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4자회담 (4)
"이번 회담에 유니버스 김태준 회장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이 이번 앤서블 깜짝 회담을 통해 드러났죠?"
KBS 특집 생방송 '남북정상회담'의 메인 진행자이자 9시 뉴스 앵커이기도 한 김훈식 아나운서는 한순간에 바뀐 프로그램에도 프로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안정적인 진행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생기가 넘치는 진행으로 시청률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기존의 프로그램이 태준의 유니버스에서 송출해 보내온 영상을 해설하는 것에 그치는 말 그대로 지루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프로그램은 '한반도 비핵화의 길, 긴급 4자회담 특별 생방송'이라는 딱딱하기 그지 없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태준이 보여준 엄청난 '쇼'에 모든 이들이 집중하는 이슈를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그 해설을 들을 수 있었으니 김훈식 아나운서 본인으로서도 훨씬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김훈식 아나운서가 흥미로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채 은은한 미소를 띈 채 패널석에 앉혀진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지자,
해당 전문가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을 했다.
"그렇습니다. 소소하게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대행도 앤서블을 쓴다는 것이 확인이 된 것이기도 하지요.
그에 더해 그들이 쓸 정도라면 보안 역시 냉전의 주축이었던 양 국에서 인정을 받는 수준이라는 것도 드러난 셈이고요."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일본어와 영어, 두 언어만을 주로 사용하던 사람이 발음하는 한국어와도 같은 어색한 발음.
하지만 그 발음에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전 질문을 받아 대답을 한 인물은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이자, 태준의 은사이기도 한 전길남 박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가진 함의는 단순히 태준이 보여준 기술에 대한 우위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질문을 던진 김훈식 아나운서는 능숙하게 전길남 박사의 답변을 끊어내며 옆자리에 앉은 서울대학교 정치학부 교수인 사공 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술적인 혁신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일대 사건이 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번 깜짝 회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의미가 다소 축소되었다는 점에서는 현 정권의 악재로도 볼 수 있겠지만....
역설적이게도 통일을 가장 반대할 중국과 일본을 배제하고 주요 강대국을 테이블에 앉혔다는 점에서는 현 정권의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정권에서 있었던 북핵관련 회담의 경우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된채 협상이 타결되었다가 지지부진 끝이난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그리고 연이어 미국의 제안으로 성립한 96년부터 작년까지 3년에 걸쳐 네 차례 진행되었던 한미중북 4자회담을 생각해 본다면,
이번 성과는 단순히 민족감정으로만 손익을 계산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공 현 교수의 발언에 김훈식 아나운서는 꽤 좋은 그림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슬쩍 자신을 노리듯 빨간 불을 반짝이는 카메라 너머에 있는 보도국 국장을 바라보았다.
- 계속 진행해. 질문 더 던져.
그렇게 보도국장이 든 스케치북 위로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다급하게 매직으로 휘갈겨진 글씨를 읽어낸 김훈식 아나운서는 흥미롭다는 미소를 자아내며 말을 이었다.
"해석은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군요.
확실히 이번 사건이 벌어진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아직 각 정당의 대변인들 역시 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손익에 대한 문제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주제를 가볍게 바꿔보도록 하죠. 이번 깜짝 회담을 통해 김태준 회장의 인맥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편 패널석(이라곤 해도 '99분 토론'이 아니었기에 입장이 반대인 것은 아니었다.)에 앉아있던 우대증권 애널리스트 백종기가 말을 이었다.
"일단 김태준 회장의 경우 미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PAC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건 경제 동향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클린턴 대통령의 등장에 대해서는 일반 대중들 만큼 놀라진 않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몸 담고 있는 우대증권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지요."
"의외인 것은 역시 러시아였죠."
백종기의 말에 김훈식 아나운서가 추임새를 넣자 카메라 너머에 서있던 국장이 빠르게 김훈식 아나운서 뒤편으로 보이는 보도국 유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TV에서는 자료화면으로 비춰진 푸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진 아래 앤서블 마크가 선명히 박힌 것이 TV로 나갔지만, 간접광고로 제지를 받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연신 앤서블 로고가 박힌 푸틴의 사진이 각도를 바꿔가며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자료화면을 배경으로 우대증권의 백종기 애널리스트가 말을 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대행의 경우 비교적 최근까지 지방 정치권에 있던 인사였고,
총리 지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옐친 대통령의 건강 악화로 인해 그 자리에 있게 된 인물이기에 김태준 회장과의 접점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향간에는 급작스럽게 있었던 2차 불곰사업에서 항모를 들여올 수 있었던 것도 김태준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부분은 공식적으로 양국 정부의 견해가 '채무 이행을 위한 거래'라는 것이 공식 입장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소문이라고 밖에는 말씀 드릴 수가 없겠군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태준 회장 입장에서나 양국의 정부 입장에서나 대놓고 그것이 사실이라 인정하지도 않겠지요."
"어째서 인가요."
"김태준 회장의 경우 유니버스의 회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니버스의 지배구로를 보면 KTJC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지주회사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KTJC는 각 국에 법인을 두고 네트워킹 출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인 즉, 김태준 회장의 사업 범위는 전 세계 시장이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만약에 김태준 회장이 이번 항모도입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자체로 김태준 회장에게는 타격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김태준 회장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KTJC-J라는 일본 지주회사에 대한 일본 각계 각층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김태준 회장 스스로가 해당 사실을 인정할리도 없을 뿐더러, 당사국인 한국과 러시아 역시 국가간 거래의 주축이 일반 사기업, 그것도 개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인정함에 따라 얻는 이득도 없고요. 아시겠지만 김태준 회장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직후 곧바로 러시아에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모라토리엄 선언과 함께 내빼기 시작한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의 빈자리를 메워준 고마운 존재가 바로 김태준 회장이라는 겁니다.
그런 김태준 회장에게 해가 될 평을, 러시아에서 구태여 본인들의 자존심을 깎아가며 진실을 밝힐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 역시 현 정부의 최대 치적이기도 한 만큼 이런 치적을 김태준 회장에게 넘겨줄 마음이 없을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우리는 항모 도입에 대한 김태준 회장 개입설을 그저 하나의 가설 내지는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널리스트의 말과 함께 미리 준비되어 있던 사진들이 바뀌어 나갔지만, 그 어느것도 태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은 없었다.
앤서블부터 유니버스넷, 거기에 유니버스의 각종 제품들까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전부 태준의 것이었다.
이것을 본 대중들은 유니버스넷 'N플래닛-KBS stream' 페이지에서....
- 기승전김태준... 완전히 김태준 회장 홍보방송이네.
- 그럴만 하지 않냐? 우리나라 프로그램을 미국도 러시아도 쓴다는데.
- 이제는 북한도 씀.
- 김일천. 영화광이라던데 유니버스에서 서비스하는 우리나라 드라마 보고 완전 뻑 가겠네 이제.
- 납치나 안하면 다행이지.
- 한동안은 안하지 않을까? 분위기만 보면 거의 독일급 분위기인데?
- 항모... 미친. 음모론이라고 해놓고 저렇게 상세하게 말하는건 무슨 의도임? 진짜 김태준이 항모 들여온거임?
- 그럴리가 없다는 말 아니냐?
- 여기 머리 빈 놈들이 많네. 김태준이 들여온 건 맞는데 우리는 절대 그걸 인정하면 안된다는 이야기 잖냐.
유니버스넷의 주인인 김태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태준이 의도한 그대로의 결과였다.
...
..
.
"KBS를 시작으로 SBC, MBS, 우리 Utv까지 전부 N플래닛에서 특별 스트리밍 서비스 진행중입니다."
"반응은 어떻습니까?"
"반응은 대체로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대로 가는 모양새입니다. 우리 Utv는 말할 것도 없고,
각 방송사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보도를 하기 위해 우리쪽 자료들을 받아 보도를 하고 있다보니 사실상 노출되는 모든 자료에 앤서블 마크와 유니버스 마크가 들어가있습니다."
그 말에 태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Utv에 지시한 사항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지시하신 대로 실시간 댓글 중 눈에 띄는 댓글을 추려 전문가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꽤 신선하다는 반응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시청률은 역시..."
"시청률은 잘 나오기 힘들겁니다. TV로 보는 사람들은 댓글을 달지 않을테니까요."
"예. 그래도 스트리밍 쪽에서는 실시간으로 소통을 한다는 점 때문인지 방송 3사쪽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국내 상황을 보고받은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주요 외신들 동향은 어떻습니까?"
"그 쪽도 역시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 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미디어그룹으로서 유니버스를 주목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말에 태준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가 펴며 말을 이었다.
"어딥니까?"
"BBC입니다. 미디어 그룹으로서 방송, 신문, 라디오, 인터넷, 거기다 하드웨어까지 모두 장악한 유니버스의 영향력을 소개하면서
새로운 혁신인가 독점기업인가 하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는데.... 독점기업으로 은근히 결론을 몰아가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태준은 후 하고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하여간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다더니... 정치적 사건 보다 우리 회사를 분석하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정치쪽은 뭐랄까... 당시 깜짝 연결에서 각국 정상들이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였던데다,
바로 4자회담을 하자는 결단이 나오는 바람에 다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라...
언론이라는 것은 결국 태생적으로 분란과 문제를 찾아다닐수 밖에 없는 운명이니까요.
그런 와중에 유니버스의 엄청난 규모에 눈이 가는 것이지요."
그 말에 태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보다 효과가 너무 세서 좋아해야 할 지, 경계해야 할 지 의문이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만 나가보세요."
"예. 회장님께서도 애 많이 쓰셨으니 오늘은 푹 쉬십시오."
"아, 그리고 비서실 인원들끼리 번 서면서 각국 정상들 도착 시간 체크해서 제게 보고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
"예."
그렇게 조비서를 내보낸 태준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피곤함을 토해냄과 동시에...
-씨익...
가려진 손 아래로 입술이 찢어질 듯 크게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이제 인터넷 시장은 완벽히 내 손에 들어왔군.... 홍보도 이만하면 세계구 급으로 싸게 했고...
이제 이 사용층을 스마트폰 시장으로 잘 이어가기만 하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