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동아시아 금융위기 (4)
"그게 무슨 소리냐."
태준이 돈으로 퀀텀펀드를 막아서고 있던 그 무렵.
앤은 미국으로 급히 건너와 자신의 아버지인 조던 오브라이언에게 보고를 하며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판권을 가진 음악, 뮤직비디오 들을 전부 유니버스넷에 독점 공급하기 위해 UEP와 합병을...."
"네가 UEP사장이 된 것은 알고 있다. 꽤 잘 해 준 모양이더구나."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태준을 '꼬셔내진' 못했지만요."
"그래. 그건 그럴 수 있지. 사람 마음이니.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느냐."
"예?"
조던의 말에 앤이 당황하며 되묻자 조던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태준의 신임을 얻어 UEP의 사장이 된 것. 그래. 그건 좋은 일이다. 분명 좋은 일이지. 네가 태준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게 무슨."
"넌 오브라이언 가문의 사람이고, 오브라이언 가문의 후계자다. 그런 네가 UEP에 우리 집안의 부의 원천을 전부 쳐넣으려고 하고있는데... 그걸 내가 좋게 볼 수 있을 성 싶으냐?"
그 말에 앤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버지. 유니버스넷과 합병하면 그만큼 엄청난 돈을....!"
"돈이 문제가 아니다."
"예? 방금 전까지는 부의 원천이라고 하셨..."
그 말에 조던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영향력. 영향력을 잃게 된다 이 말이다."
"그게 무슨...."
"쇼 비즈니스라고 해 봐야 그거 얼마 안되는 푼돈이지.... 그럼에도 우리 가문이 구태여 쇼 비즈니스를 왜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적은 있느냐?
돈이 영향력을 줄 것 같으면 차라리 남미놈들하고 손 잡아서 마약이나 만들어 팔면 될텐데 말이야."
그 말에 앤이 정면으로 반박하듯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 영향력이라면 이미 끝났어요. 산업 자체가 태준이 만든 유니버스넷 속에 먹힐테니까요.
그럴 바에는 그 알량한 영향력이라도 일부 유지하고 싶으면 합병해서 어떻게든 태준과 함께 가야해요!"
"산업 자체가 태준의 손에 들어간다? 그럴리가. 그건 불가능해! 그 알량한 컴퓨터가 TV보다 많기를 하냐, 아니면 라디오 보다 많기를 하냐.
네 말대로 되려거든 TV도, 라디오도 전부 컴퓨터 하나로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차에도 설치가 가능해야하는데다 그 인터넷이라는 것을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이나 하다고 보는게냐."
그 말에 앤은 인상을 쓰고는 옆을 홱 돌아보며 시립한 조던의 비서에게 말을 이었다.
"여기 인터넷 연결 되어있죠?"
"예."
"컴퓨터랑 인터넷 선 연결해서 지금 여기로 가져오세요."
그 말에 조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됐다. 내 직접 가마."
그렇게 컴퓨터와 인터넷이 설치된 방으로 이동한 앤과 조던.
앤은 그곳에 놓인 DELL컴퓨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 컴퓨터가 너무 오래됬네요."
"... 이게? 작년에 산건데?"
앤의 말에 조던이 의아하다는 말을 건네자, 앤이 말을 이었다.
"그만큼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걸 주도하는 곳이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한국의 대전이고요.
이걸 보니 더더욱 제 말에 확신이 생기네요. 겨우 6개월된 컴퓨터가 1년된 유니버스 컴퓨터 만도 못하다니."
물론 그것은 앤의 착각이기는 했다.
일반용으로 판매되는 PC와는 달리 태준의 계열사에 납품되어 들어가는 PC들은 우선 성능부터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으며,
그 마저도 리소스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서버를 통해 중앙 통제되어 늘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었던데다,
주기적으로 QULAB 직속 직원들의 애프터케어까지 받는 환경이었기에 뛰어난 것은 당연했지만,
일반 사용자인 앤 입장에서는 당장 느린 DELL컴퓨터와 빠른 유니버스 컴퓨터만을 보고 비교하다보니 이런 불평이 나온것이었다.
물론 이런 착각을 정정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보니 그저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 듣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앤의 불평에 어깨를 으쓱하던 조던을 뒤에 두고 한참동안 느릿한 반응속도를 견뎌가며 인터넷에 접속한 앤은 곧바로 유니버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최근에 있었던 M플래닛과 D플래닛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조던에게 보여주었다.
"... 이게 무슨... 이게 한국 쇼 프로그램이냐?"
"한국에서도 독창적이라고 난리예요. 여기에 만약에 우리 쪽 스타들을 얹을 수 있다면? 아버지가 지금 말씀하시는 영향력이라는 것은 훨씬 더 많이 늘어나겠지요.
실제로 이렇게. 영어 자막까지 달아서 이미 해외에 제한 없이 송출까지 하고 있기도 하고요."
".... 하지만 이 플랫폼을 UEP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뭐하러 합병까지... 차라리 UEP 사장직을 겸임하는 네가 주도해서 유니버스넷과 계약을 하면..."
"합병을 해서 한 가족이 되어야 최고의 대우를 받을 테니까요. 성공의 과실도 나눠 먹고."
"대신 실패의 책임도 함께 지겠지."
그 말에 앤이 고개를 갸웃거며 말을 이었다.
"태준과 함께하는데 실패를 책임질 일이 있던가요?"
"... 미국으로 건너와 이야기를 못들은 모양이군. 존. 보고서 가져오게."
조던의 말에 비서 존이 보고서를 가지러 가려던 그때 앤이 손으로 그를 막아서고는 말을 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찾아보면 되니까. 대체 무슨...."
그렇게 앤이 검색창에 태준을 검색하자....
"... 오우...이런."
- 김태준 회장, 패배선언. 예상보다 헤지펀드들의 힘은 강했다.
태준의 패배소식을 다룬 신문기사가 CRT모니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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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말씀하신대로 일단 급하게 자금 회수했습니다. 급하게 회수하다 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은행들의 반발도 컸지만, 어찌 되었든 회수율 70%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지시하신대로..."
비서실장의 말에 김응삼은 손을 들어 비서실장의 입을 막고는 어색한 손놀림을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좌굴식 키보드의 털컹거리는 금속음이 불규칙하게, 그리고 듬성듬성 울렸지만, 김응삼 대통령은 이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키보드를 친 김응삼 대통령이 키보드를 다 치고 어색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속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에 커서를 가져다 대고 왼쪽 버튼을 누르자.
"저는 패배했습니다. 헤지펀드들은 강했고. 저는 약했습니다. "
라는 말과 함께 태준의 음성이 컴퓨터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통령님..."
"쉿."
그렇게 비서실장의 이어진 보고마저 막고 태준의 브리핑을 다 들은 김응삼 대통령은 그제야 비서실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서."
"예. 만기가 도래하는 일본 쪽 자금은 일단은 채권 자동 연장 신청을 하게끔 조치해둔 상태입니다."
"해주겠다나?"
"일본 쪽에서는 안해주려고 했는데... 자민당쪽 인사가 힘을 써줬다며 갑자기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자민당? 일본 자민당?"
"예. 해서 안기부 해외팀에 자민당쪽 인사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봤는데...."
그렇게 말을 멈칫한 비서실장이 손에 쥐고 있던 파일 하나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타케미치 노시히코. 이 자의 힘이 컸답니다."
"임마가 누군데?"
"김태준 회장이 일본에 있을때 비서로 두었던 인물인데... 지금은 다케시타 노보루 자민당 간사장의 비서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김응삼이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씨익
하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는,
"으하하하핫....! 하하하하핫...!"
느닷없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실성한 사람처럼 폭소하는 김응삼을 본 비서실장이 살짝 주춤거리며 한발짝 뒤로 물러나자, 김응삼이 손가락질 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비서실장아. 니는 당장 가서 태준이 불러온나. 아, 가기 전에 만찬 준비도 해주고."
"뭘..."
"뭐긴 뭐겠어! 잘했으니 상을 줘야지. 뒤에서 욕 들어먹을거 알면서도 나라를 구해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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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영상을 올리고 한 시간 동안 나는 가만히 침묵속에서 민영도 들이지 않은채 홀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시점.
내가 요청한 대로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정리해 가져온 민영이 내 앞에 조심스럽게 댓글들이 담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요."
약간은 침울해진 민영의 목소리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며 서류를 보기전 민영에게 물었다.
"민영씨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죠?"
"올해 서른하나네요."
그 말에 나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서른 하나라... 연애는 해요?"
"나름대로 하고 있어요."
그 말에 나는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결혼할때 말해요. 아버님.. 회사를 제가 받았으니, 아버님 몫도 해드릴게요."
"오늘따라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민영의 말에 나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내 말 때문에 죽는 사람이 나왔을지도 모르니까요. 우리나라 사람중에."
"... 1편 영상때문에 말인가요?"
"예. 물론 할만큼 하고 바로 포지션 바꾸겠다 선언하고 급하게 영상을 찍었지만, 그 틈에 얼마만큼의 돈이 바트화로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마 피해를 본 사람들도 적진 않겠죠."
내 말에 민영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슬쩍 내 앞 책상 모퉁이를 돌아내게 다가오고는 내 떨리는 손을 꼭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는 않을거예요. 다들 회장님 뜻 이해하고 있을테니까요."
그렇게 묘한 분위기 속에서 내가 민영의 위로를 받던 그 순간.
-따르르릉.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그리고 분위기를 깨는 전화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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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알겠습니다. 곧 내려가죠. 민영씨, 상황실 받아서 해주세요. 전략은 제 책상 두번째 서랍 안에 넣어뒀습니다. 파운드 화때 해봤으니 어떤 원리인지는 알죠?"
"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그렇게 태준이 전화를 받고 다급히 겉옷을 챙겨입고는 뒤 따라 나서는 외근비서와 함께 사라지자, 민영이 피식 웃고는 혼잣말을 하며 아까 태준에게 준 서류를 들어보이고는 말했다.
"... 거참. 이상한 데서 겁이 많다니까. 이렇게나 반응이 좋은데."
그렇게 민영이 툭하고 검지로 친 서류에는....
- 어쩔 수 없지. 사람이 매번 성공할 수 있나. 지난번 파운드화 사태 때도 포지션 오픈한게 보통 일도 아니고. 여기서 욕하는 놈들은 투자는 커녕 주식도 모르는 놈들이지.
- 윗 분 말씀에 동의합니다. 현직 종투사 직원인데. 그 어떤 종투사도 호재를 이렇게 빨리 알리지 않아요. 그리고 악재는 더더욱 이렇게 빨리 알리지 않죠.
하물며 본인 이름 걸고, 본인 얼굴 드러내고 한 발언인데... 이게 보통 용기로는 못할 일이거든요. 체면과 이미지가 중요한 경우엔 더더욱. 용기있는 선택에 박수보냅니다.
- 그럼 이미 투자한 사람은 어떻게 함? 나 바트화 좀 샀는데... 두 번째 영상 말대로면 이거 휴지조각 되는거임?
- 휴지조각 되기 전에 팔고 원화 사시던가 아니면 달러를 사세요. 김태준 회장이 퀀텀에 졌다고 선언한 순간 부터 퀀텀펀드 쪽 포지션에 사람들 몰려들겁니다.
이도 저도 못하겠다 싶으시면 그냥 두번째 영상 하단에 쓰인 링크 타고 가서 구매한 바트화를 김태준 회장에게 팔아도 되고요.
환율 거래법상 불법 환전 여지가 있어서 유니버스넷 쇼핑플래닛 포인트로 바꿔준다는데.... 평소 쇼핑플래닛 쓰시면 그게 훨씬 이득일겁니다.
- 여기 경제는 알지도 못하는 놈들 많네. 태국 망하면 다음은 우리다.
우리나라 은행이 태국에 얼마나 돈을 꿔줬는데.... 쯧쯧. 김태준 회장도 그거 알고 움직인거임.
우리나라 망하면 자기 사업도 망하니까. 우리는 지금 위기 안왔을때 달러만 잔뜩 사면 그만임.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것 같은데. 현직 은행원입니다. 은행에서도 이번 사태 예의 주시하고 있고, 자금 회수 절차 들어가서 빠르게 회수중입니다. 손해는 좀 봤지만요.
김태준 회장이 포지션 변경한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 같네요. 은행이 회수하기 시작해서 자력으로는 버틸 수 없으니까요.
김태준에 대한 악성 댓글 보다는 응원 혹은 순수한 분석글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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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청와대로 불러간 사이, 미국의 퀀텀펀드는 이어진 두 번째 영상 때문에 사실상의 내분이 벌어졌다.
"이것 봐! 우리가 이겼다고! 원안대로 바트화 공격 들어가면 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미 우리 포지션 까발려졌고, 영국 경제 반의 반도 안되는 태국을 상대로 반나절 가까이 바트화 약세는 커녕 오히려 조금이지만 강세로 튀어올랐는데..
김태준 회장이 졌다고 손 뗀다고 했다고 이걸 우리가 이겼다고 할 수 있나? 적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바에는 보스 말 처럼 공격 중지하고 바로 한국을 치는게 맞아!"
애널리스트들간의 내분을 별실의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던 손의정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 어떻게 할 겁니까? 소로스."
"생각 중이네."
"이대로 가다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어."
그렇게 손의정의 재촉에도 소로스가 침묵한채 가만히 있던 그 때 로저스가 굳게 닫혀있던 별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을 이었다.
"고민할 게 있나?"
"로저스. 오랜만이군."
"소로스. 자네 하와이 별장 좋더군. 거기서 평생 살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그렇게 인사를 나눈 로저스가 의자를 끌고와 대충 앉으며 말을 이었다.
"태준이 올린 영상 잘 봤네. Comic Sans 폰트로 자막까지 달아서 웃기더군."
"내용은 결코 웃기지 않았지만 말이야."
"뭐 어쩔 수 없지. 일본, 영국, 거기에 미국까지. 전부 털어먹은 친구인데, 우리같은 범인이 상대할 수 있을리가 있나."
"자네라면 어쩌겠나."
"나라도 곧바로 한국을 치겠어. 태준 역시 방어하겠다고 태국에 물린 돈이 많으니 당장 빠져나올 수는 없을테니 말이야."
로저스의 말에 소로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결심한 이 시점에 태준이 2차 영상을 올렸단 말이지..."
"그러니 그거에 흔들리지 말자는 거지. 내용만 놓고 보면... 패배를 인정한다기 보다는... 뭐랄까. 오판했으니 같이 태국을 털어먹자. 뭐 그런 이야기로 들리는데...
우리가 우리에게 피해를 준 태준의 농간에 함께 휘둘릴 필요가 있나?"
로저스의 말에 소로스는 결심한 듯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별실의 문을 열고는 언쟁하는 애널리스트들에게 거칠게 소리쳤다.
"닥치고 시킨거나 잘해! 이 머저리들아! 원화 공격이나 준비하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