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남북정상회담 (8)
한편, 김일천은 중국 대사와의 지난 대화를 떠올리며 치밀어 오르는 열불을 삭이고 있었다.
"후... 남측에서 들고 올 선물이 적절해야 할텐데. 걱정이군.
저 되놈들이 가면 갈 수록 상전 놀음을 하려 하니 원... 쯧."
그렇게 순간 순간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김일천은 진행중인 '주체 핵' 개발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이 담긴 대외비 보고서를 꺼내 보기 시작했다.
"... 돈은 돈대로 먹으면서 제대로 개발이 안되고 있으니 답답스럽구만.
어떻게든 체제를 유지하려면 이 핵이 없으면 안되는데 부진하기 짝이 없으니.
내 생에 완성해야 성은이 세대에는...."
그렇게 보던 보고서를 보며 필요 경비를 쭉 보던 김일천은 이내 서랍에서 일제 카시오 계산기를 꺼내 뭔가를 계산하더니
보고서에 계산기가 뱉어낸 숫자를 적고는 위에 동그라미를 치고 서명을 한 뒤 옆으로 빼두며 말을 이었다.
"대충 5억 달러정도만 있으면 숨통이 트이겠는데... 남측에서 순순히 내줄지가 의문이군.
김태충 그자라면 내줄지도 모르지만... 항모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제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고... 쯧."
그렇게 연신 혼잣말을 하며 일을 처리해 나가던 김일천은 이내 멀찍이 떨어진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말을 이었다.
"거 누기야!"
"보고드립니다. 곧 순안에 남측 당국자들과 김희경 동지 일행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알았으니 물러나라."
"예!"
그렇게 보고를 들은 김일천은 인상을 쓰며 슬쩍 다시 필요경비를 살펴보고는 말을 이었다.
"일행중에 김태준이... 그 친구가 돈이 많다 하니 그 친구와 거래를 트는 것도 나쁘지 않갔어...
남측 당국자들이 돈을 못준다 해도, 일반 기업인의 투자까진 막자 못할테니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김일천은 슬쩍 술에 각설탕 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집어넣고는...
"크으..."
한입에 털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이젠 고급 빙두로도 한계구만. 정신을 깨우는 것도... 쯧. 남측 아새끼들 만날때는 조심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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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하늘 위에서 나는 북한의 차기에 대한 전략을 김희경과 장택일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길고 긴 사설과 논리가 들어있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였다.
"그러니까... 다음 미 대선에 따라 체제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습니다. 클린턴이야 외교적 협상을 중시하는 자이지만,
차기로 유력한 아들 부시나 클린턴의 후임으로 사실상 내정된 엘 고어나
대북 정책 만큼은 강경노선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동안 북한으로서는 몸을 사리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특히 북핵 문제는 지난 정권보다 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그 몸사림의 일환으로 성남이를 추대하라는 겐가?"
"일단은 얼굴 마담 정도로만요. 일단 가장 오래 외국물 먹은 북한 사람임과 동시에... 나름대로 상식인이지 않습니까?
북한에선 아니지만.... 그건 솔직히 북한의 상식이 어긋나 있어서지, 해외에선 그렇지 않으니까요."
김성남.
김일천의 서장자를 왕세자로 추대하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미 김일천 국방위원장의 승계는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다른 형제들에 대한 라인정리도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후계구도를 정해도 나쁘지 않죠."
그러나 내 말에 김희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성남이는 그간 실책이 많았다. 이씨조선으로 치면 양녕대군처럼 살았어. 술에 취해 망동이나 부리고... 무엇보다 성남이 본인이 권력에 딱히 욕심이 없어.
평안감사도 저 싫다면 안한다는데 하물며 주석자리는 어찌하겠나.
그나마 그 째포년 피가 섞인 성은이가 적장자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여러모로 흠이 적으니 내 오라비도 성은이를 다음 후계로 보고 있는 마당이야.
이 모든 상황을 다 뚫어내고 성남이를 웃전의 후계로 앉힌다는게 쉬운 일이겠나?"
물론 이런 대답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어느정도 답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쉽지 않겠지요. 무엇보다 김일천 국방위원장이 본인 스스로가 경험한 것이 있으니 후계를 빨리 정하지도 않을테고요."
"알면서 말을 꺼내는 걸 보니... 방법이 아예 없진 않을테고...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나?"
"영조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 말에 김희경이 슬쩍 인상을 찌푸리자, 장성택이 눈치껏 말을 이었다.
"... 양위 선동...?"
"그렇습니다. 신하들의 반대에 부딛힐때 마다,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양위하겠노라 엄포를 놓으며 정국을 흔들어두었습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꽤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김일천 국방위원장도 만족하고, 김희경 의원도 만족하고, 장택일 의원도 만족할 결과가 나올테지요."
그 말에 김희경이 슬쩍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방법이야 좋지만... 문제는 성남이다. 성남이 본인이 안하겠다 하면 말짱 꽝인데 그걸 하겠나?
거기다 성남이 주위에는 친중인사가 넘친다. 그런 상황에서 되놈들을 믿지 않는 내 오라비가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실제로 여기 장의원도... 눈치 없이 중국 인사들과 놀아나 하방되었다 오기도 했고."
그 말에 장택일이 헛기침을 몇번 하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말에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도세자 역할을 왜 김성남 캄보디아 대사가 합니까. 사도세자의 말로를 잊으셨습니까?"
"뭐...?! 그럼 누가... 설마...!?"
"예. 당연히 그 역할은 김성은 씨가 해야지요."
"그러면 기한 내에 미국에 유의미한 신호를 못주자 않나?"
"신호야 줄 수 있지요. 김성남 대사를 UN대사로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북한 내부적으로는 후계에서 물러나 있는 모양새를 보여주면서 대외적으로는 북한 전체를 대표하는 모양새가 되니 좋지 않습니까? 상징성도 있고.
거기다 김일천 국방위원장과 미국 사이 일종의 비밀통선이 될 수도 있구요."
그 말에 눈치 빠른 장택일이 말을 이었다.
"UN본부가 뉴욕에 있으니...."
"예. 그러면 북한이 원하는 직통 라인도 새로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매번 미국 나와라! 하고 외칠 필요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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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과 김희경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던 정영주는 몸에서 오소소 돋는 소름을 애써 감추며 끝없이 펼쳐진 구름 밭을 보고 있었다.
'김태준... 이 친구 정말 무서운 친구구만. 화술이 좋은 줄이야 알고 있었지만, 정보력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위험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은근히 자기 쪽으로 전부 유리하게 끌고 오고 있어.'
정영주의 생각대로.
태준의 제안은 상당히 태준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원래 정영주가 태준에게 해주었던 조언은....
'북한에 차세대 통신망을 설치해주는 것'을 이득으로 삼아 일통교의 문명선처럼 자체적인 대북라인을 구축하라는 것이었지만,
태준은 이를 넘어 아예 북한의 후계구도를 파고 들어 북한 후계자의 새로운 장자방이 되고자 하였고,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옆에서 보고 듣는 정영주의 입장에서는 침이 바짝 마르다 못해 놀라울 지경이었다.
'만약에라도 김회장이 말하는 이 전략이 성공하면 김태준 회장을 빼놓고는 통일을 논할 수 조차 없게 되겠지....
거기다 북한이 정상국가화 되는 만큼 북한 체제의 영속성은 더욱 공고해질테고... 그 뒤에서 힘을 쓰는 김회장의 힘이 얼마나 커질지 상상을 못하겠군.'
한때 정치를 꿈꾸던 사람으로서 이런 태준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있던 그 때.
- 곧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합네다. 안전바클을 꼭 채워주시고....
기내에 착륙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적진으로 더 깊이 들어왔는데... 살 것 같군. 답답한 이야기만 계속 오가서 그런지.'
그리고 그런 안내 방송을 누구보다 기쁘게 받아들인 정영주는 슬쩍 인사하며 악수하는 태준과 김희경, 그리고 장택일을 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 김회장과 함께 온 것은 성공이었군. 김회장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으니... 누가 그룹을 맡게 되더라도 안심할 수 있겠어.
저런 핏줄을 두고 멍청하게 날린 태균 회장이 불쌍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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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평양에 도착한 나는 하룻 밤을 쉬고 곧장 이어지는 행사에 갑갑함을 느꼈다.
"다음은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천성 국가대원수님께 참배를 하는 일정입네다."
그 갑갑함 중 최고봉이 바로 금수산태양궁전의 방문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적국 수괴, 그것도 보통 수괴가 아닌 민족을 도살한 도살자의 묘에 참배를 해야하는 입장이니 더욱 열이 뻗칠 수 밖에 없었다.
'아주 뽕을 뽑으려고 작정했군. 이걸로 사진 찍어서 걸어두고 체제 선전용으로 쓰려고... 내가 거기 넘어갈거 같아?'
당연히 나는 그 일정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하고 말을 고르고 골랐다.
"아쉽게 되었군요. 제가 정장이 없는데다 종교적으로도 기독교인이라 어렵겠습니다."
그렇게 온건한 말로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북한측 안내인이 어쩔줄 몰라하며 당황스러워 했고, 그런 나에게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말을 이었다.
"김 회장.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래도 우리 수령님 존안은 뵙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소.
우리나 남측이나 집에 놀러가면 그 집안 어른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이지 않소."
협박 아닌 협박에도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태도로만 일관하며 씩 웃기만 했고,
그런 내 태도에 몇 번이나 참배를 권하던 북한측 인사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으로 위에 보고를 하더니 한참 뒤 찾아와 말을 이었다.
"...수령동지께서 김회장의 뜻은 잘 알겠다고 하시오. 우리 북한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이니 이해한다고 전해달라시었소."
그 말에 나는 속으로 비웃음을 날리며 얼굴에는 미안함과 공손함을 뒤집어쓰고 말을 이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온갖 대외 행사에서 은근히 빠져나간 내 덕에 우리 요원들은 물론이고 정영주 회장역시 이런 행사에서 빠질 수 있었고,
목적 달성에 실패한 북한은 곧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며칠 더 여기서 머물러 계시면 수령동지를 만나실 수 있을게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것은 나도 잘 모르오. 수령동지께서 워낙 바쁘신 분인지라. 수령동지께서도 귀하들이 오신 것을 아시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게요."
물론 자존심 빼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북한이 순순히 본론에 들어갈리는 만무했고,
나는 그런 자존심 싸움에 다시 한 번 비웃음을 날리고는 희희낙락 북한이 자랑하는 고려호텔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여긴 관리가 영 엉망이네. 침구가 더러워."
"바퀴벌레라..."
내 방을 엿듣고 있을 북한 요원들을 골려주면서.
그렇게 연신 침구와 방 객실 청소 상태.
룸서비스로 온 음식에 대한 평가질로
연신 도청하던 요원들을 골려먹던 나는 드디어...
"김 선생. 이제 준비하시오. 수령동지께서 김선생과 정선생을 찾으시오."
김일천을 만나게 되었다.
"어서오시오. 두 분. 내 조선을 책임지는 김일천이요. 오시는 길이 험해서 고생이 많으셨겠소.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한 술 뜨고 이야기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