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86화 (86/200)

086. 동아시아 금융위기 (3)

"안녕하십니까. 김태준입니다."

가볍게 인사로 시작한 영상속 태준은 이후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부터 제가 가진 모든 자금을 태국 바트화에 쏟아부을 겁니다. 정확히는 달러를 팔고 태국 바트화를 산다고 표현해야겠죠.

달러를 공격할 셈이냐 물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닙니다. 태국 바트화를 공격하기 시작한 헤지펀드를 공격하는 겁니다.

헤지펀드들이 보통 특정 국가를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은 특정 국가의 화폐가치를 급락시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달러를 담보로 그 국가의 화폐를 사들여, 되팔기를 반복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의 화폐는 수치상으로 순간적으로 많아지고, 달러는 희소해지면서 갑작스런 통화 팽창이 오게 되고, 공격을 받은 국가의 모든 자산은 순식간에 저렴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인 점이 있습니다. 주식을 거래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매도는 이론상 최대 수익률이 100%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대 손실율은 무한히 올라가죠.

헤지펀드들의 이번 바트화 공격은 사실 공매도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인 즉, 어떻게든 달러만 지속적으로 공급해서 바트화의 환율을 방어해내기만 한다면...

헤지펀드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레버리지에 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자멸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럼 그 손실은 어디로 갈까요? 결국 태국은행이 수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달러를 만약 계속 팔고, 바트를 사들인다면 어떨까요?

계속 평형 상태만 유지해도, 결국 헤지펀드들은 기간이 도래해 담보로 잡힌 달러를 빼앗기게 될겁니다.

수익이 나오지 않고, 환율 변동이 없으니 원금을 갚을 수도 이자를 갚을 수도 없으니 담보를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태국은행에는 달러가 쌓이게 되고, 바트화의 가치는 올라갈겁니다. 그렇게 바트화의 가치가 올라가면 그만큼 돈을 벌게 되는 셈이지요."

일종의 선동에 가까운 태준의 말은 지루할 법도 했지만, 듣는 소로스 조차 '정답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혹할 정도의 마력이 있는 것이었다.

연신 여유롭게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대중을 선동하는 태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학자같고, 어떻게 보면 예언자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에 더해...

"아, 참고로 말만 이렇게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실 분들을 위해. 정확히 태국 바트화에 대해 공격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 영상이 공개될 겁니다.

그리고... 제 소유의 KTJC가 태국 바트화를 얼마나 매입했는지, 또 환율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유니버스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드릴겁니다.

그리고 바트화의 매입이 끝나는 건. 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 바트화의 가치보다 살짝 더 올랐을 때입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러니. 당신의 진영을 정하세요."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종의 쇼를 자신의 플랫폼을 통해 벌이는 태준의 모습이 더해지자....

-쾅!

소로스는 본능적으로 태준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너는 내 손바닥 위 원숭이에 불과하다.' 따위의 격한 말을

굳이 하지 않고, 모든 대응책이 준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태준은 소로스에게 혐오....

아니, 두려움을 심어준 것이었다.

그렇게 손을 부들거리며 책상을 내리친 소로스를 본 손의정은 화면 속에서 연신 깜박대며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그래프를 보았다.

엎치락.

뒤치락.

위 아래로 춤추듯 움직이는 그래프를 보며 손의정은 옆에 선 애널리스트에게 질문했다.

"우리 레버리지 비율이 얼마나 되지?"

"500%입니다."

"... 회장님이 작정하고 동원하면 압살하겠군. 대강 추산하기로 우리 보다 원금이 배는 더 많으니까. 그쪽도 레버리지를 쓸테고..."

손의정의 그 말에 소로스가 이를 빠드득 갈며 말을 이었다.

"이젠 태준이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대중이지. 저 선동으로 대중이 움직이기 시작할거야. 거기다 태준의 말에 혹한 기관도 나올 수 있겠지."

그 말에 손의정은 침묵했지만,

태준의 무서움과 비범함을 모르는 애널리스트는 반박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계산상으로는...."

물론 그 반박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기에, 소로스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 계산의 전제가 바뀌어 버렸으니까. 손에 꼽는 부호. 자신의 사업체 전부를 비공개로 운영하는 남자.

그나마 공개되어 있던 것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공개로 바꿔버린 사람이 바로 태준이야.

그런 그가 자신의 자산을 전부 바트화를 사는데 쏟아붓겠다고 했어. 이런 사람의 특징이 뭔줄 알아?"

살짝 떨듯이 말하는 소로스의 말에 애널리스트가 조심스럽게 묻자.

소로스가 답했다.

"절대 패배하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거야. 패색이 짙다? 그럼 그는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회사들을 공개해버리는 한이 있어도 절대 자신의 패배를 용납치 않을거다.

그렇게 들어오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그는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해낼거고, 그 승리를 막아보겠다고 난리치는 병신들만 갈려나가 그의 부를 늘려줄 뿐인거야."

격한 표현.

그 격한 표현에 손의정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IT붐때와 비슷하군요."

그 말과 함께 장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아니, 정확히는 손의정의 오더에도 진짜 주인 소로스의 오더가 아니었기에 그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며 바트화를 어떻게든 털어보겠노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외환딜러들이 일으키는 소음만이 장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이대로 질 순 없지."

그렇게 한참을 소음속에서 분을 삭인 소로스가 두 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하자, 손의정이 소로스를 보며 되물었다.

"질 수 없다면...?"

"포지션이 오픈된 헤지펀드가 선택하는 건 뻔한 것 아닌가?"

소로스의 말에 애널리스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설마. 물러나는 겁니까 이대로?"

그 말에 소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지금 당장 타깃을 바꾼다. 바트화가 아니라 원화로. 준비 시간은 단 하루. 그때까지 물량 서서히 줄여가면서 피해 최소화 한채 포지션 유지해.

이 것마저 눈치채면 영영 돈 잃고 끝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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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의 발표는 점유율 1위 포털의 메인에 걸렸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상당했다.

유니버스넷의 메인 마켓인 한국 시장은 물론이고,

가까이는 일본에서 멀게는 미국까지 태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런 민간의 반응과 함께,

대한민국의 정부 역시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환은행장은 아직이야?"

"지금 막 들어오고 있을 겁니다."

"을지로 코 앞에서 오는 거면서 뭘 그렇게 굼 떠!"

그렇게 김응삼 대통령의 호출에 부리나케 달려 온 외환은행장 장명석은 오자마자 빠르게 관련 자료를 김응삼 대통령에게 건네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김태준 회장이 우리 한국을 살려줄 요량인가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설명해라. 니. 아무 짝에 쓸모도 없는 자위질이라면 듣고 싶지 않으니까."

"현재 대한민국의 외환보유고는 약 200만 달러 수준입니다. 그리고 외환 부채는 그 9배 수준인 1800만 달러구요."

"... 그라모 경제 관련 인사들이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기가? 나라가 빛더미에 앉아있는데 지금 그걸 좋다고 신이나서 선진국 운운했다 이 말이가?"

그 말에 장명석이 손을 좌우로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건 결단코 아닐겁니다. 여기서 외환 부채는 다시 우리가 동남아에 해준 차관에 대한 것들입니다.

일본에서 이자가 싼 단기 자금을 빌려와 동남아에서 이자가 비싼 장기 자금으로 빌려주는..."

그렇게 외환 부채의 원인과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김응삼 대통령이 표정을 풀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그냥 회계상 채무일 뿐인기네?"

"그렇습니다만... 또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게 뭔 말이고?"

"만약 우리 채무자인 동남아국가들의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면... 우리가 동남아국가들의 채권은 말 그대로 휴지만도 못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기본 베이스가 어찌되었든 바트를 기준으로 대출이 들어간 것도 있거니와, 설사 달러를 기준으로 대출이 들어갔다고 해도 달러가 씨가 마를 수 있는 상황에서 빌려준 돈을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국가들이 갚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김응삼 대통령이 인상을 쓰자, 장명석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김회장이 나섰다? 말로야 본인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김회장이 말하는 것 만큼의 큰 돈은 벌 기 힘듭니다. 이겨도 바트화 가치가 올랐다는 간접적인 효과만 단기간 누릴 수 있을 뿐이죠.

애초에 버텨줘야하는 태국 자체도 체급이 작은 편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나섰다는 건...."

그렇게 김응삼 대통령이 장명석의 설명에 추임새인지 의문인지, 아니면 자문인지 알 수없는 말을 침음성과 섞어 뱉자,

장명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우리한테 시간을 벌어주는 겁니다.

김회장 본인이 총대매고 막아주는 사이 어떻게든 해외에 뿌린 돈을 거둬들이라는 신호지요.

아마 지금쯤 김회장은 쉴 새없이 외환 시장을 통해 태국에 달러를 공급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외환은행 독립 전, 한국은행 외환부에서 각종 대외환율 정책을 담당해 온 장명석의 날카로운 판단이 섞인 평가에

김응삼 대통령은 태준에 대한 도움에 감사하기 보다는 태준이 내려준 동앗줄을 잡는 데 집중하기로 하고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비서실장아, 니 곧장 안기부장하고 가가 은행들 동남아 채권 싹다 회수하라 캐라."

"예?! 민간...."

"늦으면 나라가 뒤집어진다 안카나. 나라 뒤집히는 꼴보다는 내가 나중에 감옥 들어갔다 나오는게 낫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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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가 분통을 터뜨리며 결의를 다지며 칼날의 방향을 태국에서 한국으로 옮기고,

김응삼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며 태준이 내려준 동앗줄을 잡으려던 그 무렵.

태준 역시 한국에 설치된 딜러룸에서 그래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포지션을 오픈했으니,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공격해 들어올겁니다."

"어째서죠?"

"간단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자산을 뺀 만큼 한국에 달러가 비고, 원화가 늘어날거라 생각할테니까요.

거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대 쪽은 이미 반 나절 정도 공격하고 실패했으니 더더욱 타깃을 바꾸고 싶을겁니다."

민영의 질문에 간단히 답을 해준 태준은 웃으며 답하자, 민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음...? 하지만..."

"예. 우리는 미국에서 달러를 조달해와서 달러를 팔아 한국 원을 사고, 사들인 한국 원을 '담보'로 태국의 바트화를 사들였죠."

"그럼 한국에는 일시적으로 원이 줄고, 달러가 늘어난게 아닌가요?"

"예. 하지만 상대는 모르니까요. 더군다나 내 발표를 상대측도 봤을거고, 바트화와 달러의 그래프만 지켜보는 상대의 입장에선 내가 달러를 한국에 팔았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테니 더더욱 그렇겠죠."

그 말에 민영이 박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 그래서 영상을 급하게 찍어서 유니버스넷에 공개하신거군요."

"예. 사람들은 정보에 민감하니까요. 실시간으로 변하는 차트를 보면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본능적으로 그 차트가 말하는 '사실'이 진실일 것이라 믿거든요.

그 뒤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는 생각도 안 합니다."

태준의 말에 민영이 뭔가 존경스럽다는 눈빛을 보내자, 태준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아마 지금쯤 공격을 하기는 하되 어떻게 발을 빼고 원화로 움직일지 고민중 일 겁니다.

손해는 최소화 하고 싶을테니까요. 그때 우리는..."

태준은 이어서 할 작전을 말하며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사들인 바트화를 담보로 잡아 달러로 바꿉니다."

"예.....!?"

그리고 그 황당하다 못해 이율배반적인 발언에 민영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듯 되물었지만.

태준은 그저 빙긋 미소지으며 속으로 앞으로의 일을 계산할 뿐이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얼추 한국 쪽 자본은 빠질만큼 빠졌을테고...

슬슬 퀀텀펀드가 맘 바뀌기 전에 마음놓고 같이 털어먹어야지.

물론 그 전에 태국 경제를 공격한 배후에 퀀텀펀드가 있었다고 밝히면서 악명을 그 쪽으로 몰아놓은 다음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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