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남북정상회담 (5)
남북정상회담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미국측에 양해를 구하는 것이 첫 번째. 중국의 방해를 막는 것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 북한이 최근 우리 정부가 도입한 러시아제 항공모함 '독도함'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사설에서....
"북한을 이해시키는 일이 문제겠네."
문제는 그 진행 자체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종주국 취급하며 모시던 소련이 무너지며 러시아로 바뀐 것도 못마땅한 일이었는데,
바뀐 러시아가 그간의 협력관계(라곤 해도 일방적으로 북한이 빌붙는 관계)를 무시하고,
1차 불곰사업에서는 북한이 그렇게 달라고 애걸복걸 난리를 쳐도 주지 않던 T-80U 전차 33대,
(그것도 북한이 달라고 했던 해외 수출모델도 아닌 소련의 자국 내수용 버전이었다.)
BMP-3 장갑차 33대, 그리고 Metis-M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70문, 탄약 1250발과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발사기 50문, 탄약 700발을 줬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였는데...
그에 더해 이번에는 2차 불곰사업에서는 러시아에서 운용중인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중항공순양함에
훈련기라고는 하나 북한이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 수호이 25UTG 20대, Ka-27 대잠 헬기, Ka-31 조기 경보 헬기를 각 1대씩을 들여온데다...
아직 도착도 안했고 완성된 함정도 아니지만, 동급의 함정인 바랴그 함까지 사들였으니
북한의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지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북한을 이해시키고 어떻게든 회담을 진행하고 싶어했던 김태충의 선택은....
"태준이, 자네가 이번에도 나서줘야겠네. 정회장하고 같이 가서 북한 좀 달래보면 어떻겠나?"
또 다시 나였다.
"제가 무슨 도라에몬도 아니고... 무슨 수로 뿔이 잔뜩 난 북한을 상대합니까."
"도라에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주문하면 떡 하니 맛나게 요리해서 가져오면서 뭘 그리 약한 체를 하나."
물론 김태충 역시 이번에도 나만을 부려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확실히 김회장 수완은 믿을 수 있지요. 우리 나라 기업인 중 김회장 만한 사람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대현의 왕회장 정영주를 불러다 앉혀 놓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부려먹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일단은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슬쩍 옆에 앉은 정영주에게 한숨과 한탄 섞인 질문을 던졌다.
"대현에서는... 이번 일 확실하게 하기로 한 것 맞습니까?"
"나야 돈을 쓰더라도 고향땅 밟아보는게 소원인 사람이니 당연하지."
그 말에 나는 전생의 소몰이 방북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북한 설득에도 한 손 거들어 주실 것이냐 여쭤보는겁니다. 회장님."
"교통비 정도라면 해줄 수도 있지. 자네는 할 마음이 없나보군?"
"저로서는 이미 할 만큼 다 해서요."
"하기사. 항모에, 미 대통령 설득에 지지부진 밀려만 오던 한미정상회담까지 전부 끌어냈으니 자네로서는 귀찮을 수도 있겠군."
그렇게 정영주가 쓰게 웃으며 말하자, 김태충이 말을 이었다.
"내가 태준이 자네를 언제 맨 입으로 부려먹은적이 있던가? 이번 일 마치면 잘 챙겨줄테니 걱정하지 말게."
"이번엔 뭘 주시려고 하십니까?"
"여기. 이걸 보게."
그렇게 내밀어진 서류에 적힌 것은...
[개성공단 설립 기획안]
"개성공단..."
전생에 이런 저런 말이 많았던 개성공단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방북에서 내밀 카드일세. 북한에 한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맛을 보여줄 최고의 카드지."
"저보고 여기에 입주하라는 말씀은 아닐테고... 개성공단 건설 쪽을 내주신다는 겁니까?"
"그럴리가. 여기 건설은 대현이 맡기로 했네. 금강산 관광쪽도 마찬가지고."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입주를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네."
그 말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가진 공장은 전부 QULAB의 특허를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알지. 그리고 기술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아네. 하지만 단순 조립정도라면... 해외에도 공장을 내보내놓았으니 괜찮지 않겠나?"
"다른 곳은 제 통제가 먹히는 곳이지만 북한과 중국만큼은 절대 안됩니다. 애초에 정상 국가도 아닌데 그런 곳에 뭘 믿고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려 하십니까?
경공업 계열 공장도 입주하면 안될 판인데... 저보고 여기 입주권을 혜택으로 알고 받아가라니요.
이게 대통령님의 거래방식이라면 심히 불쾌하군요."
내 격앙된 반응에 김태충이 슬쩍 인상을 써보이자 정영주 회장이 슬쩍 탁자위에 거칠게 떨어져 있는 내 손을 감싸듯 잡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걱정도 일리가 있네만... 자네도 이제 대기업 회장이 되었으니 국가 사업에도 협조하는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네."
"...제가 지금 잘 못 들은 겁니까? 책임감이라니요. 저 만큼 협조적인 기업인이 어디있었습니까.
노대호의 보통 정부에서부터, 김응삼 대통령의 민치(民治) 정부, 그리고 지금의 김태충 대통령님의 국민의 정부까지.
매 시기, 정부가 요청하는 사업에 적극 협조하며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항모까지 가져왔고요.
거기다 저는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리 착실히 세금도 다 내고 장사하는데 대체 뭘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정영주가 마치 손자를 보듯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자네가 본 특혜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자네가 가진 Utv 라는 종편, UR이라는 라디오 채널, 거기에 우주일보라는 신문사도 이번에 창간했지.
거기에 일본에 있긴 하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제프 헨더슨 쪽의 잡지라인에 자네가 인수합병으로 만든 종합기획사 UEP,
거기에 유니버스 네트웍스와 유니버스넷까지만 해도 자네는 사실상 언론분야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용인 받은 셈인데....그 혜택에 대한 것까지 부정하진 않겠지?
심지어 정부에 어떤 제한이나 청탁도 받지 않고 자유보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 말이 틀렸나?"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그건 거래의 대가였습니다."
"'받는 것'까지는 그렇겠지. 허나 이를 용인해주고 있는 것 역시 대가가 필요한 일일세.
막말로 다른 대기업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IT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용인하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자네가 잘났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 말에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조금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젊으니 피도 뜨겁겠지. 우리같은 노인네들하고는 다를 거란 것 잘 아니 이해하네."
그렇게 정회장이 특유의 연륜과 통찰로 내 입을 막아내자 김태충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정 그렇게 개성공단에 들어가는게 싫다면 다른 건 어떤가?"
"다른 것이라면...?"
"개성공단에 통신설비 독점 권한은 어떤가. 자네가 가진 유니버스 네트웍스와 딱 맞는 일 같은데.
자네쪽 통신 설비가 들어가면... 운영도 전부 자네쪽에서 맡게 될테니 작지만은 않을 걸세."
그 말에 나는 된통 잘 못 걸렸음을 깨닫고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며
"...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억지 긍정의 말을 내뱉고는 웃으며 박수치는 정영주를 보며
'과연... 대현의 왕회장... 아니 재계의 왕회장은 달라도 너무 다르군.'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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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억지 춘향으로 북한에 끌려가게된 태준은 이후 별도로 정영주 회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내 아들 현민이가 김회장에게 실례를 했었다 들었는데 한참 돌고돌아 이제야 이렇게 만나는 군."
"정현민 사장 말씀이십니까?"
"그 놈은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아 중동으로 보냈네.
집안이 궤도에 오르고 난 뒤에 태어나기도 했고, 막내라고 집안에서도 제 형이고 어미고 할 것 없이 싸고 돌아서 물정을 잘 모르네.
제 형들은 어릴때 부터 내 밑에서 고생했지만 그 놈은 아니거든.
그놈의 무례는 자네가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게."
정영주 회장의 사과에 태준 역시 고개를 숙이며 그 사과를 받고는 말을 이었다.
"해서... 따로 보자고 하신 것은 정현민 사장 일 때문만은 아니시지요?"
"아비된 입장에서는 현민이 일이 최우선이지만... 애석하게도 난 대현의 회장이기도 하니 당연하네. 북한 문제 때문이지."
그 말에 태준은 속에서부터 슬금슬금 치밀어 오르는 분함을 억지로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따로 말씀하실 것이라도..."
"이번 사행길에 실수가 없으려면 의견교환은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일세."
꽤나 옛스러운 말을 쓰는 정영주의 말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말씀하시죠."
"아마 이번 사행길에 핵심 인사는 자네가 될 게야. 나는 그저 판이나 깔아주러 가는 셈이지.
소 몇 마리 준다고 해 봐야 그 쪽에서 다 늙어빠진 나와 대화를 하겠나?
자네와 대화를 하고 싶어하겠지. 거기다 자네는 러시아와의 인연도 있고 말이지."
그 말에 태준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정영주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네가 주역이 될 텐데... 거기 가서도 오늘 한 것 처럼 잘 빠져 나오게.
북에서 뭘로 구슬리던, 정부가 뭘 요구하던 절대 첨단 기술 관련 공장은 북한에 세워서는 안되네."
'음...? 아까 말 한 것과는 딴판인데...?'
정영주 회장의 뜬금 없는 말에 태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정영주 회장이 말을 이었다.
"나 역시 실향민일세. 북녘에 있을 고향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리운 만큼,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적개심도 상당한 편이지.
나라고 좋아서 북한에 소떼를 몰고 가겠나. 다 거기 있을 내 가족, 내 친구, 내 고향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것만 같아 그러는게지.
거기다... 지난 대선 출마에 대한 보복도 이번 기회에 해소해 둬야 자식들이 물려받아도 뭘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 하는 걸세."
방금 전과는 상반된 발언에 태준은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설마... 아까 저를 보호해주시려 하신 겁니까?"
"한국의 젊은 인재를 이렇게 헛되게 날릴 수는 없지 않나. 정치인 놈들은 늘 그런 식이거든.
아쉬울때는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 처럼 굴다가도 한 순간에 손바닥 뒤집는 것 보다 더 빠르게 안면몰수하고 뒤통수를 치기 마련이지.
미래를 논하며 제 잇속을 채우는게 결국 정치하는 자들의 속성이니까. 물론 나고 그 판에 끼어들고자 했으니 깨끗하지만은 않네만...
어쨌든, 자네야 지금까지 책 잡힐 일이 없었지만... 이젠 아닐걸세.
특히 사실상의 미디어 그룹을 형성한 순간부터는 더더욱 그렇지.
자네가 아무리 정도를 걷고 있고, 할 도리를 다 한다고 한들 정치인 놈들이 장외세력을 동원해 자네의 이런 성공을 독주와 독점으로 몰며 때리기 시작하면 버틸 수 있을거라 보는가?
절대 불가능이네. 사성의 이회장도 그러지 않았나. 한국은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1류의 입장에서 미래를 향해 내달리는 자네 입장에선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세상은 자네 처럼 잘난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게 아니니....
류 따위로 분류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지위에 오르기 전엔 조심하라 말해주려고 그랬네."
그 말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태준의 진심이 담긴 감사의 말에 정영주는 피식 웃으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감사는 무슨. 못배운 장사치가 아무 생각도 없이 퍼주겠나. 다 후에 내 자식들과 잘 지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그렇게 퍼준 것이지.
그럼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