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127화 (127/200)

127. 4자회담 (7)

한편, 태준이 김일천과 대화를 나누러 잠시 별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 클린턴은 생각에 잠겼다.

'과연... 혹시나 해서 태준에게 알려줬더니. 역시나군. 김일천이 태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

아니, 이쯤되면 이건 단순한 호의라 볼 수는 없겠지. 의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하기사 태준의 화술이라면 충분히 김일천을 구스르고도 남을 수도 있어.

김일천에게 있어 태준은 사실상 외로운 전제군주의 생활을 이어가던 와중에 나타난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일테니....

거기다 태준은 결코 거래에 있어 상대방에게 손해를 떠넘기는 사람이 아니지.

그것 만으로도 김일천의 호감... 아니 신뢰를 얻기엔 충분했을테고.'

그렇게 클린턴이 태준과 김일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클린턴에게 푸틴이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폐쇄국가라 이건 좋군. 언론이 없으니 말이오."

"하하. 재미있는 농담이군요."

"어제 클린턴 당신이 유라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 때, 유라가 태준을 부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부를 줄이야.

저기 김태충의 불안한 표정이 보이시오?"

그 말에 클린턴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만도 하지요. 한 평생을 민주화에 투신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북한과의 통일을 꿈꾸며 유화정책을 펼쳤는데....

외려 우리쪽에서 북한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속이 쓰릴겁니다."

"그런 인간적인 감상을 배제하고 생각해보면 어떻소."

"그야... 그의 삶을 저 개인적으로 존경은 하지만... 이상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렇지. 그러니 저렇게 북한에 퍼주고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 함께 의논하지 못하는 거요.

태준은 그런 의미에서 전혀 다르지. 상대의 이익도 다 챙겨주거든.

아마 지금쯤 태준이 열심히 클린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설득해주고 있을거요."

"...러시아는 어떤 쪽을 원합니까?"

"나 말이오? 나야 당연히 북한이 존속하기를 바라지. 망할 것이라면 최대한 천천히 망하기를 바라고.

망해서 한국에 흡수통일 되는 순간 미군 부대가 블라디보스톡 코 앞까지 올텐데... 그걸 바랄 나라가 어디에 있겠소.

더구나 우린 러시아인데."

"... 하긴 우리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었었으니 그 마음 잘 알지요."

"하여간 미국인들이란. 결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지."

그렇게 푸틴과 클린턴이 은밀히 대화를 나누며 가리킨 김태충은 말 그대로 사색이 된 표정으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불온한 생각에 한참을 불편해하고 있었다.

'북한이 이번 기회에 개방이 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

하지만, 그 방식이 결국 통일은 커녕 북한을 아예 영속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개발 독재 국가로서 북한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분명 체제도 지금보다 더욱 공고해질테고.... 대만 계엄령이 깨지기까지 38년이 걸렸는데... 북한은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기껏 한 협상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지.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선언에 가까운 표현인 만큼 북한은 오히려 통일을 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지금의 북한을 기업국가로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설사 이후 통일을 한다고 해도.. 거대한 재벌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도 모를 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최악의 상상만을 거듭하던 김태충은 이윽고 개운한 얼굴로 나오는 김일천과 태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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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한 번 정리해보죠.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에는 우라늄을 팔 권리를 받고, 종전에 받기로한 지원도 다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발독재국가로서 독재를 하는 것까지는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내 말에 김일천이 슬쩍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독재가 아니라 영도체제지."

"그렇죠. 영도체제."

그렇게 내가 말을 정정하고 다시 생각에 들어가자

김일천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놓인 크리스탈 잔을 들어 물을 들이붓고는

각설탕 비슷한 무언가를 집어넣더니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젓고는 그 물을 들이키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말해야 잘 구스를 수 있을까.. 어떻게... 미국이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본질적으로는 북한을 제외한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

그렇게,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 머릿속에서 헤엄치던 생각이 낚시대에 턱하고 걸리자,

나는 씩 웃으며 김일천에게 말을 이었다.

"국방위원장님."

"음? 그래. 좋은 생각이 났나?"

"체제 유지... 아니 정확히는 정권유지만 확실히 된다면 핵이 필요한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지. 핵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니까."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핵 개발. 계속하시죠."

"음?"

내 말에 놀란 눈으로 눈을 부릅뜨는 김일천에게 나는 내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살짝 정정했다.

"정확히는 핵 개발을 하는 척만 하시죠."

"하는 척이라..."

"예. 어차피 합의사항에 따르면 러시아는 한반도 동쪽 해안을 따라 대한민국 지역까지 쭉 내려와 가스관을 설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스관이 거치는 지역의 땅은 전부 임대료를 받게 될 것이고요."

"그야.. 그렇지."

"거기다 제가 또 북한의 희토류를 사갈 예정이지 않습니까? 결국 돈이 쌓일겁니다. 거기다 대한민국에서 지어줄 개성 공단까지 있으니....

당분간은 돈 걱정이 없겠죠."

그 말에 김일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클린턴이 그러더군. 정권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만약에라도 공화당으로 바뀌는 순간 이 제안은 없던 일이 될 것이라 그러더군."

"맞는 말입니다. 그러니 개발을 하는 척만 하시라는 겁니다. 진짜 개발이 아니라."

그 말에 김일천이 생각하는 시늉을 하자, 나는 김일천 스스로가 이 답을 떠올린 것이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은근슬쩍 김일천에게 답이 될 만한 말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러면서 동시에 위원장님께 반기를 들 만한 인물들을 전부 쳐 내시고,

외화벌이 일꾼들의 자리부터 빠르게 위원장님의 개인 사재로 만들어진 기업의 사람들로 채워넣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빠르게 경제체제를 장악한 이후에. 저를 통해 미국과 거래를 트면 되는 겁니다.

미 대선이 올해 11월이니... 11개월 이내에 이 모든 과정이 끝난다면... 위원장님께서 대놓고 통일을 선언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신다 한들.

사실상 북한 전역은 위원장님의 것이 될 겁니다. 미국,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엄청나게 성장할 수도 있겠지요."

그 말에 김일천이 흠 하고 생각을 끝내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수장으로 있는 것과 기업의 수장은 다를텐데."

"다르지요. 권력은 한순간이지만, 재산은... 삽질만 안하면 영속하니끼요.

더구나 돈이 엄청나게 많다고 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거의 없지만, 권력이 엄청 많으면 늘 생명의 위협을 달고 살아야 하기도 하니...

어떤 면에서는 재벌이 더 낫습니다."

그 말에 김일천이 빤히 나를 보더니...

"하하... 정말 대단해. 완벽한 출구계획으로 보이는군."

"덤으로 후대에 칭송을 받으실 수도 있겠지요. 한국사에 통일을 이룩한 군주가 고려대의 왕건 밖에 없음을 생각해본다면...

진짜로 이 계획이 완벽하게 먹혀서 통일이 된다면 그 중 한명으로 영원히 기록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적당히 김일천의 명예욕까지 살살 자극해준 나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덤으로 재벌로 변신에 성공하시면... 이 좁은 북한 땅에 갇혀계시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큰 메리트죠.

물론 위원장님의 선택입니다만... 위원장님 개인을 너머 위원장님의 가족들까지 전부 생각해 본다면... 나쁠 것 없는 제안이라 보여집니다.

군대 역시... 해산시킨다고 해도 PMC(Private Military Company)로 전환해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기도 하고요.

거기다... 여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 않습니까? 재벌이 되어 경제를 장악하고 투표를 붙이면...

굳이 이런 불합리한 깡패국가 행세를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국가의 수장자리에 있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권력에 대한 한 줌의 미련까지도 슬쩍 달래준 나는 미소짓는 김일천과 함께 웃으며 별실을 나설 수 있었다.

...

..

.

그렇게 모든 설득을 마치고 별실에서 나온 나는 연이어 이어진 행사들에 참가하며 쓱 각국 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모두가 각자의 계산이 있을텐데도 모두가 침묵한채 그저 하하호호 거리며 잔을 부딪히고 음식을 먹는 이 장면은 TV에서 보던 것들 보다 훨씬 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나도 이 괴물들 중에 한 명이지만.... 그래도 보기에 좋진 않네.'

그렇게, 만찬을 즐기고, UEP에서 주도적으로 준비한 남북합동공연도 보며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느새 길게만 이어질 것 같던 남북정상회담, 아니 긴급 4자회담의 막이 내려갔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서울에서 뵙는 것으로 하시지요."

"곧 그렇게 될 수 있을겁니다."

그렇게 역사적 상징이 될 남북지도자들 사이의 악수하는 사진 속에 클린턴과 푸틴이 박수를 쳐주는 장면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온전히 회담은 끝이 났다.

"여기. 클린턴 대통령이 보내는 쪽지입니다. 귀국 후에 읽어보시죠."

"... 푸틴 각하의 서한이오. 안전한 곳에서 읽어보시고 처분하시라 하시었소."

"여기, 위원장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네다. 서울에 돌아가거든 연락달라고 하시었습네다."

물론 회담이 끝이 났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시간차를 두고 몰려든 한개의 쪽지와 하나의 편지, 그리고 선물함 속 인삼 밑에 깔린 투박한 무전기를 보고는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부 요인들, 무대를 위해 함께온 우리쪽 직원들과 연예인들이 탄 비행기가 이륙하자 대한민국 공군 1호기의 내실에 있던 김태충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이... 태준이 자네 들어와보게."

김태충의 말에 나는 군말 없이 경호처 직원들이 지키는 내실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내가 들어가자 마자 김태충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자네까지 김일천이 우리 대한민국을 건너뛰려 드는 것에 협조하면 어쩌자는겐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게 따로 배정받은 요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북한 그것도 저들 말로는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제가 거부하겠습니까?"

"나를 바보로 아는겐가? 아니면 자네도 나를 무시하고 싶은겐가."

그 말에 나는 김태충이 앉은 객실의자 맞은 편에 앉아 말을 이었다.

"그 어느쪽도 아닙니다. 뭐하러 제가 그러겠습니까?"

"그럼 말해보게. 김일천 그 자가 뭐에 대해서 물었나?"

"대통령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제안한 체제유지안. 그에 대한 조언을 구하더군요."

내 말에 김태충이 슬쩍 인상을 쓰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도와줬나?"

"도움이라... 그걸 도움이라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자세히 말해보게."

그렇게 내가 당시 별실에서 있던 말을 김태충에게 전하자 김태충이 역정을 내며 말을 이었다.

"그게 도움을 준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런 김태충의 역정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통령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정도면 김일천... 그 자도 속아 넘어가겠군요."

그 말에 김태충이 놀란 표정으로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

그 눈빛을 받은 나는 씩 웃으며 내가 김일천에게 해준 말들에 담긴 함정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리고 그 설명이 모두 끝나자.

김태충은 빤히 나를 보더니....

"푸하하핫. 자네 진짜 미쳤군. 미쳤어. 이런 말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툭툭 내 어깨를 쳐주고는 말을 이었다.

"자네 말 대로만 된다면... 아니 그의 반만 되어도... 잘 하면 내 임기 안에 통일을 이룩할 수 도 있겠어."

"그렇게 빨리 통일이 되진 않겠지만... 분명 통일이 이뤄지긴 할 겁니다."

"그렇지. 자네가 꿀발라 던진 그 폭탄들이 언제고 터질테니 말이야.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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