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대중문화개방 (2)
김태충의 비서실장을 빈 손으로 돌려보낸 나는 곧장 다시 방으로 올라와 민영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상대쪽에서 개념 없이 나와 준 덕분에 우리도 시간을 벌었으니 그 쪽에서 뭘 요구할 지 한 번 생각해보죠."
"예. 일단... 현 정권이 처음 들어설 당시 취임사라던가, 대선 당시 공약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치적쌓기는 대북 관련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북문제라...."
민영의 말에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기며 원 역사에서 김태충 대통령이 뭘 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일단 IT사업 쪽이야 미리 내가 진행을 시켜버렸고, 애초에 IT산업이 발전한 것도 원 역사에서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것이었는데... 죄다 먼저 내가 다 해먹었으니. 제외.
월드컵 유치도 대한민국 단독개최로 전 정권의 치적으로 끝나버렸으니, 거기서 눈에 띄는 짓을 할 리도 없고....
당연히 IMF에 손을 벌릴 일도 없으니 금리도 건드릴 이유가 없고... 원 역사대로 할 만한 건 대북문제와 문화사업밖에 없겠네.
그렇게 보면... 평양에서 공연하는 것에 더해... 월드컵 개막식에 힘과 돈을 써주는 정도가 되겠군.
거기에 더해 공식 홈페이지 정도? 전 정부에서 만든 홈페이지를 완전히 갈아엎고 싶을테니까.'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이미 바뀔대로 바뀌어버린 역사 속에서 어떤 큰 역할을 할 수 있을리는 만무했지만, 참고는 되었기에 나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김태충이 어떤 일을 할지 예측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분석을 하는 사이 민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로 룸 서비스를 주문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커피를 시켰으니 곧 올라올겁니다. 덤으로 케이크도요."
"야식은 좋지 않은데요."
"생각할 게 많아보이셔서요."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 다시 나는 생각을 민영은 내가 출발 전 지시했던 서류를 보고 익혔다.
그렇게 5분이 채 흐르기도 전에 도착한 커피를 받아온 민영은 서울시청이 내려다 보이는 창밖을 보고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다시 오는 것 같네요."
"누가요?"
"그 비서실장이요. 어쩌면 대통령 본인이 왔을 수도 있고요. 경찰까지 도로통제하면서 오는 걸 보면."
그렇게 민영이 가리킨 곳은 창밖 너머로 보이는 신호등과...
사이드카가 달린 경찰차였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네요. 대충 사과하고 뭉갠 다음 다시 불러도 갔을텐데."
그렇게 대한문 앞을 지나 자연스럽게 호텔로 들어서는 차들을 보며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민영에게 말을 이었다.
"좀 치우죠. 아무래도 여기로 밀고 들어올 것 같으니."
"예."
그렇게 민영과 함께 보던 서류와 커피를 내실로 옮기던 나는...
"앗."
슬쩍 민영과 손이 닿은 것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뚜르르르르
호텔 객실 내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당황한 내가 전화기 쪽을 바라보자 민영이 전화기로 다가가 전화를 받더니 말을 이었다.
"대통령께서 올라가도 괜찮겠냐고 하시네요."
"그러라고 하세요."
그렇게 민영이 답하고 전화를 끊는 사이, 나는 슬쩍 아까 치우다 만 커피잔을 마저 내실로 옮겨놓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중요한 순간에도, 쓸 데 없이 의식이나 하고 있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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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김태충 대통령과의 만남을 준비하던 무렵.
하객으로 온 주요 인사들 역시 바뀐 호텔의 공기를 느끼고는 슬쩍 자신의 수행원에게 상황을 일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이 호텔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태충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호텔의 바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부터, 각자의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까지 몹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왔다고? 대체 왜?"
"김회장을 만나러 온 건가?"
"하객으로 온 건 아닐테고..."
물론 그런 소란 중에도 딱히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아 대통령을 만날 이유가 없는 이들의 경우 그저 '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왔다라...."
손의정처럼 어떻게든 사내 권력을 확대해 종국에는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야망가들이나,
"하핫. 대통령이 왔다고? 그럼 또 가줘야지. 나도 엄연히 KTJC의 주인 중 하나인데."
조던 오브라이언처럼 KTJC내에서의 입지를 좀 더 다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어떻게 잡아서 이용할지를 궁리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캐치하고 재빠르게 나선 이가 있었으니...
"우선 미나모토군. 자네는 오오와다 사장 룸으로 가서 빨리 상황을 알리고, 미네기시양은 김태준 회장님께 가서 대통령님이 도착했다고 전해주게."
""예.""
바로 타케미치였다.
정치인의 비서로 생활한 지도 꽤 된 타케미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자신의 수하들을 이용해 김태준과 오오와다에게 상황을 알리고,
"안녕하십니까. 김태충 대통령님. 일전에는 먼 발치에서 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일본 자민당 소속 타케미치 노시히코 간사장 비서역입니다."
명함을 이용해 재빠르게 다른 이들이 만나기 전에 대통령을 만나 날파리들이 꼬이는 것을 차단함과 동시에...
"오... 간사장 비서역이라면. 타케시타 선생의 제자인가?"
"예. 맞습니다."
"만나서 반갑네만 여긴 어떻게..."
"제 친우이자 전 직장동료인 오오와다 사장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것이었는데 이렇게 귀인을 만나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음...? 오오와다 사장이라면. 김태준 회장 밑에서 일하는?"
"지금은 아니지만, 저 역시 오오와다 사장과 함께 KTJC의 초기 창립 멤버 중 하나이자, 초대 김태준 회장의 비서로 활동했으니까요."
"오. 그런가."
은근히 자신을 어필하며 김태충을 자연스럽게 김태준에게로 안내했다.
"김태준 회장님을 만나뵈러 오신 것이라면 제가 안내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아니, 자네도 함께 가지. 일본에도 아마 이로운 일이 될테니까. 타케시타 선생께 은밀히 전달하기도 좋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타케미치의 수완에 뒤늦게 움직인 다른 이들이 허탕을 친 그 무렵.
앤과 함께 첫날밤을 보내고 홀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술을 마시며 남은 일을 하던 오오와다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앤을 깨웠다.
"앤."
"으음..."
"지금 대통령이 회장님을 만나뵈러 왔답니다. 타케미치의 비서가 여기까지 와서 전달한 사항이니 확실합니다."
"음?!"
그 말에 앤이 놀라 잠에서 깨자 오오와다는 빠르게 옷장에서 앤의 수트를 꺼내 건네고는 말을 이었다.
"술 냄새는 일단 향수로 지우고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준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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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곧바로 이리 온 겁니까?"
"그래도 오길 다행이죠. 지금 들었지만, 그 쪽에서 UEP사장의 동석을 요구했었다면서요?"
"그야 그랬지만... 이거 참..."
그렇게 내가 황급히 수트를 차려입고 올라온 두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하자, 민영이 앤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기. 그 쪽에서 요청할 법한 내용을 정리한 거예요. 앤. 어차피 우리는 전부 들러리나 서는 입장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알아두세요."
민영의 말에 앤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윙크를 하고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마워. 민영."
그 모습에 나는 둘 사이에 뭔가 있음을 눈치챘지만...
-띵동.
"회장님. 타케미치입니다. 김태충 대통령님 모셔왔습니다."
곧 이어 들이닥친 김태충 덕분에 그런 의문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민영이 문을 열자.
"오랜만일세. 김태준 회장. 회의 중이었나보군.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김태충이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게 다가와 악수하고는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명백히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언어적 표현이었지만...
"아닙니다. 오신다기에 불러모았습니다. 여기는 제 비서이자 KTJC-K의 사장인 최민영 사장.
그리고 여기는 KTJC-J와 KTJC-T, KTJC-V의 사장대행인 오오와다 타이조 사장.
그리고 이쪽은 UEP의 사장을 맡고 있는 앤 오브라이언 사장입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여기 모인 이들을 소개했다.
"아. 자네가 오오와다 군이군. 결혼 축하하네. 내 미리 알았다면 화환이라도 보내는 건데. 자네 부인 되는 사람이 복이 참 많은가보군. 자네 같이 능력있는 이를 남편으로 두게 되었으니."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UEP사장인 앤 오브라이언이 제 내자되는 사람입니다."
그 말에 김태충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하핫... 이거 사내연애였나? 김회장. 자네 매파... 아니지, 이 경우에는 월하노인이라 해야하나. 여튼 인연 이어주는데에도 재주가 있는 모양이군."
우스개소리를 날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상석에 김태충이. 그리고 그 마주보는 자리에 내가 양 옆으로 KTJC의 사장단과 청와대의 비서실장과 문화관광부 장관 심낙훈이 나란히 앉았다.
"우선은... 내 비서실장의 무례부터 사과하겠네. 내 본의는 아니었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제 사람들이 늘어나 충성경쟁이랍시고 과잉경쟁을 하다 사고를 치는 이들이 종종 있어 잘 알고 있습니다."
"좋게 넘어가 주니 고맙네. 그래. 내가 늦게 도착해서 국수도 못 얻어 먹었네만... 오오와다군과 오브라이언 양도 축하하네."
그렇게 다시 한 번 의례적인 이야기를 한 김태충은 이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내 자네를 보자고 한 것은. 나랏일 하는데 자네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일세."
"어떤 도움을 원하십니까?"
"우선은.... 뭐니뭐니해도 치적문제지. 당 지지율은 밑바닥인데, 내 지지율만 따로 놀아 당선이 되다보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뭘 할라 치면 여소야대 정국이라 국회에서 막아서고... 무엇보다 김정필이 그 친구를 국무총리를 시키려 했더니 야당에서 들고 일어나서 서리로 5개월이나 넘게 있기도 하고 말이지."
신세한탄의 가까운 김태충의 말.
그 말에 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내며 말을 이었다.
"야당을 제가 무슨 수로 설득하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나도 그걸 바라는 건 아닐세. 다만... 김응삼이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민중의 정부와도 같이 손잡고 걸어가는 건 어떤가 하고 제안하러 온게야."
그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언제는 적대했나요. 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기업도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서로 협조하고 주고 받을게 있으면 좋지 않나."
"어떤 것을 주시렵니까?"
내 당돌한 말에 비서실장의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졌지만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김태충만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태도에 김태충은 씩 웃으며 앤과 타케미치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기 오브라이언 사장이 계속 언론을 통해 말하던 '대중문화개방'은 어떤가? 물론 미국 문화야 이미 사실상 열려있는 거니 핵심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되겠지만."
김태충의 예상대로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감사한 이야기입니다만... 아직 뭘 원하시는 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바라는 것이야 많지만... 우선은 미국 로비를 좀 부탁하고 싶네."
"미국 로비... 말씀이십니가?"
"그렇네. 대북 정책 관련해서 미 상하원을 좀 설득해주게. 아. 이건 타케미치 군. 자네도 가서 전해주게.
내가 먼저 선물을 쥐어 주었으니 타케시타 선생도 잘 협조해주시겠지. 그럼 자네는 이만 나가봐도 좋네. 조만간 다시 보지. 자네는."
예상외의 요구와 함께 타케미치에게 내려진 축객령을 보며 나는 타케미치가 자리를 비울때까지 기다렸다가...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를 신호삼아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좀 더 큰 걸 올려놓으시죠."
"부족한가?"
"예. 수지타산이 안 맞을 정도로 부족합니다."
"그럼 자네가 타산을 내보지 그러나."
그 말에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근 도로 현대화 사업을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현대화 사업에서 IT부문 쪽을 저한테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