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106화 (106/200)

106. 러시아 (2)

태준과 딜을 마친 김태충은 김태충이 돌아오는 그 날까지 최대한 버티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었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는데, 정부는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을 돌려받을 방법이 있습니까?"

"이봐! 애초에 그 차관은 당신네들이 내준거잖아! 그럼 정치적 책임도 당신네들이 져야 하는 거 아닌가?"

"저희가 차관을 제공할 때만 해도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월가를 비롯한 세계 금융권에서는 러시아의 국채를 꾸준히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상황이 급격하게 변했으니, 그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이 있는지 질의를 하는 것 뿐입니다."

"상황에 대한 대응방안? 똥은 당신네들이 싸고! 치우는 건 우리보고 치우라 뭐 그런건가!?"

여당과 야당이 대정부질문 시간에 국회에서 싸울때에도.

"최근 러시아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90일간의 채무유예를 선언한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인데요. 디폴트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지 전세계의 시선이 모스크바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에 나가 있는 백승기 경제전문기자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기자. 지금 현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예. 이곳 모스크바의 상황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루블 가치가 폭락하며 대부분의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러시아의 민생경제는 파탄 직전에까지 몰렸습니다.

상점에는 물건이 없어 물건을 사러온 손님들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설사 물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러시아 국내산이거나,

수입산 제품이더라도 연신 가격이 바뀌는 통에 러시아 국민들은 돈을 쥐고도 소비재를 구할 수 없어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최대의 민항사 아에로플로트의 경우 4거래일째 계속해서 하한가를 갱신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 역시 지속적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러시아 내부는 물론이고,

러시아에 투자를 진행했던 미국계 투자은행들 까지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LTCM에서 진행한 러시아 국채 매입 규모가 상상이상이었기에 그 타격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까지 타격을 준다면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겠군요."

"그렇습니다. 옐친 대통령의 경제과외선생으로도 잘 알려진 소련-러시아 최연소 총리 키리옌코 총리의 선전으로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옐친 대통령의 개각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개혁을 주도하던 키리옌코 총리가 낙향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IMF가 제공한 구제금융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닐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채권이 러시아의 채무이행 순서에서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던데, 현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럽에 속하나 유럽에 속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러시아의 입장에서 유럽에 지는 빚은 단순한 빚이 아닌 자존심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대학교 측의 리포트도 있는 만큼 이번에도 유럽보다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기자. 수고했습니다.

이번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인해 야당에서는...."

언론에서 해외주재 기자도 아닌 본사의 경제전문기자를 급파해 10여분에 걸친 특집보도를 이어갈때에도,

김태충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 침묵의 대가는 자연스럽게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정권 지지율은... 15%, 대통령님에 대한 지지율은 45%가 나왔습니다. 오차범위를 감안하더라도... 사상 처음으로 50%대 이하의 지지율을 보인 것입니다."

"4월에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으면 그대로 내 목에 칼이 들어왔겠군."

"... 얼마전 하일적 오천시장이 교통사고를 당해 공석이 되어 오천시에서 재보궐 선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만.... 지난 4월과 7월에 진행한 국회의원 재보궐은 다 끝났으니... 다행이지요."

"다행은 무슨. 당장 죽느냐, 서서히 말라 죽어가느냐 정도의 차이지.

태준이 그 놈이 잘 해줘야 해... 돈을 일부라도 받아오면 최선이지만... 그건 어려울 거고....

하다 못해 전 정부에서 진행한 불곰 사업의 2차 사업 인도분을 빠르게 받아올 수 만 있어도.... 분위기는 반전될테니."

"1차가 이제 막 끝났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군에서도 아직 반응들이 제각각이라...

ADD(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이번이 기회라며 신나하고는 있습니다만...

사실 군 입장에서는 즉전감도 아닌데다 우리의 미국 중심 무기체계와는 상당히 다른 체계를 보이는 물건을 강매당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더구나 군 수뇌부들은 원체 보수성이 강하지 않습니까?

군의 어두운 역사가 있으니 대놓고 정치권에 불만을 이야기 하진 않지만, 공공연히 청와대에 대고 빨갱이라고 하는 이들인데...

김응삼 시절보다 훨씬 진보적인 지금의 청와대에서 또 다시 러시아제 무기를 들여오겠다고 나오면 무슨 난리가 날지...."

"ADD(국방과학연구소)에서 성과를 잘 내줘야지. 그러니까."

그렇게 지지율 하락에도 침묵하며 밀사로 보낸 태준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만을 기다리던 김태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비서실장도 아닌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는...

"...하핫. 이 놈 이거 난 놈은 난 놈일세."

태준에 대한 촌평을 남기고는 그 어느때 보다, 상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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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로 향하기 전.

나는 먼저 러시아에서는 무명이나 다름 없는 내 입지를 올릴 필요성을 느끼고는 곧장 한국과 러시아 양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러시아는 지금 흑자도산입니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을 향해 뜬금없이 '흑자도산'을 운운하며 기자회견의 포문을 연 나는 슬쩍 슬라브 계열의 백인 기자 몇이 펜대를 놀리는 것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러시아가 어떤 나라입니까. 과학기술은 저 미국과 견주고, 영토는 세계 최대 영토를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면, 그것은 그 나라에 돈이 없기 때문이지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은 러시아 기자들이 빠르게 펜을 놀리던 그 때.

"고선일보의 차민영입니다. 돈이 없다는 게 곧 나라의 가난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특히나 신용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금융에서 신용을 잃는 선택까지 해야하는 경제 상황이라면...."

수준 이하의 질문을 던지는 국내 기자의 질문에 나는 슬쩍 주변 외신 기자들의 눈치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나라의 화폐가 가치가 떨어졌다는 건 그 나라의 정부가 신용을 잃었다는 것이지, 그 나라 자체의 빈부와는 관계가 없는 겁니다.

일상적으로는 정부가 국가를 대변하지만,

경제에서는,

그리고 시장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내에서는,

정부 역시 기업과 국민처럼 하나의 경제주체에 불과합니다.

자연히 정부가 가난해졌다고 해서 기업이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고, 국민들이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가난해지기 쉽겠지만...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불황에도 장사가 잘 되는 기업이 있는 것 처럼요.

우리도 경험한 바가 있지 않습니까?

러시아처럼 강력한 외환 위기는 아니었지만, 우리 역시 금융위기를 겪었죠.

그 상황에서 떨어진 집값에 신이 나서 부동산을 사 모은 부자들의 행태를 벌써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실제로도 전세계가 러시아에 불어닥칠 대규모의 공황상태를 걱정하는 와중에도

가스프롬의 경우엔 아주 약간이지만, 주가가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그건..."

"예. 원자재. 그것도 전세계 천연가스 부동의 1위 기업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 목재 역시 여전히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고,

석탄은 물론 아직 캐지 않은 유전만 한 가득있는 곳이 우리가 아는 동토와 라스푸티차의 땅 러시아입니다.

검은 금이라 불리는 석유를 잔뜩 깔고 앉아있는 나라의 정부가 단기적인 정책실패로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가진게 사람밖에 없는 나라라 자원을 재산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부족한데. 자원 역시 재산입니다. 높은 기술력과 고학력 인재들만이 재산인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거기다 체르노빌의 안타까운 참사 때문에 퇴색된 감은 있지만, 러시아의 과학기술은 여전히 높은 편입니다. 이런 단기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연신 반박을 시도하는 고선일보 기자의 말을 끊으며 말한 나는 이내 씩 웃으며 러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기자들을 향해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해서. 저는 이 참에 러시아에 투자를 진행할까 합니다.

한국어가 익숙치 않은 외신기자분들께 영어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유니버스 그룹 전체가 러시아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그 폭탄선언은 옆에 통역사를 낀 채 연신 받아 적기만 하던 외신기자들은 물론이고,

고선일보를 비롯한 국내 유력 일간지와 경제신문지 기자들 역시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전송해!"

"젠장! 경선에서 먼저 채갔어! 이래서 내가 유니버스 노트북을 사야 한다고 몇 번이나...."

"진짜로 진출계획이 있는겁니까?!"

그렇게 나는 전쟁터로 변해버린 기자회견 장에서 빠져나오며 씩 웃고는 김기백 사장에게 윙크하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세한 계획은 유니버스의 김기백 사장을 통해 전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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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던져놓은 거대한 폭탄은 한국은 물론이고, 러시아에까지 빠르게 전달되어 전해졌다.

"김태준이 우리 러시아에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예. 여기 이즈베스티야는 물론이고 네자비시마야, 프라우다 등 주요 일간지 전부 1면에 한국에서 열린 김태준 회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싣고 있으니 확실합니다."

비서를 통해 신문 스크랩 뭉치로 만들어진 긴급 보고서를 받아본 옐친은 빠르게 내용들을 훑어보고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날짜를 보니 어제 있었던 기자회견이군."

"예. 주요 일간지 전부 동시에 이렇게 1면을 장식한 것을 보면... 아예 대놓고 김태준 회장측에서 우리 쪽 기자들을 불러모아 회견을 진행한 모양입니다.

거기다... 여기. CNN, BBC, ABC 모두 이번 소식을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기까지 한 것을 보면 단순한 언론 플레이는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유니버스 사장 김기백이 밝힌 투자계획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그렇게 모든 보고서를 훑어본 옐친은...

"푸하하... 위치 선정부터 아주 절묘하군. 아주 대놓고 만나자고 손짓하는 모양새인데 이거?"

"예?"

"김태준 회장. 말일세. 이 자는 단순한 금융인 출신 사업가가 아니야. 노련한 정치인에 가까운 인물이지. 이렇게 폭탄을 던져놓고 본인이 안 올리도 없고..."

"예. 대사관에 안 그래도 비자신청이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사업비자... 아니 10년 상용비자로 내주라고 하고, 김회장 들어오는 즉시 나와 만날 수 있게 일정을 정해보지."

"알겠습니다. 그럼...베레조프스키 회장도 부르면 될까요?"

그 말에 옐친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일단은 독대부터 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태준의 세계구급 초대장을 받은 옐친은 자신의 비서가 물러나자 슬쩍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하고는...

"한국이 제공한 경협차관 문제 때문에 오는 것이겠지.... 뭘 받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군."

간만에 마음 편한 얼굴로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오수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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