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러시아 (5)
태준이 옐친에게 제안한 돈은 소위 말하는 리베이트였다.
어느 업계에나 있는 검은 돈.
그러나 태준이 제안한 돈이 규모는 거래에 걸맞게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얼마나 되는..."
"주식은 비상장원칙을 가지고 있어 딱히 얼마라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 5%에 해당하는 돈을 말씀드리자면 325만 달러겠네요. 전체 금액이 6500만 달러니까요."
판매대금 4500만 달러에 대한 리베이트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측이 팔지 말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2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다리만 놓아준다면 제대로 챙겨주겠다는 태준의 말에 옐친은....
"주식...을 안받는다면 얼마까지 가능한가?"
모양 빠지게 돈을 더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옐친의 행동에 태준은 살짝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영업용 미소와 접대용 겸손, 그리고 방사능 홍차에 대한 공포를 잊지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만약에 주식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한다면이야 10%까지도 리베이트로 드릴 수 있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식으로 받으시는 편이 그래도 눈에 안 띄고 좋을텐데요."
"물론 그렇겠지만 이곳은 러시아일세."
그 말에 태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태준이 거래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악수하며 궁 밖으로 안내를 받던 그때,
대통령 집무실 앞에 서있는 누군가가 슬쩍 태준에게 다가왔다.
"기골이 장대한 거인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선이 유하군."
오른팔을 다친 사람처럼 고정시킨채 다가오는 수트차림의 남자를 본 태준은 침을 꿀꺽 삼킬 수 밖에 없었다.
'푸틴이... 여긴 왜... 벌써 푸틴이 정계데뷔를 한 건가?'
그리고 그런 태준의 흔들리는 눈빛에 푸틴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호오.... 나를 아는 모양이군. 구 소련 출신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 러시아의 특권계층, 정계와 유착하여 재벌이 된 소련 공산당 출신 간부들)들이나 나를 아는 줄 알았더니... KCIA나 군부 출신도 아닌데 정보력이 상당하군."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태준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러시아 연방보안국장 블라드미르 푸틴이네."
그렇게 서로 악수를 주고받은 태준과 푸틴은 자연스럽게 집무실 밖으로 이어진 크렘린궁의 복도를 걸으며 말을 이었다.
"오자마자 거래를 트느라 고생했을텐데.... 차라도 한잔 하겠나?"
그 말에 태준이 침을 꿀꺽 삼키자, 푸틴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긴장을 하나. 혼자서 거대 제국을 만든 남자가. 평범한 홍차나 하자는 걸세. 러시아에 왔으면 홍차는 한 잔 마시고 가야지."
"러시아 홍차는 쓰다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푸틴의 말에 태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자, 푸틴이 말을 이었다.
"영국놈들이 마시는 홍차는 색만 낸 맹물이라 그런 거고, 러시아 홍차가 진짜라 그런 걸세. 입맛에 맞지 않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거야. 특별히 한국에서 들여온 고급 다과도 준비해뒀으니."
그렇게 태준이 푸틴의 강권에 못이겨 반쯤 끌려가다시피 해서 도착한 곳은 크렘린 궁 한 편에 위치한 또 다른 방이었다.
"연방보안국장실로 끌고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들을 하더군. 해서 이쪽으로 왔으니 너무 불편해하지 말게."
그렇게 태준이 자리에 앉자 능숙한 손놀림으로 커피포트에 홍차잎을 밥 숟가락으로 때려넣은 푸틴이 서랍 한 구석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내오며 말을 이었다.
"고르바쵸프 시대부터 한국은 뭐랄까... 참 좋은 친구였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파는 돼지스프의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
"그렇습니까."
"한국인들도 참 친절했고 말이지."
그렇게 태준에게 초코파이를 내밀며 말하는 푸틴의 말에 태준이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던 그 때.
푸틴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 개인적으로는 김회장 당신의 말을 믿네. 러시아는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네의 판단을.
그리고 한국이 우리 러시아와도 우호적으로 지낼 것이라는 것도. 구태여 민족적 기질을 따지고 싶진 않지만... 슬라브 민족과 한국 사람들은 잘 맞는 면이 많기도 하잖나.
하지만... 일단은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무턱대고 다 믿을 수는 없다는 말이지.
특히... 저 안쪽에서 이뤄진 거래에 대해서도 그 의도가 의심스럽고."
푸틴의 말에 태준은 초코파이를 까다 말고 멈칫하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푸틴은 푸틴인가. 본인 상사라 할 수 있는 대통령에게 까지 도청망을 심어놓을 줄이야....!'
그렇게 태준이 멈칫 한 것을 본 푸틴이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부담스러운 질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솔직히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푸틴의 압박에 태준은 번뜩 정신을 차리며 말을 이었다.
"의외의 질문을 들어서 놀랐을 뿐입니다."
"그런가."
"해서 답변을 드리자면. 대통령께 말씀 드린 내용이 전부입니다. 의도랄 것도 없지요."
"순수하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정확히는 일본까지 그 견제의 대상에 들어가겠지요. 물론 진지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말에 푸틴이 슬쩍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커피포트에서 들려오는 끓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우려진 홍차를 유리포트에 옮겨 담아 들고오며 말을 이었다.
"의도가 악한게 아닌 것은 다행이네만.... 문제는 원래 악의없는 실수라는 것이 서로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게 문제지."
그렇게 태준의 앞에 놓인 잔에 홍차를 따르며 말하던 푸틴은
- 콸콸콸...
홍차가 넘치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홍차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달라고 한 어드미럴 쿠즈네초프는 조만간 내가 쓸 일이 있었거든."
그 말에 태준은 흘러넘치는 찻잔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태준이 순순히 인정하자 푸틴이 주전자를 바로 세우며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순순히 인정하니 보기 좋군."
그렇게 자리로 돌아간 푸틴이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에도 홍차를 채우고는 말을 이었다.
"뭐. 이미 일은 벌어져 버렸고. 어쨌든간 각하께서도 결정을 하신 것 같으니.... 우리 차선을 논의해봐야 하지 않겠나?"
"차선이라면..."
"자네가 내게서 가져간 카드가 조커였으니, 적어도 에이스는 내 손에 들려줘야 나도 카드 치는 맛이 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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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이 푸틴과 살떨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무렵.
일본 자민당에서는 태준이 있는 모스크바와는 전혀 다른 훈풍이 불고 있었다.
"KTJC에서 이번 건을 일부러 하고 있는 것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다만, KTJC의 이런 협조에는 자민당의 안정적인 지지율 회복이 있는 만큼 크게 일을 벌이기 보다는...
KTJC에서 내놓은 지원에 고마워하면서 피해지역의 국민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회복하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더욱 좋아보입니다."
'혐한' 떡밥으로 지지율을 올릴 생각만 하고 있던 자민당의 의원들은 다케시타의 제지로 입맛만 다시고 있던 차였는데,
그런 제지가 타케시타의 제 1 비서, 타케미치의 입을 빌어 해제가 되다 보니 그 분위기가 상당히 좋을 수 밖에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어쨌든간 외국계 기업 중에 일본에 착실하게 세금을 잘 내고 있는 몇 안되는 기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이니치들에게만 지원을 했다고는 해도 어쨌든 우리의 구호의무 일부를 덜어준 셈이니까. 그 편이 모양새가 더 좋겠지."
"거기다 한국에서도 이번에 구조대를 편성해서 보내기까지 했으니 너무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그런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에 동조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러 선생님들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KTJC측에서 우리한테 이렇게 해줬다고 해서 우리가 굳이 그들의 편의를 봐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단 한 사람.
야마구치현의 젊은 사자라 불리는 2선의원.
아베 신지로만은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하지 못한채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본에서 돈을 벌어가는 기업이 우리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 내 기생충과도 같은 특별영주자들에게만 돈을 뿌리고 편의를 봐주는데 여기에 감사를 한다니요...!"
"이보게! 아베군! 말이 지나치지 않은가? 아무리 공식석상이 아니라고 해도...!"
"제 말이 틀렸습니까? KTJC의 이런 차별적 태도를 두고 당 차원의 대대적인 비판을 가해도 부족한 수준인데... 여기에 감사라니요!
그리고 구호의무는 우리 국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외국인에는 해당이 없는 것 아닙니까!"
"큰일날 소리 하지 말게.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 도 있는 발언이야!"
"저는 물론이고 지금 여기 계신 세이와 연구회 선배님들께서도 말씀은 하지 않으시지만 내심 불만이 있는 것을 꾹 참고 계신 것 안보이십니까?
이건 파벌 정치에 의한 독재입니다! 헤이세이 연구회의 독재란 말입니다!"
혐오발언을 하며 마치 자신이 민주투사라도 된 듯한 언동을 보이는 아베를 보는 다른 파벌의 중의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아베를 비난했지만...
"일본인 중심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 자민당이 할 일입니다!"
아베는 그런 혐오섞인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비밀 회합을 방해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 아베를 보는 타케미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아베 선생께서는 그럼 뭘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진짜로 KTJC의 행동을 규탄하며 혐한 분위기라도 끌어올리실 겁니까?
그러다 KTJC가 사업 때려치고 나가겠다고 하면. 그때는 감당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조센진들의 기업 따위 있으나 마나 아닙니까. 우리가 전성기는 지났다고 해도 일본입니다! 세계 2위의 GDP를 가진 일본인데 뭐가 무섭다는 말입니까?"
그 말에 내내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다케시타 간사장이 인상을 쓰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아베군. 자네는 자네 뜻 대로 하게. 단, 개인 의견이라 밝히고 당의 이름은 빌리지 않고. 그럼 되겠나?"
"좋습니다! 제 말이 맞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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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카드라...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푸틴의 말에 태준이 조심스럽게 홍차가 가득 들어찬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하자, 푸틴이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돈으로 받고 싶진 않고, 다른 것을 받았으면 하는데."
"다른 것... 이라면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기술. 정확히는 김회장 자네가 가진 QULAB의 차세대 통신 기술을 원하는데... 가능하겠나?"
푸틴의 말에 태준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자 푸틴이 말을 이었다.
"물론 공짜로 달라는 것은 아니야. 자네 것을 마구 빼앗을 정도로 난 파렴치한은 아니니까. 앞으로 갈 길이 멀기도 하고.
자네 사업을 제대로 굴릴 수 있게 도와주겠네. 대가도 제대로 지불 할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여론이야."
그 말에 태준은 그제야 안도하며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정도라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