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4자회담 (5)
태준이 그렇게 소리없이 미소를 지으며 웃고있던 그 시각.
타케미치는 수난을 겪고 있었다.
- 짝!
강하게 내리쳐지는 뺨에 휙 돌아간 고개.
그리고 다시 한 번...
- 짝!
반대편 뺨으로 내리쳐지는 거친 손길을 느끼며 타케미치는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대체 당신이 하는게 뭐야! 애초에 당신 역할은 김태준 회장과 우리 자민당의 파이프 노릇이 아니었나?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를 수 있나?!"
그리고 그렇게 타케미치를 괴롭히는 이는 바로 골골대는 다케시타 노보루의 직계 후계자이자 그의 동생 다케시타 와타루였다.
같은 비서.... 아니, 직제상으로만 보면 타케미치가 제 1비서인 이상 이런 수모를 겪을 일은 없어야 맞지만...
이곳은 일본.
지역구를 번(藩)으로 삼고,
당사를 성(城)으로 두며,
표를 고쿠다카(石高 ; 봉건제 일본사회에서 번의 경제력을 쌀의 생산량으로 환산한 제도)로 삼는
다이묘(大名) 정치를 당연시 여기는 유사 '민주국가'
였기에 이런 타케미치의 갑질과 폭거를 문제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결국 타케미치를 분이 풀릴때 까지 때리던 다케시타 와타루는 타케미치의 속을 긁어 놓는 발언을 하고야 말았다.
"잘난체 하며 떠들어 대더니 결국 조센진에게도 버려지고, 우리 당에나 기생하는 파렴치한 같으니라고..."
자신의 마음 속 주군. 태준을 조센진으로 낮잡아 보는 와타루의 말에 폭발한 타케미치가 다시 한 번 날아오는 와타루의 손을 잡아채고는 말을 이었다.
"그 말 철회하시죠."
"뭐?"
"철회하라 말했습니다."
그렇게 타케미치가 눈을 부라리며 찢어 죽일듯이 와타루를 바라보며 말하자 와타루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이... 개만도 못한 종자가...!"
그렇게 난투극이 벌어지려는 그 순간.
"그만. 뭣들 하는게야."
이제는 완전히 노쇠해질 대로 노쇠해진 다케시타 노보루가 나타나며 제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와타루. 그만 나가라."
"형님."
"나가."
그렇게 와타루에게 축객령을 내린 다케시타 노보루는 타케미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꽤 험한 꼴을 봤군."
"아닙니다."
"그리 말해주니 다행이군."
타케미치와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은 다케시타 노보루는 이내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우선은... 대책부터 마련해보지. 남북정상회담... 아니 이제는 4자회담이겠군. 김태준 회장이 만든 그 자리에 우리가 낄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인가?"
"예. 이미 김태준 회장이 작심하고 배제한 상황에서 우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오부치 총리가 비록 우리 파벌의 사람이고...
김태준 회장과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함께 하고 있는 사이라고는 해도....
일본의 KTJC에 대한 공격기조를 가만히 두고 볼 만큼 무골호인은 아닙니다. 김태준 회장은."
"... 그야 그렇겠지.... 과연... 이 건은 의리보다는 정치로 풀어야 하는 것인가."
"예."
"그래... 때린게 있으면 갚아주는 것이 맞지. 맞은 것만 갚아주려면 정치가 아니라 고쿠도(極道; 야쿠자를 높히거나 돌려 이르는 말)을 했어야지...
그래. 우선 어찌하면 되겠나."
"우선...."
그렇게 타케미치의 계획아래 헤이세이 정책연구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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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 대행이 평양으로 들어왔습니다."
"벌써?"
"듣기로는 깜짝 회담 당시 블라디보스톡에 있었다고 합니다. 군항 시찰 명목으로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조비서에게 알겠다고 한 뒤 곧장 푸틴을 보러...
-똑똑똑.
"날 세."
일어나려했으나, 먼저 찾아온 것은 푸틴이었다.
"들어오시죠."
그렇게 푸틴이 내 방에 들어서자, 푸틴이 대동한 요원 넷이 방 안으로 들이 닥치더니 뭔가를 설치하고는 고개를 끄덕이자,
푸틴이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거 참. 자네도 조심성이 없군. 도청장치를 끼고 숙소에 머물다니. 이곳이 어딘지 잊은겐가?"
"일부러 둔 겁니다.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좋은 장치니까요."
내 말에 푸틴이 무표정한 표정을 지어보이다 이내...
"일부러....? 하하...하하하하!"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단전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린 광소를 토해내고는 말을 이었다.
"하기사. 자네 주변에는 애초에 보는 눈이 많지. 최근에는 CIA쪽도 자네 주위를 얼씬대던데 말이야."
"IRS(Internal Revenue Service ; 미 국세청)가 아닌게 어딥니까."
"하핫... 맞네. 맞아."
그렇게 푸틴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은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바로 넘어오셧다고는 해도 여행은 여행인데. 피곤하진 않으십니까?"
"피곤하진 않네. 젊은 시절 부터 해외에 돌아다니는 데에는 이골이 나있어서 말이지. 북한도 일전에 한 방문한 적이 있어서 그리 어색하지도 않고."
그 말에 나는 푸틴이 어떻게 북한을 왔다가 돌아갔을지를 상상하며 피식 웃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다행이군요. 해서 어쩐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습니까?"
"어차피 자네가 올 것 같아서 말이지. 보안 문제도 있고 하니 아예 내가 자네 방으로 온거지.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내 거처까지 열어줄 수는 없거든. 규정상."
"그럼 이번 회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렇게 내가 먼저 본격적으로 포문을 열자 푸틴이 여유롭게 시립한 요원에게 홍차를 주문하고는 말을 이었다.
"뭐... 어차피 자네가 생각한 대로 우리쪽에서야 한반도 전체를 관통하는 천연가스관 파이프라인을 제안할 예정인데 더 이야기 할 것이 있나?"
"예."
"말해보게."
"합작 법인을 하나 세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북한 땅을 빌리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어떤 합작법인을 말하는겐가?"
"대북사업을 관장하는 한러미의 합작법인입니다."
"미국까지?"
"예. 가스관 건설부터 북한 지역의 통신 사업가까지 전부를 관장하는 법인을 함께 세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내 말에 푸틴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에 미국이 끼어있을 필요가 있나?"
약간은 기분이 상한 듯한 표정의 푸틴을 보며 나는 씩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뭔가 그 이유가."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북한의 목줄을 쥐기 위해서 입니다."
"북한을 안심시킨다?"
"예. 북한은 러시아의 방북을 환영하면서도 내심 거추장스러워 하고 있을 겁니다.
종주국으로 삼던 소련이 오랜만에 북한에 다시 찾아왔으니 반가우면서도 또 다시 자신들 만의 성을 위협하는 세력이라 생각할테니까요."
"과연... 일리 있는 지적이군. 광기에 찬 유라(김일천의 러시아 이름)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내 설명에 푸틴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나는 마저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예. 그런 상황에서 표면적으로라도 미국이 끼어있으면 러시아만의 단독 사업에 대한 경계를 조금이라도 풀겠지요."
"과연..."
"물론 우리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있고, 그 관계에서 북한이 원하는 대로 싸워주진 않을 것이지만, 이념에 사로잡힌 북한 수뇌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미국을 끼운다는 것인가?"
"예. 물론 여기서 끼어들 미국의 회사는... KTJC-A. 즉, 제 회사입니다. 어쨌든 법인상으로는 미국 법인이니 미국이 여차하면 끼어들 여지를 마련해두면서 동시에...."
이어진 설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푸틴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질적으로는 자네와 나 둘이서 해먹는 사업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군."
그 말에 나는...
'자네와 나라... 가즈프롬이 푸틴의 것은 아닐텐데... 뭐. 어차피 곧 짜르가 될 사람이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네.'
라고 생각하며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선선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분 구조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북한 당국에 25%, 한국의 유니버스가 25%, 미국의 KTJC-A가 25%, 그리고 가즈프롬이 25%를 가져가게 될 겁니다. 물론 가스는 제 값을 받고 파셔야 하니, 가즈프롬의 특수 자회사를 설립해 들어오셔야 할 겁니다."
"자네가 50%나 먹겠다고?"
"예. 이 자회사를 통헤 북한의 통신시장에도 들어갈 생각이거든요."
"통신시장에 가스관 관리 사업까지 하는 사업체가 되겠군. 결과적으론."
"그렇습니다. 애초에 가스관에 누설 확인을 일일히 사람 손으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감지기를 설치하고, 그에 대한 통신 시스템을 구축하고 하려면 통신 사업은 필수지요.
아, 북한의 지분 25%는 땅을 빌리는 임대료를 겸함과 동시에 북한에 채우는 족쇄입니다."
"돈 맛을 보여주고 허튼짓을 못하게 할 생각이군."
그 말에 나는 속으로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긴 합니다.'라고 답해주고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런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정부 시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요."
"자네도 고생이군. 여러 나라에서 다 자네만을 찾으니."
"그 만큼 보람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고."
...
..
.
그렇게 푸틴과 거래를 마친 나는 곧이어 도착한 클린턴에게도 그러한 합의를 도출해내고는 이 사실을 바로 김태충에게 알렸다.
"... 러시아의 가스관 사업을 맡았다?"
그러자 김태충이 불만을 감추지 못한 채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가스관 관리 사업입니다."
"그것은 우리 가스공사가 맡기로 할 작정이었네만. 애초에 천연가스면 국가관리 자원인데 이걸 자네가 관리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아무리 파이프만 관리한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차라리 가스공사로부터 발주를 받았다면 모를까. 서순이 뒤바뀐 것 아닌가!"
그렇게 김태충이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며 내게 으르렁대듯 말하자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가스공사는 가스관을 통해 들어오는 가스의 국내 시장을 맡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거기다 공기업이 북한에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 여론도 딱히 좋을 것은 없고요.
저는 오히려 칭찬 받을 줄 알았는데요."
"월권을 당하고도 내가 칭찬할 것이라 기대하다니 거 참... 자네도 가죽이 두껍군."
그 말에 나는 스산하게 웃음지으며 김태충에게 말을 이었다.
"이번 사업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커졌는지를 떠올려 보시죠."
"... 그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만,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지 않았나."
그 말에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그렇게 이어진 내 말에 김태충은 경악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증권사에 카드사라니! 지금 금산분리 원칙을 어기겠다는 건가?"
나로서도 한 발 물러난 제안이었지만, 김태충은 그런 내 제안에도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그런 김태충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이 인간은 나를 벗겨먹기만 할 작정이었던건가...' 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럴리가요. 증권사는 비은행 금융기관이라 원칙을 어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다만 허가 받기가 어려울 뿐. 그 허가를 좀 편히 해달라는 것입니다.
은행을 세우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그렇게 내가 전생의 법조계 지식을 활용해 김태충을 압박하자 김태충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KTJC가 보유할 지분까지 내놓는다면..."
김태충이 사실상의 항복선언과 함께 추가 딜을 요구했지만,
"아, 그건 안됩니다. 그건 미국쪽 파이프라서요. 미국을 설득할 수 있으면 저도 수긍하겠습니다."
이미 빈정이 상할대로 상한데다, 미국으로 이어지는 파이프가 없어지면 미러 양국과 공유한 대전략에 해가 되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알겠네. 증권사와 카드사 설립.... 허가 해주도록 하지. 결격사유만 없다면."
그렇게 내 거절의사를 들은 김태충이 끝끝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토를 달며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지만,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런 김태충의 말에 씩 웃음지으며 답을 해주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핀테크 라인까지 확보를 했으니 이제는 달리기만 하면 되겠어.
어차피 북한 쪽은 미국 통해서 한다리 걸치고 있기도 하니...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지.'
그렇게 북한에서 원하던 모든 것을 확보한 나는 이 지루한 4자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여유롭게 평양관광을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