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러시아 (6)
그렇게 러시아에 건너간지 단 하루만에 모든 주요 거래를 마친 나는 살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바랴그함을 2000만 달러에 사가겠다는 말이오?"
"예. 전액 현금으로 바로 지급하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과의 교섭을 시작으로...
"유니버스 공장 부지는 블라디보스톡에 하나, 오브난스크에 하나 이렇게 둘로 두고...
유니버스 네트웍스의 본사 역시 블라디보스톡에 하나 모스크바에 하나 두는 식으로 해서 하는 것으로 해서 러시아 동부와 서부를 커버하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 부지 임대 문의 해보시고요. 기본적으로 땅이 넓으니까 그렇게 회선 커버하는 편이 훨씬 유리할 겁니다."
러시아에 진출할 기업들의 부지 선정 및 매입절차 등 동남아에서 진행했던 일과 그리 다르지 않은 업무들을 수행하며 일정을 빠르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선에서 결정해야 할 것들을 모두 결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딱 3주.
그 동안 나와 함께 온 연구원과 국정원 요원들은...
"확실히 영미권 항공모함과는 다르더군요. 사실상 순양함을 확대해 갑판 위에 활주로를 얹은 느낌이랄까요."
"영미권이야 압도적인 공업기술력으로 항공모함을 호휘하는 구축함, 순양함을 마구 찍어내서 호위함대를 만들어 운용했으니까요. 러시아는 그게 안 됐구요."
"그런 면에서 본격적인 항모전단을 만들기 전에 과도기 적으로 운용하기에 적합한 항공모함일 수 있겠군요.
항모전단이 구축되면 개수해도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내가 일을 하는 사이 인도받기로 한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의 상세 제원을 확인하고 현재 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맡았다.
바랴그 함의 경우 미완성 상태인데다 장비라고는 엔진과 일부 무장만 덜렁 달려있는 상태였던데다,
그 마저도 무장의 경우 우크라이나측의 요구로 완전히 해체되어 엔진만 달린 덩치만 큰 군함 모양의 일반 함선이 되어버렸기에 상태점검 역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사실상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의 점검이 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상 없습니다. 오히려 상태는 최상급입니다."
약 한달 반 동안의 상태점검을 마치고 보고를 받은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바로 몰고 들어가죠. 최단 루트가 어떻게 됩니까?"
"일단 지금 군함 운용가능 인력이 러시아로 들어와야하는데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바랴그의 경우 흑해에 있어서...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연달아 지나와야 하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터키쪽과의 협상이 불가피 합니다."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은 운용이 가능한 것이죠?"
"예. 북해와 맞닿아있는 무르만스크에 정박해 있으니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은 운용이 가능합니다.
분란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의 연안을 통해 북극권을 넘어 진해로 옮겨온다면 약 7,200마일 (11587.28km)을 끌고 와야겠지만요.
그 마저도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쇄빙선 없이는 잔뜩 깔린 부빙해 때문에 완전히 얼음 바다에 갇히게 될 확률이 있는 만큼...
결국에는 자력운송을 한다면... 두 척 전부 희망봉을 돌아서 운송해오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수에즈는..."
"이집트 운하 관리청 설득이 어려울 겁니다. 미국 정도나 쓸 수 있겠지요."
"러시아에 운송을 부탁하는 편이 훨씬 더 빠르겠군요."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에 한해서는...아무래도 그렇지요. 러시아는 쇄빙선을 직접 운용중에 있기도 하고....
에스코트가 가능한데다 항로 전체를 러시아 영해로 짤 수 있는 만큼, 문제가 생겨도 바로 대응이 가능하니까요."
"사는 것보다 배송 받는게 어렵다니 거참..."
"보통 물건이 아니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면 운항에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일단 준비되는대로 바로 인수해서 출발한다고 하면...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은 한 달 반 가량 걸릴 것이고..."
"바랴그함은..."
"기약이 없죠. 터키에서 항로 이용을 허락해준다고 해도 지중해를 나와야 하고 나와서도 아프리카 지역을 빙둘러가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면... 출발이후 60일정도는 걸린다고 봐야할 겁니다."
그렇게 각종 제약 조건을 들은 나는 차기 러시아의 권력자인 푸틴을 만나 해당 사항을 논의했고...
"힘든 일은 아니군. 도와주지. 블라디보스톡까지만 매각사실을 숨기고 비밀리에 운송해주면 되는 건가?"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죠. 공식적인 계약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 물론 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은 별도로 지불하는 건 당연하고요."
별다른 논쟁이나 설득 없이 대리 운송을 부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국방무관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해군 장교들과 우리 일행들은 러시아 해군의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 운용을 견학함과 동시에
푸틴이 이끄는 연방보안국 직원들이 만든 보안장막의 보호를 받으며 한달에 걸친 북극항로 항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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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이 항모를 구매하기로 비밀리에 협약을 맺고 항모에 탑승한채 비밀리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던 그 시각,
일본에서는 아베를 중심으로 한 KTJC에 대한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신 대지진에서 조센진들은 파렴치하게도 우리의 고통을 비웃으며 안락하고 편안하게 호텔에서 개인 경호원까지 둬가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 아베 신조는 이번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외교라는 명분하에 이런 조선인들의 폭거를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조센진을 죽여라!!!"
피해지역에서 활동하는 각국의 구급대와 구급대를 파견한 국가들의 눈이 무서워 피해지역인 고베가 아닌 도쿄에서 시위를 펼치는 아베.
그리고 그런 아베를 보며 환호하는 도쿄의 우익단체들의 모습은 꽤나 꼴 사나운 것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타케미치와 그의 스승격인 다케시타는 그런 아베의 외침을 일체 무시하며 공식 논평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이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로서 아베군의 발언을 막지는 못하겠으나, 이는 우리 당은 물론이고 일본국의 총의와 동 떨어진 개인의 발언임을 명확히 하고 싶다.
우리는 한국을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로 보고 있으며,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자민당 내의 분열로 인해 촉발된 이번 논쟁은 결국 커지고 커져 일본 정계의 화두가 되었고,
이 화두를 두고 국민의 대다수인 70%는 방관을
나머지 15%의 좌익과 15%의 우익이 서로 치고받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게 끊임없는 논쟁의 소용돌이가 한달 가까이 이어지던 어느날.
다케시타가 이끄는 헤이세이 연구회 출신이자 현직 총리인 오부치 게이조의 앞으로 일본 내각조사실의 급보가 전해졌다.
"러시아에서 항모를 블라디보스톡으로 보냈다고?! 곧 도착이라니! 이걸 왜 이제야...!"
"미국측에는 이미 양해를 구했다는 이유로 우리쪽에 첩보공유를 해주지 않았고, 우리가 확인했을때는 홋카이도의 왓카나이시를 지나던 시점이라...."
"그걸 지금 말이라고...! 미국이 이걸 가만히 두고 봤다는 말인가?"
"그게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사전안내도 해서..."
"젠장... 이대로 가다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는 커녕 역으로 주저앉게 생겼군..."
급보를 받은 오부치는 곧장 자신의 파벌 수장인 다케시타를 찾았고,
소식을 들은 다케시타는...
"당분간 입을 다물지. 한신대지진 관련한 논쟁으로 지지율이 나름대로 오르고 있으니.
중도에서는 우리 다케시타파에 대한 지지가 늘었고, 극우에서는 아베군이 지지를 모아주고 있는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을 순 없잖나.
거기다 미국의 양해도 구했다고 하니... 별 문제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일본 특유의 언론통제와 침묵을 결의하며 해당 소식을 덮어버리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의 침묵 속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은 태준과 나머지 거래를 마친뒤 곧바로 해당 함정을 한국측에 넘겨주었고....
"됐어! 태준이 놈이 성공했다는군!"
"와!!!!"
"잘 됬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진해 군항에 도착만 하면 바로 언론에 이 사실을 풀고 지지율 작업을 진행하면... 전대 대통령 지지율은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진해 군항에 도착한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은 순식간에 그 이름을 바꿔 독도함으로 명명되었고,
한국 최초의 항모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일본은....
"역시! 한국은 뒤에서 음험한 짓이나 하는 쓰레기 국가다!"
"아베의 말이 맞았어! 재난상황에 조센진들만 돕던 KTJC의 행보부터가 수상하기 짝이 없었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며 더 큰 분란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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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권을 항해하는 일은 괴롭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여름도 아니고, 한 겨울에 선내 가장 좋은 객실에서 연신 난방을 최대치로 올려가며 달려왔음에도 살을 에는 추위와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항해일정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거기다...
"이왕 이렇게 함께 여행하게 된 것. 같이 이야기나 좀 나누지. 여기 차도 좀 들고."
살벌하기 그지 없는 푸틴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혼자서 곱게 미칠라야 곱게 미칠 수도 없는 일정이었다는 점이 항해의 고통을 더욱 배가시켰다.
"감사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안전을 보장받으며 푸틴과 느긋하게 친해질 기회를 발로 차버릴 만큼 멍청하진 않았기에 나는 푸틴의 친절을 순순히 받아들며 푸틴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업 계획은 잘 받아보았네. 주요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망 구축에 나선다지?"
"예. 물론 원하시던 차세대 통신기술 규격은 아니지만요."
"뭐. 그 점도 보고를 받았네만. 그건 자네가 생각이 있어 그런게 아니겠나."
말은 이해한다는 듯 해놓고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푸틴의 말에 나는 싱긋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차세대니까요. 구태여 넓다못해 광활한 러시아땅에서 실험삼아 상용화할 수는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죠."
"첫 번째라. 그럼 다른 이유도 있다는 건가?"
그 말에 나는 푸틴이 건넨 차를 마시며 속을 데우고는 푸틴을 향해 악동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구태여 옐친 각하의 치적을 늘려줄 이유가 없다는 점... 이죠.
러시아 경제 위기를 극복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이 배를 산 것이야... 러시아 인민들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제 조국을 위한 것이라지만...
그 이상의 치적을 선물하면... 연방보안국장님께 기회가 영영 안 올지도 모르니까요.
해서 그 치적은 제가 연방보안국장님을 연방보안국장이 아니라 각하라고 부르는 날까지 아껴두려고 그런겁니다."
그 말에 푸틴이 슬쩍 나를 보더니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크하하하핫....! 간만에 크게 웃었군. 김회장 자넨 역시 최고야.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내 말이 이어지자 푸틴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 그 마지막 이유를 들으니 자네와 할 일이 더 생각이 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