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93화 (93/200)

093. 남방정책 (5)

그렇게 짧게 걸려온 전화에 나는 급하게 대답을 해준 후 전화를 끊으며 말을 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아이다. 바쁜 놈 내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제. 그나저나 어디서 걸려온 전화고?"

"일본입니다. 전에 일본 자민당 쪽에 빚을 진게 있었거든요."

그 말에 김응삼 대통령은 슬쩍 눈알을 도르르 굴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진짜 니가 그런 거였나?"

"그런 거라니 어떤...."

"의뭉떨지 말고. 퍼뜩 말해라 이 놈아."

김응삼 대통령의 단호한 표정과 말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채권 만기 연장이라면... 예. 맞습니다. 대가로 태국에서의 채권 회수를 도와주는 일과 동남아 진출에서 한 자리 끼워주는 것을 대가로 주기로 했지요."

그 말에 김응삼 대통령이 탐탁찮은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정치권하고 연줄도 당연히 있어야겠지마는...."

"동남아 진출에 한 자리 끼워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니보다 일본 정치는 빠삭하다. 태충이만은 못하겠지만 서도. 자민당 아들이 굴리는 기업체나 몇 개 끼워서 자금 마련해주는 방식이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태준이 니다. 니."

"예?"

"일본에 우리나라가 빚을 지지 않게 된 것. 그것 만으로도 솔직히 나는 고맙제.

없는 살림에 쫀심마저 잃어삐면 남는 게 없으니까. 나라에서 일본에 아쉬운 소리 하는 것 보단 당연히 니가 아쉬운 소리 하는게 더 모양새도 좋고.

하지만, 그 빚을 니가 갚아야 하는거 아이가?"

"별 거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몸이 무거워진데이. 가랑비 옷 젖는다는 말이 왜 나오겠나?

이순신 장군이 그랬다 아이가.

왜인들은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꼬.

그 놈들이 니 돈을 보고 입 속 혀처럼 움직여주면서 내주는 사료나 받아처먹을 거라 생각지 말그래이.

니 편의 다 봐주고, 슬금슬금 그 편의에 익숙하게 네 몸을 적신 다음에 빠져나오지 못할 수렁에 쳐넣을 놈들이 그놈들이다."

그 말에 나는 문득 이미 한참이나 지나버린 전생 기억 속 한 남자를 떠올렸다.

'다이치산교'의 곤 샤를.

망해가는 다이치산교를 회생시킨 대단한 수완가이자

프랑스 정부 소유의 자동차 기업 르노의 CEO였던 그마저도

일본이 태워주는 비행기에 취해 일본에서 소위 '경영의 신'으로 생활하다

결국 역습을 받아 도쿄지검 1부의 망신주기 수사를 겪어야 했었다.

곤 샤를의 일화는

일본이라는 나라에게 있어 가이진(外人)은

언제든 잡아 먹어버릴 수 있는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그 어떠한 차별도 용인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설사 그 차별이 자유세계를 대표하는 원리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위배되더라도.

그렇게 한동안 일본에서 멀어져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린 나는 김응삼 대통령의 넓은 시야에 감탄해 마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마는. 그래도 내 어른이니 잔소리는 해야겠다 싶어서 말한기다."

그렇게 김응삼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친 나는 내실에서 나와 편안하게 민영과 김응삼 대통령 이렇게 셋이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와 곧바로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어떻게 되었습니까? 타케미치 변호사님."

타케미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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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의 지시를 받은 앤은 태준에게 들고간 보고서에 사인을 마저 하고는 바로 자신이 머무는 숙소(라곤 해도 태준이 어머니 호위를 위해 사놓은 빈 집 중 하나였다.)로 돌아와 결의를 다지며...

"말 나온김에 바로 움직여야지. 이미 실수 한 번 했으니까."

곧장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캐리어백에 필수적인 짐만 넣어가지고 나온 앤은 비서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태국으로 출장갈건데... 혹시 준비할 시간 필요해요?"

그 말에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앤이 김포공항으로 출발하려는 그때.

"조만간 간사장님하고 자리 마련하도록 하죠."

차에서 내리며 전화를 끊는 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가십니까?"

"곧바로 태국으로 가보려고요."

"벌써요?"

"예. 일단 미리 좀 둘러보고 시장 상황부터 좀 파악하려고요."

앤의 결기가 가득 찬 표정에 태준이 슬쩍 웃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좋아요. 앤이 먼저 가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또 누가 오나요?"

"예. 조만간 오오와다 사장이 태국으로 갈겁니다. 물론 지분 정리부터 마저 진행하고요."

태준의 말에 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오오와다 사장이라면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네요."

"글세요....? 오오와다 사장도 아마 가면 정신이 없을 겁니다. 시장 개척부터 해야할테니. 한 동안은 조사만 주구장창 할 겁니다."

"뭐... 그래도 필요할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조금은 더 낫겠죠."

"그야 그렇겠지만... 두 사람 다 타지에서 고생하겠죠."

태준이 겁주듯 툭하고 말에 앤이 슬쩍 불안한 눈빛으로 비서를 돌아보고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신고식 한 번 요란하게 치르겠네요."

"뭐... 저한테는 통상적인 업무지시지만... 오오와다나 여기 있는 민영씨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게스트로 우리와 함께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진짜 한 배를 탄 가족으로 함께 하는 거니까요."

그 말에 앤이 결의를 다지며 말을 이었다.

"명심할게요."

"좋은 데뷔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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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간을 돌려 태준이 김응삼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있던 시각.

일본 KTJC 사장실.

"그게 무슨 말이요?"

"말 그대로 입니다. 별개의 회사를 차려 그 회사를 통해 회장님을 제외한 주주들이 모여 통일된 의결권을 행사를 하던,

아니면 주주들끼리 서로 주식을 주고 받아 각지의 KTJC의 주식을 각자 모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고 질문을 드린겁니다."

타케미치의 도발적인 발언에 손의정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자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배신인가?'

그렇게 손의정이 혼란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사이 타케미치가 말을 이었다.

"당황하신 모양이군요."

"예... 뭐..."

"그렇게 당황하실 것도 없지 않습니까. 한 번쯤은 생각해보셨을텐데요."

그 말에 손의정이 손사레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뇨.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생각해보시죠. 어떻습니까?"

타케미치가 시간을 준다는 듯 여유롭게 앉아 소파 등받이에 본인의 등을 기대자 손의정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봐야 별 일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타케미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별 일이야 없겠지요. 회장님께선 여전히 50%의 지분을 가진 압도적인 대주주이시니까요."

"그런데 왜...."

그 말에 타케미치가 말을 이었다.

"영향력."

"예?"

"정계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새삼 알게된게 바로 '소유'보다 '지배'가 더 무섭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만약 회장님께서 소유하되 군림하지 않으시게 된다면, 그 영향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타케미치의 말에 손의정의 뇌는,

손의정의 의사와 관계없이 빠르게 그 이후의 상황을 망상하기 시작했다.

'.... 현재 사장으로 내가 있고.... 심지어 회사 요인 대부분이 내 사람들이지... 그렇다면...'

"회사를 온전히 소유하지 않고도 지배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 지배력으로... 뭘 할 수 있을지는 상상에 맡기죠."

그리고 그 망상에 힘을 실어주는 타케미치의 말까지 더해지자,

손의정은 순간 터져나오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런 손의정의 손을 본 타케미치가 씩 웃으며 왼쪽 가슴팍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이게 필요하신 모양입니다."

.

..

...

그렇게 손의정과의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선 타케미치는 가슴팍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오오와다를 통해 건네받은 비화폰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예. 회장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타케미치 변호사."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설득은 잘 되었습니다."

"서명도 받았나요?"

"예."

그렇게 타케미치의 대답이 이어지자 비화폰 수화기 너머의 태준이 말을 이었다.

"그 터무니 없는 계획에 용케 손사장이 속아넘어갔군요."

"저야 금융에 대해선 모르니... 다만 손사장도 본인이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회장님 지분이 50%인 이상 본인이 아무리 모아봐야 30%대 선이 한계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어떻게 설득을 시킨겁니까?"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소유보다는 지배. 이걸 노리라고요."

그 말에 태준이 박장대소를 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먹혔단 말입니까?"

"예. 소프트방코에 있는 손사장 라인쪽 사람들을 믿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말에 태준이 웃음기를 지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래봤자죠. 그런데도 그런 판단을 해서 용케 주식을 다시 샀다는건..."

"내심 받을지 말지를 고민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알겠습니다.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회장님 지신데요."

"조만간 간사장님하고 자리 마련하도록 하죠."

태준과 전화를 마친 오오와다는 다시 품 안에 비화폰을 넣고는 저 멀리 보이는 KTJC의 사옥을 보며 혼잣말을 내뱉고는...

"회장님의 새장 안에 또 다른 새가 잡혔군."

곧이어 다가오는 택시를 붙잡아 타고는 어디론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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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의 지시하에 앤이 동남아쪽 연예계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떠난지 1달이 지난 시점.

"어서오세요. 미스터 오오와다."

"오랜만입니다. 미스 오브라이언. 스치듯 뵙긴 했지만 이렇게 뵙는 건 또 처음이군요."

앤과는 다른 지시를 받은 오오와다가 KTJC-T의 사장으로 부임해오며 앤의 사업도, 오오와다의 시장개척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확실히 서양 문화권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문화라... 이 쪽에서도 기획사를 인수하는 방향이 낫겠어요. 새로 만들거나 우리쪽 연예인들 밀어 넣는 건 아직 시기상조로 보이네요."

"그럼... 그 부분까지 해서. 다음 정기 보고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광고 기획사 중에 마인드믹스라고 독특한 광고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도 있는데... 이것도 안에 포함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혹시 산업 부지는 알아보셨습니까?"

"아, 예. 여기서 알게된 현지 기획사 사장이 시라차시에 있는 공단을 하나 소개해줬어요. 이미 89년부터 사성전자 TV공장과 VTR공장이 들어와있다고 하더라구요."

"꽤 빠르게 진출했군요. 사성은."

"예. 거기 공단 소유주가 태국의 사하그룹이라는 복합기업인데 주로 외국의 기업들과 합작사를 세우고 공장을 돌리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앤이 발로 뛰고, 오오와다가 뒤에서 백업을 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던 그 때,

두 사람의 사무실이자 KTJC-T의 사장실로 전화가 울렸다.

"곧 제가 태국으로 갈테니... 그 동안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기안해서 올리세요."

태준이었다.

마치 숙제를 검사하는 선생님 같은 태준의 말에 오오와다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순방일정이 드디어 잡힌 겁니까?"

"예. 10월 중순으로 잡혔습니다. 한... 두 달 더 남았군요."

"알겠습니다. 동행하는 다른 그룹 총수들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오오와다가 호기롭게 말하며 전화를 끊자 앤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괜찮겠어요?"

"안 괜찮습니다만... 안 괜찮아도 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 지시인데."

오오와다의 말에 앤은...

'태준 주변에는 다 미친 사람들 밖에 없는 건가....? 전부 일 중독자들 뿐이네.'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밖으론 내지 못한채 굳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리며 쓰게 웃음지었다.

그렇게 태준의 동남아 진출 계획은

앤이 흘린 땀방울과 오오와다의 충성심을 먹고 서서히 커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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