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92화 (92/200)

092. 남방정책 (4)

"오늘은 빨리 왔군."

"마침 일이 다 끝난 시간에 연락을 주셔서요. 어머니도 뵐 겸 해서 서울에서 하루 자고 가려고 일찍 올라왔습니다."

누가 들으면 집안 어르신과의 대화 같은 말들을 주고 받은 나와 김응삼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내실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니, 와 전경련에 가입 안했노?"

"굳이 할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딱히 그 쪽에서 초대장을 보낸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가입할라 맘 먹었으면 못 할 것도 없었을텐데. 니 수성하고는 사이 괜찮다 아이가."

"거래처 중 하나일 뿐이죠. 시장경제체제에서 품목이 겹치는 회사끼리 마냥 사이가 좋을 수 있나요."

그 말에 김응삼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이었다.

"니 그 맘이 안변하길 바라마."

"예?"

"재벌들끼리 한 곳에 모여 쑥덕대모 하는 거라고는 지들끼리 담합하는 것 밖에 더 있겠나. 차라리 니 처럼 아예 따로 나와서 제 할 일 다 하는 기 니한테도 나라에도 도움이 될 끼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조언 감사히 받겠습니다."

"니가 조언이 필요한 놈도 아인데, 조언은 무신 조언. 차라리 이건 부탁이지."

"부탁... 말씀이십니까."

"와 또 순진한 척 당황한 척 하고 있노. 니캉 내캉 다 알만큼 아는 사인데.

니가 전경련 들어가서 재벌 놈들하고 쿵짝 맞아 다 해처먹기 시작하모 나라가 무슨 꼴이 날지 뻔 한 거 아이가?

통신에 그 포탈인지 뭔지에, 거기다 니 요새 연예인들 데려다가 뭐 하는 거 아이가? 심지어 그것들 전부 니가 가진 회사에서 나온 컴퓨터로 다 하는기고."

그 말에 나는 새삼 김응삼 대통령의 젊은 안목에 놀라며 말을 이었다.

"꽤나 상세히 아시는 군요."

"하모. 젊은 경제인 중에 니만치 위험하고 대단한 놈이 없는데 나라살림 굴리려면 잘 알아야지."

"그러면 안심하셔도 좋다는 것도 아실텐데요."

"내 니를 못 믿어가 그라는 기 아이고..."

"아뇨. 제 사업 영역상 저는 카르텔을 만들 수 없다는 겁니다."

"... 그게 무슨 말이고?"

"통신부터 포탈까지 전부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지요.

다행히 빠르게 움직여 사업에 착수한 덕분에 포탈의 국내 점유율은 물론이고 세계 점유율도 1위를 달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PC보급이 진행중인 만큼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지요.

설사 안심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구태여 카르텔 만들어가며 후발주자들을 띄워줄 이유도 없고요.

자연히... 저로서는 전경련에 들어갈 이유도, 뒤에서 카르텔을 만들 이유도 없다는 것이 되지요."

그 말에 김응삼이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내 잘 못 생각한게 맞는 것 같다."

"예... 그러니..."

"니가 그럼 그렇지.... 니 성격에 카르텔을 만들리가 있나? 전부 니 손에 쥐고 장악하면 장악했지."

왠지 모를 불편한 말에 나는 씩 마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설마요. 제가 무슨 수로 전부 장악한다는 말입니까?"

"애써 니 욕심을 숨길 필요 읎다. 그걸 나쁘다 카는게 아니니까.

세금만 지금처럼 잘 내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기만 하모 그걸 나쁘다 칼 수 있겠나?

글로벌 사회라 카지 않나?

시장이 한국에만 있는게 아이고, 한국 기업하고만 경쟁하는게 아인데, 기왕에 독점하는 거라면 한국에 세금 착실히 내고 번듯하게 사업 잘하는 네가 크는 기 좋다 생각한다.

다른 대기업들 마냥 하라는 경쟁은 안하고 지들끼리 붙어먹는 것 보다야 백배 낫겠지."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신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내 니 부른건 다른게 아이고, 니 한테 두 가지 선물을 줄라꼬 이리 불렀다."

"하나는 동남아 순방 관련일 것이고... 또 하나는 뭡니까?"

내 질문에 김응삼 대통령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니도 하여간 귀신이다. 뭔 말도 듣기 전에 김을 확 빼버리노?"

"하하. 죄송합니다."

"그래 니 말대로 하나는 이번 아세안 7개국 순방에 니도 경제인 자격으로 참석하라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니 한테 나도 훈장이나 하나 줄라칸다."

"예?"

"뭐 별건 아이고. 금탑 산업 훈장이다. 아세안 7개국 순방에 오는 재벌 놈들 죄다 정두황이나 노대호한테 돈 줘가 공식행사자리에 금탑 산업훈장 하나씩 차고 나타날낀데.

니도 뭐 하나 빠지면 안되지 않겠나? 물론 니야 실적도 쌓았고, 또 한국 시장에 혁신도 가져왔으니 진짜배기지마는... 다른 재벌 놈들은 그런 거 생각 안하거든.

거기다 니가 찰 훈장이라봐야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인데... 그게 수훈등급이 좀 낮거든.

전통적인 재벌들이 지 똥 묻은 것도 모르고 니 무시할꺼 생각하모 내 배알이 꼴려가 주는 거니까. 거부할 생각 말고 감사히 받아."

퉁명스러운 김응삼의 말과는 달리 기특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느낀 나는 그의 말에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주시면 감사히 받긴 받겠습니다만... 뭐 또 없습니까?"

"...이놈이? 남들은 하나도 받기 힘든 훈장을 두 개나 가지게 되었으면서 무슨 욕심을 또 부리고 있나?"

"훈장 두 개 아닌데요?"

"뭐?"

"대한적십자사에 회원유공장 최고명예대장도 있고... 헌혈 유공장도 금장으로..."

"이놈이? 나를 놀려? 그건 훈장이 아니라 그냥 일반 상장이 아니냐. 나라에서 주는 상이랑 그런 걸 동급으로 여기면 쓰나."

"뜻은 오히려 그게 더 좋지 않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그야 그렇다만, 그래도 급이 다르지 급이. 정 다른 훈장도 받고 싶으면 능력껏 따가던가.

체육 훈장 같은건 무리라도 사립학교 세워서 국민훈장을 받을 수도 있을테고, 거기서 실제로 일하면서 근정훈장을 챙길 수도 있겠지.

아니모 생긴 것도 괜찮겠다, 니 지금 하고 있는 연예계 사업도 잘 되고 있겠다 문화훈장을 노려볼 수도 있겠지."

살짝 떨어본 너스레에 됫박이 아닌 한 말을 끼얹으며 받아치는 김응삼 대통령의 말에 나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입니다. 철 쪼가리 받는다고 그게 득되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정치할 것도 아닌데 그런거 받아다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래도 은근히 쓸데가 많을끼다. 특히 태준이 니가 번 돈이 만만찮은 만큼 이제는 어지간한 외국 원수들은 다 너부터 보자고 할낀데...

공식적인 자리에 훈장 한 두개 달고 가면 나름 격도 살고 말이지. 군인과 정치인들이 그 철쪼가리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다 거기에 있는 법이다."

그렇게 김응삼 대통령의 가르침을 받은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건 제가 잘해서 주시는 상이니 따로 보답을 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하하. 그래."

"이번 해외 순방에 전경련의 불만에도 끼워주시는 만큼 저도 보답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내가 말을 끌며 미리 민영이 내실로 들어가기 전 내게 건네준 서류봉투를 김응삼 대통령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거면 선물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내가 건넨 서류봉투를 열어 서류를 살펴본 김응삼 대통령이 놀란 눈으로 말을 이었다.

"... 허허... 역시 니가 내 맘을 잘 아는구나. 이거면 충분하냐꼬?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이 놈아!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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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김응삼 대통령과 대담을 나누던 그 시각.

KTJC-J의 사장이 된 손의정은 오오와다가 보낸 한 통의 서류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스톡옵션이라... KTJC 5개사의 지분 3%를 이 가격에 내게 팔겠다라... 분명 이득은 이득인데..."

손의정이 생각에 잠겨있던 이유.

그것은 태준이 제안한 이 스톡옵션에 담긴 의도를 누구보다 손 쉽게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어떻게든 여기 묶어두려는 생각일텐데.... 말이지. 자꾸 손이 가는 군."

그렇게 태준의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태준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태준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을 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음에도,

손의정의 마음이 자꾸 이 서류의 제안이 기우는 이유는...

"내 생각과 이상을 전부 구현하고 있는 회장님 밑에서 일할 것인가... 아니면 후발 주자로 내 생각과 이상을 스스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군."

태준이 말 그대로 자신이 상상만 하던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동일한 오너 아래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거대한 기업 집합체.'

그것이 바로 손의정이 꿈꾸던 투자자의 모습이었고,

태준이 구현한 기업 생태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태계의 주인은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지금.

손의정의 마음은 갈팡질팡.

잔 바람에도 일렁이는 갈대처럼 쉴 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손의정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며 사무실에 앉아있던 그 때.

"사장님. 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소프트방코 시절부터 지금의 KTJC-J의 사장까지 자신을 곁에서 모신 비서의 말에 손의정은 모든 상념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누굽니까?"

"자민당의 타케미치 노시히코 간사장 비서라고 하면 아실 것이라고..."

'자민당...? 타케미치? 설마... 그 타케미치인가?'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 손의정이 타케미치를 안으로 들이자 어느새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아 중후한 인상을 가지게 된 타케미치가 전처럼 꾸벅 인사하며 손의정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손사장님."

"타케미치 변호사님. 오랜만이군요. 아, 이제는 비서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편하신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변호사 자격은 아직 유지중이라 뭐라 불러도 맞는 말이니까요."

그 말과 함께 타케미치가 자리에 앉고는 자연스럽게 손의정에게 말을 이었다.

"언젠가 회장님과 한 배를 타실거라고는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좌석이 의외로군요."

"하하... 그렇습니까?"

"예. 저는 제 자리를 대신하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회장님도 손 사장님을 상당히 좋아하셨고 말이죠."

그 말에 손의정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해서. 오늘은 어쩐일로..."

"일전 금융위기때 회장님의 부탁으로 일본의 국채를 회수하지 않고 만기 연장을 해준 사안에 대한 대가를 받아오라셔서요."

"예?"

당황하는 손의정 사장의 모습에 타케미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막 부임하셨으니 모르시겠군요. 필요하시다면 회장님께 전화를 드려도 좋습니다."

"예... 아, 그 전에 대가로 받기로 한 것에 대해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희 쪽은 대놓고 말하는 법이 없어서요. 회장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아갈 뿐이죠. 실제로 회장님께서 주신 것들은 하나같이 만족스럽기도 했구요.

아, 물론 제 입장에서가 아니라, 제가 모시는 타케시타 노보루 간사장의 입장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손의정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그렇게 손의정이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어 태준에게 묻자 태준은 이에 대해 가볍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고,

"이번에 동남아 쪽에 투자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낄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고 하세요."

대답을 들은 손의정이 타케미치에게 이를 전하자 타케미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간사장께서 좋아하시겠군요.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타케미치의 대답.

그리고 이어진 침묵과 정적에 손의정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그 때, 타케미치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공무는... 여기까지고. 지금부터는 사적인 일입니다만..."

"예. 말씀하시죠."

"손사장님께서도 이번에 주식에 대한 제안을 받으셨겠지요?"

"그걸... 설마."

"예. 저도 받았습니다. 물론 저야 당연히 회장님께서 챙겨주시는 것이니 만큼 받았습니다만... 손사장님께서는 아직이더군요."

그 말에 손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오오와다 사장을 통해 들으신 모양이군요."

"예. 결정하시는게 어려우신 것 같아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이번 일을 핑계삼아 말이죠."

그 말에 손의정이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오오와다 사장이 꼭 제가 주주가 되어야 한다고 그럽니까?"

"아뇨. 그럴리가요. 오오와다 사장의 속내라고 한다면이야 외려 손사장님께서 안받기를 바라겠죠.

공신들에 대한 포상조로 내려진 주식인데... 이제 막 합류한 손사장님께 가는 게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 말에 손의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회장님의 뜻이니 따를 뿐인거지요. 해서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조언... 말씀이십니까?"

"예. 저도 일단은 외부자이면서 주식을 받은 입장이니까요."

그 말에 손의정이 침을 꿀꺽 삼키자 타케미치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주식제안. 무조건 받아들이세요. 그게 손 사장님께도 이득일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손의정의 의문이 채 완성되지 못한 채 입에서 흘러나오자 타케미치가 그에 대한 답을 내려주었다.

"이 주식은 양도 제한도 없으니까요. 만약 주식을 받은 주요 공신들끼리 각자의 근거지에서 이 KTJC 주식을 공유한다면?

거기에 이번에 낀 오브라이언 가문까지 합세해서 주식을 공유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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