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남북정상회담 (7)
장택일의 인사와 정영주의 눈짓에 태준은 자연스럽게 장택일의 손을 잡아 쥐고는 말을 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태준입니다."
"큰 기업의 수장이라기에 나이 지긋한 노인일 줄 알았는데 이리 훤칠하니 잘생긴 청년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소."
"칭찬 감사합니다. 저 역시 장 1부장님을 만나뵙게 되어 참 뜻깊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태준이 슬쩍 장택일의 공식 당내 직함인 '조선노동당 3대 혁명소조 부장'의 직함을 언급하자 장택일과 김희경이 놀란 눈으로 말을 이었다.
"거 보기보다 젊은 양반이라 그런지 보는 시야가 넓은 것 같소. 하하."
"그러게 말이오. 콕 집어 누구라곤 말하지 않겠으나, 여즉 일하느라 결혼도 안한 것을 보니 참으로 성실한 일꾼같지 않소?"
그렇게 두 사람 사이 차가운 기류가 흐르자, 정영주를 따라 온 대현의 실무진들로 위장한 한국측 요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채 난감한 표정으로 태준을 보았지만.
'아무래도 사이가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진 모양이네. 장성택이 김일천 행세를 하며 놀아재끼던 시절이 아마 지금인 모양이군.'
태준은 그저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어차피 둘 사이 싸움일 뿐인데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저 자들 심기를 읽어내릴 필요는 없지.'
그도 그럴 것이, 장택일의 소위 '2호 행사'라 불리는 김일천의 '1호 행사'를 따라하는 미친 짓거리를 하던 것은 장택일이 숙청되던 김성은 시대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김일천의 여동생이자 북한이 자랑하는 백두혈통의 직계 적녀 김희경이 큰 상실감에 알콜, 니코틴, 마약의 3대 중독을 모두 겪게 되어 치매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퍼져있었으니
태준으로서는 이 둘의 냉랭한 기운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태준이 태연자약하며 둘 사이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자, 한국측 요원들 역시 슬쩍 얼굴을 풀며 은근슬쩍 모른체 넘어갔다.
그렇게 자칫 흐트러질 뻔한 분위기를 구렁이 담 넘듯 넘긴 태준은 비행기에 올라서도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장택일과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장 선생께서 이번 회담의 실무를 맡으셨으니 이야기가 잘 흘러갈 것이라 기대해도 되겠지요?"
"하하. 그걸 내 어찌 장담하겠소. 나랏일 하는 사람들 속성이야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니 이해하시오."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셔도 다 잘 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하하. 김회장. 생긴 것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입담도 상당하니 수령동지께서 퍽 흡족해하시겠소.
그렇게 웃음 속에 칼이 넘나드는 무익무득한 대화를 10여분간 이어가던 태준은 이어서 김희경에게도 시선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김희경 의원님께서는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 개성공단에 대한 핵심 키를 쥐고 계시는데.. 따로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까?"
그러자 김희경이 슬쩍 태준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내게 물은게요?"
"그렇습니다만."
그 말에 김희경이 슬쩍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내게 직접 물어보는 인사가 처음이라 당황스럽군 기레."
그 말에 태준은 속으로...
'공주 티를 팍팍 내는 구만.'
이라고 욕을 하며 숙이는 척 하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여쭤봐야지요. 경공업부 부장이시지 않습니까? 담당하시는 분이 여기 계신데 당연히 여쭤봐야지요."
그 말에 김희경이 슬쩍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태준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하핫. 과연 인물은 인물이구만. 남측 인사만 아니었으면 우리 은혜 짝으로 퍽 괜찮은 남자가 아닌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억지로 꾸며낸 듯한 남성적인 말투와 거친 목소리, 그리고 호방한 단어선택에서 인상을 찌푸릴 법도 했지만, 태준은 그저 눈 웃음만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해서.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 주실 것인지요?"
그렇게 태준이 의도적으로 뭉개는 김희경의 대답을 재촉하자 김희경이 말을 이었다.
"장 의원이 말한 것 처럼 나 역시 따로 답을 해주긴 어렵겠소. 뭐가 그리 급하다고 벌써부터 거래를 트려고 드는지 모르겠지만.
다 때가 있는 법이니 조금 기다리시오."
그 말에 태준은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지 않습니까. 저야 두 분이 고민 끝에 실기하실까 염려되어 그럴 뿐입니다."
그 말에 김희경이 결국 참지 못하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 못하는 말이 없군. 우리가 요청한 회담이 아닐텐데?"
그렇게 비행기 밖 성층권의 제트기류 만큼이나 얼어붙은 객실 분위기에 다들 입을 떡 벌리고 있던 그때, 태준이 자연스럽게 양 다리를 꼬며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꼭 해야하는 회담도 아니지요. 실상. 그렇지 않습니까?"
태준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니들이 불쌍해서 해주는 거래인데 왜 이리 고자세냐?'라고 할 수 있었고,
이 말 뜻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를리 없었으니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태준의 말에 김희경은 슬쩍 안에서 '평양'이라 쓰인 담배를 꺼내 물더니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장택일 옆에 있던 북한측 당국자가 재빠르게 움직여 듀퐁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공산주의 세계에서 듀퐁이라... 기도 안차는 군.'
그 모습에 태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놓고 날아오는 담배연기를 쳐내고는 말을 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비흡연자라."
그 행동에 김경희는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후 하고 태준의 면전에 연기를 뿜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조선을 너무 얕보고 있는 것은 아니오? 김회장."
아까와는 전혀 다른 여성스러운 말투에 다른 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지만, 태준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헌데 아까의 그 언동은 어찌된 일이오?"
그 말에 태준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우리가 장고 끝에 악수를 둘 까 저어된다 하지 않았소?"
"그랬지요."
"우리 조선이 악수를 둘 일이 있다고 생각하오?"
그 말에 태준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북한'이 악수를 둘 일은 없겠지요."
"... 음?"
그 말에 김희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태준이 말을 이었다.
"제가 드린 말씀을 오해하신 모양인데. 저는 '두 분'이 악수를 둘까 저어된다 했지 북한이 악수를 둘까 저어된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김희경이 다시 한 번 손을 까닥이자 아까 불을 붙인 간부가 재떨이를 가져왔다.
간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끈 김희경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니들은 건너가 있으라."
"예."
그렇게 재떨이를 가져다 바친 간부를 필두로 북측 요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 객실로 빠지자 김희경이 말을 이었다.
"다시 말씀해 보시오. 김회장. 우리가 둘 악수란게 대체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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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이 북한의 하늘을 날고 있을 무렵, 한국에서는 북한에 있을 태준의 지시에 UEP는 물론이고 KTJC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남북합동공연이라니... 가능하겠습니까? 아니 애초에 정부에선 아직 별 말이 없었지요?"
"예. 이번 이벤트가 정부가 공공연히 말하던 햇살정책의 신호탄이긴 해도... 공식화 된 것도 아닌 만큼..."
"태준이 뜬금 없이 허튼 일을 시킬리도 없고... 준비하라고 했을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텐데... 어떻게 해야할지..."
"최민영 이사가 정확히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직원의 말에 앤이 얼굴을 감싸쥐고는 말을 이었다.
"태준이 무슨 생각을 할지 알 사람은 그 정도이긴 한데...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무슨 수로 불러오겠어요. 지금 막 들어가서 정신없을텐데...."
그 말에 해당 아이디어를 냈던 직원은 뒤통수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서 워낙 바쁘시니.. 원. 회장님은 아직 최 이사님 휴직계 내신 거 모르시죠?"
"모르죠. 민영이 모르게 처리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회장 부재시 이사회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항이 아니었다면 알았겠지만..."
"거 참... 어쩌면 좋을지... 일단 그럼 정부에 협조공문 보내볼까요?"
"아뇨. 그건 좋지 않아요. 안그래도 UEP는 연예부 기자들이 기자실에 상주하는데.. 공문 나간거 알면 야심찬 기자 몇이 어떻게든 알아내서 보도할 거예요.
연예부 생활 청산하고 정치부로 옮길 생각에 희희낙락하면서 말이죠."
그 말에 아이디어를 냈던 직원이 답답함에 인상을 쓰고 있던 그때,
오오와다가 앤의 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는 말을 이었다.
"앤. 잠시."
그렇게 오오와다의 말에 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옆 사무실로 들어가자 오오와다가 슬쩍 명함을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현 문광부 장관 직통번호야. 여기로 전화해서 논의하는게 빠를거야."
"음...? 이걸 어디서?"
"회장님께서 미국 출국하기 전에 민영씨한테 주신거야. 혹시 정부쪽과 직통라인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하라고 하더군. 이미 어느정도 이야기는 되어있다고.
원래라면 민영씨가 처리를 했겠지만... 지금 자리에 없으니까. 빙빙 돌더라도 이렇게 가야지."
"고마워."
"고맙기는."
그렇게 해답을 받아든 앤은 곧장 수화기를 들어 문광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런 앤의 행동에 놀란 오오와다가 슬쩍 앤의 손을 붙잡아 제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당장 전화하진 말고, 일단 우리쪽에서 동원할 수 있는 라인업 전부를 다 짜고 이야기 하는게 좋을거야.
한국이나 일본이나 윗사람들은 일단 답을 듣길 원하지 일을 하길 원하지 않으니까. 미국하곤 달리."
그렇게 오오와다의 조언을 받은 앤이 방에서 나오며 고민에 빠진 담당 직원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우리쪽 연예인들 명단 싹 정리해서 올리세요. 급...을 매기고 싶진 않지만. 브랜드 평판 최상위권으로만 추려서."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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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질문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래를 대비하셔야죠 두 분 다."
"장래?"
내 말에 김희경 대신 장택일이 놀란 목소리로 되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차기를 생각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두 분."
그 말에 김희경이 눈을 부릅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치듯 말을 이었다.
"야이... 간나새끼야! 니 지금 뭐라했나? 내 오라비가 곧 죽기라도 할 거란 말이야?!"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직 그런 걱정을 할 때도 아니고요."
"헌데 왜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네?"
그렇게 반발하는 김희경에게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권력은 냉정한 법이니까요."
"... 뭐?"
"두 분도 아시겠지만... 두 분은 이미 권력의 중심에 계시지요.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습니다.
권력은 그만큼 변덕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지요. 그런 변덕을 이겨낼 방법은 오직 하나.
왕이 되거나. 왕을 옹립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 분의 처지는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두 분께서 직접 키우신 왕자님이 계시니까요."
그 말에 김희경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양이 그 간나새끼가 입을 많이도 놀렸구만. 그래. 니 말대로 성남이를 우리가 키우기는 했다만... 니 그 방자한 주둥이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건 알고 있나?"
"선을 넘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 번 짚고는 넘어가야해서요."
"짚고 넘어가?"
"아무리 그래도 백두산 줄기가 후지산 줄기와 섞일 수 있겠습니까?"
태준의 말에 김희경은 이내 털썩 제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을 이었다.
"니... 그 따우 소릴 어디서 들었나?"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은 저만 알고 있을 겁니다."
'미래에서 봤으니까요.'
그렇게 김희경을 안심시키는 말을 한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그렇게 평양에 도착하기 전 부터 파란을 일으킨 나는 김희경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