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러시아 (4)
한편.
손의정 사장의 폭주를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타케미치는 확인차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닿은 것은 태준이 아닌 한국의 민영이었다.
"회장님께선 지금 출장중이십니다. 비화폰도 비행중이시라 안되는 걸거구요."
"출장이라... 허면 언제 들어오십니까? 일본 상황에 대해 긴히 논의드릴 것이 있는데.
일정을 알려주시기 어려우시다면, 도착시간만이라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민영의 말에 살짝 고민하던 타케미치는 이내 후 하고 한숨을 내쉰뒤 말을 이었다.
"손의정 사장이..."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를 전부 들은 민영은 '아' 소리를 내더니 말을 이었다.
"그건 괜찮습니다. 회장님께선 이미 알고 계시니까요."
"예? 그럼 이 소란이 회장님의 지시였다는 말입니까?"
"그럴리가요. 타케미치씨도 아시다시피 회장님께서 이런 일 하실때 어디 생색내가며 하시는 분이던가요. 전부 손의정 사장의 독단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괜찮다는 겁니까?"
"회장님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거든요. 손의정 사장이 그렇게 막나가는게.
어쩌면 손의정 사장의 능력과는 별개로 손의정 사장을 억지로 잡아두고 옭아매는 이유도 거기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에 타케미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다만, 저도 KTJC의 주주이다 보니까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군요.
KTJC가 이런식으로 소위 조선계라 불리는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우대성 정책을 피는 것이....
심지어 조용히 하는 것도 아니고 대대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해가며 하는 것이...
결코 KTJC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외려 이미지만 망가지겠죠.
장사는 일본에서 하면서 도움은 외국인한테 준다. 뭐 이런 인종차별의 타깃이 되기 딱 좋은 정책이니까요.
실제로 제가 몸 담고 있는 자민당에서도 KTJC의 이런 행보를 이용해 힘이 빠져가는 자민당에 다시금 지지를 집결시키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판입니다.
물론... 다케시타 선생께서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자는 식의 공감대를 형성해주고는 계시지만... 그것도 이제 곧인지라...."
그 말에 민영이 놀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케시타 간사장이 물러나는 건가요?"
"물러나긴 진작 물러났어야 맞겠죠. 엄밀히 따지면. 선생의 동생이신 다케시타 와타루 제 2비서도 나이가 찰 대로 찼기도 했고...
무엇보다 타케시타 선생의 나이가 벌서 일흔 넷이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언제 어떻게되어도 이상하진 않은 분위기 입니다."
"일본의 지역구 세습문제야 익히 들어서 알았지만... 권력까지 세습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군요."
"일단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는 있으니까요. 자서식 투표를 하는 일본에서 당선과 지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니까요.
당선이 되는 것 부터가 지지기반을 쌓는 기본 조건이랄까요. 거기다... 지금 선생의 권력을 다케시타 와타루 제 2 비서가 이어 받아도 문제입니다."
"노선이 전혀 다른 겁니까?"
"예. 일단은 헤이세이 정책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파벌을 이끌고 있으니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일한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극우강경노선을 따르는 세이와 정책연구회 쪽과 개인적인 교감을 하고 있는 자이다 보니....
거기다 제가 타케시타 선생 문하로 들어오기 이전에는 실질적인 살림꾼 노릇을 하고 있던 자라서 본인 스스로도 돈이 아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파벌의 영수가 와타루로 바뀌는 상황 자체가 회장님을 귀찮게 만들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 말에 민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상황이 꽤 복잡하네요."
"예. 해서. 회장님과는 언제 연결이 가능한 겁니까?"
"일단 예정시각은 내일 아침 11시. 아, 우리 시각으로 11시 입니다."
"알겠습니다. 민영씨도 일단 대비는 해두시죠. 생각보다 KTJC의 이미지가 많이 깎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민영와 대화를 나눈 타케미치는 끊어진 전화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이 막은 조간 신문기사의 초고를 다시 바라보았다.
- KTJC, 본색을 드러내다. 자이니치와 한국인의 민족적 일본 침공 ; 차별은 이렇게 시작된다.
헤드라인부터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 기사를 본 타케미치는 이내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일본인이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에게 차별당한다라... 내 나라지만 많이 추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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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비행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한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타케미치의 보고를 받고는 피식 웃었다.
"손의정 사장. 일 열심히 하는 군요."
"회장님. 이건 누가 봐도 악의적인 내부중상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효과도 상당하고요."
"그러니까요. 일 열심히 하는 거지요. 그냥 두세요. 어차피 KTJC의 주요 계열사 중에 일본 매출이 제일 낮으니 이미지 깎이는 건 아깝지 않습니다."
내 말에 타케미치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설마... 무슨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하하. 제가 귀국할 때 보시면 아실겁니다."
그렇게 가볍게 타케미치의 전화를 응대한 나는 곧장 수속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러시아의 대통령 궁, 크렘린으로 안내되었다.
"만나서 반갑소. 김 회장."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한 것은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각하."
"한국에서의 기자회견이 참 인상깊었소. 해서 직접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내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김회장을 모셔온 것이오."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옐친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나는 곧장 안쪽 내실로 들어가 옐친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김 회장이 우리 나라에 진출해 투자를 하겠다는 이야기야 내 다 들었고..... 협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니 그 부분은 밑에 사람들에게 맡기도록 하고....
우리끼리는 좀 더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겠소? 한국의 비밀특사로 오신 분이니 그정도 권한은 있으리라 생각이 드는데... 어떻소?"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우선 우리 러시아의 입장부터 말하자면... 디폴트 선언을 한 것도 아니고 단순이 유예선언을 한 것인 만큼...
한국 정부가 돈을 떼일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못미더울 것도 사실인 만큼 이번에도 현물거래를 통한 채무이행을 제안하고 싶은데... 어떻소?"
"현물거래라면 어떤 것을 파실 생각이십니까?"
"김회장이 높이 평가한 우리 과학기술은 사실 전부 군수사업에 집약되어 있지... 그리고 종사자 수가 가장 많은 것도 군수계열이고.
해서 이번에는 잠수함을 내놓고 싶은데 어떻소?"
"잠수함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신조 잠수함이라면 우리도 실업을 막을 수 있고, 한국에서도 명분을 챙기면서 동시에 취약한 해군력도 확보할 수 있을텐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옐친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 것보다는 다른 것이 더욱 러시아와 한국 사이를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다른 것?"
"예."
그렇게 옐친이 되묻자 나는 가볍게 답을 하고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드미럴 쿠즈네초프. 이걸 내주시죠. 어차피 지금 러시아에서는 천덕 꾸러기 신세 아닙니까?"
그 말에 옐친이 슬쩍 놀랐다가 이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전 가져간 키예프 급도 일본 방해공작에 결국 고철처리하고 끝나지 않았소. 이번에는 제대로 가져갈 자신이 있으시오?"
"얼마전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났습니다. 일본이 우리 사이의 거래를 신경쓸 여력이나 있겠습니까?
항구도시. 그것도 아시아 선적량 1위의 초거대 항구도시가 쑥대밭이 되었는데.
이 틈이 아니면 이 거래는 불가능 한 거래입니다."
"그야 그렇겠지만... 대양해군도 아닌 한국에서 이를 가져가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오."
"북한 견제라고 하면... 너무 말도 안되는 대답이고. 일본 견제라고 하면 믿지 않으시겠지요."
"설마.... 중국?"
"예. 각하께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난 뒤 새롭게 태어난 러시아는 이제 미국에 대적할 역량을 잃었습니다.
과학기술이야 차고 넘치지만... 넓은 땅덩이에 비해 사람이 너무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중국은 다르죠. 사람도 많고 땅도 넓습니다.
지금까지야 미국이 귀국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과 데탕트 관계를 가지고 가고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습니까?
둘 간의 싸움은 분명히 일어나고, 그 시작점은 과거 한국전때 그랬듯 우리나라가 되겠지요."
내 말에 옐친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내 한국 입장은 이제 잘 알았소. 그런데 우리가 판 무기가 우리를 향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소?"
"물론입니다. 애초에 러시아와 한국은 상보관계에 가까운 국가입니다. 위에 북한만 없었다면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겠지요.
한국은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국가고 러시아는 그 에너지 자원이 많으니까요. 구태여 우리가 러시아를 적대할 이유가 없죠."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지 않소."
"그건 유럽인들의 생각... 아니 편견일 뿐입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사이가 좋습니까? 아니면 프랑스와 독일이 사이가 좋습니까?
같은 백인이지만 사이가 더럽기는 매한가지 아닙니까? 우리 동북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중국과 우리 한국은 사이가 좋을라야 좋을 수가 없지요.
그런 역사가 5천년이나 이어져왔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는 좋았으면 좋았지 나쁜 기억이라곤 딱히 없지 않습니까?
지난 전쟁이 있기는 했지만... 거기서 악역을 자처한 것 또한 중국이었지요. 러시아.. 아니, 당시 소련은 뒤에서 구경하는 입장이었고."
내 말을 듣던 옐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군."
"거기다 항공모함을 우리에게 팔면 러시아에도 이득일겁니다."
"어째서 이득이란 말이오?"
"항모라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니까요.
운용 경험이 없는 국가가 사들여봐야 잘 해봐야 거대한 해상 구조물이고, 최악의 경우엔 그저 폭격 연습용 거대 표적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당연히 수입해 들어오면 운용노하우에 대한 것부터 함재기까지 러시아측이 한국에 팔아먹을 수 있는 게 넘치지 않습니까? 애초에 미국의 F-16과 호환이 될 리도 없으니까요."
내 말에 슬쩍 미소를 지어보인 옐친은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핫... 하하하. 김회장 말 솜씨가 상당하군요."
"사실만을 말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조건도 좋고 다 좋은데... 얼마에 가져갈 생각이시오?"
"어드미럴 쿠즈네초프는 그 상태 그대로 가져가는 조건으로 4500만 달러.
반은 한국쪽에 상환하시고, 반은 현금지급을 하는 조건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넘어간 바랴그 역시 아직 공정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그 상태 그대로 2000만 달러에 가져가겠습니다.
단, 우크라이나 쪽과 다리를 놓아주신다면... 제 개인적인 선물을 드리도록 하죠. 각하께."
내 대담한 발언에 옐친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선물... 이라면?"
옐친의 기대 섞인 표정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판매가의 5%에 해당하는 현금. 그리고... 러시아에 진출할 저희 그룹의 주식이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