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대중문화개방 (3)
도로 현대화 사업은 노후화 된 도로를 보수하는 대규모의 사업이었지만...
"자네 꽤 많이 알고 있구만."
"들리는 소문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일단은... 건설사도 하나 가지고 있고요. 그 쪽은 구멍가게지만."
단순히 노후화 된 도로를 '보수'하는데에만 힘을 쏟는 사업은 아니었다.
고속도로의 무인단속설비 설치를 비롯하여
각 국도의 신호체계를 재정비하고,
유료도로의 과금방식 변경을 통한 교통흐름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바로
도로 현대화 사업의 핵심이었다.
"CCTV설치와 무인과속장비 설치 사업을 맡고 싶다는 건가?"
"그 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호체계 정비 사업에 유료도로 통행료 무인납부 장치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 전부 자네가 다 하겠다고?"
"그 정도는 주셔야지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IT분야라고."
"너무 밑지는 장사인데."
"그럼 무인과속장비에 더해 신호위반단속장비까지 추가로 설치해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신호위반단속장비?"
"예. 정지선 위반부터 적색신호위반까지 전부 단속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거기에 유무선통신 설비 네트워크까지 전부 한번에 구축해드리죠.
이건 정부 초안에도 없는 것 아닙니까. 만들역량이 안되니까."
그리고 이런 핵심을 이용해 도로교통 정보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태준은 김태충의 반발따위는 무시한채 선심을 쓰는 양 은근슬쩍 그 위에 사업하나를 더 끼워넣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바보가 아닌 이상 선심이 선심이 아니라 욕심임을 모를리 없는 김태충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 전부 다 하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인데."
"글세요. 일반 사기업에 로비시키는 정부가 더 도둑놈 심보가 아닙니까?"
"그래서 나도 어지간하면 맞춰주려고 했는데... 이건... 좀."
김태충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저하자 태준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사실 도로설비 정비같은 일은 당 차원에서 선거철에 유세 좀 했다 하는 사람들에게 논공행사조로 돌리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두황 대통령때 부터 내려온 유서깊은 사업 아닙니까."
태준이 노골적으로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날리며 말하던 그때, 옆에 앉아있던 심낙훈 문화관광부 장관이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크흠. 그걸 아는 친구가..."
그 말에 태준이 빙긋 미소지으며 심낙훈을 빤히 쳐다보자, 심낙훈이 채 말을 잇지 못한채 말꼬리를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심낙훈의 입을 눈빛으로만 막아버린 태준은 거리낌없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통령님께서 솔직히 당 때문에 당선이 되신거라고 보십니까?"
그 말에 김태충이 한 대 얻어맞은 사람의 표정으로 멍하니 태준을 보더니....
"... 뭐?"
가장하고 있던 예의도 잊은채 말 그대로 순수한 의문을 보내왔다.
"전 정부가 여태까지 얼마나 잘해왔습니까. 솔직히.
청수대교 참사는 있었지만, 이후 수습도 잘 했고.
후속조치까지 제대로 잘 했죠.
부실 건축물도 대대적인 전수조사로 다 밝혀냈고,
이에 따른 행정명령도 착실히 이행했고,
거기다 청수대교 참사때 주먹구구식 구조로 물의를 빚었던 119도 중앙재난본부로 개편에 성공했지 않습니까.
애초에 부실공사 부분이야 청수대교를 지었던 정권인 과거 정부의 잘못이기도 하고요.
그 뿐이면 모르겠는데, 일본 눈치 안보고 총독부 건물 허물어버리고, 금융자본간의 다툼도 성공적으로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남방정책까지. 사실상 이창회 후보가 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치적이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여소야대에 아무도 의심을 갖지 않고 있고요."
"앞선 치적들이야 김응삼 그 친구가 잘 한 게 맞네만, 금융자본간 다툼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나, 남방정책 건은 자네 공이 큰 것으로 아는데?"
태준의 말에 할말이 궁해져서였을까.
김태충은 이내 옹색한 반론을 제기했지만...
"기업과 협조해서 얻어낸 성과가 정부 성과가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태준은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고 김태충의 옹색한 변명을 받아치며 말을 이었다.
"각설하고.... 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저런 상황을 놓고 볼 때. 구태여 대통령께서 보은성 사업을 벌일 이유가 있으시냐... 이 말씀입니다.
외려 대통령님께 기대서 다음 선거에서라도 이겨야 하는 당이 대통령님께 최대한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 말에 김태충이 슬쩍 자신과 함께 온 비서실장과 심낙훈 장관을 빤히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정치는 장사랑 달라서 말일세. 본디 내가 얻고자 하는 게 있으면 70은 내어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거든."
김태충의 말에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두 사람을 본 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저와는 뭘 하러 오신겁니까?"
"자네는 장사꾼이니 장사를 하러 온 게지."
어울리지 않게 능청을 부리는 김태충을 본 태준은 후 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대통령님께 정치를 보여드려야 하는 겁니까?"
"자네가 내게 대우를 받고 싶다면 그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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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과 김태충의 숨막히는 거래가 이뤄지던 그 시각.
호텔 내 바 한켠, 프라이빗 룸에서는 의외의 인물 셋(정확히는 넷)이 모여 거대한 너구리굴을 형성하고 있었다.
"타케미치 씨."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야기 못해드립니다."
손의정.
그리고 태준의 방에서 나오는 타케미치를 잡아 온 조던(과 조던의 통역사)
그리고 타케미치였다.
"그러지 말고 말 좀 해보지. KTJC쪽 일이라면 나도 알 권리가 있네. 주주니까."
"정확히는 오브라이언 재단이 주주이죠. 그리고 KTJC의 일에 대해서는 오브라이언 재단 쪽으로 주주서한을 통해 자료가 갈테고요.
무엇보다, 조던. 당신의 딸과 사위가 아직 회의장에 있지 않습니까? 그 쪽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으시는 것이 빠르실텐데요."
"말이 쉽지. 그 아이들이 어디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줄 아는가?"
그렇게 타케미치가 입을 꾹 다문채 침묵을 지키자,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분명 제 비서의 말에 따르면 타케미치씨의 동행을 허락한 것은 회장님이 아니라 김태충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말인 즉, 일본시장과도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KTJC-J의 사장인 저는 들어도 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 말에 타케미치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서 인수하셨다고는 해도 역시 열린 공간은 열린 공간이군요."
"그게 무슨...."
"음악소리가 꺼져있습니다."
그 말에 손의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그 때,
통역을 통해 말을 들은 조던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과연...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감이 많이 죽었군. 필립."
"예."
"사람 풀어서 알아봐."
그 말에 손의정 역시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말을 이었다.
"... 장소가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만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모두 빠져나가려던 그때.
타케미치가 슬쩍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앞에 꽃과 함께 꽂혀있는 냅킨위에...
- UEPJ
라는 글자를 남겼고, 이를 본 두 사람은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물러났다.
그렇게 두 사림이 물러나고 담배와 쿠바산 시가가 나란히 꽂혀 자잘한 불꽃을 튀기는 재떨이 위에 냅킨을 올려둔 타케미치는
서서히 타들어가는 냅킨을 보며 혼잣말을 이었다.
"일단은 빚은 지워뒀으니. 나중에라도 써먹을 일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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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두꺼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김태충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나는 이내 김태충의 말에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특혜를 받고 싶어한 적은 없었습니다만."
"대접이 왜 특혜인가. 서로 도울 것은 돕자는 이야기가 어떻게 특혜로 가는가?"
"그렇다면 내어 주시죠."
내 단호한 표정과 말에 한숨을 쉰 김태충 대통령은 이내 두 손을 들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기어이 이겨먹으려 드는구만. 기어이."
"하시려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 아닙니까. 북한과 유화적인 스탠스를 취하기 위해 로비를 해달라니... 솔직히 그게 쉬운 일이라 보십니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말에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어렵지 않다니요. 전 정권때 기억 안나십니까? 미국은 북핵관련해서 전쟁으로 해결을 보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안했지."
"예. 그리고 거기엔 김응삼 대통령의 거센 만류가 있었지요.
물론 어차피 북한도 회담 직전에 김천성이 돌연사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전쟁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미국에게 전쟁 대신 화해를 요청하는게 쉬운 일입니까?"
"내가 언제 미국과 북한이 화해하길 바란다고 했나? 우리가 화해 무드로 가는 길을 방해나 하지 말아달라 부탁하는 걸세."
"결국 그 말이 그 말입니다. 아니 도리어 더 좋지 않을 수도 있지요. 미국에게 잘못된 사인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 모든 위험을 짊어지고 하는 로비 아닙니까."
내 말에 김태충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잘못된 사인?"
"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막말로 우리가 북한처럼 핵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재래 전력은 우리가 북한이 골골대는 사이 압도했을지는 몰라도, 비대칭 전력에서는 여전히 차이를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막아주는게 미국의 핵우산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총을 겨누고 있는데 당사국이자 동맹국인 우리가 총부리를 내려놓으면... 미국은 어쩌면 리더쉽 교체를 생각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 도전적인 말에 김태충이 인상을 찌푸리자, 이번에는 지은 죄가 있어 내내 침묵만을 지키던 비서실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리더쉽 교체라니! 이보시오. 김회장. 그 무슨 막말이요!"
"막말로 보이십니까? 미국은 전부터 그렇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온 슈퍼파워입니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미국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그것도 거져해달라고 하는게 막말이 아니고요?"
그렇게 서로간의 언성이 높아지자, 김태충이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확실히 설득은 가능한가?"
"가능성의 여부를 물으신다면..."
그렇게 원 역사의 햇님정책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흐름을 놓고 생각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반반입니다. 다만..."
"다만?"
"판을 까는 것은. 75퍼센트까지 장담할 수 있겠군요."
"판을 깐다는 건 무슨 뜻인가?"
그 말에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클린턴을 만나 설득하기 전에 반 정도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설득은 직접 하셔야겠지만요."
내 말에 김태충 대통령이 반색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정도선이면 충분하네."
"그럼 이번 도로 현대화 사업은 제가 IT부문을 가져가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IT부분만일세. 토목은..."
"예. 압니다. 대현이 가져가겠죠. 곧 소 몰고 북한으로 가실 대현의 왕회장님께 드려야 할테니."
그 말에 김태충은 허허 웃더니 말을 이었다.
"거기까지 다 알고 있었다면 믿고 맡겨도 되겠군. 로비도, 도로 현대화 사업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봄세. 아, 대중문화개방은... 서비스로 주지."
마지막까지 자신이 빚을 지운다는 인상을 심어놓고 가려는 김태충의 발언에 나는 그의 정치적 수사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숙이고는 그저 감사의 인사만 남겼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