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급변사태 (4)
내가 오부치에게 내민 거래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오부치가 이끌게 된 헤이세이 연구회에 오부치를 중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와타루에 대한 지지를 '비공식적으로' 철회한다.
2. 오부치를 중심으로 모인 중역의원들이 '일탈 행동으로서' 타케미치에 대한 지지선언을 한다.
3. 오부치는 2번의 조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원들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표명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조건을 달성시키기 위해 나 역시 오부치에게 두 가지 대가를 내놓아야 했다.
왜 요구는 세가지 인데... 값이 두 개냐 하면...
1. 오부치의 지역구 군마현 5구에 유니버스 관련 산업체를 둔다.
첫번째 대금에 비해 내가 줄 두번째 대금이 오부치에게는 그 무엇보다 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납북 일본인 문제. 이 것을 해결하기 위한 초석을 드리죠."
"... 그 말씀은...!?"
"김일천과의 회담.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회담만 성사시켜 주신다면... 제가 어떻게 해서든 시마네현을 회장님께 드리겠습니다."
한 순간에 자세를 고쳐앉고 전에 없이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오부치를 보며 나는 쓰게 웃어보였다.
'사람이 다 그렇다지만... 매번 정치인을 만날때마다 이런 식이라니... 특히 일본 정치인들의 이런 과한 쇼맨십은 거부감이 들 정도야.'
그러나 쓰게 웃은 것도 잠시.
나는 이어지는 오부치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더해. 군마현 5구도... 정확히는 오부치가의 운명을 회장님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예?"
"제 둘째 여식이 올해로 스물 여섯입니다. 아직 미혼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말에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채 허허 거리며 웃어보였다.
'정치적 성공을 위해 자기 딸까지 미끼로 써 나를 끌어들인다라... 어처구니가 없네.'
내 웃음에서 긍정의 의사를 읽은 것인지.
아니면 내 웃음에 머물고 있는 어처구니 없음을 애써 무시하며 달려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자신의 딸이자 지금은 자신의 개인비서로 활동중인 오부치 유코에 대해 이야기를 해댔다.
"... 한국의 미디어 그룹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제 딸의 경우 TBS의 PD생활도 오래 했고... 세이조대 경제학부를 나와 회계도 능통하니...."
그 말을 그저 묵묵히 듣고 있던 나는 더 듣고 있는 것이 시간 낭비라 생각되어 헛기침으로 잘라내고는 말을 이었다.
"꽤 감사한 제안입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해주시면..."
그리고 그 때, 나는 문득 타케미치는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오부치 가문이 어디 약소가문도 아니고 자기 아버지대부터 정치해 온 정치 명문가인데다 오부치 게이조대에 와서는 총리까지 지낸 집안인데... 이대로 놔주긴 아까우니...'
그렇게 나는 속으로 생각을 마치고는 오부치에게 말을 이었다.
"약속한 것들은 전부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따님의 혼사에 대한 것은 제가 중매를 서도 되겠습니까?"
"중매라 하시면.. 어디 괜찮은 이가 있는 겁니까?"
"제가 가진 KTJC 전체 지분의 3%를 보유한 건실한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그 말에 내가 씩 웃기만 하자 오부치가 슬쩍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타케미치 노시히코... 그 친구입니까?"
"예. 저와는 사업 초기부터 함께한 친구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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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일본에서 새로운 거래를 트고 있을 때, 북한은 전후 복구가 한창이었다.
"그래. 애들은 들어왔나?"
"예. 김성남 동지, 김성은 동지까지 모두 귀국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슬슬 준비해도 되겠구만."
"정리가 끝나는 대로 바로 열병식 진행준비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일천에게 보고한 병사가 물러나자 곧 이어 김성남이 김일천의 집무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니가 해줄게 있다."
"어떤걸 하란 말씀입니까?"
"유엔 대사로 가라."
태준이 짜준 계획대로.
김성남을 유엔대사로 보내는 결정을 내린 김일천.
그런 김일천의 결정을 김성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알겠습니다."
김성남이 김일천에게 반발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애시당초 권력에 큰 욕심을 부리는 성격도 아니었거니와 캄보디아에서 미국으로 보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 놈... 저거 이해를 못한 것 아냐?'
한 평생을 독재자라고는 해도 한 나라의 지도자로 살아온 김일천이 김성남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를리 없었기에 김성남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 흐리멍덩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진짜로 이번에는 가서 제대로 해야한다 이 말이다.
니 동생한테 이 자리 뺐길까 무섭지도 않디?"
그런 김일천의 말에 김성남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이 명령하면 따른다. 그게 우리들의 규칙 아닙니까?"
그 말에 김일천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맞다. 그럼 준비 되는대로 바로 가라."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가서 리영철 대사와 자리를 바꾸면 되지 않갔습니까?"
"... 가면 리영철이가 네가 거기서 할 일을 알려줄게다. 대표부 위치는 알지?"
"맨하튼이지 않습니까?"
"그래. 가서 일단은 지시를 기다리라 그럼."
그렇게 김성남이 김일천에게 묵묵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자 김일천은 사랍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저 새끼 저거... 사내새끼가 기백도 없고 야망도 없고 쯧."
그렇게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난 김일천은 지난 남북정상회담 이후 태준이 설치해준 최신형 인터폰을 눌러 말을 이으려는 그때.
태준에게 쥐어준 비화용 무전기에서 호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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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과의 거래가 성사 된 후, 일본은 곧장 선거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나름대로 정권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온 만큼, 국민 여러분께 재신임을 묻고 싶다는 기분,
그리고 제 선배이자 스승이기도 했던 다케시타 전 총리의 부재는 제게 있어 이번 결단을 내리게 하기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저 오부치 게이조는 이른 시일 내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체제에 돌입할 것을 선언합니다."
오부치 총리의 국회 해산 예고가 떨어지자, 총리관저에서는 발빠르게 중의원 해산 조서가 작성되어 중의원에 전달되었고,
"일본국 헌법 제 7조에 의해 중의원을 해산한다!"
곧 이어 중의원 의장 이토 소이치로에게 전달된 중의원 해산 조서는 곧바로 모든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낭독되어 중의원 해산이 확정되었다.
"반자이!!!!"
"반자이!!!!"
그리고 그 낭독과 함께 모든 의원이 만세를 부르는 풍경이 외신을 타고 전달되었다.
그것을 본 태준은...
"거 참... 저 만세 삼창은 진짜 볼때마다 소름돋네. 대체 자기들 짤렸다는데 왜 저러는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어찌 되었든 태준이 원하던 대로 일이 진행되는 중이었기에 태준은 마음놓고 중간중간 들어오는 보고를 받으며 본인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이제 작업 시작이고, 북한은... 얼마전에 연락했을때 김성남을 유엔 대사로 보냈다고 했고...
합자회사는 러시아 법인으로 설립 완료 했고.... 다음은 미국인가?"
그렇게 수첩을 보며 하나하나 해나간 일들을 정리하고 해야할 일들을 다시 확인한 태준은 이내 수첩 맨 아래에 적힌 문구를 보고 피식 웃음지어 보였다.
- 절대 잊지 말것. 결혼.
"적어두길 잘했네."
민영과 결혼하기로 한 날, 저녁을 먹고 함께 밤을 보내고 난 뒤, 민영이 신신당부해서 적어놓은 문구.
그 문구를 본 태준은 이내...
"지금 시간 여유 있을 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문제는 민영이가 지금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있는게 문제네...
원내에 있을때 결혼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는데... 그건 원내 커플이어서 가능했던 느낌이라... 흠... 알아볼까?"
혼잣말을 하며 수첩에 적힌 to do list의 최하단에 있던 결혼을 최상단으로 옮겨 적고는 곧바로 톰 포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혼식 준비하려고 하는데... 신랑 신부 드레스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
..
.
- 한국 최고의 IT/언론 재벌 김태준 회장, 노총각 신세는 면하다!
- 김태준 회장, 전격 결혼 발표. 상대는 일반인 여성.
- 올해 최고의 열애설, 전부 UEP에서 가져간다. 김태준 회장부터, 정도연, 이선재까지 줄줄이 품절!
태준이 본격적인 결혼준비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무섭게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이웃나라의 총선은 물론, 북한의 급변사태 역시 전부 뒷전으로 밀리는 기현상을 보였다.
그에 대해 혹자는...
"연예인이나 재벌의 결혼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은 알겠지만... 이런 가십이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일본도 북한도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판국에 우리가 시답잖은 가십거리에 집중한다면...."
가십거리 취급을 하며 이런 분위기에 비판을 가했으나, 정작 국민여론은...
- 저 머저리들 뭐라냐. 나랏일은 나라에서 알아서 해야지. 우리가 해외 정세까지 일일히 다 살피고 그럴 것 같으면 뭐하러 세금을 내냐?
- 그 말도 맞는 말인데...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 해서 김태준 회장이 어디 보통 사람인가?
핸드폰부터 가전, 컴퓨터 전부 만들지, 그 안에 들어간 부품도 전부 자체 공급이고, 거기다 인터넷 사업도 오죽 잘 되냐고.
그것만이면 몰라, 경영권 행사는 안한다지만 언론도 가지고 있고, 거기다 초대형 기획사도 가지고 있는데다, 톰 브라운도 김회장꺼잖아.
재벌 창업주중에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기나 했나? 관심 가지는 건 당연한거지 뭘 또 억지로 국개론 꺼내들면서 훈장질을 하는지...
- 윗댓 진심 동감이다. 거기다 막말로 북한에 통신선 깔고, 미국 대통령에 러시아 대통령이랑도 친한 사람인데. 그 사람 결혼에 관심 갖는건 당연한거 아님?
김태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 이번에 유니버스에서 나온 핸드폰 써본 사람? 유니버스 네트워크에서 새로나온 요금제로 가입하면 인터넷 되는데.. 진짜 이거 신세계가 따로 없다. 느리긴 한데, 움직이면서 커뮤니티 볼 수 있음.
- 아, 그거 좀 비싸던데... 쓸 만함?
- 개 좋음. 아, 그리고 추가 수수료 내면 핸드폰에 신용카드 등록해서 쓸 수 있음.
김태준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에 우호적인 여론으로 김태준 자체가 일종의 불가침의 성역처럼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슈는 한국을 넘어, 미국, 동남아를 거쳐 일본과 러시아를 강타하며 태준이 벌인 일들을 싹 숨겨주는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태준이 의도하지 않게 만들어낸 방어막 속에서....
"타케미치 후보. 그럼 우리쪽에서 은밀히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일본의 손의정과 타케미치는 물론,
"태준 덕에 일이 수월하겠군요. 사람들 관심이 저기 몰려있을때 우리도 슬슬 시작하죠."
"그럽시다."
미국의 클린턴과 푸틴.
"흐음... 태준이 그놈이 결혼을 한다고... 참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군. 당장 남측에 연락해 극비로 만나자고 전달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김일천까지.
각자의 목적과 욕망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