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밀월 (3)
방산업체.
일반적으로 방산시장은 돈이 되지 않는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영화속 등장하는 거대한 군수복합체의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몇가지 예시만 들어도 이는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바쉐론 콘스탄틴, 브레게, 아 랑에 운트 죄네 등등의 최고급 시계 브랜드에서부터,
오트 쿠튀르를 이끄는 디올, 지방시 등등.
심지어 하이엔드 자동차의 대명사 페라리, 벤틀리 등등.
소위 하이엔드라 불리는 명품 브랜드들.
그 중에서도 생산량 자체가 현저히 적고, 수요자도 현저히 적은 브랜드들의 운명이 어떠하던가.
그 품격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아무리 비싸게 팔아도 결국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없기에 종국에는 자신의 존속을 유지하지 못하고 거대기업에 인수당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운명이 아니던가.
이를 방산업체에 적용하면...
'국가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사업'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극소수... 아니, 일반인의 구매가 아닌 독점적 무력투사권한을 가진 국가만을 상대로 하는 업계.
그 마저도 대부분은 자국 수요만 맞추고 끝일 뿐인 저성장 업계.
자연히 오가는 액수만 커보일 뿐 실제 남는 돈은 없는 허울 좋은 업계.
그것이 방산업계의 진실이었다.
이런 진실을 알면서도 내가 구태여 방산업체로의 허가를 내달라 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로는 역시 사업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R&D기반으로 산업을 굴리는 만큼 연구원들을 최대한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방산업체로 선정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지. 일단 방산업체 지정이 되면 병역을 처리해야하는 연구원들을 끌어올 수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내가 굴리는 사업체들이 전부 기술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R&D연구인력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고 이들을 통해 얻어낸 기술력을 가지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다. 어차피 중공업쪽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없고, 자동차 쪽도 이제 막 발 담그는 상황이니 방산으로 허가나는 것은 통신장비 정도일테니....
방산업체 허가를 받는다 해도 큰 무리는 없고.... 무엇보다 방산업체는 어쨌든 불황에도 팔리는 사업이니 보험도 될 수 있지.'
어차피 승인이 난다고 해도 다른 대기업들이 억지로 하고 있는 방산 시장이 아닌 민수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고,
또 이미 내고 있는 통신분야로 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 즉 두 번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중국에 가서 기술을 뜯기지 않는 방어막이 되어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 확실히 방산업체로 지정이 되면 국가 중요 기술로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 중국에 대놓고 뜯길 일은 없겠군."
누가 정치인 아니랄까봐.
김태충이 내 두 번째 이유부터 빠르게 캐치해내자 나는 웃으며 긍정하고는 다음 요구를 위해 말을 이었다.
"예.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더 있다는 말인가?"
"예. 이건 김태충 대통령님 말고도 클린턴 대통령님, 푸틴 대통령님께도 요청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내가 요구한 두 번째 조건은...
"종합대학을 설립하고 싶다고?"
"예. 한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모두 아우르는 종합 대학을 설립하고 싶습니다."
"모두 아우른다니...."
한국과 미국 러시아를 아우르는 종합대학의 설립이었다.
이 역시 인재 확보의 목적을 둔 것이었다.
'한미러 삼국의 인재들을 장학금으로 묶어서 QULAB에 일정기간 묶어두는 거지.'
그렇게 인재확보와 기술력 증진을 위한 '플랫폼'을 대가로 요구한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대학은 주시기로 한 대가와 별개입니다. 제가 직접 세워도 사실 각국 규정에 맞춰서 세울 수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편의와 협조를 구하기 위한 요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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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의 오부치 총리, 아니 중의원을 해산했으니 전 총리가 된 오부치는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대체... 김회장 결혼식에 각국 정상들이 참가한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그리고 이런 반응을 보고 있던 타케미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말이 안될 것도 없지요. 공식적으로는 각국 정상들이 전부 휴가기간 중에 방문한 것이기도 하고... 김태준 회장과의 개인적 친분이 다 있는 사람들이니."
"... 그 개인적 친분이라는 것이 더 놀랍지 않은가?"
"저로서는 그렇게 놀랍지 않네요."
그 말에 오부치는 허 하고 탄식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일부러 내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난 뒤에 결혼식을 열어버린 느낌이야. 일부러 일본을 배제하기 위해...."
그 말에 타케미치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너무 과한 해석입니다. 애초에 김태준 회장이 일본을 견제해서 얻는 이익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총리께서도 원하신다면 개인자격으로 가실 수 있었지 않습니까."
"... 선거기간에 말인가?"
"선거기간이라도 말이죠. 물론 각국 정상들이 그것도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 당사자들이 직접 방문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당시로서는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선택지가 손해라 여기셨겠지만요."
"그러는 자네는 왜 안갔나."
그말에 타케미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야 김태준 회장께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어디까지나 동등한 입장에서 유니버스에 요구하고 물건을 받아 올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신인 정치인 이미지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독하군. 자네도 김태준 회장도.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 들었는데."
그 말에 타케미치는 말 없이 차를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총리께서는 선거 준비 잘 되고 계십니까?"
"나야 잘 되고 있네만... 자네가 문제더군. 전략은 상당히 치밀한데 문제는 역시 인지도야.
타케미치 노시히코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니 이를 극복할 방법이 마뜩치 않아보이던데...."
"그 부분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지요. 일단은 대전략 전체는 전부 먹혀들었으니 그 다음의 일은 제 노력을 하늘이 봐주기를 바라는 수 밖엔 없겠지요."
"내 여식에게 말해둘테니 언제 한 번 날 잡아 고마신사에 참배라도 하고 오게."
그 말에 타케미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미신에는 취미가 없습니다."
"미신이 아닐세. 일종의 쇼지. 내 여식과 함께 간다면 내가 지지한다는 느낌을 줄 게 아닌가. 물론 나는 대놓고 부정하겠지만. 그 부정을 믿을 이들은 없겠지."
"알겠습니다."
"자네도 나도. 이번 선거는 무조건 이겨야 하네. 무슨 뜻인지 알겠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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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지 않은 회담의 결과는...
"알겠네. 그럼 그렇게 하지. 자네는 언제 중국으로 갈 텐가?"
"그래도 오늘 결혼한 새신랑에게 신혼을 즐길 시간은 주셔야지요."
"하하. 알겠네. 그럼 적당히 쉬다가 가는 것으로 알겠네."
내가 원하는 대로 끝이 났다.
그렇게 회담을 마치고 술기운에 살짝 붉어진 얼굴로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나는 위장된 피로연을 마치고 올라와 지쳐 쓰러져 자고 있는 민영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얼렁뚱땅이긴 했지."
날림.
온갖 임기응변과 급조된 결혼식.
그나마도 온전치 않아서 그 빈틈을 돈과 인맥으로 용접한 기묘한 결혼식이었으니 민영이 나가떨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나야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으니 그렇게 했지만... 민영이 입장에선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을테니까..."
그렇게 방에 들어온 나는 조용히 이곳 저곳 널부러진 책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네."
그렇게 책들 사이 기어있는 판례집을 집어든 나는 오랜만에 추억에 젖었다가 다시 내려놓고는 옷을 갈아입고 씻기 시작했다.
그렇게 찬물로 쌓인 피로를 훅 하고 날려버린 나는 민영이 자고 있는 내실이 아닌 거실격의 외실에서 따지 않은 와인을 따 마시고는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가로등이 만들어내는 소박한 일루미네이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꽤 멀리 왔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얼추 다 와가네."
그렇게 회귀 이후 지난날을 회상하며 다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의지를 다지던 나는 그 사이 잠에서 깬 민영이 내는 소리에 내실로 들어갔다.
....
...
..
.
어떻게든 민영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되어 평생 먹었을지도 모를 잔소리를 피한 나는 휴일을 내리 스위트룸에서 민영과 함께 보낸 뒤,
"잘 공부하고 있어. 금방 다녀올테니까."
"몸 조심해요. 조비서도 회장님 잘 모시고요."
곧바로 조비서와 함께 중국으로 향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미리 밑작업은 해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예. 저 쪽에서도 벼르고 있을테니까요. 중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내줄 때 부터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특히 항모건으로 이를 갈고 있겠죠. 그리고 뭘 요구할지도 계속 계산해두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내가 조비서에게 한 말 그대로....
"김회장님 되십니까?"
"국가안전부 요원입니까?"
"하하... 무서운 분인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예. 국가안전부 소속 장국환입니다."
비행기에 오르자 마자 바로 옆자리에서 우리를 안내할 길잡이가 말을 걸어왔다.
꿀꺽....
이런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한 조비서가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태연히 장국환이라 이름을 밝힌 중공의 국가안전부 요원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김태준입니다."
"예."
그렇게 가벼운 인사를 나눈 나는 장국환에게 말을 이었다.
"해서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겁니까?"
"예?"
"장쩌민 주석께 가는 겁니까?"
"아... 우선은 후진타오 부주석과 먼저 면담을 하실 예정입니다."
장국환을 마치 개인비서처럼 대하며 일정을 물어본 나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공청단에 먼저 가는군요. 하기사 다음 차례는 공청단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겠군요."
내 말에 장국환이 깜짝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는 이내 자신의 실책을 감추려는 듯 말을 이었다.
"조선분이신데도 꽤 중국 정세를 잘 아시는 군요."
"조선이라... 언제적 망한 나라를... 중국인들이 과거에 산다는 말을 이제 실감하겠군요."
그렇게 내가 장국환의 말 실수를 잡고 늘어지자, 장국환이 이내 말을 정정하며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도 중국의 정세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관심이 안갈 수가 있나요. 원체 몸뚱아리가 커야 말이지요."
"하하... 중국이 대국은 대국이지요."
그 대화를 끝으로 나는 '도착하면 깨워달라' 말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어차피 졸 이상은 될 수 없는 그와 대화를 나눠봐야 얻는 것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시간 조금 넘게 날아 베이징의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한 나는 장국환의 안내에 따라 곧장 후진타오가 있을 중난하이로 향했다.
그렇게 거대한 성벽 안,
거대한 호수 안쪽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섬 안에 모여 있는 고건물 사이로 역대 공산당 지도자들의 사진과 동상이 늘어선 회랑을 지나
전 현직 지도자들을 위한 공관을 넘어 후진타오 부주석의 집무실로 향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