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회수 (2)
오오와다와 앤의 결혼식은 그 위치 부터가 남달랐다.
"서울... 에서 하시겠다고요? 두 분 다?"
"예."
"왜죠?"
서울에서 식을 치르겠다는 두 사람의 발언에 대한 태준의 정당한 물음에
오오와다는...
"제 가문은 사실상 KTJC아닙니까. 당연히 가문간의 결합인 만큼 가주가 있는 한국에서 치러야지요."
얼핏 들으면 충성맹세처럼 들리는 이유를 들었고,
앤은...
"한국에서 결혼하면 적어도 번잡하진 않잖아요. 미국에서 하면 죄다 우르르 몰려와서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걸요?"
그 성격 대로 편안한 예식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런 그들의 대답에 태준은 그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이유가 다는 아니겠지. 두 사람이라면 특히 더.'
그 이유를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오오와다의 경우, 대마도 어촌에서 태어나 자신의 실력으로 노무라 증권에 입사하여,
타케미치라는 인맥이 건네준 행운 덕에 미국의 유력집안인 오브라이언가의 데릴사위로 입적하게 되었으니,
구태여 한국과 일본 특유의 성공을 위한 아부가 아니더라도 태준이라는 거목이 드리우는 그늘 속이 절실할 터였으니까.
'설사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위해 일해줄 사람들이니.. 최대한 챙겨줘야겠지.'
오오와다가 말하진 않았어도 그런 오오와다의 속 마음을 모를리 없는 태준은 민영의 아버지의 사망당시 만든 직원복지 시스템을 풀가동하며 오오와다와 앤의 결혼식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 KTJC, 갑작스런 호텔 추가 인수의 배경은?
사내 복지를 위해 사들이거나 지은 기존의 비즈니스 호텔
(한국의 광역시들과 일본의 정령지정도시들, 미국 뉴욕, 태국 방콕, 베트남 하노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멤버쉽 비즈니스 호텔로 사원들에게만 개방중이었다.)
에 이어 추가로 앤과 오오와다의 결혼식을 위해 별도로 서울 시청 앞 특 1등급 호텔인 더 플러스 호텔을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내 복지팀 총 동원해서 예식 관련 업체 중에서 잘 나가는 업체 2위에서 3위까지 전부 인수하세요."
예식 전문 업체를 인수하고,
"어차피 앤도 UEP사장직을 겸직하고 있으니까, 연예인들이 많이 올겁니다. 그들에게도 초대장 날리시고요.
단 예식 자체는 비공개 진행이니까. KOTEC팀 동원해서 초대장 없는 사람은 전부 차단하세요.
아, 그리고 톰 불러서 오오와다와 앤의 예복 맞추시고.... 예물은... 드비어스에 의뢰해서 적당히 1억이 넘지 않는 선에서 세팅해서 두 사람에게 전달하시고요."
앤이 차마 신경쓰지 못한(어쩌면 번잡스러워 챙기지 않은) 엔터쪽 인사들까지 전부 챙겼다.
물론 그 와중에도 패션브랜드 홍보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태준은 뒤이어...
이러한 편애에 사내에서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나올리도 없지만),
"하객들 명단 쭉 올리세요. 하객들 교통편 관련해서 전부 제 사비로 지출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내 내규로 지정된 돈 이상의 지출은 전부 제 개인자금으로 사용하세요."
사내 내규 이상의 지출을 전부 태준 자신이 떠맡는 것으로 하면서
확실히 오오와다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바라던 대로 오오와다의 거대한 그늘이 되어주었다.
----
그렇게 태준이 파격에 파격을 이어가며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이 직접 케어하며,
앤과 오오와다의 결혼준비를 위해 엄청난 돈을 지출하던 그 무렵.
앤과 오오와다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 답지 않게...
"CM엔터에서 우리 M플래닛과 비슷한 포맷으로 SBC에서 새로운 음악프로그램을 런칭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당장 고소해야지! 표절이잖아!"
"그게... 참. 한국인으로서 이런 말씀 드리기 쉽진 않습니다만, 한국 방송계, 특히 예능 부문에서는 표절이 비일비재한지라..."
결혼식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일거리에 갈려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앤의 경우 원래 부터 집안 사업인 엔터사업의 수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던데다, 본진이 한국이었기에 일의 강도가 그나마 양반인 수준이었고,
오오와다의 경우...
"드러켄밀러가 퀀텀펀드로 돌아간 이후 우리 전략을 그대로 차용할 거란 건 예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호재를 놓친다는게 말이나 돼?!"
"죄송..."
"죄송이라고 말하기 전에 다음 전략이나 짜서 보고해. 끊어."
계속해서 국제전화로 몰려드는 보고를 들으며 관련 서류만을 보고 자신에게는 외방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그것도 이제는 자신의 연인이 된 앤의 사무실 한 구석에서 급하게 제작한 명패만 올려놓고 일을 해야 했기에 가히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앤. 두 사람 예복 문제로 톰이 직접 여기 왔는데... 앤 치수는 아무래도 제가 재야할 것 같아서 왔어요."
"아, 민영. 잠시만요.
일단 바로 고소하고, 언론 플레이 해. 포맷도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이라고. 사서 쓰면 더 싸다고. 알겠어?! 나가봐.
민영. 타이조가 가 있을 곳이 없어서 제 사무실을 지금 쓰고 있거든요. 우리 저 옆 방에 가서 재죠.
뭘 멀뚱히 서있어! 나가서 빨리 조치 안취하고!"
그렇게 민영과 자신의 부하직원을 번갈아가며 연신 말을 쏟아낸 앤은 민영과 함께 사장 실 옆 앤의 개인실에 들어와서야 제 페이스를 되찾고는 쓰게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쉽지 않네요. 휴가 한 번 내려고 온갖 일을 전부 당겨서 하려니."
"익숙해요. 회장님도 그러시니까. 뭐... 한가할때는 한 없이 한가하게 보내시는 분이지만요."
"하하. 역시.. 돈이 좋네요. 돈이 좋아."
"돈이 좋다기 보다는, 사람이 좋은 거죠. 회장님 주위에 유능한 인재들이 붙어있으니까."
그렇게 약간의 잡담을 하며 숨을 고른 앤은 수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았고,
속옷차림이 되어가는 앤을 본 민영은 자연스럽게 톰으로 부터 받은 줄자를 들고 와 앤의 몸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90.... 60.. 82.."
그렇게 앤의 몸 사이즈를 재고는 수첩에 기입하던 그때, 앤이 슬쩍 민영에게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요새도 목석처럼 지내요? 태준은?"
"...그게 무슨."
"아직도 눈길 한 번 안주냐는 말이예요."
"회장님은 모든 직원분들을 다 지켜보고 계시죠."
"그 말이 아닌거 잘 알면서 그러네."
그렇게 앤이 씩 웃으며 민영을 빤히 쳐다보자, 민영이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선 부족한 게 없으신 분이니잖아요. 인품도 실력도. 하다못해 재력도."
"그야... 그렇죠?"
"그러니 당연히 회장님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을 겁니다. 마음에 드는 사원은 있을지라도."
"설마 포기?"
그 말에 민영은 촥 소리를 내며 줄자를 집어넣고는 말을이었다.
"예복은 이번 주 중으로 톰을 통해서 전달될 거예요. 앤."
"포기 안했구나?"
앤의 짖궂은 말에 민영은 그저 웃음으로 화답하고는 앤에게 옷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입으세요. 다시 일하러 가셔야죠."
"진짜. 속 시원하게 말하는 법이 없네. 민영은."
"회장님 비서니까요. 두 분 사장님께 기대하는 것도 같죠."
"이런거 보면 또 참 잘 맞는데 말이야."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민영이 물러나자 앤은 옷을 입으며 물러나는 민영을 보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거 참. 저렇게 보고만 있어서는 계속 그 자리 그대로일텐데..."
----
그렇게 태준의 돈과 태준의 조직의 힘으로 서울에서 준비된 결혼식은 가히 왕실 결혼식에 비견될 정도로 화려하게 진행이 되었다.
"김회장."
"오셨습니까? 조던.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술 마시고 한숨 자면 금방인데. 그나저나, 내 딸 결혼하는데 거 돈 많이 썼더군."
"당연히 해야지요. 결혼 선물 겸 해서 한 건데."
"그래도 양심은 있군. 대체 어떤 미친 회사가 사원 결혼 전날까지 부려먹나?
그렇게 부려먹었으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이 정도급으로 해주는 거니까 자네가 욕 안먹은거지, 만약 어설프게 해줬으면 저 중국놈들이 말하는 '만악의 자본가'가 자네가 될 뻔했어."
"하하. 사원이 아니라 사장이라서 부려먹은 겁니다. 두 사람 다 KTJC의 보딩멤버이기도 하고요."
"보딩멤버라고 하니까... 이번 배당금 보고 깜짝 놀랐네. 대박이 났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겨우 9%로 이 정도일 줄이야. 복권 당첨된 줄 알았어."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조던을 시작으로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결혼식에서 태준은 본인이 신랑이 아님에도 연신 인사를 주고 받던 태준은 이내 하객석으로 가 민영과 함께 오오와다의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예쁘네요."
"앤이 말입니까?"
"전부요."
"들인 돈이 있으니까요."
민영의 말에 슬쩍 미소지은 태준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자, 민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결혼식도 이 정도로 해주시는 건가요?"
약간은 장난기가 묻어나는 물음.
그 물음에 태준은 똑같이 장난처럼 말을 받아쳤다.
"이 정도로 만족해 준다면 얼마든지 해 드리죠. 가진게 돈 뿐이라."
"전 이 정도 아니어도 만족할 것 같네요."
그 말에 태준이 문득 민영이 시선이 향한 곳을 보고는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민영씨는 아버지도 이제 안 계시는군.'
그렇게 태준이 잠시 침묵하자 민영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선 언제 결혼하실건가요?"
"상대가 있어야 하지요. 민영씨와는 달리 저는 칠칠치 못해서 일이랑 연애 병행 못합니다."
"소개는 많이 들어오시잖아요."
"전부 거절하지만요."
"일이랑 연애를 병행하지 못해서요?"
민영의 질문에 태준은
'전생에도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못했으니까. 자신이 없는 겁니다. 지켜줄 자신이.'
문득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 속 전생을 떠올리고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그렇게 다시 자신만이 기억하는 비밀을 자신만이 아는 마음 속 깊은 곳에 파묻으며
민영의 질문에 답한 태준은...
"저는 잘 하는데."
이내 이어지는 민영의 말과
"저는 일하면서 연애 잘 하고 있어요. 벌써 몇 년이나."
눈빛,
"참 다행이었죠.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표정,
"제 상사여서."
그리고 미소에
숨이 막힐 듯한 당혹감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설렘을 느끼며 할 말을 잃고는 그저 빤히 민영을 바라보았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내빈께 양가의 가족을 대신해 신랑 신부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선 힘찬 박수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화사하게 울려퍼지는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울려퍼지는 화려한 예식장에서.
민영이 태준에게 던진 폭탄 발언은
태준과 민영을 그들만의 어색한 세계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먼 발치에서 그 두 사람을 본 앤은...
'포기가 아니라 결심이었구나? 거 참. 내가 응원받아야 할 곳에서 내가 응원을 해줘야 하니... 참 못 된 여동생이라니까.'
태준에게 갈려나가며 어느새 친구이자 친한 동생이 된 민영을 먼 발치에서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