱스라는 것도 결국 김태준 회장꺼라는 거임.
- 유니버스넷에서 욕이나 싸지르는 인간들이 뭘 알겠어. 그렇게 맘에 안들면 유니버스넷도 쓰지 말아야지.
- 그런 모순도 견뎌내는게 김회장 안티들임. 대한민국 50년 역사에서 지금까지 공고하게 이어진 재벌카르텔을 깨부순 김회장인데... 그저 욕밖에 못하는 걸 보면 수준이 알만하지.
이어진 김태준 팬들의 진압에 악플러들 역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음을 일으키며 관광을 즐기던 각국 정상들은 일정 와중에도 태준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일정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유니버스측은 준비 다 되었나?"
"예. 이제 허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대한 편의 봐줘서 처리해. 손해나는 것 알면서도 자원한 것인데.. 어지간 하면 받아 줘야지."
"예."
김태충의 방산업체 승인을 시작으로....
"음... 김회장이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에 자리를 잡았으니 그 중간... 오렌부르크 쪽에 자리를 하나 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몽골과 가깝기도 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통해 물류를 받기도 수월할테니까."
푸틴의 오렌부르크 유니버스 공장부지 영구임대,
"아, 그러고 보니 김회장이 전에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했지요. 자동차 연구를 하자면 자체 트랙도 있어야 하니...
이 참에 골치아픈 디트로이트 역사를 통으로 유니버스에 넘기고 드라이빙 센터를 짓도록 편의를 봐주면 딱 맞겠네요. 세제혜택도 좀 주고."
클린턴의 디트로이트 역사 불하까지.
이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빠르게 이뤄졌다.
...
..
.
그리고 후진타오와 만나 식사를 하던 태준은 조비서가 슬쩍 보여준 문자를 통해 자신이 요구한 모든 것들이 입금되었음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참으로 맛이 좋습니다."
"하하. 좀 처럼 보기 힘든 음식들일테니 많이 드세요. 일이 많은 기업인에 맞춰 몸 보신하기에도 좋은 음식들로 채워놓았으니 먹고나면 힘이 날게요."
후진타오의 너스레에 태준 역시 싱긋 웃어만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중국 특유의 허풍과 허세가 가득 올라간 식사자리가 끝이 나고, 태준과 후진타오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식사도 든든히 마쳤으니 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말씀하시죠."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항모를 들여온 의도가 무엇이오?"
말 그대로 본론을 훅 치고 들어오는 후진타오의 발언에 태준은 당황한 기색 없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내며 말을 이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을 한낱 기업인인 제가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김회장... 당신이 한낱 기업인은 아니지. 얼마전 결혼식에도 각국 정상들이 휴가까지 내면서 하객으로 와주었지 않소.
그 일이 있은지 사나흘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내게 거짓을 말하는 것 밖에 안되오."
"그것은 그저 개인적 친분에서..."
"그 개인적 친분을 어떻게 쌓았는지가 중요하겠지. 미국 쪽은 그래.
애초에 김회장이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나름 모델로도 활동을 한 적이 있으니 연고가 있다손 쳐도,
러시아는 아니지 않소? 나는 러시아의 푸틴과 친분을 갖게 된 배경에 그 항모가 있다고 보는데..."
후진타오의 날카로운 질문에 태준은 피식 웃으며 보이차가 든 찻잔을 들어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뭐라 말한다고 한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답에 대한 근거도 가지고 계실테고요. 헌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물어보십니까?"
태준의 선문답같은 질문에 후진타오는 슬쩍 인상을 쓰더니....
"지음을 찾는다... 고 하면 어떻겠소?"
어색한 한국어로 준비된 말을 하고는 태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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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애초에 태준의 결혼식이 '개인의 행사', 그것도 '외국인의 행사'라는 점에서 구태여 보도할 이유가 없다는 명분이 있기도 했지만...
"일단 주요 언론 입막음은 다 시켰습니다."
"잘 했네."
한국, 아니 김태준 회장 개인의 위상이 일본의 위상을 넘어선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민당의 정치인들이 기를 쓰고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 우리 지지기반이 되는 유권자들이 싫어할 만한 소식이니."
"이해는 합니다만... 조금 아쉽군요."
타케미치는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그 역시 일본인이었기에 누구보다 그 생리를 이해하는 입장이었던지라, 태준의 기사가 묻혀버린 건에 대해서는 아쉬움만 토로하고 말았지만,
"고마신사에서 찍힌 사진은 꽤 잘 나왔더군요."
지난 주말 다녀온 고마신사에 대한 건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들었다.
"그 건이라면 유코에게 고마워하게. TBS에서도 사진 잘 찍기로 유명한 사진기자를 섭외해 찍은 것이니."
"헌데... 헤드라인이 영....."
"왜? 천박스러워서?"
"....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무소속의 혁명가와 정치명문가 아가씨의 밀회...라니요. 이래선 마치..."
그렇게 타케미치가 슬쩍 불만에 가까운 말을 토로하자 오부치가 혀를 살짝 차고는 말을 이었다.
"이보게. 타케미치군."
"예."
"자네 나이에 아무런 기반 없이 그 정도 인것은 훌륭하네만.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군. 더 정진하게."
오부치의 말에 타케미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오부치가 말을 이었다.
"정치인에게 있어. 기사는 딱 하나만 피하면 되네."
"딱... 하나 말입니까?"
"그래. 딱 하나. 부고. 부고 빼고는 그 어떤 기사가 나와도 전부 좋은 게 정치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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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진타오의 어색한 한국어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지음(知音).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유래한 이 성어를 들먹였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구태여 중국어가 아닌 어색한 한국어로 꺼내들었다는 것 자체가 후진타오의 의도를 말해주는 것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 없었다.
"종자기를 찾으십니까?"
나는 놀란 표정을 가다듬고 이내 후진타오에게 말을 이었고, 그런 내 말에 후진타오가 주위에 사람을 물리고는 중국인 특유의 발음이 잔뜩 섞인 영어로 말을 이었다.
"그렇소."
그 단순한 말 한 마디에 나는 후진타오가 경계하는 것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다 이내 말을 이었다.
"태자당이 다시 힘을 되찾은 겁니까?"
내 말에 이번에는 후진타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 중국 정세를 꿰고 있다더니.... 그렇소. 79년부터 슬금슬금 복귀하더니 이제는 지방정부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중앙정계까지 노리고 있소."
"문혁으로 주로 갈려나갔던 파벌이 태자당인 만큼 태자당 집권후엔 피의 복수가 기다리고 있겠군요."
"... 그런 셈이지. 헌데 문제는 차기는 내가 대권에 올라서는 것으로 어찌어찌 막을 수는 있으나... 아니 그것도 아닌가..."
후진타오의 말에 숨겨진 뜻을 캐치한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허수아비가 될까 걱정이시겠군요. 차기를 약속 받았다고 해도 국무위원 전부가 상하이방이라면 아무것도 못할테니."
"... 하. 속이 다 풀리는 군. 그렇소. 이미 그런 낌새가 보이기도 하고."
"해서 지음이 필요하다고 하신 겁니까?"
"서로의 뜻을 알아주는 이가 가까이 있으면 서로에게 좋으니 말이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말씀에는 동의합니다만... 그 전에 해주셔야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후진타오에게 여지를 남기는 말을 던진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차를 바닥에 휙하고 뿌리고는 앞에 놓인 주전자에 차를 채우며 말을 이었다.
"북부전구 문제. 그것 부터 먼저 해결을 해 주셔야 저도 흉금을 내리든 올리든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